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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하얀 햇빛

아를의 하얀 햇빛

남프랑스의 아를. 스위스를 떠나서 간 이 곳에 온 것은 순전히 고흐 때문이다. 고흐가 그림에 담았던 햇빛을 직접 보고, 피부에 담고 싶어서다.

아비뇽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를. 남프랑스의 첫 느낌은 ‘밝다’는 것이다. 이곳의 태양은 어느 곳보다 밝게 빛난다. 이곳보다 위도가 더 낮은 동남아 같은 곳보다 더 밝은 빛을 띈다. 그 빛은 모든 것을 희게 빛나게 만든다.



모든 것에 흰색이 섞여들어간다. 왜 고흐가 유화를 그리면서 흰색 물감을 그렇게 많이 사용해야했는지 알 수 있을 것같다. 들판에도, 나무에도, 론강의 강물에도, 집들에도 흰색이 넘치고 눈부시다. 그것은 강렬하기는 하지만, 뜨겁다는 느낌보다는 ‘밝다’는 느낌.

고흐가 그렸던 몇군데 장소를 찾는다.
첫날 밤은 하늘이 흐려서, 밤늦게 까지 기다렸는데도 아쉽게 론강에 비치는 별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튿날. 고흐가 그렸던 랑그루아 다리를 찾아간다.(이제는 아예 반 고흐 다리로 불린다.) 버스가 다닌다고는 하지만 시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를 시내에서부터 운하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그리 멀어보이지 않는 그곳까지 따가운 햇빛을 맞으며 40여분을 걸어서 도착했다. 자갈길을 걸으면서 벌써 발이 아프다.

고흐는 햇빛이 있는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곳을 매일 그림을 그리기위해서 오갔을 것이다. 마치 농부가 자신의 밭을 갈기위해서 찾아가는 것처럼, 하나의 노동처럼.



다리와, 주변의 들판을 둘러본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도 흰빛이 가득하다. 한참을 들판을 바라보았다. 어찌보면 평범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는 들판에서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있는 장면을 포착하고 그려낸걸까. 자연의 깊은 곳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고흐는 그 곳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과 함께 찾아낸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깊이 느끼고 포착해야 가능한 일이다.



천천히 걸어돌아오면서 발견한 건, 반짝거리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흔들리는 나뭇잎.
바람은 나뭇잎은 흔들고, 햇빛이 반짝거린다.
그 흔들림은 사진으로도 잡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반짝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흐는 다소 거칠고, 역동적인 붓터치를 통해서, 정지한 화면에 반짝거리는 빛의 강렬한 움직임을 그려넣었다.

시내에 들어와서 고흐가 머물렀던 요양원과 고흐가 그렸던 ‘밤의 카페’(이제는 이름이 반 고흐 카페)를 둘러본다.



아를 시내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로마 시대에 갈리아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였기 때문이다. 아를의 햇빛에 받아 빛나는 그 유적들도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고흐는 고집스럽게 ‘어디에나 있는’ 밀밭과 들판, 복숭아나무, 빨래하는 여인, 추수하는 농부를 그렸다. 고흐는 평범한 것들 안에 있는 진실을 만날 수 있게 캔버스에 담았고,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모든 것을 가장 밝게 빛나게 하는 아를의 햇빛 아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방법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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