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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1
    [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2)
    겨울철쭉
  2. 2008/01/15
    [독서]성경을 해방시켜라
    겨울철쭉
  3. 2007/10/12
    로마, 시간과 대면하는 곳(3)
    겨울철쭉
  4. 2007/07/22
    [독서]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2)
    겨울철쭉

[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단테의 신곡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직접적인 계기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대한 독서다. 책은 신곡 지옥편의 첫 두연으로 시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레비는 신곡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인간임을 자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신곡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그리고 그 켭켭이 쌓힌 각주들까지)까지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작품이 "인간임을 지탱하게 할" 힘이 있는지 나는 잘 확신할 수는 없다. 위대한 작품이라는데는 전혀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기질적인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기독교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감성에 완전히 일치되기는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레비의 언급을 통해서 신곡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할 수 있다. 레비는 지옥편의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구절(26곡)을 수용소에서 기억한다.(아래 인용한 번역들은 모두 내가 읽은 민음사판의 것)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운명 앞에도 불굴의 의지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도전한다. 그러나,

풍랑은 우리 배를 바닷물과 함께 세바퀴 돌게 했다오
네 바퀴째에 선미가 높이 솟아오르더니 뱃머리에서 떨어져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로 덮쳐왔소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레비는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라는 구절을 되씹는다.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좌절할 때, 그러나 지옥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죄악,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운명인가. 그것은 단테가 쓴 의도와는 다른 것일 수 있지만, 단테가 본 지옥도 인간의 눈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신곡은 그렇게 열려있다.

작품 전체는 단테의 구체적인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제약 안에 있다. 단테는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하나씩 지옥편에 등장시킨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교황도 예외없이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데, 교황청의 금서가 될 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교황청의 권위에 근거한 중세 카톨릭 체제가 이미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과학지식에 따른 지리적 설명(주로 천국편에 등장하는)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단지 지리적인 오류만이 아니라 인종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옥편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등장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간중간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런 구체성 때문에 신곡을 읽을만하다고 해야할 것같다. 그런 구체성들이 없다면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은 따분한 교리문답에 그쳤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천국편의 상당부분은 사실 순전히 신학적인 교리문답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구체성의 핵심에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이 있다.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후 사랑에 빠진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기 훨씬 전인 1290년, 그녀를 죽음으로 이별한다. 베아트리체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사진은 단테가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여행할 때 만난  다른 여행자가 나의 작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이 이야기를 가르쳐주었는데, 신곡을 읽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신곡 전체에 가장 가슴떨리는 부분은 연옥편의 후반부(30편~)부터, 연옥의 끝 에덴동산에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옥에서부터 이제까지 순례자(단테)를 인도하던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를 대신해 천국을 안내한다. 천국편까지 베아트리체가 등장하는 구절들은, 단테가 이 작품을 무엇보다 자기위안을 위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어느 구절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그 것을 묘사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70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언어로 번역된 시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던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다른 생각은 그만 하세요. 내가 모든 고통을 덜어주시는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생각하세요"

그 사랑스러운 말에 나는 나의 위안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거룩한 눈에서 본
사랑은 너무나 거대해서 말로 옮기지 못하겠다.

내 말이 실패할까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가 위에서 인도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그런 높이까지 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다른 모든 추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곧게
비치고 있었고, 그 반사광이 나를
기쁨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소의 빛줄기로 나를 압도하면서
말했다. "이제 몸을 돌려 잘 들으세요.
천국은 내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 천국편 18곡 중

단테가 천국의 안내자, 혹은 동행자(그러니 그녀는 진정으로 Soul Mate라고 할만 하다)로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 것은, 그녀가 구원의 여성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테의 사랑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었을지라도 천국을 희망하는 삶의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방대한 신곡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물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일방적 판타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 판타지는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영혼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우정이든, 날개달린 에로스든 만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한편,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신곡을 통해서 기독교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한국에서는 교회를 통해 복을 내려주는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것은 절대자를 통해서 영혼의 고양, 완전성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보면 하느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의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매개로 그 자체가 하나의 비유일 수 있다. 다만, 불교와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라고 가르치는 데 비해서, 기독교는 하느님을 매개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사소한 차이는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기 한계 내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겸손하고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거스르려 했던 그만큼 자꾸오르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혼자 힘으로
하느님께 이르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말하자면 두 길들 중 하나로,
혹은 두 길 모두를 통해
인간이 완전한 삶으로 이르는 길을 마련하신 것이지요.

그 일을 행하는 자가 더 감사하는 만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가 더 선하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자국을 남긴 영원한 하느님의 덕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기꺼이 다시 한 번
인간을 끌어 올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 천국면 7곡 중 베아트리체의 말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표상, 인격신으로서 "야훼"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인격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쉬운 비유 때문에 왜곡되기도 쉽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성경 자체도 물론이지만 심지어 "하느님"의 표상까지도 일종의 비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야, 영혼을 ("천국"으로 불리는 지고의 장소까지) 고양시키는 기독교 안의 위대한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천국까지 길을 걸으면서 인간과 악마, 천사와 신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일종의 "여행기"라 할 만하다.(SF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우주적 규모의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여행에 신곡의 독서를 통해 동반하면서, 단테가 추구하려고 했던 영혼의 고양을 함께 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장면을 구경해 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경험은 현세에서들 하셔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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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성경을 해방시켜라


성경을 해방시켜라
존 쉘비 스퐁 지음, 한성수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기독교 성경을 몇번이고 읽어보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사실 몇장을 넘기기가 고역스럽다. 구약부터 읽으려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신약부터 읽으려고 해도 도대체 "그래서 말하려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 이내 들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구약은 다른 민족들의 그것처럼 '신화'일 뿐이고, 그런 측면에서 읽으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나조차 그 프레임에 갖혀있는 셈이다. 신약에 대해서라면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할지" 알려줄 사람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그것을 정직하게 '신화'로 읽는다면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상징들과 무의식을 사고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그런 소득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 개신교 교회의 추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기독교라는 종교에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성경에 다가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신화와 잠언 속에 어떤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이가 필요하다. 천지창조와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억지 말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같은 무신론자도 기독교를 비로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존중할 수 있게 만든다. "머리가 거부하는 것은 결코 가슴이 예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종교적 교의도 맹신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온갖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가득한 것으로 보이는 성경을 어떻게 머리가 거부하지 않게 할 수 있단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이해할 경우 그런 허무맹랑함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구약 안에는 상이한 성격의 신화들이 섞여있고 따라서 대표적인 이야기인 창세기와 아담과 이브 신화는 서로가 일치하지도 않는다. 구약은 기원전 900여년 경부터 문자로 고정되기 전까지 수개의 서로 다른 신화가 융합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고대 유대민족의 상이한 기원과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약은 "역사적 문서"다.

한편, 신약의 기원도 복잡하다. 그것들은 적어도 예수 사후 30년이 지나서야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그나마 상이한 분파들이 다른 뉘앙스를 갖고 기록했다. 입에서 입으로, 분할된 종파들 안에서 전해진 예수의 가르침이 일관되게 제시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심지어 예수탄생과 부활의 에피소드도 각각의 복음서가 전혀 상이하게 전하고 있다.) 신약은 예수라는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했지만 상이한 집단에서 다른 성격으로 발전한 종교운동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유대인 기독교도에게(마태복음), 소아시아의 비유대인 기독교도에게(누가복음), 로마라는 세계도시의 기독교도에게(바울) 예수의 가르침은 다르게 변용될 수밖에.

그렇다면 '역사적 문서'인 성경의 가르침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고대문서의 꾸러미에 불과할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성경, 예수의 가르침이 가지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역사적 경험에서 변용되지만 여전히 보전되는,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경험에 따라 확장될 수 있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으며, 따라서 2000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예수는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현재적인가? 저자에 따르면 예수가 당대에 그렇게 많은 추종자를 모았으면서도 동시에 증오받고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은 제도적이고 관습적이며 종교적인 안전장치들을 무장해제시키면서 제기되는 것, 어떤 이도 배제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인류애, 보편적 공동체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이였던 것이다. 그것은 이방인들, 문둥병자, 창녀, 세금징수원, 도둑들에게도 열린 것이다.(현대라면 이주노동자, AIDS감염인, 성노동자 같은 하위계급-소수자들일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교회는 이들을 '절멸'하고자 할 것이다. 이들의 '근본주의'는 얼마나 反-그리스도적인가!) 따라서 그것은 지배자들에게 격렬한 증오를 받고, 또 그런 소외된 자들에게 수용되고 확산된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유대신화의 인격적이고 부족적인 신이 아니라 보편적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정신, 누구나 만날 수 있고 어디에나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다. 그것은 인격적인 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스피노자의 신, 세계 자체에 가깝다. 각자의 정신이 고양되고 무한히 확장될 때 만날 수 있는 우주-존재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신을 만나는 경험은 "존재의 심리학"에서 매슬로가 말하는 "절정경험"과 같은 것일 수 있다. 자신을 대면함을 통해서 세계를 만나고 고양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매슬로 역시 절정경험의 하나로 종교적 경험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영지주의적이기도 하다. 물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단'이라고 펄펄 뛸 일이다.)

저자 스퐁의 시도는 이런 점에서 어찌보면 위험하다. 그것은 나같은 무신론자가 성경을 역사적 문서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종교를 강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구조--신비적 외양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문자주의를 거부한다는 것 뿐 아니라, 이런 점에서서도 기존 교회의 강력한 거부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역설적인 것은, 예수의 가르침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신비화될 때 물질적-이데올로기적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예수의 가르침과는 별로 상관없는 주장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여전히 스퐁의 저작에도 불구하고 문자주의-근본주의 기독교 보수세력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이 소망교회 신도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이 무슨 상관이람!)

그러나 스퐁과 같은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한다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종교적 색채를 갖는 걸작들이 왜 "영적인" 감동을 주는 지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허무맹랑한 신화에 빠지지 않더라도 그러한 숭고한 경험들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미신적인 기복신앙이 아니라도 다른 종교적 경험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나 같은 무신론자들은) 앞으로도 교회 신도들처럼 신이나 종교를 여전히 믿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예수에게서 시작된 2000년의 가르침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2000년 전에 단 한번 발생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들이 재현해온 것들까지.) 그리고 덕분에 문자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이며 미신적인 신자들이 아닌 기독교 신자들과는 열린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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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간과 대면하는 곳

로마, 시간과 대면하기

로마는 시간이, 마치 퇴적암처럼 쌓인 몇 개의 지층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고대 로마 유적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대가 남긴 물질적 증거들은 도시를 독특하게 만든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처음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은 바로 이런 시간대가 구별되지 않고 시야에, 머리 속에 섞여들면서 생기는 혼란 때문이다. 시간의 지층에 따라 여행일정을 짜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유적, 박물관 등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혼란은 어쩔 수 없다. 잠시 전에는 미켈란젤로가 15세기에 조각한 기원전 12세기 인물인 모세의 상을 보고 나서, 20분 후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건설된 로마 신전과 공회당 유적을 보게 되는 식이다. 수천년의 시간 대가 눈앞에서 질주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로마의 복잡다난한 역사가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로 수백년간 융성했던 로마는, 제국의 붕괴와 함께 황폐화되지만, 기독교의 중심으로 다시 건설되어가고, 15-16세기에 막대한 힘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종교개혁을 불러오는 그 시기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어 위대한 건축과 조각, 회화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한편에, 고대 로마 유적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도 흥미롭다. 기독교도들은 신탁의 공간 정도였던 로마의 신전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는데, 이것은 로마의 공회당(바실리카)과 같은 건축물을 활용하거나 모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건축의 요소들은 뚜렷히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명한 성당 내부에는 그리스-로마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성당이 로마의 판테온(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의 돔을 모방한 두오모를 갖고 있다.

(기독교가 교인들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특수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지적--이데올로기는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는--에 영향을 준다. 신도들이 공동체의 공간, 교회에 모여서 집단적인 물질적 실천, 무릎꿇고 기도하고, 예식을 집단적으로 매주 수행하는 것은 기독교에 고유한 요소. 그리스, 로마의 종교적 행위는 다른 방식이었던 것이다.)

산재한 고대 로마 제국의 유산도 엄청나지만, 기독교(현재는 그 한 분파인 카톨릭)의 중심인 로마에는,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저 성당에는 카라바조의 그림, 옆 성당은 베르베니가 설계한 식으로, 도시가 르네상스 시기 예술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를 생각하다

이곳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같다. 그래서 그런 것은 일단 (그런 게 있다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전체적인 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생각한 기독교에 대한 단상만.

이곳에는 기독교의 각종 유물이 ‘현존’한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는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유골과 (여기부터는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 조각,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등의 성물이 안치되어 있다.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에는 베드로 성인을 묶었다는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고(옆 사진), 성스러운 계단 성당에는, 예수가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갈 때 올랐다는 계단이 옮겨져 있다.

(대부분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라나가 수집한 것이다. 아마도 제국의 변방에 300년도 지난 이런 유물을 찾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지역 총독이 어떤 식으로 황제의 어머니가 요구한 것들을 “찾아”냈을지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기독교가 어떤 초역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추상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점. 따라서 그것은 오히려 ‘유한해’ 보인다. ‘역사적 기독교’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나할까.

또 한편, 이 속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이 있다. 이미 제국 곳곳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면서, 더 이상 탄압으로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황제는 자신도 사실은 기독교도라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알려져있다) 기독교는 신분의 차별을 부정하는 혁명적인 평등주의 사상으로 대중에게 확산되었는데, 지배계급은 그것을 변용하여 수용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용하려고 한다.

알튀세르는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이데올로기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독교의 역사가 바로, 피지배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지배이데올로기로 영유하는 과정이었다. 이후에 기독교는 계급지배를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순치’되지만, 그것은 지배계급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전에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이러한 기독교 교회의 권력은 로마에 집중되었는데, 도시 전체가 위대한 종교적 건축물들로 넘치게 만들었다. 이런 성당에 들어가면, 종교를 믿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숙연해지는 성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경우에, 특히 바티칸의 상징인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에는 그것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하고, 결국 종교개혁과 전쟁을 불러오게 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교황청은 이 점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보다 큰 성당은 지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카톨릭은 그나마 이런 자기 제어라도 있지만, 개신교는 날로 거대한 교회를 짓고 있다. 사실상 면죄부를 교회 안에서 판매하면서 말이다.

거대한 시간

고대 로마의 유적은 주로 ‘포노 로마노’라고 불리는 유적군에 집중되어 있다. 이 곳은 주로 언덕에 살던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언덕 사이의 저지대에 공회당, 원로원, 신전 등을 건축하면서 형성된다. 지금도 많은 유적이, 비록 무너졌지만 당시의 규모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들(‘모나리자’도 그런 경우)을 보면 배경에 거대한 폐허를 그려넣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곳의 풍경, 특히 로마 제국 황제의 궁전이 있던 카피돌리노 언덕 폐허의 장면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구나.

원로원 유적 앞에는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된 장소가 있고, 그 옆에는 안토니우스가 시저에 대한 추모연설을 통해서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한 티투스황제가 세운 개선문도 남아 있는데, 그 문의 부조에는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7개의 대가 있는 금촛대, 예리코 성벽을 무너트릴 때 사용된 은나팔을 노예와 보물과 함께 가져오는 장면도 있다. 유명한 콜로세움도 인접해있어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현장이, 돌덩이 유적으로 남아 이 곳에 있다.

유적 한켠, 무너진 대리석 기둥에 앉아서, 숙소에서 싸온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그곳들을 바라본다. 거대한 유적들만큼 거대한 시간을 실감하게 되는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은 마치 곳곳에서 급류를 만드는 거대한 강물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제지당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밀고 나간다.

내가 있는 시간도 그렇게 밀려간다. 이곳에 살았던 로마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고, 욕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했을까. 그것들이 모두 돌덩이로만 남아서 수천년 후에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이 된 곳.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만 자기 자신과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에 겸손해야한다는 것도, 그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야한다는 것도.

로마에서의 경험은, 너무나 거대한 것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한 인간의 외소함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과 규모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스틴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런 천장화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작품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은, 미켈란젤로라는 한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에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숙연함이다. 그런 존재들 앞에서 나는 있는 힘껏 내 존재의 최대치를 살아야할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 바티칸에 있는 몇 개의 작품은 다음에 언급하자,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피에타. 카라바조의 같은 작품들. 그리고 고대의 유물인 라오콘 군상에 대해서.

*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여행지, 그리스로 간다.

* 너무 인상적이라 숙소 근처에서 담은 노을빛, 본 것만큼 환상적인 색감은 값싼 디지털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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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김진호.최형묵.백찬홍 지음 / 평사리

 

[먼저 이들의 무사기환을 기원하면서 말하자면] 아프카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인질로 잡힌 후, 이 사건과 관련해서 기독교의 ‘해외선교’활동을 돌아봐야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겨레 신문 기사 등 ; ‘한국=기독교 선교’ 인식 탓 피해 가능성) 이번에 납치된 한국인들의 경우에 직접적인 '해외선교‘ 활동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건 전 교회의 입장등을 통해서 볼 때) 애초의 취지가 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는 뉴라이트 계열의 기독교 우익 NGO인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이기도 한데 그 연관성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남한 교회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이에 함께한 남한 정부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은 확인하고 가자. 이 글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고와 비판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그러나 이 전쟁의 한 측면이 근본주의 간의 충돌이라는 점, 그것들이 정치가 불가능지는 정세를 폭력을 통해서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을 모방하는 남한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공격적인 '해외선교' 역시도 문제의 일부라는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비록 정세적 고려 속에서 부차적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입장은 다소 위험하게도 두 가지 모두와 쟁점을 형성할 수 있다. 기독교가 전적으로 문제라는 입장--포탈사이트 덧글에 만연한, 역시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입장이며 종교적 비관용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도, 그것은 전혀 다루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예를 들어 "리장"님의 이 포스트--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공격적인 ‘해외선교’ 활동에 나서는 이유는 국내 교회 성장세의 둔화 등에서 가지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쉽게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다. 종교기관이 (마치 자본과 같이) 무한이 증식하기 위해서 투자를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남한 기독교 교회가 성장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남한 교회가 내재화한 이데올로기, 반공발전주의와 관계되어 있다. 기독교 교회는 반공발전주의 국가에 적합하게 조직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던 셈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남한 주류 기독교 교회의 이데올로기를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면서 진단한다. 그것은 대한제국 말기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상징적 사건으로 하는 초기 조선 기독교 전통의 형성에서 일제에 순응하고 타협한 20세기 초반기,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과 반공발전주의를 내재화한 해방이후, 군사독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거쳐,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노골적인 우파 정치세력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이에 비해서 반독재 투쟁에 나서고 노동자를 조직했던 진보적인 교회들은 비주류에다가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랜드노조가 투쟁하고 있는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7월8일 열렸던 기독교의 대부흥 행사가 바로 "Again 1907"이었는데, 그것은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부활하자는 취지였다. 영적 각성, 교회의 통합 증진과 변화와 갱신을 1907년의 정신을 계승을 통해서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랜드의 비정규직 탄압과 이랜드 투쟁에 대한 외면에서 보이듯 그것은 타자에 대한 배려와 내면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무례’한 것을 넘어서 폭력적인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

 

세 명의 공저자 중 김진호 목사의 글이 가장 주목된다. 그는 1907년의 사건들을 정세적으로 분석한다. 러일전쟁 시기였고, 평안도 지역이 이 전쟁에서 일본군의 배후지였다는 점, 이에 따라 이 지역의 민중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민중들은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독교 교회로 모였지만, 전도사들은 이들 민중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진정한 신앙’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평양대부흥 운동이었던 셈이다. 이런 특수한 정세에서 전도사들은 대중의 상처를 교회제도에서 전도사의 헤게모니 확립, 비정치적인 종교활동으로 이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욕망과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한 통합을 선호하는 정서를 형성한다.

 

김진호의 이런 분석은 종교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며, 그 내부에서 상이한 이데올로기가 경합하거나 결합한다는 점, 그것들은 물질적 정세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게다가 김진호는 이러한 분석에다가 집단적 정신분석도 결합한다. 일제시기 신사참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대부분의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공산주의라는 더 큰 적을 발명함으로써 해결하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의 주류 교회들은 미국과 반공발전주의 국가의 지원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는 점, 산업화 과정에서 대중의 동요와 불안을 성장의 토대로 삼았다는 점도 중요한 분석이다.

 

이런 분석은 기독교 교회의 구체적인 인맥을 통해서 연결된다. 주로 백찬홍의 글은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의 전통을 검토하면서 이들 신학교에 유학했던 한국인 목사들의 의식, 이들의 인맥이 기독교 교회의 특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남한 기독교 교회의 현재와 그 역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김진호의 글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종교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물질적-정세적인 요인, 이데올로기적인 요인, 무의식적인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김진호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례한 자들의 기독교”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례”는 다른 입장, 견해와 대화를 거부하고, 타자의 비판에 닫혀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례(禮)”는 발리바르의 시빌리떼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종교가 자신을 하나의 보편성이라고 주장한다면(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하겠지만 ‘영적인 것’과 관계되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종교가 자신의 보편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례(禮)”를 갖지 못할 때, 즉 무례할 때 그것은 상징적 폭력이 된다.(그리고 곧 쉽게 물질적 폭력으로 전화한다.)

 

김진호는 현재 주류 기독교 교회가 타인에 대한 무례함에서 기인한 위기를 정치세력화를 통해 해결하려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것은 최근에는 시청앞 극우 단체와의 집회(70~80년대 성장한 선발대형교회들), 혹은 보다 세련된 형태로 뉴라이트 운동이나 '기독교사회책임‘과 같은 우익 NGO에 결합(80~90년대 성장한 후발대형교회)한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교회들이 성장한 역사와 기반하는 교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다. 주로 강남이나 신도시 중산층에 기반한 후발대형교회들은 보다 ’유연하고 세련된‘ 정치적 화법을 구사한다. 이들은 공화당 우파들, 네오콘과 연합한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정치개입을 모방하려한다. 이는 향후 남한 정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반독재 투쟁에 결합했던 진보적인 기독교 사회운동. 80년대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로 결집한 진보적인 교회들. 이들은 기독교 내에서는 비주류였으나, 70~80년대에 그들의 역할로 인해서 과잉대표되었다가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 위기에 있다. 이들 중 상당수 명망가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지배엘리트로 합류했다. 그러나 저자들과는 달리 서경석 목사와 같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가 우파(뉴라이트)로 전향하는 것과 이는 분리해서 볼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어떤 정치분파가 더 효과적으로 확립할 수 있는가에 판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내용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인 기독교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비록 인맥으로는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신자유주의 정권에 함께 한 인사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신자유주의 비판과도 결합할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운동이 부활할 수 있어야 주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이 기독교 내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

 

1.
저자들은 “제3시대 그리스도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이나 민중신학이 생소한 나 같은 입장에서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이론과 교통하는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http://www.minjungtheology.net/

 

2.
내용은 흥미롭지만 책 자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실망스러운 점이 많다. 편집 상의 문제와 목사님들 특유의 만연체까지 겹쳐서 상당히 방만한 느낌이다. 저자들 간의 토론을 통해서 내용을 추리고 표현을 손봤다면 발간된 책 분량의 반 이하로도 충분히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을 것같다.(심하게 말하면 1/4;;) 오타와 비문도 많아서 읽는 중간 중간에 걸린다.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내가 주로 언급한 남한 주류 기독교 교회에 대한 비판과 같은 것에서부터 신학적인 비판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상당히 불균등한 느낌이다. 책 말미에 있는 대담도 본문의 내용, 심지어는 표현과 문장까지 반복한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했거나 지면 낭비였거나.

 

3.
종교와 정치의 문제. 최근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노조들의 필수서비스 사유화 반대를 위한 토론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항이 있다. 어떤 노조활동가가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정치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인 논리를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 인도에서 온 활동가가 강력히 반발한 것. 종교적 논리를 사회운동에 활용하게 되면 곧 종교 근본주의도 용인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하는 인도와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겠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정교분리가 확고하지 않을뿐더러 종교 근본주의 간 충돌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종교와 사회운동의 관계는 다른 조건에 처하게 된다. 이런 사회들에서는 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예의 바르게” 개조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종교들과 연합하기 보다는 정치(그리고 사회운동)를 세속화하는 것, 운동에서도 정교분리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종교들이 자신들이 서로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타자를 인정할 수 있는 예의, 혹은 시민윤리(시빌리떼)를 수용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정세, 종교들이 처한 조건이라면 종교와의 결합은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은 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서 좌익들이 몰살당한 이란에서의 경험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샤라프의 붉은 사원 공격 이후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공세가 확대되고 있는 파키스탄과 같은 지역의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에는 매우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이다.
 

(이슬람이든 기독교이든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오히려 좌파가 투쟁해야하는 이유 등에 대해는 타리크 알리의 <근본주의의 충돌>과 같은 책이 도움이 된다. 타리크 알리는 시오니즘과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슬람도 개혁되어야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럴 때에만 일상화된 극단적 폭력들을 제어하고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남한에서 사회운동이 진보적인 기독교 교회와 결합했던 경험이나, 남미에서의 가톨릭 해방신학과 민중운동의 결합은 이와 다른 조건에서 가능했던 것이지만 일반화될 수 없다. 그것들 역시 정세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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