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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지난 주 서울 강남구에 똥푸는 노동자들, 정화환경노조 한성지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연대집회를 하는 중에 벌어진 일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3때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가 박완서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다.  고3때는 내 삶을 바꾸는 여러가지 일들과 결정이 있었는데(사실 누구나 그런가? 하지만 대부분은 쓰잘데 없는 결정이었을걸.), 그 중에 책이 원인이 된 여러 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같다.

 

고3 올라기기 직전인 1월 혹은 2월 경이었나? 보충수업이 끝나고 "자율"(푸하~)학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1000명은 들어가는 거대한 도서관 2층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도서관을 그딴 식으로 지은 건 순전히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박완서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읽고 있었다. 누군가 막대기 같은 것으로 머리를 쳤다. "따라와!"

 

책과 함께 끌려간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와 상관없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책을 압수당하고 반성문을 써야했다.(한참후에야 돌려받기는 했다.) 여기까지도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지만, 나를 끌고간 선생은 "국어" 과목 교사였는 데다가 그 책은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이었다. 수업시간에 술을 덜 깨서 들어오곤 했던 그 선생은 고3때 우리반 담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수십명이 맨앞줄에서부터 맨뒷줄까지 연결되는 '드래곤볼'만화책 돌려보기 줄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자칭 "명문고" 입시교육이 하는 광대짓이 그야말로 "웃겨졌다."

 

이야기가 길었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박완서 지음

◁ 바로 이 책이다.


박완서는 책에서 말한다. 왜 나는 콩나물 50원 어치의 분량에 대해서 구멍가게 주인과 싸우고 분개하지만, 수천명을 죽인 독재자에 대해서, 수십억을 횡령한 기업인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는가라고. 박완서의 반성에 나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당시는 바로 91년이었다. 노태우 군사파쇼정권이 '보통사람'어쩌구 하다가 3당 합당하던 그때말이다. 나는 내가 나의 삶 주변에서 얼마나 작은 일들에 분노하고 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분노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박완서와 함께 반성했다. 적어도 민중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전제하지 않고 작은 일에 대한 분개라니! 이런 나의 결심은 대학에 진학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반드시 학생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 가는 데는 몇가지 계기가 더 필요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직 이 글에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며칠전의 일을 겪으면서, 정작 작은 일에 분노하지 않으면 '큰 일'에 분노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작은 일'이 지난 목요일 한성지부 집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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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지부 조합원은 11명. 사측은 1조1항, 전문부터 하나도 합의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조정기간이 끝나자 정식으로 파업도 들어가기 전에 공격적인 직장폐쇄를 해버렸다. 그게 현행법상 불법이거나 아니거나 아랑곳없다.(벌금 몇푼이나 나오거나 말거나지.) 똥푸는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지만 사장은 현대아이파크, 30억짜리 타워팰리스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그 밑에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산다. 대~한민국의 축소판, 그게 강남이었다. 그들이 연대하는 투쟁, 이렇게 40여일이 지난 날 연대집회. 집회는 청담동 사무실 앞에서 열렸다.

 

강남, 가진 놈들이 더 한다고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연대대오는 주로 포이동 주민들, 200일 다되어 가도록 사측의 온갖 해괴망칙한 탄압에도 파업을 사수하는 건설엔지니어링노조 만영지부 동지들, 강남구에서 생활쓰레기를 치우는 서울지역환경관리노조 강남지부 동지들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건물 1층에 입주한 부동산 주인이 시끄러워 장사가 안 된다며 마구 쌍욕을 퍼붓더니만 급기야 대야에 물을 채워서 퍼부으려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급히 연맹 간부 동지가 온몸으로 막은 바람에 쌀쌀한 가을날씨에 그 여성동지는 그만 온몸이 흠뻑젖어 버렸다. 광분한 부동산 주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막으려는 포이동 주민을 대야로 때려 이마가 찢어지기 까지 했다. 옆가게 '파리바케트' 여주인은 나와서 혼절할 정도로 조합원들에게 욕설을 해댔다. 집회 사회를 보다가 생각이 들었다. 저것들이 돈에 영혼을 팔았구나.저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갖지 않았구나.

  

그 곳, 집회를 하며 연대하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강남 땅에 한때는 강제로 유폐되었다가 이제는 바로 그들 가진자들의 국가권력, 지방자치단체(지방'자치'단체라니 웃기는 짓거리다)에 의해서 ㅤㅉㅗㅈ겨날 위기에 있는 포이동 주민들, 그들이 싸고 버린 것들을 치우는 정화조 노동자, 환경미화원들이었다. 나는 정말, 분개했다.

 

아마 작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똥푸는 노동자가 감히 인간답게 살겠다고 사장에게 대들다가 일자리에서 ㅤㅉㅗㅈ겨나서 수십일 동안 집회를 하는 것이. 쓰레기 치우는 노동자가, 감히 강남땅에서 빈민촌 가건물에 사는 포이동 주민들이 연대집회라고 와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얻어맞는 것이.

하지만 과연 누가 '인간'인가. 30억 아파트에 이미 몇개의 업체를 소유한 사장에게는, 근처 재건축 아파트 땅값 계산하기 바쁜 부동산 주인에게는, 부자들 먹을 유럽스타일 빵을 만드는 파리바게트 주인에게는.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이런 작은 일에 광분해야하는 가을 오후가 그들에게는 더러울 수도 있겠지.

 

아마 한성 사장이나, 부동산 주인이나, 빵집 주인이나, 북핵실험이나 이명박, 고건, 박근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를 보면서 어쩌구저쩌구 할게다. 그런 국가의 운명과 세계 정세에 큰 일들이 있는데, 무식한 노동자년놈들이 와서 빨갱이 짓거리(정말 이렇게 말하더군)하는 것을 보니 한심할 수밖에.

 

그럼 대체 과연 '작은 일'이란 뭐고 '큰 일'이란 무엇인가?,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이명박, 고건, 박근혜 떠드는 것이 큰 일이라면 똥푸는 노동자의 집회나 이들이 부동산 주인에게 엊어맞은 일은 어느날 오후의 작은 집회에서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작은 일'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 투쟁이 어찌되든 '국가의 운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분개한다.

 

그것이 비록 그들이 보기에는 영업을 귀찮게 하는 소란스러운 '작은 일'일지 몰라도, 그것은 인간답게 살겠다고 20년 직장에서, 50을 넘어 처음 사장에게 대들어본 우리 조합원들에게 그건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 자신이 하나의 존엄한 인간이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짓거리 한다고 물벼락을 맞고 얻어맞을 지라도 돈에 영혼을 팔아먹은 자들보다는 훨씬 고귀한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데는 어쩌면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작은 일'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일에 분개하지 않는다면 큰 일에도 분노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노예생활을 끝내고 인간임을 증명해가는 50대 정화조 노동자들의 투쟁 같은 것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권력놀음과 세계적 규모의 협박과 착취와 폭력이 아니라, 이런 투쟁에 연대하는, 삶의 터전에서 몰려날지 모르는 포이동 주민, 쓰레기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작은 일에 분개하지 않는다면 자본가 계급의 착취체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큰 일에도 분노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십수년만에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작은 일에 분개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큰 일에 대한 분노는 텅 빈 것일지도 모른다는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의 '작은 일'들에 대한 분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독재자에 대한 분노도, 착취의 경제체제에 대한 분노도 허망한 것일 수밖에.

 

그날 그 일이 벌어졌던 집회 장소는, 고개를 돌리면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읽었던 바로 그 고등학교 정문이 사거리 건너 지척에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질문을 하고 십수년만에 학교밖에서 답을 얻은 셈이다.

  

 


  

원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구절은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구절이다. 김수영은 좋아하지만, 이제는 작은 일에 제대로 분개하는 법을  우리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억센 민주화 투쟁을 지나서도 사회가 이 모양 이꼴이라는 말씀을 드려야겠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느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을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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