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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르네상스와 석양

피렌체, 르네상스와 석양

여행 중반을 넘어서 스위스 일정부터 여행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날씨는 내내 흐리고 진눈깨비가 내렸고,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는 기차역에서 오르막으로도 한참을 가야했다.(약도에는 바로 지척으로 그려져있다;;) 아를에 가기 위해 경유해야하는 아비뇽에 가는 열차는 일찍 매진되어서 예정보다 늦게나 움직일 수 있었고, 아비뇽에 도착해서는 알아본 숙소는 문을 늦게 열고, 새로 알아본 숙소는 너무 멀어서 남프랑스의 햇빛 아래서 탈진할 정도였다.(가방은 왜 이리 무거운지..!)

아를에서 묵고, 다음날 유스호스텔을 check out하고 짐을 맡기러 간 역 앞에 짐 보관소는 문을 닫아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짐을 맡기러 아비뇽에 다시 다녀와야했다. 최악의 상황은 그 다음이었는데, 아비뇽에서 니스를 거쳐서 피렌체까지 오기 위한 기차표가 문제였다. 아비뇽 역에 역무원 아줌마는 황당하게도 아비뇽에서 니스는 당일날짜로, 니스에서 피렌체까지의 야간열차(침대)는 엉뚱한 날짜의 표를 준 것이다. 연결되는 두 번째 티켓을 다시 확인하지 않은 내 실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에서 자리에서 쫒겨나서 이등석 의자에서 쪼그려서 선잠을 자야했다.

이렇게 찾아간 피렌체에서는 첫날 점식 식사하면서 엉뚱한 청구서를 받아서 항의해야했고, 일정이 늦어지면서 숙소 예약이 어긋나서 이틀째 숙소를 다시 옮겨야했다.(다행히 옮긴 곳이 조선족 분이 하는 아래 이야기한 그 민박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착한 피렌체에서 출발은 기진맥진하고 신경은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두오모

하지만, 피렌체 두오모(돔dome 형 성당, 원래는 주교가 있는 곳을 뜻한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쥰세이와 아오이가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잘 알려진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는 463개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오전에 올라간 이곳에서 한참동안 피렌체 시내를 바라보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내려왔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두권의 책이 있고, 영화로도 나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배역부터 시작해서 줄거리의 변형에 이르기까지, 혹은 사실성까지도 영화는 매우 실망스럽다.)

피렌체는 그곳에서 빛과 색깔로 가득하다. 왜 아오이가 그곳을 “연인들의 성지”라고 말하는지 알 것같은 곳. 정오가 되어서 성당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마치 화음을 이루고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퍼져나올 때, 그곳은 마치 천상에 있는 느낌이 든다. 종소리들이 마치 중력을 사라지게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르네상스, 도시의 전경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15-6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이 도시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들과 스페인이 지중해 무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세계의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을 때 메디치가의 지배 하에서 화려한 유산을 남긴다. 이곳은 단테, 다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도시다.

여기서 역사적 설명을 할 것은 아니니까, 몇가지 인상만.
우선, 피렌체에는 화려한 궁전은 없다. 토스카나 공국의 ‘수도’이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도시국가였던 이 곳은, 메디치가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했다. 이 때문에 지배 귀족의 권력은 항상 제한되었는데, 메디치가조차도 막강한 부에도 불구하고 절대군주 국가의 궁전과 같은 것은 만들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도시 전체의 전경에 배여난다. 메디치가의 궁전조차도 도시의 다른 건물들 속에서 자기 자리를 가질 뿐이지 튀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이전에 가본 도시 중에서는 암스테르담과 비슷하다. 그곳에서도, 시민들의 힘이 강력했던 곳 답게, 평범한 건물들이 도시의 전경을 지배했던 것이다. 절대군주들이 화려한 건물을 과시적으로 건설한 런던이나 빠리와는 다른 느낌.

르네상스, 우피치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는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2시간 정도는 줄을 서야한다. (예약을 할 수는 있지만 예약비를 따로 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피렌체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가는 곳. (물론 들어가서 관람객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작품들을 감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미술관에서는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그림에 어떤 변화들이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원근법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Paolo Uccello 의 “산로마노의 전투”같은 그림도 그런 것 중에 하나. (이 그림은 피카소가 자주 스케치 해갔다고 하는데,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그림이 생동감있어서라기 보다는, “입체”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태초의 시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입체를 평면에 나타내는 것이 주된 관심을 보였던 피카소가 흥미로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러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두 개의 성모자상이다.
Filippo Lippi 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성모에 그려넣는다. 이제 성모의 모습은 여전히 천상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현실의 사랑을 담아낸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함께 도망쳐 나온 연인이기도 했는데, 신에 대한 금욕적인 봉사보다 현세의 사랑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Madonna with the Child and two Angels, 1465, 왼쪽위

이 작품과 함께 인상적인 것은 Parmigianino 의 “목이 긴 성모 Madonna dal Collo Lungo”(1534~40). 보면서, “아, 이게 르네상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는 오히려 매혹적인 여인으로 나타나는 데, 봉긋하게 드러난 가슴은 불경하게도 성적인 매력을 보여줄 정도다.  왼쪽아래

이런저런 역사적 설명들보다도 여러 작품들, 특히 두 작품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기,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내 이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을 발견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 근대의 가장 위대하고 독보적인 발견이다.

유디트, 그녀들의 분노와 그의 당혹

이 두 작품 외에 더 깊이 인상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그것은 Artemisia Gentileschi 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도 알려진 그녀의 이 작품은 두 여인의 결연한 의지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녀와 작품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흥미로운 정보들도 얻을 수 있다. 구약 성서 내용 중 유디트라는 여성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해서 그를 암살하는 내용이다. 젠틸리스키는 독보적인 여성화가로, 성폭력을 당하고도 오히려 고문을 받으면서까지 가해자의 유죄를 입증해야헸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두 여성(유디트와 하녀)의 표정도 그렇지만 목이 베이는 홀로페르네스의 표정도 흥미롭다. 여러 화가들이 이 테마로 그림을 그리는 데, 이 미술관의 보디첼리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근심하는 철학자의 표정을 한 베어진 목으로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남성은 당혹해 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손을 하늘로 뻗지만 이미 힘은 빠져있다.

이 그림은 남성인 나에게(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른 그림들에서 홀로페르네스는 마치 ‘여성의 복수’에 대해서 “다 알아, 그건 너희편 남성들의 국가를 위한 것이지”라고 말하는 반면에 이 그림은 “도대체 왜 이 여자들이 분노하는 거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진실에 근접해있다. (오히려 남성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여성인 젠틸리스키는 그것을 정확히 포착해서 그림 속에 넣었다.)

(복제품으로 우피치에 전시되어 있는 “라오콘 군상”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진품이 있는 바티칸을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피렌체의 석양

이제까지 다닌 어떤 도시보다, 피렌체는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다.
노을이 질 때, 피렌체 건물들의 붉은 색은 더욱 붉게 빛나고 하얀 벽들도 밝은 붉은 색으로 물든다. 무엇보다 말로 표현하기도, 카메라에 담기도 힘든 것은 두오모와 종탑의 하얀 대리석 벽이 노을 빛에 물들어가는 모습이다. 천천히, 불그스레한 노을빛이 그 속에 배여든다. 

그것을 보면, 피렌체 사람들은 어떤 예술 작품들 이전에 자신의 도시 자체를 르네상스 식으로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전체가 중세적인 딱딱함을 넘어서,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곳, 그러나 빛나는 곳으로 만들어졌다.

번잡한 관광지가 되어 버렸지만, 피렌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 황제와 왕들의 화려한 궁전은 없지만, 그것들보다 도시 전체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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