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즘에 태왕사신기를 재밌게 보고 있다. 사실 요즘에 그나마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는 셈인데, 여행을 다녀와서 지난 주에 14회를 처음 본 후에 1회부터 주말내내 찾아봤다는,,;;
나도 영화나 드라마 보는 취향은 그저그래서 일단 판타지 줄거리에, 멜로 라인, 멋진 쌈박질 장면 등이 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CG는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쪽에는 예산을 줄이다가 "싸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태왕 담덕 역의 배용준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반할 정도로 멋있게 나온다.
재미있게 보다가 생각나서 몇가지.
신화, 영웅들의 시대드라마의 배경은 고대. 좀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신화적인 시기로 그려진다.(고구려 정도는 이미 역사시대인데..;)
주인공인 태왕 담덕은
'영웅'이다.
그런데, 이 영웅에는
두 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다. 전자는
영웅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탄생-고난-성장-귀환으로 연결되는 일생을 사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타고난" 운명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승리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고난을 겪어야하고 그 운명을 알아보고 돕는 것들을 만나야한다.
이런 영웅들은 매우 전형적이어서, 어느 민족들의 영웅신화, 설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홍길동전같은 중세소설에서도 그렇고, 지금 쓰여지는 소설이나 영화들에서도 활용되는 구조.
그런데,
또 다른 영웅들이 있는데,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세익스피어에서도 그렇지만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보자. 이들은 운명의 장난에 따라, 혹은 자신의 기질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하지만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다. 이들은 파멸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고귀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성격의 영웅은 그 위대함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두 가지의 영웅 성격이 결합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나, 영화 '메트릭스'에 네오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태왕사신기의 영웅인 태왕 담덕은 전자의 성격에 가까운 인물. 그래서 14회 정도부터 시작해서 17회 정도에 이르러서는 고난을 거의 이기고 이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극적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편으로는 극적 재미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반감하는, 이 드라마의 판타지적인 성격이 관련되어 있다.
기계신(deus ex machina)14회, 15회를 TV에서 보고 앞 부분을 찾아서 다시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담덕이 어떻게 (신물을 다 찾을 때까지 임시라고는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가하는 점이었다.
11회. 선왕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던 태왕 담덕은 신당에서 "가우리검"(심장에 칼을 박아넣고 죄를 지은 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하여 재판하는 제도라는 데, 중세시대의 마녀심판과 비슷한 것이다.)을 요구받는다. 심장에 칼을 찔린 담덕은 여기서 심장이 찔린 칼(동명왕검)이 한순간 가루로 변하면서 설아남는다. 그 결과로 짜자잔~ 선왕을 죽였다거나 귀족 자제들을 납치했다는 모든 의혹을 뒤로 하고 왕위 등극.
그 순간 당장 떠오른 것이 진중권 덕분에 유명해진 기계신(deus ex machina)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건자체의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외부적인 힘 덕분에 모순이 해결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개념. 여기서 동명왕검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렇다보니, 담덕이 왕위를 인정받는 것은 그의 고귀한 인품이나 고난을 헤치는 용기같은 것이라기 보다는(물론 그것들도 제시는 되지만), 판타스틱한 기적에 의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주인공 영웅을 도울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극적 긴장은 떨어질 수밖에. 4개의 신물을 모두 찾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지만, "가우리검" 장면은 특히 심했다.
인물들, 입체적이거나 밋밋한.이런 상황이다보니,
태왕 담덕은 주인공이지만 점점 재미없고 더 밋밋한 인물이 되어간다. 물론 배용준의 멋진 외모 덕분에 여전히 (극에는 외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그의 성공은 그의 고귀한 영웅적 자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힘들이 이미 닦아준 길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해서,
오히려 태왕 담덕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대립하게 되는 기하(문소리)나 연호개(윤태영)가 더 입체적이고 극적인 인물이 된다. 이들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있고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처한 운명 속에서 파멸되어간다. (아마 이들의 성품이 좀 더 고귀하게 그려졌더라면 이 드라마의 진정한 영웅은 태왕 담덕보다는 이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극중 인물들의 사랑에서도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기하가 태왕 담덕에게서 멀어져가는 과정, 그리고 파멸을 예상하면서도 (기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연호개의 경우다. 수지니(이지아)를 둘러싼 태왕 담덕과 처로(이필립)의 미묘한 감정보다도 더 그렇다.
오늘 방영한 17회에서 "(더 멀어지고 파멸하기 전에) 자신을 멈추어 달라"는 기하의 대사나, 지난주(아마 15회?)에서 연호개가 기하에게, "내가 필요없어져 버리더라도, 당신 손으로 내 가슴을 찔러줘요"라고 말하는 연호개의 경우가 더 생생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느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드라마는
고대 귀족정 시대를 다룬다. 이것은 영웅들을 묘사하기에 쉬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귀한 인간들의 귀족적 성품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귀족정을 옹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성품의 인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귀족적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이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는 고귀하고 위대한 영웅들을 그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혹은 인간의 위대함을 억압하는 시대.) 그러다보니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정치판에서 영웅 행세를 하려고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고대민족들의 역사한편, 이 드라마는
'쥬신'이라는 이름으로 동이족들을 통칭하면서 이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말갈, 거란 등이 언급된다.
사실은 여기에
왜(倭)도 넣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는데, 왜를 포함해서 동이족을 지칭할 경우
'내선일체'를 상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거란, 말갈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지금은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그런 점에서 남한민족보다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일본은 '내선일체'를 말할 수 있지만 일본민족보다 열위에 있는 조선민족은 그것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기만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백제가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동부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설을 채용하지만, 마찬가지 맥락을 갖는 다른 가설, 백제와 왜가 연합왕국이었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일본에 대한 미묘한 입장 때문일텐데, 이 드라마가 일본자본의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이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드라마를 보면, 주요 전투장면은 황량한 초원과 사막지역에서 촬영한 것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스텝지역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무대였던 만주에서의 촬영에 대해서 중국정부가 내용상 문제를 들어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수입과 방영도 불허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이족을 통칭하여 '쥬신'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이 드라마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고대사를 두고 각 민족국가들이 벌이는 역사전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에 대한 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구성된 역사들에 대해서 말이다.
중국의 경우에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그들이 (말로라도) 체제의 성격으로 사회주의를, 그리고 다민족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로 민족간의 우애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오히려 각 민족들의 고유한 역사를 평등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민족적 우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한족(漢族)의 주요 제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하고, 다른 민족의 역사는 "지방정권"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데, 이는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한족의 패권적 역사관일 뿐이다. 이렇게 되는 데 티벳을 지원하는 미국과 같은 위협, 민족들의 분리독립의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는데에 올바르고--게다가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의문이다.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만드는 한국이나, 그것을 금지하는 중국이나, 또 일본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앞으로도 재미있게 보겠지만, 극 자체의 재미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같고, 화려한 영상과 몇가지 극적 에피소드가 더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다. 아, 그리고 배용준을 비롯해서 인물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히 볼만하고 앞으로도 상당히 그렇 것같다.
댓글 목록
무한한 연습
관리 메뉴
본문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저도 일전에 고구려 역사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때는 <<태왕사신기>>가 7회까지 방영 되었을 때였는데, 현재 한국인들의 자본주의적 욕망과 대중들의 민생정치에 관한 욕망에 잘 맞는 드라마들이 바로 고구려 역사 드라마가 아니겠는가라는 취지의 글이었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자체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역사학적 내용을 적절하게 버무린 겨울철쭉님 글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드라마를 보면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흥미로운 분석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스치듯 하는 생각입니다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한국의 대중들이 정치, 경제적인 차원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하는 한 가지 방식도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한국의 정치판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정도면 해결이 가능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과 같은 것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요. 에휴......(^.^;)
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안녕하세요^^;. 글을 찾아가서 읽었는데, 최근에 범람하는 역사드라마, 특히 고구려를 소재하는 드라마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는군요. 쓰신 것처럼 태왕사신기의 경우에도 태왕 담덕은 아주 선량하고 '국민'들을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로 그려지는데,그는 어떤 당파들(제가회의와 부족들)의 지지도 없이 등장하고 자신의 성과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모습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적합한' 정당정치의 붕괴나 인민주의적인 정치의 만연과도 관련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말씀하신 것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대중이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렇구나 싶어요. 사실 대중들도 어느 정도는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테니까, 어떤 환상적인 해결책을 욕망하는 것이겠죠.. 에우리피데스가 보면 울고갈 상황이기는 하지만서도요;;
민족주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상상적'인 성격을 뻔뻔스럼게 노출하는 지점에서나 대중들이 만족을 얻는 상황이라는게, 참 (그들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절망적인 것같아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