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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
매완 호 지음, 이혜경 옮김 / 당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 중에서 나중에 엉터리라는 것을 알고 분노한 일이 많이 있다. 그런 와중에도 굳건하게 믿음을 유지한 내용들도 있는데 물리, 화학, 생물 등 주로 자연과학과 관련된 학과목 내용이다. 자연과학이라는 것도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알튀세르와 쿤으로부터 배웠지만, 적어도 중고등학교 자연과학 과목에서 가르칠 정도의 기초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수십년 믿어온 '공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엉터리라는 것을 또 한번 발견할 게 될 때 황당함이란!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지탱하고 있는 생물학의 편견들에 대해서 말하는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과 생명공학에 대한 '상식'을 깬다. 이 '상식'들을 깨는 과정에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이 약속한다고 하는 '멋진 신세계'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우선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자.
 

다음 세대에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생물의 생식세포는 체세포 기관을 통해서 복사되는 만큼 체세포의 유전자 변화는 당연하게도 생식세포에 영향을 주고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 생명체는 외부 환경에 의해서 끊임없이 유전자 자체의 변화를 겪기 때문에, 이 말은 곧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내용인데도 '획득형질은 유전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진리라고 반복되는 것은 도그마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생명체 형태의 기본적인 내용은 모두 유전자 안에 있기 때문에 유전자만 적절하게 분석한다면 생명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유전자는 다양한 외부환경에 반응하면서 전혀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동일한 유전자가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혹은 다른 유전자와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유전자의 영향으로 인해 특성은 발현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자는 무엇인가?
 
생물학에 대한 편견들은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임은 물론 역으로 그것에 의해 강화된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에 대해서 이렇게 흥미로운 예도 없을 것이다. '우리 유전자 안에 있다'는 주장은 과학이자 이데올로기로서 나타나고,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을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전제가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유전자 결정론', '사회 생물학'과 같은 사이비 과학들이 최첨단 유전자 공학 생명공학의 지지를 받으면서 대중에게 수용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유전자 조작과 인간복제를 상업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원할 수 있게 한다. 이데올로기와 과학과 자본의 고려가 동시에 작동하고 서로를 강화한다. 저명한 분자유전학자들은 이미 생명공학기업의 투자를 받거나 이사로 활동하는 등 긴밀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앞장서서 유전자 결정론을 선전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이데올로기는 기괴한 것이다.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유전자 조작농산물은 유전자 전이를 통해서 잡초의 제초제 내성을 길러주고 결국 농약으로 인해서 생산을 파괴한다. 사소한 기후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 세균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항생제는 박테리아에 대한 유전자 조작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을 확산하여 '슈퍼 박테리아'를 만들게 된다. 유전자 조작 식품에 포함된 조직된 DNA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 이런 DNA에는 불임유전자와 같은 것도 있다. 유전자 전이를 쉽게 하기 위한 프로모터는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가능하는 한편, 이종 간 질병 확산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최근의 조류독감 파동은 이런 직접적인 결과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파괴적인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는 우생학을 합리화한다. 유전자 안에 있다면, 열등한 유전자를 찾아내어 박멸해야할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비만 유전자'나 '범죄 유전자'를 찾아서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박멸(!)하기 위한 우생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유전자는 '환경 속에서' 발현하기 때문에 동일한 유전자가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방식은 정치적으로도 해악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유전병을 방지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재생산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박탈한다. 모든 것이 이미 유전자 안에 있다면 여성은 단지 유전자에 기입된 것을 발현하기 위한 인큐베이터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은 이미 제국주의 시대에 확립된 유전학이 가지는 관념, 모든 것을 지도, 통솔하는 유전자와 이에 따르는 재생산 세포라는 식의 구분, 자본-노동자의 구도를 본 딴 유전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이해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 산업은 제3세계에 대한 유전자 착취도 발명해냈다. 전통사회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작물들은 그것을 '발견'한 초국적 기업의 특허품이 된다. 그리고 제3세계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시험장이 되면서 전통농업의 재생산 기반은 파괴되고 초국적 기업에 완전히 종속된다. 유전자 다양성의 파괴, 농약의존으로 인해 곧 농민들의 몰락을 부추길 뿐이다.
 
최근의 쟁점이 되는 인간복제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할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 인간복제 시도는 성공할 수 없는데, 이미 고유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동물복제)는 체세포의 핵을 난자에 이식하여 이를 착상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미 체세포의 핵에 있는 유전자는 성체의 성장과정에서 배아상태의 것과 같지 않고 변형되어 있다. 따라서 전혀 '같은' 유전자를 확보할 수 없다. 또한 체세포 유전자는 발생초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가능성이 극히 낮다. 수백개의 난자를 확보하여 진행한다고 해도, 출산에 성공하는 확률도 낮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낮다. 복제양 '둘리'의 경우 300여개의 수정란을 조직함을 통해서 성공했다. 더 성장하더라도 이미 '늙어서 태어난' 것처럼 일찍 노화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복제의 문제는 인간 정신의 동일성이 복제된다는 오해와 같은 것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문제의 모든 결과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젝의 언급이 사고실험으로서 모순을 사고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사실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쟁점에 대한 무시로 인해 해악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쁜 클론을 두려워 하는가?Who's afraid of the Big Bad Clone? http://blog.jinbo.net/taiji0920/?pid=623)
 
저자는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의 이런 수많은 쟁점들이 상호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다. 무엇보다 장점은, 따로 따로 사고하기 쉬운 유전자 조작 생명공학의 여러 쟁점, 문제들이 자본의 이해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밝혀준다는 점이다. 인간복제로부터 제3세계 유전자 착취, 우생학,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곡물 메이저들의 착취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최근 뜸하던 황우석 교수는 개 한 마리를 복제한 이벤트로 다시 언론을 탓다. 이 책을 통해서 사실에 한 걸음 더 접근할 수 있다면 이제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복제 시도가 가지는 위험과 성공 불가능성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 복제가 결국 오로지 여론조작을 위한 부질없는 시도이며, 거대한 실망을 낳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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