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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1
    [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2)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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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쭉
  3. 2007/10/06
    피렌체에 ‘조선족’ 아주머니(2)
    겨울철쭉

[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단테의 신곡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직접적인 계기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대한 독서다. 책은 신곡 지옥편의 첫 두연으로 시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레비는 신곡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인간임을 자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신곡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그리고 그 켭켭이 쌓힌 각주들까지)까지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작품이 "인간임을 지탱하게 할" 힘이 있는지 나는 잘 확신할 수는 없다. 위대한 작품이라는데는 전혀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기질적인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기독교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감성에 완전히 일치되기는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레비의 언급을 통해서 신곡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할 수 있다. 레비는 지옥편의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구절(26곡)을 수용소에서 기억한다.(아래 인용한 번역들은 모두 내가 읽은 민음사판의 것)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운명 앞에도 불굴의 의지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도전한다. 그러나,

풍랑은 우리 배를 바닷물과 함께 세바퀴 돌게 했다오
네 바퀴째에 선미가 높이 솟아오르더니 뱃머리에서 떨어져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로 덮쳐왔소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레비는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라는 구절을 되씹는다.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좌절할 때, 그러나 지옥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죄악,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운명인가. 그것은 단테가 쓴 의도와는 다른 것일 수 있지만, 단테가 본 지옥도 인간의 눈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신곡은 그렇게 열려있다.

작품 전체는 단테의 구체적인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제약 안에 있다. 단테는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하나씩 지옥편에 등장시킨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교황도 예외없이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데, 교황청의 금서가 될 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교황청의 권위에 근거한 중세 카톨릭 체제가 이미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과학지식에 따른 지리적 설명(주로 천국편에 등장하는)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단지 지리적인 오류만이 아니라 인종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옥편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등장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간중간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런 구체성 때문에 신곡을 읽을만하다고 해야할 것같다. 그런 구체성들이 없다면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은 따분한 교리문답에 그쳤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천국편의 상당부분은 사실 순전히 신학적인 교리문답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구체성의 핵심에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이 있다.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후 사랑에 빠진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기 훨씬 전인 1290년, 그녀를 죽음으로 이별한다. 베아트리체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사진은 단테가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여행할 때 만난  다른 여행자가 나의 작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이 이야기를 가르쳐주었는데, 신곡을 읽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신곡 전체에 가장 가슴떨리는 부분은 연옥편의 후반부(30편~)부터, 연옥의 끝 에덴동산에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옥에서부터 이제까지 순례자(단테)를 인도하던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를 대신해 천국을 안내한다. 천국편까지 베아트리체가 등장하는 구절들은, 단테가 이 작품을 무엇보다 자기위안을 위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어느 구절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그 것을 묘사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70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언어로 번역된 시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던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다른 생각은 그만 하세요. 내가 모든 고통을 덜어주시는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생각하세요"

그 사랑스러운 말에 나는 나의 위안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거룩한 눈에서 본
사랑은 너무나 거대해서 말로 옮기지 못하겠다.

내 말이 실패할까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가 위에서 인도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그런 높이까지 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다른 모든 추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곧게
비치고 있었고, 그 반사광이 나를
기쁨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소의 빛줄기로 나를 압도하면서
말했다. "이제 몸을 돌려 잘 들으세요.
천국은 내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 천국편 18곡 중

단테가 천국의 안내자, 혹은 동행자(그러니 그녀는 진정으로 Soul Mate라고 할만 하다)로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 것은, 그녀가 구원의 여성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테의 사랑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었을지라도 천국을 희망하는 삶의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방대한 신곡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물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일방적 판타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 판타지는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영혼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우정이든, 날개달린 에로스든 만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한편,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신곡을 통해서 기독교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한국에서는 교회를 통해 복을 내려주는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것은 절대자를 통해서 영혼의 고양, 완전성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보면 하느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의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매개로 그 자체가 하나의 비유일 수 있다. 다만, 불교와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라고 가르치는 데 비해서, 기독교는 하느님을 매개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사소한 차이는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기 한계 내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겸손하고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거스르려 했던 그만큼 자꾸오르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혼자 힘으로
하느님께 이르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말하자면 두 길들 중 하나로,
혹은 두 길 모두를 통해
인간이 완전한 삶으로 이르는 길을 마련하신 것이지요.

그 일을 행하는 자가 더 감사하는 만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가 더 선하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자국을 남긴 영원한 하느님의 덕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기꺼이 다시 한 번
인간을 끌어 올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 천국면 7곡 중 베아트리체의 말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표상, 인격신으로서 "야훼"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인격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쉬운 비유 때문에 왜곡되기도 쉽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성경 자체도 물론이지만 심지어 "하느님"의 표상까지도 일종의 비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야, 영혼을 ("천국"으로 불리는 지고의 장소까지) 고양시키는 기독교 안의 위대한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천국까지 길을 걸으면서 인간과 악마, 천사와 신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일종의 "여행기"라 할 만하다.(SF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우주적 규모의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여행에 신곡의 독서를 통해 동반하면서, 단테가 추구하려고 했던 영혼의 고양을 함께 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장면을 구경해 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경험은 현세에서들 하셔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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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르네상스와 석양

피렌체, 르네상스와 석양

여행 중반을 넘어서 스위스 일정부터 여행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날씨는 내내 흐리고 진눈깨비가 내렸고,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는 기차역에서 오르막으로도 한참을 가야했다.(약도에는 바로 지척으로 그려져있다;;) 아를에 가기 위해 경유해야하는 아비뇽에 가는 열차는 일찍 매진되어서 예정보다 늦게나 움직일 수 있었고, 아비뇽에 도착해서는 알아본 숙소는 문을 늦게 열고, 새로 알아본 숙소는 너무 멀어서 남프랑스의 햇빛 아래서 탈진할 정도였다.(가방은 왜 이리 무거운지..!)

아를에서 묵고, 다음날 유스호스텔을 check out하고 짐을 맡기러 간 역 앞에 짐 보관소는 문을 닫아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짐을 맡기러 아비뇽에 다시 다녀와야했다. 최악의 상황은 그 다음이었는데, 아비뇽에서 니스를 거쳐서 피렌체까지 오기 위한 기차표가 문제였다. 아비뇽 역에 역무원 아줌마는 황당하게도 아비뇽에서 니스는 당일날짜로, 니스에서 피렌체까지의 야간열차(침대)는 엉뚱한 날짜의 표를 준 것이다. 연결되는 두 번째 티켓을 다시 확인하지 않은 내 실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에서 자리에서 쫒겨나서 이등석 의자에서 쪼그려서 선잠을 자야했다.

이렇게 찾아간 피렌체에서는 첫날 점식 식사하면서 엉뚱한 청구서를 받아서 항의해야했고, 일정이 늦어지면서 숙소 예약이 어긋나서 이틀째 숙소를 다시 옮겨야했다.(다행히 옮긴 곳이 조선족 분이 하는 아래 이야기한 그 민박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착한 피렌체에서 출발은 기진맥진하고 신경은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두오모

하지만, 피렌체 두오모(돔dome 형 성당, 원래는 주교가 있는 곳을 뜻한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쥰세이와 아오이가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잘 알려진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는 463개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오전에 올라간 이곳에서 한참동안 피렌체 시내를 바라보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내려왔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두권의 책이 있고, 영화로도 나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배역부터 시작해서 줄거리의 변형에 이르기까지, 혹은 사실성까지도 영화는 매우 실망스럽다.)

피렌체는 그곳에서 빛과 색깔로 가득하다. 왜 아오이가 그곳을 “연인들의 성지”라고 말하는지 알 것같은 곳. 정오가 되어서 성당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마치 화음을 이루고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퍼져나올 때, 그곳은 마치 천상에 있는 느낌이 든다. 종소리들이 마치 중력을 사라지게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르네상스, 도시의 전경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15-6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이 도시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과 스페인이 지중해 무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세계의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을 때 메디치가의 지배 하에서 화려한 유산을 남긴다. 이곳은 단테, 다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도시다.

여기서 역사적 설명을 할 것은 아니니까, 몇가지 인상만.
우선, 피렌체에는 화려한 궁전은 없다. 토스카나 공국의 ‘수도’이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도시국가였던 이 곳은, 메디치가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했다. 이 때문에 지배 귀족의 권력은 항상 제한되었는데, 메디치가조차도 막강한 부에도 불구하고 절대군주 국가의 궁전과 같은 것은 만들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도시 전체의 전경에 배여난다. 메디치가의 궁전조차도 도시의 다른 건물들 속에서 자기 자리를 가질 뿐이지 튀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이전에 가본 도시 중에서는 암스테르담과 비슷하다. 그곳에서도, 시민들의 힘이 강력했던 곳 답게, 평범한 건물들이 도시의 전경을 지배했던 것이다. 절대군주들이 화려한 건물을 과시적으로 건설한 런던이나 빠리와는 다른 느낌.

르네상스, 우피치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2시간 정도는 줄을 서야한다. (예약을 할 수는 있지만 예약비를 따로 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가는 곳. (물론 들어가서 관람객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작품들을 감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미술관에서는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그림에 어떤 변화들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원근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Paolo Uccello 의 “산로마노의 전투”같은 그림도 그런 것 중에 하나. (이 그림은 피카소가 자주 스케치 해갔다고 하는데,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그림이 생동감있어서라기 보다는, “입체”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태초의 시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입체를 평면에 나타내는 것이 주된 관심을 보였던 피카소가 흥미로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러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두 개의 성모자상이다.
Filippo Lippi 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성모에 그려넣는다. 이제 성모의 모습은 여전히 천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현실의 사랑을 담아낸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함께 도망쳐 나온 연인이기도 했는데, 신에 대한 금욕적인 봉사보다 현세의 사랑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Madonna with the Child and two Angels, 1465, 왼쪽위

이 작품과 함께 인상적인 것은 Parmigianino 의 “목이 긴 성모 Madonna dal Collo Lungo”(1534~40). 보면서, “아, 이게 르네상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는 오히려 매혹적인 여인으로 나타나는 데, 봉긋하게 드러난 가슴은 불경하게도 성적인 매력을 보여줄 정도다.  왼쪽아래

이런저런 역사적 설명들보다도 여러 작품들, 특히 두 작품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기,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내 이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을 발견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의 가장 위대하고 독보적인 발견이다.

유디트, 그녀들의 분노와 그의 당혹

이 두 작품 외에 더 깊이 인상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그것은 Artemisia Gentileschi 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그녀의 이 작품은 두 여인의 결연한 의지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녀와 작품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정보들도 얻을 수 있다. 구약 성서 내용 중 유디트라는 여성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해서 그를 암살하는 내용이다. 젠틸리스키는 독보적인 여성화가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오히려 고문을 받으면서까지 가해자의 유죄를 입증해야헸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두 여성(유디트와 하녀)의 표정도 그렇지만 목이 베이는 홀로페르네스의 표정도 흥미롭다. 여러 화가들이 이 테마로 그림을 그리는 데, 이 미술관의 보디첼리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근심하는 철학자의 표정을 한 베어진 목으로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남성은 당혹해 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손을 하늘로 뻗지만 이미 힘은 빠져있다.

이 그림은 남성인 나에게(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른 그림들에서 홀로페르네스는 마치 ‘여성의 복수’에 대해서 “다 알아, 그건 너희편 남성들의 국가를 위한 것이지”라고 말하는 반면에 이 그림은 “도대체 왜 이 여자들이 분노하는 거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진실에 근접해있다. (오히려 남성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여성인 젠틸리스키는 그것을 정확히 포착해서 그림 속에 넣었다.)

(복제품으로 우피치에 전시되어 있는 “라오콘 군상”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진품이 있는 바티칸을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피렌체의 석양

이제까지 다닌 어떤 도시보다, 피렌체는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다.
노을이 질 때, 피렌체 건물들의 붉은 색은 더욱 붉게 빛나고 하얀 벽들도 밝은 붉은 색으로 물든다. 무엇보다 말로 표현하기도, 카메라에 담기도 힘든 것은 두오모와 종탑의 하얀 대리석 벽이 노을 빛에 물들어가는 모습이다. 천천히, 불그스레한 노을빛이 그 속에 배여든다. 

그것을 보면, 피렌체 사람들은 어떤 예술 작품들 이전에 자신의 도시 자체를 르네상스 식으로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전체가 중세적인 딱딱함을 넘어서,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 그러나 빛나는 곳으로 만들어졌다.

번잡한 관광지가 되어 버렸지만, 피렌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 황제와 왕들의 화려한 궁전은 없지만, 그것들보다 도시 전체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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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 ‘조선족’ 아주머니

피렌체에 ‘조선족’ 아주머니

피렌체에서는 유스호스텔이 아니라 민박집에 묵었다. 민박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전문적으로 숙박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식사가 한식이고 우리말이 숙박객들이나 주인과 통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유스호스텔과 다를 바도 없다.

피렌체에서 민박집으로 온 이유는 한편으로는 독일에서부터 거의 계속된 유스호스텔 생활의 긴장이 피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터넷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 민박은 인터넷을 꼭 갖추고, 대부분 무선 인터넷까지 가능하지만 유스호스텔은 거의 대부분 유료인데다가 비싸기까지 하며, USB 메모리도 사용할 수 없는 게 많다.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숙소에서 만난 ‘조선족’ 아주머니 이야기를 하자. (‘조선족’이라는 말이 그리 좋지 않은 용법이기는 하겠지만, 그 ‘느낌’이 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따옴표를 붙여서 그냥 쓰는 것으로 하자.) 피렌체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유독 민박집을 ‘조선족’분들이 많이 하신다. 내가 묵은 민박도 그런 곳이었는데, 한국인 유학생이 하는 곳보다 밥도 푸짐하고 지내기도 편하다. 인터넷 사이트를 보다보면 ’조선족‘ 분들이 하는 민박을 폄하하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모종의 편견이 작용하는 것같다. 여기 주인은 ’조선족‘ 아주머니고, 일하시는 분도 ’조선족‘ 아주머니가 계신다.

남한에서 추방

이들은 이주 노동자. 저녁을 먹기 전에,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올해 쉰넷 되신다는 이 분은 연변에서 알콜 공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셨다고 한다. 퇴직을 하고 나서 ‘배운 것이 없어서’ 남한에 일하러 오셨다고 한다. 벌써 6년전 이야기다. 역삼동 식당에서 하루를 일하고 단속이 있자, 신당동 포장마차로 옮기셨는데, 다음다음날 법무부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단속반에 하소연한다.
“내가 사람을 친 것도 아니고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요, 그냥 일을 했을 뿐인데, 세상 어디에 일하는 게 죄가 된단 말이요?”

“불법” 이주노동자는 단지 일할 뿐이다. 자기 손으로 먹고살 돈을 버는 노동이 범죄가 되는 희안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결국 강제추방된 아주머니에게 남은 건 1500여만원(남한 원화)의 빚이었다. 아무리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빚 때문에 아주머니는 다시 시도한다. 이번이 이탈리아였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이탈리아로 가기 위한 브로커비 등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민박집 주인인 학교 동기생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북경에서 홍콩으로 기차를 타고, 홍콩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왔다.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싱가폴로, 다시 여기저기 여러나라를 거쳐 일주일이 걸려서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아마 ‘불법적’인 신분증 같은 것도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거리에 장사하는 중국인들 상당수가 이용한 루트가 아니었을까.) 같이 오던 분들 중 몇몇은 단속에 걸려서 추방되는 것도 지켜봤다.

한 5년을 생각하고 오셨다는 아주머니는 중국에 가족이 있다. 한달에 두 번 정도 전화하신다는 아주머니는, 남편과 딸, 아들이 있다. 과년한 딸이 시집을 안 간다고 고집이라고 걱정이라고 한다. 지구 반대편으로, 돈을 벌기위해서 가족과 5년간 이별..

올 때 주인 아주머니가 대준 비용 때문에, 1년은 월급없이 일하신다는 아주머니는, 이제 10개월째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남한에 올 때 진 빚부터 갚아나가야한다. 5년은 있어야하는데 이빨이 흔들려서 걱정이 많으시다. 이곳에서는 의료보험도 없이 치과 치료 받기가 끔찍하게 비싸다.

이주자들

주인아주머니는 거의 남한 말투의 억양을 사용하시는데, 왠지 물었더니 3년 동안 남한에 식당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그 때 번 돈으로 이탈리아에 남편과 함께 와서 민박을 하신다. 남편은 베네치아에 가서 민박집을 하신다니 수완도 좋으시다.

왜 아주머니가 돈을 벌러 오셨냐고 하니까, 여자들이나 돈 벌 자리가 있다고 하신다. 민박집 같은 숙박시설이나 이런 저런 서비스업종에 일하시는 걸 텐데, 저임금의 여성 이주노동자를 요구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인 것같다. 한편으로 여성, 불안정노동자로 착취하고, ‘불법’이라는 약점으로 더 착취한다. 일부러 국가가 ‘적당히’ 유지하는 불법의 현장들인 셈이다.

이곳에 온 ‘조선족’ 분들도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특유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상권을 장악한다고 한다. (마치 주인아주머니가 친구분을 불러온 것과 같이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의 연결을 통해 적어도 이탈리아에서는 민박은 대부분 ‘조선족’분들이 ‘장악’하고 계신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피렌체에 '매대‘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사람들이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같다는 생각도 드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이 스스로 신뢰도를 깍아먹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이탈리아에 첫날 와서 식당에서 먹은 점심에는, 계산서에 메뉴에 안 씌여있는 cover fee 라는 자릿세에다가, 서비스비 별도, 게다가 먹지도 않은 음료수에, 마신 것의 2배가 되는 물을 마신 것으로 청구되었다. 실수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정황도 있는데, 뒤에 두 개는 항의하고 고치기는 했지만 매우 기분 상하는 일이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들일 뿐. 그랬다가 나폴리에서는 나서서 길을 가르쳐주는 노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나폴리노인들은 친절하다는 '편견'도 생긴다.;;)

'조선족'에 대한 편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탈리아의 ‘조선족’분들의 민박에 대해서 편견을 가진 평가가 인터넷에 많다. 그런 평가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적어도 이번은 묵었던 어떤 곳보다 음식도 숙소도 좋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젊은 한국출신 사람이 하는 것과 같은 ‘말이 통하는’ 분위기는 없을 텐데, 아마도 그런 점도 이유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말하면서 느낀 것은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조선족'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는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민족'이라는 게 얼마나 웃긴 건지를 다시 느낀다.(아마 앞으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같은 민족'으로는 사고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족’이라는 희미한 끈으로 나와 연결되고 먼 이국에서 우연히 만난 그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세계를 돌아 첩보작전을 방불케하는 방법으로, "불법“이주를 감행하고 일하고 지구반대편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이번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

그리고 그녀가 중국에서도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세계경제는 변화될 수 있을까, 혹은 그녀가 원하는 곳에서 “불법”에 불안하지 않게,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국경들이 민주화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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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은 글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피렌체에 가깝다는 이유로 반나절 다녀온 피사에 있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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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앞에서는 완전히 관광객 모드로 돌입했는데, 전세계에서 온 갖가지 모양의 사람들이 모두 기울어진 사탑에 손을 대고 서있는 포즈로 똑같은 사진을 찍는게 흥미로운 곳이다.

나는 흠..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일반적인 포즈의 셀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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