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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8
    다른 '시간들'과 만나기(1)
    겨울철쭉

다른 '시간들'과 만나기


▶◀ 고 정해진 조합원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주 며칠은 이런저런 일로 서울이 아닌 곳들에 있었다. 몇몇 동지들과 지리산 자락, 전라도 장수에도 한동안 있었다. 공공연맹에서 활동을 같이 하다가 지금은 다른 길을 찾는 동지들이다.

복수의 시간대들

지난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시간은 동시대에도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르고, 심지어 한 사람 안에도 복수의 시간대들이 존재할 수 있다.

장수에서 내가 간 곳은 그런 곳이다.(물론 농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선배가 사는 집과 귀농한 이남곡 선생이 사는 산자락과 계곡이다.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내일 할 수도 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한 자리에서 천천히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 단풍지는 산을 그냥 앉아서 바라볼 수 있다. 서울에서라면 평생 볼 일이 없을, 도민체육대회에 가서 흘러간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아무 긴장감없는 자전거 경기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곳은 '지금' 존재하고 서울에서는 버스로 네시간여 걸릴 뿐이지만, 다른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나즈막하게 작은 바람처럼 나간다.(솔직히 앞으로 가는지, 어느 방향인지도 전혀 불확실하다.)

그래서 그곳에 흐르는 시간은, 그곳을 찾은 이방인에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을 심어넣는다. 그것은 정신없이, 혹은 뒤죽박죽인 마음 속의 시계가 진정할 수 있도록 틈을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대에 넣어야할 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화석처럼 굳지 않고 오래, 푸르게 살아있어야하지만 천천히 존재해야하는 것들을 위해서.



돌아본다는 것

신뢰하기 힘든 기억들로 얼기설기 구성된 '나'라는 주체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전혀 쓸모없는 일일 수도 있고, 혹은 하나의 주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일 수도 있다.

지난 여행을 하면서 돌아본 '나'는 그 전에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더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게 되고, 나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것을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장수에서 만난 선배, 동지들과 또 처음 뵌 이남곡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점에서 나의 경험이 어떤 보편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이남곡 선생은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이후 사회운동을 하시다가 귀농한 분이다. 선배, 동지들과 만난 자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 세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또 처음 만난 분과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는 것은 보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생명력을 갖고 다른 것을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외부의 투쟁 속에서 그런 공간을 갖지 못해왔다는 점. 그래서 그것은 누구에게는 개인의 고통과 좌절이 되기도 하고, 조직이 변질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어떤 개인들은 이 속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타락하기도 한다.

이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성찰이 각각의 개인들만에게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상호적이어야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의 역할, 그리고 성찰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들도 중요하게 된다. 성찰도 시종일관 면벽수행와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보다 '사회적인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들을 갖는 것에 대해서 더 흥미와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낯설게 보기

장수, 지리산 자락 단풍과 가을걷이가 아직 모두 끝나지 않은 들판은 너무나 아름답다. 먼 외국에도 자신들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한반도의 산과 들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 벼를 베지 않은 들판의 진한 노란색은, 추수전 남프랑스 아를을 담은 고흐의 진노랑과는 또 다른 빛을 낸다.(아마 아를의 하얗게 부숴지는 햇빛과 푸르고 투명한 한반도의 가을 햇빛의 차이 때문일 것같다.) 멀리 안개에 묻힌 산의 모습은, 한반도에서 왜 유화가 아니라 수묵화가 발달했는지 이해하게 한다. 그 모습은 유화의 붓터치보다는 먹물이 스미는 한지에 더 솔직하게 담길 것같다.

지난 여행에서 배운 것은, 존재하는 것들을 낯설게 보는 습관이다. 무심코 보아왔던 것들 속에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여행과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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