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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1
    고흐, 암스테르담(4)
    겨울철쭉

고흐,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 고흐박물관

* 지금은 베를린에 있지만, 인터넷 상태가 오락가락해서 이제 겨우 암스테르담에서의 이야기. 베를린은, (인터넷만 아니면) 지내기는 편하지만, 마음은 무척 불편한 도시다. 그런데도 예정보다 이틀을 더 넘기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도시에 가서.

파리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길에 암스테르담을 들려 간 건 두 가지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17세기 세계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였던 네덜란드를 간단하게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그것은 주로 암스테르담 박물관과 도시 자체를 둘러보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온 목적의 팔할 이상은, 고흐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서둘렀는데도,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고흐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이때부터 시작한 관람은 다음날 다시 찾아가서 오후까지 있었으니, 이번 여행에서 한 장소에 있었던 것으로 따지면 오르세 미술관보다 길다. 그러나 어쩌면 평생 이 그림들을 다시는 못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떠나는 길이 아쉽기만 하다.

일단 17세기 네덜란드 작품들을 본 경험(암스테르담 박물관)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무엇보다 고흐에 대해서 말해야한다.

글쎄, 보고 나서 느낌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미술작품을 통해서 이렇게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니와, 그 깊이와 폭으로 말하자면, 이제까지 다른 장르의 예술적 경험 속에서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영혼을 울린다. 니체는 열정적인 감정, 도취는 음악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면서 디오니소스를 특권화했지만, 만약 그가 고흐를 보았다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아폴로를 긍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흐의 눈빛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고흐박물관 이전에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고흐의 말년의 자화상을 언급해야한다. 오르세미술관에도 두 번 찾아가면서 매번 한참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지켜본 그림이 이것이었다.

이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고흐와 눈이 마주치는 각도에 서서 지켜보면서 눈빛과 대화해야한다. 그러면 고흐가 자신의 자화상에 그려넣은 자신의 감정이 전달되어온다. 그것은 어떤 두려움,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과 그런 아픔이다. 누구나 영혼에 그런 것들이 있을 텐데, 고흐의 자화상은 내 안의 두려움,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과 그런 아픔에 거울처럼 직면하게 한다.

노동하는 사람의 손

이런 감동의 상당부분은 여행을 오면서 챙겨와서 읽은 책, 고흐와 동생 테오의 서간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덕분이다. 책은 고흐가 자신의 작품과 영혼에 대해서 말하는 편지들을 담고 있다. 편지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이 책을 통해서 눈 앞에 보이는 그림에서 고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초중기 작품을 먼저 보자. 고흐는 <감자먹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작은 사진으로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지만, 노동하는 손의 표정을 보라. 그리고 표정굵은 얼굴을.
노동하는 사람의 손, 그 자신의 얼굴과 같은 손, 그것은 가장 신성한 모습으로 금빛 조명아래 빛나고 있다. (고흐는 서간집에서 이 그림은 진한 금색 벽에 걸어야한다고 말하는데, 고흐 박물관에는 그렇게 걸려있다. 조금 떨어져보면, 화면 전체에서 빛이 벽으로부터 배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목사가 되기 위해 탄광촌에 있던 시절, 광부들의 파업을 지원하면서 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기도 했던 고흐는, 그 표현은 달라졌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끝없이 간직한다. 아를에서도 고흐는 이렇게 말한다.

농부를 그릴 때는 파란색의 무한한 하늘에 창백한 별 하나가 신비롭게 반짝이는 것을 그리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내가 그리려는 훌륭한 농부가 찌는 듯한 한낮의 열기 속에서 곡식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빨갛게 달궈진 다리미처럼 빛나는 오렌지색과 황금색의 반짝이는 톤을 담은 그린을 그렸다.
사랑하는 동생아, 높은 양반들은 이런 과정을 봐도 단지 서투르게 모방한 탓으로 생각하겠지. 그러나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우리는 ‘대지’와 ‘제르미날’을 읽은 사람이다. 농부를 그린다면, 우리가 읽은 작품이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을 그리면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델은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인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같은 모습이다. 그녀는 밤새 꽤 바쁘게 일했음이 분명한 모습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인상적이게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샴페인은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슬프게 해요.”

그녀를 그린 그림은, 피곤함과 슬픔이 눈빛에 나타난다. 고흐는 그런 인상이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난스러운 것, 하지만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가장 성스러운 것. 나중에 고흐가 들라클루아의 피에타를 다시 그린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림에서 성모에게 안긴 죽어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마치 고흐의 자화상과 같다. 그래서 고흐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해서) 하나의 개인들의 영혼에서, 성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금박으로 장식한 그리스도 상보다 더 성스럽게 나타난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흔히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박물관의 설명을 보면 별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서간집에서 언급하는 마지막 작품이 비슷한 이미지인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충분한 이유가 이 그림에는 있다.



그림에서 밀밭의 밀들은 정말 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위로 날아가는 까마귀들은 불행한 화가들의 영혼을 먼 행성으로 데려가는 것같다. 그들이 날아가는 하늘은 어두운데, 그곳에는 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그리기 전해에 고흐는 <해뜰 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이 작품의 영문제목은 ‘Wheatfield with a reaper’이다. ‘reaper’는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죽음의 신’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수확하느라 뙤약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므로 전에 그렸던 <씨뿌리는 사람>과 반대되는 그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

그러나 고흐의 그림의 전반적인 정서가 죽음일까? 전혀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많은 그림들이 생명력으로 충만해있고 죽음은 그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대조해서 그러나게 한다. “씨뿌리는 사람들”이나 “해바라기”를 비롯한 여러 꽃 그림들을 보아도 그렇다. 잘 알려진 “해바라기”를 보면, 그 꽃이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디선가 꽃들이 말하는 것을 한번 쯤 들어본 사람이라면. 고흐가 전하는 해바라기의 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테오는 자신의 아들에게 빈센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그려준 그림이 “아몬드 꽃”이라는 그림인데, 빈센트 자신에게 그려준, 자화상 같아 보이는 그림도 있다. 이 흰꽃은 이렇게 이어진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아, 고흐가 자살한 해인  1890년에 그린 ‘나비가 있는 정원’이 있다. 하얀 나비가 막핀 꽃처럼 풀밭에 있다.

지상에 머무르는 동안 지도 위에 검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마을이나 도시에 직접 가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나비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무수한 별이 있을지도, 그리고 죽은 후에는 우리도 그곳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나.
- 고흐가 베르나르(동료화가)에게 쓴 편지 중

고흐의 영혼은 나비(프시케)가 그림을 그리는 어느 행성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죽기 전까지 주변에서 피어나는 꽃을 그렸던 고흐는 1890년 7월 권총으로 가슴을 쏜다. 그는 이틀 후에 숨지는 데 “왜 나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을까, 총을 쏘는 것조차”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7월29일,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숨을 거둔다. 동생 테오도 고흐가 죽은 후 6개월 후에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숨을 거둔다.

고흐는 노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영혼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금박으로 치장한 어떤 성화보다도 성스럽다는 것을 자신의 그림으로 증명했다. 고흐는 자신의 강렬한 눈빛과 그림 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이 글에서도 하나하나의 그림에 대한 느낌을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것은 그림을 보면서 눈물이 날만큼 너무 아픈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영혼의 상처를 더 큰 아픔들 속에서 인식할 수있게 하고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것들, 매일 매일 만나는 새로운 것들 속들 속에서 현기증을 느낄 정도이지만, 누군가의 강렬한, 그리고 상처입은 영혼에 직면하는 이런 특별한 기회는 다시 없을 지도 모르겠다.


*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원래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고 있던 "구두"나 "고흐의 의자(초가 있는 의자)"같은 작품을 보지 못했다. 다른 곳에 순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무척 아쉽다.

* 고흐의 그림에 대한 감동에서 앞서 언급한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다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감동적인 책이다. 특히 고흐만이 아니라 동생 테오의 글들도 그런데, 진정한 영혼의 동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테오의 글이 어쩌면 더 가슴을 울린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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