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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3
    노동자운동과 정당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겨울철쭉
  2. 2008/07/15
    [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1)
    겨울철쭉

노동자운동과 정당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진보정치포럼"의 워크샵(8/2, 민주노총서울본부)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토론과정에서 의미있는 문제제기, 토론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정리하는 대로 붙이기로 하죠.
참세상에 기고했던 기고문의 맥락에서 추가로 내용을 보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아래 링크)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nid=47496
내용적인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인데, 그것도 나중에 더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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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운동과 정당운동 어떻게 만날 것인가?
- 노동자정당 건설운동, 대중운동의 분할인가 재건인가?


1. 촛불정세와 진보정당 운동의 시사점

o 사회운동과 정당의 관계

- 촛불정세를 지나면서 대의정치로 수렴되지 않는 사회운동과 정당운동의 관계라는 문제가 제기
- 사회운동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보정당 운동은 일반적으로 (좋게 말해서) 사회운동을 의회에서 대변(대리)하거나 (좋지 않게 말해서) 의회 내 정치활동을 위해 사회운동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활동 (대중운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 정당운동의 본령을 의회 활동으로 설정, 이는 결국 촛불정세에서 드러난 것처럼 (자신이 동원하거나 대변할 기회가 없는)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함
- 따라서 오히려 사회운동을 위한 기관으로서 정당의 상을 설정하고 관계를 가져나갈 필요가 있음.(사회운동적 정당 혹은 사회운동을 위한 정당)

o “정치(적 주체)”의 실종

- 촛불집회 대응과정에서 남은 행위자는 “여론”과 “정부”일 뿐이며, 다양한 사회운동(정치운동과 대중조직을 포함하여)은 부차화됨. 인터넷과 일부 언론을 통한 직접적인 여론의 호소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함
- 이는 “정치의 주체”가 부재한 상황을 낳고, 정치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 즉 “반정치”의 조건을 창출하게 됨
- 그렇다면 이 정세에서 여러 사회운동들은 자신을 정치의 행위자로 드러내고 새로운 대중정치주체를 조직하는 역할을 했어야함. 조직의 위상 등을 보았을 때 정당운동은 이를 추동하고 조직하기에 가장 유리하지만, 오히려 촛불집회 정세에서 대중의 반정치 정서, 대응과정의 무능력 등으로 인하여 의미있는 역할을 하지 못했음. (다른 사회운동들과 대중조직도 마찬가지임)
- 정당, 대중조직, 사회단체 등 기존의 사회운동이 이들 대중을 조직하지 못할 때, 대중들은 (주로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느슨한 인터넷 네트워크로만 연결되고 지속적인 정치적 주체로 형성되지 못함

o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의 난점

- 현재의 진보신당은 그러한 방식으로 활동하기에는 여러 난점이 있음
 : 의회 내에서 부각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리더십, 미디어 정치에 대한 몰두와 이를 통한 당원모집, 노동자운동과 거리두기 (신사회운동, 의제별 운동과의 결합과 노동자운동과의 결합에서 어정쩡한 입장), (포지티브한) 조직이데올로기 혹은 운동이념의 부재(혹은 이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 자체의 부재)
- 진보신당이 새로운 대안적 정치운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제2창당”이 의미있게 진행되어야함. 그러나 현재와 같이 “특정정파들의 연합을 확대하는 방식 + 미디어(스타)를 통한 당원확충 + 당 운영과 조직체계의 개편”으로 이루어지는 제2창당은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 (이는 다른 좌파세력이 “더 많이” 결합하는 “제2창당”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대안적 정치주체 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의미)
- 민주노동당은 특정정파를 중심으로 국회의원을 통해 대중조직과 사회운동을 동원/대리하는 경향 심화. 사회운동적 성격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

o 조직노동자운동의 한계

-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자운동은 각종 “입장”을 통해서 촛불집회에 결합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의 참여를 조직하지는 못함 (7/2 총파업의 사실상 무산)
- 사유화 반대 등 쟁점이 제기되면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었으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 노조 집행부들은 물론이지만 현장에서부터 사회운동적인 매우 약화되었다는 것을 확인
- 비정규직 문제 등 노조운동이 주로 제기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에 대한 활동도 잘 이루어지지 않음. 비정규직노조 단위들이 이를 시도했으나 “비정규직철폐 촛불문화제”에서도 보이듯이 조직노동자운동이 사실상 방기하면서 확산되지 못했음
- 현장주의적인 운동들은 경우 촛불집회에 거의 결합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음. 노동자운동의 건강성의 지표로 생각되어온 “현장성”에 대한 비판과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 확인됨


2. 정당운동의 분열과 대중운동

o 정당운동의 분열과 대중운동의 분할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은 민주노총 내 현장 활동가들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음
- 한편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 여러 사회주의 운동 세력들은 “노동자 계급정당(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각각 제안하고 있음.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수렴한다기 보다는 현장활동가들을 분할하는 중에 있음
- 현재는 대중조직의 활동가들의 정치적 전망이 분열되는 수준이나, 일각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이후 복수노조, 정파적 대립의 격화, 민주노총 직선제 등과 맞물려 대중조직 자체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

o 정당 분할의 부정적 효과

- 사회운동,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당이라면, 정치적으로 분할을 가속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임
- 어떤 정치활동인가에 대해서 논쟁이 충분히 필요하지만, 정당운동이 사회운동과 대중운동 전반을 분열시킴으로서 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은 문제. 특히 정당운동이 의회 내 활동을 위해 사회운동을 동원하거나 대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줄세우기”로 귀결될 위험


3. 다른 가능성

o 정파들의 분할이 아니라 사회운동, 대중운동의 통합

-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진보신당의 한계와는 반대로,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방식의 정당운동도 불가능한 것은 아님
- 대표적으로 마포지역의 (구)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현재 다수는 진보신당 당원) 활동 사례
 : △월드컵 상암점 조직화와 같이 대중적 운동주체를 직접 조직하고, △이를 위한 “운동들의 운동”을 조직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 △“민중의 집”과 같이 지역에서 노조-정당-사회운동단체-기층 민중단체들이 결합하는 운동모델 형성
- 그렇다면 어떤 정당에서 활동할 것인가 이전에 어떤 운동을 실현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쟁점일 수 있음. 통합적 대중운동, 사회운동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실천 활동.
- 사회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의회 내 활동을 축으로 사회운동을 동원/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역할을 오히려 자임할 수 있음
- 이 과정에서 정당, 정파, 노조, 사회단체, 대중운동 등을 관통하는 운동주체가 형성되고 상호 강화할 수 있을 것임 (예를 들어 촛불집회가 만든 정세 속에서 이러한 운동을 조직해나가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
- 이러한 대중운동의 통합을 위해서는 이를 추진하는 정당주체만 필요한 것은 아니며, 이 운동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노동자운동 주체가 필요할 것임. 현장주의, 정파주의를 지양하는 것은 물론, 정당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에 열려있는 대안노조의 구성.

o 대안사회 운동 이념의 재건 없는 대안좌파 재구성의 불가능성

- 진보신당과 같은 조직(형태와 활동방식)만이 문제인가? 그렇지 않음
- 오히려 좌파(정치활동)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대안사회 이념이 재건되어야할 것임
- 새로운 운동주체 형성의 과정은 특정한 조직(정당이거나 연대체이거나)을 건설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대안이념을 구성하기 위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이 되어야함

o 그밖의 고려사항

- 새로운 운동주체를 조직을 위한 “임계질량”(critical mass,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질량) 형성의 문제 (경향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


“사회운동들의 다원적 성격은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그 자신이 새로이 구성된 정치적 주체를 요구한다. 정치의 위기는 좌파정치, 사회갈등, 시민사회 사이의 관계를 새로이 재정립함으로써 위기로부터 탈출할 것을 요구한다. 공산주의 재건은 이런 재정립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 우선적으로 대안좌파는 대안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운동들과 교류한다. 대안좌파의 존재이유는 집단적 행동을 또 다시 유효하게 만듦으로서 정치 자체를 부활시킨다는 의미에서 정치의 개혁에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정치적 주체는 당과는 다른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조직들이 당과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베르티노티(이탈리아 공산주의재건당), <공산주의 재건과 대안좌파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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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김원 선생의 인터뷰가 오마이뉴스에 실렸군요.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합니다. 마침 지난 주말에 김원 선생 등이 신병현 선생 등과 작업해서 발간했던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상황에서 반갑기도 합니다.(오랜만이 리뷰라도 써야할 것같다는;;)
 
 
 
글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지행네트워크>라는 곳에 관련된 글을 이미 쓰신 적이 있군요.
 
http://jihaeng.net/blog/111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인가)
 
 
 
한달 넘은 글이긴 하지만, "긴박한" 정세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사점이 생생한 글입니다.
 
 
한편, 아래 제가 쓴 참세상 기고와 관련해서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또 보니, 김원 선생의 글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만 저는 여전히 활동가입장인지라, 현재 정세에 사회운동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개입해야하는지가 더 고민이긴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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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참세상에 올라온 다른 기고문들과 모종의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영수(노힘)씨의 글
그리고
 
김강기명 씨의 글
과 그렇습니다.
 
후자는 자율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면 전자는 (원영수씨의 원래 포지션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좌파적 입장일텐데,  둘다 촛불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촛불 안에 있는 모순적 요소를 봐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가진다는 입장입니다. 역설적으로 좌파들이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런 방식으로 열광하거나하는 사이에 가장 영리한 대응을 하는 것은 여연 등의 NGO들입니다. 자신들이 어느 지점에 개입해야하는지 알고 있지요.
 
그래서, 이번 촛불국면에서 충분히 배워야하고 싸움에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이어선 안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태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열광보다는 과학적 분석과 이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뻔하게 "좌파 먹물들 운운"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 ㅋㅋ
하지만,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가 더 중요하게되는 시점이니,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ㅎ
 
여튼간에 자율주의자들의 반응은 뻔하다고 치고, 다소 놀라운 것은 (이미 리보위츠의 글[21세기 사회주의]을 번역할 때부터 그랬던 것같기는 하지만) 원영수씨의 이런 입장은 좀 놀랍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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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좀 긴 사설.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촛불논쟁-거리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⑥] <여공 1970…>의 저자 김원 박사
    
촛불에 상찬을 늘어놓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그는 차분했다.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2006년)>란 책으로 주목받았던 김원 박사(정치학)는 6월 중순께 발표한 글에서 "아이들의 촛불을 보며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환호해서는 안된다"며 침착하고 냉정한 시선을 주문했다.
 
"우리는 이미 2002년 촛불이 어떻게 잦아들었으며, 당시 촛불을 든 아이들이 88만원세대가 되어 고용불안 속에서 '경제를 살려준다'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김 박사는 '촛불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이어갔다.
 
"한달 전 뉴타운 건설에 열광했던 집단이 갑자기 촛불 속에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까?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거리의 정치가 순간 잦아들면서 일상으로 대중들이 돌아갈 때,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는 다시 강력한 흡인력을 보이며 대중을 빨아들였다. 이 점에서 촛불로 한국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가 변화했다고 판단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다."
 
심지어 김 박사는 "(2002년 촛불에 이어) 2008년 촛불에도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를 "민족적 자존심에 기초한 멘탈리티의 재생"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촛불 독자성은 강화되고, 사회운동 영향력은 약해져"
 
그동안 미시사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김원 박사는 1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서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중고생들을 '촛불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양상·분위기·아우라가 과거 거리정치와는 분별되는 측면이 있다. 가족단위로 촛불시위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전선을 쳐놓고 미느냐 밀리느냐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고 잔치 혹은 페스티벌 성격이 상당부분 더해졌다.
 
중고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초기에 주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세대라기보다는 광우병 문제와 자신의 교육현실이 겹치고, 문자세대와는 다른 인터넷세대의 감수성이 결합돼 초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박사는 중고생들의 촛불시위 참여 양상이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교육에 복종하는 애들로만 알았는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성찰한 것이다."
 
이어 김 박사는 민족주의의 재현이라는 '촛불의 낡음'에 대비되는 '촛불의 새로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더 약해졌다. 2002년 촛불시위 때는 사회운동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깃발을 만들어 나왔다. 거리정치에 대한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퇴조한 것이다. 2002년과 대비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즉 "촛불의 독자성은 한층 더 강화되고 사회운동의 무능력함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김 박사는 "이는 2002년 촛불을 경험하면서 운동진영이 학습효과를 가진 결과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깃발을 내세워 일방통행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대중운동으로 전화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바다에 뛰어 들어가 거기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 정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실험할 게 더 남아있나"
  
또한 김 박사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로 분출됐다"며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두 가지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제도화된 정당이나 정당정치를 통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은 촛불이고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변화는 촛불시위든 거리정치든 대중지성이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기존의 사회운동 패러다임을 고집했을 때 사회운동이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중의 호민관'이라는 패러다임으로는 대중을 이해할 수도 없고, 대중이 복무할 수 있는 언어공간도 확보할 수 없고, 그들을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은 대중의 호민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이번 촛불시위에서 그런 점을 학습했다고 본다." 
 
이런 분석의 연장선상에서 김 박사는 최근 촛불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의 '대의제 민주주의론'과 관련 "현상 유지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최장집 선생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최대치는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인 것 같다. 국가권력이나 정부행태의 변화·집권 등을 통해서만 좀더 풍부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을 돕는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사회 각 부분에서 추진하는 게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의 판단과도 부딪친다. 대중들이 투표와 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느냐?"
 
이 대목에서 김 박사는 "정당정치는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라며 '진보정당 무용론' 혹은 '정당정치 무용론'으로 비칠 수 있는 도전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미 "촛불집회에 대한 많은 해석들을 보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필요없는 이론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이 87년이 20년 되는 해였다. 좋은 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을 더 할 게 남았나? 더 이상 거기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문제를 자기문제로 표출하기에는 정당은 너무 낡았다. 그런 것들이 명백한데 계속 (진보)정당에 목을 매야 하느냐? (진보) 전당이 대안이라고 얘기해야 하느냐?"
 
이어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이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에 근거했을 때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제도정치로 통제할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는 주장은 현상유지적이고 보수적"이라며 거듭 '최장집 사단'의 견해를 비판했다.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재검토해야"
 
김 박사의 도전적인 주장은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은 이랜드 투쟁은 물론이고 촛불시위에도 관심이 없다.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여성·실업 등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대공장 남성 생산직 노동자를 주요한 조직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정당운동의 패러다임을 재검토해야 한다. 노조운동이 지역·산업·계층을 달리하는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김 박사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생산직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지지가 취약하기 그지없다"며 '지지층 외연의 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진보정당 원내 진입) 초기에는 '거대한 소수'를 운운했지만 지금은 지지기반이 얇아졌고 노동자층의 적극 지지도 사라졌다. 그래서 기존 기지층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촛불에서 제기된 이슈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차원이든 지역투쟁 사례를 통해 촛불시위에 참여한 다양한 층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밑으로부터 지지층을 확산하고, 정당의 일상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과 소통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양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김 박사는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풀뿌리 보수주의를 깨지 않으면 진보정치를 할 수 없다"며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아래로부터 풀뿌리 보수주의를 일상에서 깨는 노력과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보수가 주도하는 한국적 정당체제 속에서 진보정당이 장기적인 생존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박사는 "촛불이 잦아들고 다시 일상이 조성됐을 때 촛불을 지지한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와 관련,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사례로 '이랜드 투쟁'을 언급했다.
 
"이랜드 파업이라는 비정규직 파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노조·정당·사회운동과 동시에 결합됐다. 그래서 이랜드 투쟁은 지역화·집중화·전국화될 수 있었다. 이랜드 투쟁을 거치면서 '시민·비정규직·소수자 등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깨달은 것 같다. 촛불도 그런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촛불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촛불이 던진 변화를 읽으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정치활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매주 촛불시위 하러 나가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촛불은 대중투쟁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권이 악수를 두면 촛불시위는 5년 내내 계속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생각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의식을 끌어올릴 때 (촛불시위처럼)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는 대중투쟁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기존의 사고를 바꾸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실험을 이명박 정권 내내 계속 한다면 '진지를 갖는 사회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원 박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집위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한국 대학생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김진균학술상 수상작)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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