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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7
    [독서]다시 발전을 요구한다(장하준)(2)
    겨울철쭉
  2. 2008/01/13
    [독서]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2)
    겨울철쭉

[독서]다시 발전을 요구한다(장하준)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장하준의 발전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가능한가"
 
발전주의 : 진보주의자들의 시대착오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 <사다리 걷어차기>에 이어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발전주의를 옹호한다.
 
최근 국방부의 "불온도서" 선정으로 인해 더욱 부각되고 있지만 장하준 교수는 "진보언론"과 "진보주의자"들에게 인기있는 저자였다. 우석훈 교수는 이번 국방부 "불온도서" 보도 이후 언급에서 장하준 교수에 대해 "중도 우파 학자로 후기 케인스주의자와 제도학파, 그리고 독일 역사학파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진보주의자들의 경제정책, 이념적 포지션이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비판과 더불어 발전주의 경제정책을 제안한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구체적" 경제정책에 따라 다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장하준의 경제정책 매뉴얼"이다. 이 책을 매뉴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경제학 에세이를 "매뉴얼"이라 주장하다니 위트도 있으시다)
 
책의 핵심 주장은 "개발도상국의 성공담은 잘 설계된 국가 개입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다"(24)라는 것. 이런 주장은 책 전체에 일관되게 반복된다. 내가 경제학도도 아니고 꼼꼼히 분석-비판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러한 핵심주장들과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좌파의 시각에서도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개입주의 옹호
   
이런 논지에서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개입주의를 옹호한다. 이와 함께 성공한 반주변의 사례로 동아시아의 여러나라를 제시하고 있다.(그러나 상당히 선택적이라는 점은 아래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반주변 국가의 성공담, 혹은 발전주의 시대의 이야기에서 장하준 교수는 원인과 결과를 도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50~60년대의 세계자본주의의 호황으로 인해 케인즈주의 정책이 가능했다. 금융억압도 한편으로는 위기 탈출을 위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선택이었지만 비금융-산업부문을 통해 충분히 이윤율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세계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자 바로 케인즈주의 정책과 금융억압도 위기에 빠진다. 케인즈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금융이 자유화되었기 때문에 70년대의 세계자본주의의 위기가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찬반을 떠나 명백한 역사적 사실인데, 저자들은 이를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간다.
 
게다가 세계적 발전주의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50~60년대에는 실제로 주변-반주변-중심부의 경제적 격차가 다소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70년대 이후에는 다시 확산된다. 이는 주변-반주변의 발전이 세계자본주의의 동학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왜냐하면 저자들의 관심사는 오직 발전주의 정책을 수행할 대상인 주변-반주변 국가들(저자들은 비록 "개발도상국"이라는 표현을 쓰지만)이기 때문이다. 세계자본주의의 변동은 따라서 관심밖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라서 이 지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동학을 무시하고 발전주의의 부활을 주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 19세기초에 영국이, 19세기말에 독일과 미국이, 50~60년대에 동아시아가 할 수 있었다고 해서 무역장벽과 개입주의가 지금도 가능한가 혹은 그것을 통해서 발전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다.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무시는 동아시아의 성공에 대한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들은 동아시아의 상대적 성공--우리도 인정할 수 있듯히 남한과 대만은 20세기에 서 반주변으로 상승한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다--은 개입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냉전으로 인한 요인을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이라고 서술한다. 동아시아의 성공은 반공발전주의의 성공이지만, 그 성공은 두가지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하나는 냉전으로 인한 미국의 역개방 정책이다. (마셜플랜의 원조 대신, 미국은 동아시아에 시장을 개방한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러한 전략으로 인한 적은 원조규모를 오히려 동아시아가 특권적이지 않았다는 논거로 사용한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수출지향 공업화가 성공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국제적 하청생산구조이다. 이는 미국처럼 법인자본이 직접 진출하지 못하는 일본 자본주의의 취약성으로 인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주변-반주변 국가의 산업기반 형성을 촉진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각 국의 경제정책은 일본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자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는다.
 
경제발전이 순전히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전략의 결과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요인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들에게는 이런 요인들은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 이와 연괸되어서, 저자들은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금융정책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물론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기는 하지만, 과연 개별 국가의 금융정책을 "발전주의적으로" 수립하는 것으로 실제 정책효과가 가능할까? 오히려 주변-반주변은 상시적인 금융위기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개별국가 정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제금융정책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무역-금융정책을 변화시켜야한다. 말하자면 WTO와 FTA를 막아내고 국제협약으로 토빈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개별국가의 대응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97~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과정에서 남한과 말레이지아의 대응방식은 크게 달랐고, 이에 따라 경제위기의 강도와 사회적 부의 유출 정도 등이 많이 달랐다. 그러나 이를 다른 영역까지 일반화해서, 이러한 개입주의를 통한 발전전략이 가능하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하다.
 
단적으로, 말레이지아는 금융위기의 충격을 덜 받았지만 남한보다 경제가 더 성장했는가는 물어보아야한다. 말레이지아와 같이 금융통제를 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전과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신흥시장과 금융세계화에서도 배제된 지역
   
한편, 저자들은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의 예를 들면서 경제성장이 오히려 민간자본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금융자본의 유인정책을 사용하기 전에 생산성을 높여야한다고 지적한다. 크게 틀린 지적은 아닐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나가야한다. 왜 특정한 국가들만 금융투자의 대상이 되는 "신흥시장"이 되는가? 왜 어떤 나라들(아프리카와 같은)은 금융시장에서도 배제되는가?
  
그것은 신흥시장에 대한 민간자본의 투자가 단지 경제성장 정책을 옹호하는 논지로만 언급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신흥시장이란 상대적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한 반주변 국가들에 대한 금융착취 매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화에서도 배제된 아프리카와 같은 "버려진 지역"은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틀에서 접근해야한다.
 
발전주의는 반복될 수 있다?
  
저자들의 지적처럼, 역사적으로 발전주의 정책을 잘 활용했던 일부 민족국가들이 성공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선별적 산업정책, 금융통제, 생산유치 및 일정한 보호무역 등은 그러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한 시기(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특수한 지역(동아시아)에서 가능했던 것이라는 점을 함께 언급해야한다. 그렇다면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여전히 그러한 정책들이 가능할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런 시간-공간에서조차 주변-반주변-중심부의 위계를 도약하는 민족국가는 20세기 내내 거의 없었다. 주변-반주변의 공업화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반주변의 발전이라기 보다는 공업활동의 주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위계를 흔들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의 구조적 종속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발전주의의 환상: 반주변의 재개념화", 아리기 -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과천연구실세미나9> 중) 그렇다면 특정 산업의 확대가 발전주의의 성공으로 언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과 같은 접근은 마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도 현명한 민족국가의 발전전략이 있다면 그러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위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주장의 정치적 결론은, 주변-반주변에서 발전주의 국가를 다시 수립하는 것이 된다. 개별 민족국가들은 유능한 전략(이른바 '발전비전')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데 집중해야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결론을 국제적으로는 물론 남한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미친 경제학자들"의 독특한 발명품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세계자본주의의 금융세계화를 위한 정책, 전략, 이데올로기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신자유주의 교리를 비판하고 대안정책을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대응을 불러온 위기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한다면, 오히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인해) 필연적으로 경제위기와 금융화를 불러오는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변혁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주변, 반주변의 개별국가들이 현명한 경제정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미국발 금융위기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민족국가의 대응은 의미가 없는가?
 
그렇다면, 이런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계 전체를 변혁하는 것이 난망한 마당에, 각 민족국가별로라도 대안이 있어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주장. 그러한 금융위기가 예상될 수록 민족국가별 대안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대안을 위한 지역적이고 국가적인 경제정책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미의 ALBA(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와 같은 대안무역구조 구축전략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자하는 것은 그러한 민족국가 혹은 지역적 차원의 대안을 발전주의 전략으로 부를 수도 없고, 그러한 발전주의 전략이 성공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필요한 것은 유능한 관료들에게 정권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남미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좌파 정권이 수립된 이후에야 지역적 대안을 논의할 수 있었다. 반주변은 급속한 공업화로 인해 노동자 인구가 형성되는 과정과 함께, 권위주의 정권의 일방적인 발전전략 추진에 반대하는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이 폭발해왔다. 따라서 반주변에서 이러한 체제변혁의 확산이 민족국가 차원에서나 지역적 차원에서나 세계적 차원에서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아내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히려 대안세계화와 대안무역
  
이러한 민족국가적이고 지역적인 대안형성과 함께, 국제적 금융자본의 이동을 통제하고 무역자유화를 저지해야한다. 이러한 운동은 개별 민족국가(들)의 정책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인 사회운동을 필요로 한다. 민족국가-지역-세계 각각의 차원에서 대안세계화운동이 전개되는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를 막아내는 다소간 유일한 정치적 경로라고 할 것이다.
  
개별민족국가에서 유능한 관료들이 발전주의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러한 민족국가 간의 경쟁은 결국 세계적 금융위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개입정책을 중시하는 발전주의 정책을 운용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독립된 민족국가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국가는 오히려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유기적인 구성단위이자 효과이다.)
 
덧붙이자면, 장하준 교수 등이 주장하는 발전주의 정책으로는 지구적 생태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한다. 적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안무역체계의 형성과 대안세계화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생태적 모순을 폭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개별 민족국가의 발전주의는 생태위기를 더욱 심화할 뿐이다. 저자가 긍정적인 예로 드는 중국은, 산업발전과 함께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고 생태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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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발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아래 두 권의 책을 참고하는 것이 의미있다.
  
조반니 아리기 외 지음, 이미경 외 옮김 / 공감
 
다이앤 엘슨 외 지음, 과천연구실 엮음 /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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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여 :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한편, 장하준 교수는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반대하지만 구조조정과 기업화된 운영방식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공공부문을 발전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데 활용해야하는 섹터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공부문의 사유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노무현 정권 시기에 강화된 시장화된 운영--공기업의 경영혁신지침, 경영평가 등으로 강요된다--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공공성과 보편성 때문이다.
  
물론,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SOC 산업의 효율화는 필요하겠지만, 여전히 발전주의의 시각에서 공공성은 부차적이며, 국가의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높여주는 한에서만 사유화를 반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주장하는 공공성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노조운동은 이러한 주장을 섣불리 수용해서는 안된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제로 장하준 교수 식의 주장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수용되는 추세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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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진로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조영철 지음 / 후마니타스

 

이명박이 당선된 이후에 재벌에 대한 규제완화를 비롯한 "친기업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온통 재벌, 대기업에게 유리한 것들로 채워져있다. 이명박의 정책패키지는 이전 정권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급진화시킬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명박의 경제정책들은 "친기업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모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모순은 조만간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경쟁력강화특위장인 사공일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발전국가 하에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인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의 재등장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발전국가를 재도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왜 그런지, 그것이 성공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사공일은 5공 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인물이고, 3저 호황 시에 재경부 장관이었다. 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연구소'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씽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와 긴밀하게 연계해왔다.)

 

금융세계화에 대한 실증적 분석으로 채워진 이 책은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금융세계화의 역사에서 시작해서 미국-독일-북유럽 모델을 검토한다.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평가와 진로가 이 책의 또 한 축인데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책을 소개하는 것이 여기서 목적은 아니니 몇가지 눈에 띄는 시사점을 언급해보자.

 

우선, 금융구조, 기업지배구조, 노사관계 제도/관행을 포함하는 경제체제는 각각이 결합되어 있어서 각각 분리해서 몇몇 개별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적용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혹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북유럽이나 독일에서 산별노조-중앙교섭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제도뿐 아니라 기업이 자금을 주식시장이 아니라 주거래은행을 통해서 확보한다는 사정까지 연관되어 있다. 주주자본주의의 취약성은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이해관계를 갖는 은행자본과 종업원(경영진과 노동자)들이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 차원에서의 타협도 가능하다.)

 

작년부터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던 "사회연대정책"과 같은 경우는 북유럽모델 경제정책 패키지의 일부인 "연대임금정책"의 한국판 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스웨덴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제구조가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연대임금정책을 "노동자양보론"이라고 비판한 입장들도 정당하긴 하지만 더 나가서 말할 필요가 있다. 요컨데 그렇게 제기되어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의할만한 정책대안을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운동전략 수준으로 비약시켰다는 점에도 있다. 물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주체들의 입장은 다분히 논쟁적이고 '의도적'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남한이 미국과 같은 조건이 아닌 이상, 미국식 경제체제로 수렴될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구조의 변화는 전면적인 것이어야 그나마 '사소한' 개량주의 정책, 사민주의적인 정책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세계자본주의의 생산적 팽창이 일어나던 시기에 가능했던 그러한 경제모델이 금융세계화 국면에서, 반주변에서는 실현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경제체제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에 동반되지 않은 채 제기되는 "사회연대전략"과 같은 것은 허망할 수밖에.

 

둘째로, 주주자본주의의 전면화라는 방식의 금융화된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에 조차도 "역사의 필연적인 완성"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도 (심지어는 영미에서도) 주주자본주의가 전면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현재에도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는 상당히 독자적인 모델의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 물론 이들이 영미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금융세계화를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전면화로 이해하고, 따라서 (쌍둥이 적자로 유지되는) 미국경제의 유지불가능성을 곧 금융세계화된 자본주의 자체의 유지불가능성으로 등치시키려는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미국경제의 붕괴가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심각하고 결정적인 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위기의 원인이 모든 국가의 경제모델이 미국식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금융세계화가 심각하게 진전되고 있으나 미국과 같을 수는 없고, 따라서 한국의 조건에서 제기될 수 있는 구체적인 경제체제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기껏해야 다른 자본주의 모델을 대안사회 모델로 제기하는 것과 같은) "정책대안"이라는 방식으로 제기되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남한"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 체계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변혁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대안이 제기될 필요가 있다. 요컨데 일국적 모델이 문제가 아니다.

 

세째로,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의 정세를 진단하고 대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특히 한국전쟁이후 남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국가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서술하는데,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90년대와 2000년대, 현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모순된 요소를 포함한다. 한편으로는 금융허브 구축, 금융자유화를 추진하고, 또 한편으로는 금산분리완화, 출총제완화, 공정위 폐지(축소)와 같은 친재벌적인 금융정책, 그리고 대운하건설과 같이 경기부양을 위한 (아마도 결국은 재정정책이 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몇몇 전략적인 업종에 대해서는 산업정책도 시행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금융자유화는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 보장과 충돌하고 과도한 재정정책은 거시경제 측면에서 금융자본의 이해를 침해한다.

 

아마도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과거에 찬란한 영광을 안겨준 발전주의 전략(산업정책과 금융정책, 재정정책)과 현재 국제적인 자본주의의 "대안"인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모두 결합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동그란 네모"와 같이 불가능한 전략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해주는 것은 "친기업정책"이라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지만 조만간 정책적 실패 앞에서는 그런 수사는 별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한 쪽의 선택을 해야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 지점에서 동요하다가 임기응변을 '실용주의'로 포장할 가능성이 많다.(이명박도 노무현만큼 럭비공처럼 튀어다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대중-노무현이 오히려 정책적으로 일관되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의 (예정된) 실패가 가지는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예상하는 것이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우리가 그것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폭로하고 어떤 대안을 낼 것인가와도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재벌옹호 정책을 신자유주의 논리로 비판하는 (참여연대 식의) 비판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은 위에서 "어떤 다른 대안"과 함께 제기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이 내가 이제까지 언급한 이런 것들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주장하고 이를 위해서 정책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일단 통합신당은 불가능해 보이니, 결국 민주노동당이 그러한 역할을 자임할 것인가?) 미국경제의 위기를 예상하는 가운데 내포적 성장전략을 채택하고 조정시장경제와 (숙련된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고진로 전략으로 정책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곧바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저자가 제기하는 수준의 구체성을 가진 논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대안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한편, 이런 입장과 지난 대선에서 가장 가까웠던 것은 창조한국당 문국현과 한국사회당 금민이었다. 노동자운동 안에서도 "새흐름"의 일부 분파는 이와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에 노동/사회운동 안에서  고전적인 좌-우 구분이 흐트러질 것을 예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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