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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2
    로르카, 강의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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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11/25
    [영화] 색,계 (色, 戒: Lust, Caution)
    겨울철쭉
  3.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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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l Hospital,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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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국현이 걱정되는 이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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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8/23
    사회운동포럼, 곧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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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 강의 백일몽

로르카는, '시인이 총살 당하는 시대'의 희생자다.
좌파였던 이 시인은 1936년, 스페인에서 프랑코를 두목으로 하는 파시스트들의 쿠데타가 시작된 직후 그라나다에서 총살당한다. 시인이 총살 당하는 시대, 20세기는 오래 지속되고 있다.

번역된 시집을 읽으면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서정시인이다. 서정시인을 죽이는 시대.

로르카를 읽으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예민한 영혼을 가진 시인도 헤어지고 영혼에 칼로 벤 상처를 받아도, 여전히 또 시를 썼다는 것,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를 중단시킬 수 있었던 것은 파시스트의 총탄 뿐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파시스트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아마도 훨씬 마음이 무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적어도 시를 읽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강의 백일몽
(헤닐 강)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을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에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걸.

반딧불들이 세계가
내 생각에 엄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리고 작아진 심장이
내 손가락들에 꽃핀다.

(정현종 옮김, 표현은 조금 바꿈)


하나만 더. (너무 많이 옮기면 시집을 사보지 않을테니 ^^;)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시들은 소리내어 리듬을 읽어야한다. 혹은 시를 옮겨 적는 타이핑의 경쾌한 키보드의 리듬도 어울린다.


어떤 영혼들은...
1920년 2월 8일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끼워놓은 아침들을,
그리고 꿈과
노스텔지어의 옛 도란거림
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
열정의 환영들
로 괴로워한다. 벌레먹은
과일들. 그림자의
흐름과도 같이
멀리서
오는
타버린 목소리의
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
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
오래 익어왔다 : 그건 시든다.
불가사의로 어두운 채.
환각에 침식당한
어린 돌들은
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
모든 돌은 말한다 :
"신(神)은 멀리 계시다!"


===
아래는 로르카의 시집


강의 백일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정현종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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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색,계 (色, 戒: Lust, Caution)

보고나서는 한참 동안 멍하게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

 

 

1.

파시스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들은 타자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그 필연적인 귀결로서 자신들의 자유까지도 억압하고 지속적으로 소거해가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그 말은, 파시스트들에게는 영혼이 교통하는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에게 예컨데 soulmate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영혼의 울림, 떨림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파시스트의 자기억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파시스트의 하수인인 이(양조위)는 자신의 주변에서는 만나지 못하는 대상을 저항군의 스파이인 왕치아즈(탕웨이)에게서야 찾을 수 있다. ('이'에게 부인은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도 '내려가서 마작이나 하라'고 말할 의미없는 대상이다. 파시스트와 함께 사는 여인들은 그저 마작을 하는 장면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파시스트인 그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것.. 따라서 왕치아즈(탕웨이)에게 만큼이나 이(양조위)에게도 이 사랑은 파멸적이다.

 

2.

영화는 저항군이 왕치아즈(탕웨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어떤 한계로 내모는 순간, 가장 잔혹하다. (사람을 수십번의 칼질로 난도질 때가 아니라 이 순간에.) 그렇다면 그것을 계속 견딜 것을 요구하는 저항군의 중간간부에게는 파시스트만큼의 영혼이 있는가?

 

적어도, 영화에서 그 중간간부는 왕치아즈(탕웨이)의 말, 이미 멈출 수 없게 이(양조위)를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그녀가 처한 성적 착취에 괴로워하는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한다는 점에서 이것이 잘 못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끝까지 '조직의 이름으로' 작전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저항군'이라는 사람들은 결국 파시스트들과 어디서 다른가. 파시스트의 육체를 살해하기 위해서 동지의 영혼을 살해할 때..

 

운동은, 그것이 설사 그것 때문에 패배하더라도 지켜야할 것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곳들에서조차 그런가.

 

3.

사랑이 정치적 적대와 얽혀들 때.

사랑에 대한 온갖 찬사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다만 현실의 (정치적) 적대 속에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인 인랑 (人狼, Jin-Roh)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흥행을 포기했는지) 불길하게도 정치적 적대 아래서, 사랑은 가장 낮은 차원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영화를 같이 보았던 애인과는 다음해, 첫직장에서 노조를 만들고 싸우는 과정에서 헤어졌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그녀와 노조활동에 대한  입장을 화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전에 연애에서도 그 '정치적 입장'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가끔 떠오르기는 하지만 역시 그 당시 상황에서 어떤 다른 판단들이 열려있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모든 과정이 영화의 흐름과 동시에 다시 재생되었다. (극장에서 나는 두 개의 영상들을 본 셈이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후의 또 다른 과정에서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실패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는, 아주 당연하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보이는 결론을 고통스럽게 얻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왜 사랑은 정치에 대해서 그렇게 강하지 못한지 생각하게 된다. '정치'라는 말 보다는 그/녀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색, 계'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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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본색

무한한 연습님의 [<<주몽>>과 <<태왕사신기>>: 자본주의적 욕망의 서사(와 민족 서사)로써의 고구려 역사 드라마들.] 에 관련된 글.
님의 [<태왕사신기>와 포섭의 정치] 에 관련된 글.

드디어 이번주 태왕사신기 방영분(18~19회). 태왕사신기의 본색이 위에 링크한 글에서 무연님, 삼님이 말한 것과 같은 식으로 너무 '친절하게' 드러났다. '친절한 담덕씨' 우리 태왕폐하는 아주 친절하게 프리젠테이션까지 준비해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표현을 언급하자면 "벤처 사장들의 북방 개척론"이랄까.

자신이 하려는 것은 피흘리는 전쟁이 아니라 거란이나 부여나 주변의 이런저런 나라들과 무역을 하려는 거다, 그게 '쥬신민족'이 평화롭게 하나되는 길이라나.(18회) 그러다가 드디어 다음회(19회)에서는 소금장사하러 거란으로 떠나신단다. (게다가 태왕 담덕이란 인물은 점점 더 내적 모순이 완전히 제거된 무슨 꽃미남 밀납 인형같은 캐렉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에 적합한 전략이라는게 세계화된 경제라는 식의 연설을 광개토대왕이 하는 셈. 이걸 보면서 정부의 한미FTA 홍보광고가 당장 떠올랐던 것이다. "더 넓은 시장에서 경쟁합시다" 실제로 국정홍보처의 한미FTA 광고 중에는 광개토대왕 어쩌구하면서 하는 것도 있었다. "경제영토"가 뭐네하는 광고도 있다.


요것은 태왕사신기의 한 장면? 아니다. 국정홍보처의 FTA광고 "도전편"에서 광개토대왕 어쩌구하는 장면이다. http://fta.korea.kr/Article/?dataSeqNo=9007&dataGubun=TV&PageMode=Detail

그런데, 여기까지는 MBC 뭐 니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건데 좀 더 생각하다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물론 나름 드라마 재미있게 보다가 기분 잡치면 그 자체가 좀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게다가,)
이게 위에서 말한 "벤처 사장들의 북방개척론"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건데, 이건 뭐시기냐하면,
권영길 후보 공약을 비판하면서 우석훈씨가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레디앙] 소제국주의 식민지 전략보고서?

"코리아(=고려=고구려)연방"으로 "쥬신(조선)민족" 대동단결해서 북방시장 개척하자는 거잖아, 이거..
전근대적인 것과 초근대적인 것의 결합이랄까, 민족주의 상징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한 대중동원에 결합하는 이런 방식을 사회운동들까지 따라해야하나..

그러다가 작년 투쟁할 때 민주노총에서 만든 총파업 깃발에 메인 로고가 '태왕사신기'에도 열심히 출연하고 게시는 삼족오라는 것도 떠올랐다. 젠장.. 이러다가 민주노동당이 태왕사신기 컨셉으로 선거 선전할까봐도 심히 걱정된다.

뭐, 작년에 민주노총은 그게 삼족오가 아니라 주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니 문소리나 이지아를 섭외하려나? (남조선은 남쪽이라 주작인가??.. 그런 심오한 고려까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작(朱雀)이 민주노총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투쟁을 수호한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파업 상징으로 선정된 주작을 이미지화해 깃발로 제작, 연맹과 지역본부, 지구협에 보급하고, 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 장소에서도 배포한다.

깃발 이미지는 ‘민중적 내용을 민족적 형식에 담는다’는 원칙아래 주작의 상징적 모양과 붉은 색조를 기본으로 형상화했다. 또 검정과 회색톤을 가미해 강렬하면서도 현대적 이미지를 표현했다.

주작은 우리 민족 설화에서 청룡, 백호, 현무 등과 함께 하늘의 사방四方을 지키는 신을 일컫는다. 주작은 남방의 수호신으로 삶, 생존을 의미하는 사신四神 중의 하나다.

봉황이 득도를 하면 온몸을 붉게 물들이며 주작이 된다 하여 ‘붉은봉황’이라고도 한다.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실장은 주작을 총파업투쟁 상징으로 정한데 대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변혁세력의 단결로 민족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감으로써 역사의 변환점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상징물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이 참여하는 민중총궐기 투쟁에서도 이용될 것”이라며 상징물의 쓰임세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노동과 세계 기사, 홍미리 기자 gommiri@naver.com   2006년11월06일 )


http://newscenter.nodong.org/news/view.php?board=mainnews&id=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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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영웅의 시대?

요즘에 태왕사신기를 재밌게 보고 있다. 사실 요즘에 그나마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는 셈인데, 여행을 다녀와서 지난 주에 14회를 처음 본 후에 1회부터 주말내내 찾아봤다는,,;;

나도 영화나 드라마 보는 취향은 그저그래서 일단 판타지 줄거리에, 멜로 라인, 멋진 쌈박질 장면 등이 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CG는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쪽에는 예산을 줄이다가 "싸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태왕 담덕 역의 배용준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반할 정도로 멋있게 나온다.

재미있게 보다가 생각나서 몇가지.



신화, 영웅들의 시대

드라마의 배경은 고대. 좀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신화적인 시기로 그려진다.(고구려 정도는 이미 역사시대인데..;)

주인공인 태왕 담덕은 '영웅'이다.
그런데, 이 영웅에는 두 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다. 전자는 영웅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탄생-고난-성장-귀환으로 연결되는 일생을 사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타고난" 운명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승리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고난을 겪어야하고 그 운명을 알아보고 돕는 것들을 만나야한다.

이런 영웅들은 매우 전형적이어서, 어느 민족들의 영웅신화, 설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홍길동전같은 중세소설에서도 그렇고, 지금 쓰여지는 소설이나 영화들에서도 활용되는 구조.

그런데, 또 다른 영웅들이 있는데,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세익스피어에서도 그렇지만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보자. 이들은 운명의 장난에 따라, 혹은 자신의 기질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하지만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다. 이들은 파멸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고귀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성격의 영웅은 그 위대함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두 가지의 영웅 성격이 결합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나, 영화 '메트릭스'에 네오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태왕사신기의 영웅인 태왕 담덕은 전자의 성격에 가까운 인물. 그래서 14회 정도부터 시작해서 17회 정도에 이르러서는 고난을 거의 이기고 이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극적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편으로는 극적 재미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반감하는, 이 드라마의 판타지적인 성격이 관련되어 있다.

기계신(deus ex machina)

14회, 15회를 TV에서 보고 앞 부분을 찾아서 다시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담덕이 어떻게 (신물을 다 찾을 때까지 임시라고는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가하는 점이었다.

11회. 선왕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던 태왕 담덕은 신당에서 "가우리검"(심장에 칼을 박아넣고 죄를 지은 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하여 재판하는 제도라는 데, 중세시대의 마녀심판과 비슷한 것이다.)을 요구받는다. 심장에 칼을 찔린 담덕은 여기서 심장이 찔린 칼(동명왕검)이 한순간 가루로 변하면서 설아남는다. 그 결과로 짜자잔~ 선왕을 죽였다거나 귀족 자제들을 납치했다는 모든 의혹을 뒤로 하고 왕위 등극.

그 순간 당장 떠오른 것이 진중권 덕분에 유명해진 기계신(deus ex machina)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건자체의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외부적인 힘 덕분에 모순이 해결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개념. 여기서 동명왕검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렇다보니, 담덕이 왕위를 인정받는 것은 그의 고귀한 인품이나 고난을 헤치는 용기같은 것이라기 보다는(물론 그것들도 제시는 되지만), 판타스틱한 기적에 의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주인공 영웅을 도울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극적 긴장은 떨어질 수밖에. 4개의 신물을 모두 찾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지만, "가우리검" 장면은 특히 심했다.



인물들, 입체적이거나 밋밋한.

이런 상황이다보니, 태왕 담덕은 주인공이지만 점점 재미없고 더 밋밋한 인물이 되어간다. 물론 배용준의 멋진 외모 덕분에 여전히 (극에는 외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그의 성공은 그의 고귀한 영웅적 자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힘들이 이미 닦아준 길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해서, 오히려 태왕 담덕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대립하게 되는 기하(문소리)나 연호개(윤태영)가 더 입체적이고 극적인 인물이 된다. 이들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있고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처한 운명 속에서 파멸되어간다. (아마 이들의 성품이 좀 더 고귀하게 그려졌더라면 이 드라마의 진정한 영웅은 태왕 담덕보다는 이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극중 인물들의 사랑에서도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기하가 태왕 담덕에게서 멀어져가는 과정, 그리고 파멸을 예상하면서도 (기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연호개의 경우다. 수지니(이지아)를 둘러싼 태왕 담덕과 처로(이필립)의 미묘한 감정보다도 더 그렇다.

오늘 방영한 17회에서 "(더 멀어지고 파멸하기 전에) 자신을 멈추어 달라"는 기하의 대사나, 지난주(아마 15회?)에서 연호개가 기하에게, "내가 필요없어져 버리더라도, 당신 손으로 내 가슴을 찔러줘요"라고 말하는 연호개의 경우가 더 생생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느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드라마는 고대 귀족정 시대를 다룬다. 이것은 영웅들을 묘사하기에 쉬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귀한 인간들의 귀족적 성품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귀족정을 옹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성품의 인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귀족적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이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는 고귀하고 위대한 영웅들을 그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혹은 인간의 위대함을 억압하는 시대.) 그러다보니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정치판에서 영웅 행세를 하려고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고대민족들의 역사

한편, 이 드라마는 '쥬신'이라는 이름으로 동이족들을 통칭하면서 이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말갈, 거란 등이 언급된다.

사실은 여기에 왜(倭)도 넣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는데, 왜를 포함해서 동이족을 지칭할 경우 '내선일체'를 상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거란, 말갈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지금은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그런 점에서 남한민족보다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일본은 '내선일체'를 말할 수 있지만 일본민족보다 열위에 있는 조선민족은 그것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기만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백제가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동부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설을 채용하지만, 마찬가지 맥락을 갖는 다른 가설, 백제와 왜가 연합왕국이었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일본에 대한 미묘한 입장 때문일텐데, 이 드라마가 일본자본의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이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드라마를 보면, 주요 전투장면은 황량한 초원과 사막지역에서 촬영한 것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스텝지역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무대였던 만주에서의 촬영에 대해서 중국정부가 내용상 문제를 들어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수입과 방영도 불허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이족을 통칭하여 '쥬신'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이 드라마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고대사를 두고 각 민족국가들이 벌이는 역사전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에 대한 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구성된 역사들에 대해서 말이다.

중국의 경우에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그들이 (말로라도) 체제의 성격으로 사회주의를, 그리고 다민족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로 민족간의 우애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오히려 각 민족들의 고유한 역사를 평등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민족적 우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한족(漢族)의 주요 제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하고, 다른 민족의 역사는 "지방정권"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데, 이는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한족의 패권적 역사관일 뿐이다. 이렇게 되는 데 티벳을 지원하는 미국과 같은 위협, 민족들의 분리독립의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는데에 올바르고--게다가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의문이다.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만드는 한국이나, 그것을 금지하는 중국이나, 또 일본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드라마는 앞으로도 재미있게 보겠지만, 극 자체의 재미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같고, 화려한 영상과 몇가지 극적 에피소드가 더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다. 아, 그리고 배용준을 비롯해서 인물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히 볼만하고 앞으로도 상당히 그렇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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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태양의 영혼

이상은 앨범은 자주 듣지는 않는데도
(얼마전에 산 베토벤 전집을 천천히 듣는 중인데, 일단 그 "양"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들을 수록 왜 이렇게 좋은 곡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가끔 듣다가보면, 거의 "환장할" 지경이다. (이것도 병인가;;) 대체 왜 이런거지;;

이상은 13집 중,

태양의 영혼

커다란 해무리 무지개빛 테두리 눈이 부시게 환하네 천국이 가까운 듯
어린아이처럼 하늘만 계속 보았네 아름다운 빛 속으로 날아가고파
아 별들을 이어서 멜로디를 만들고 꽃들을 엮어 그림 그리고
바람을 담아서 시를 쓰고 그늘없는 미소를 모아 그대에게 드리리
나의 노래는 잊혀지겠지만 감사 드리리

나의 먹구름과 거칠은 모남이 조금씩이라도 바뀌길 기도해
높고 높은 그곳에 찬란한 빛 비추니 나의 모든 것들에 눈물이 나네
아 별들을 이어서 멜로딜 만들고 꽃들을 엮어 그림 그리고 음 바람을 담아서 시를 쓰고
조금씩 나아지기를 빛을 머금은 말과 눈빛과 미소를 세상의 어둠에 묻히지 않는
태양을 내 영혼속에 커다란 해무리 무지개 빛 테두리 눈이 부시게 환하네
어린아이처럼 하늘만 보았네 아름다운 그 빛 속으로



* 스피커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곡이 재생된다.
(다만 Firefox에서는 잘 되는데 IE7에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는 것같다.)


==
인터넷에 검색을 하다보면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 '첫눈'이라는 영화에 삽입되면서 뮤직비디오로도 만들어진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이 뮤직비디오의 영상은 마치, 노래방에서 나오는 영상처럼 곡하고 (느낌이나, 심지어 속도도) 전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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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술 진탕 먹은 다음 날

친구놈들과 술을 진탕먹고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다음날 아침.
그런데,

경험도,
상처도,
통찰력도
이 녀석들을 보니


너무
적고
아직도 어리다
넌 도대체
그 동안 뭘 한거니
정말 관료질 온실 안에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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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코리아연방공화국&quot;광고덧글에 한마디

아래 포스트에 "추파"라는 아이디로 덧글이 달렸다. ("추파"는 秋波 인가? 그럼 혹시 역정치선전?)

추파  2007/10/31  
http://www.vop.co.kr/new/news_view.html?serial=89958
이명박 후보는 국민성공시대, 정동영 후보는 가족행복시대를 말합니다.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면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세웠군요.
권영길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어떤 나라일까요? 모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꾸욱~

대선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가 여러 블로그에 달린 이 광고성 덧글, 게다가 덧글로 연결되어 있는 아래 글을 보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거 얼마 남겨두지 않고, 격려는 커녕 이런 글 쓰게 되서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용대,'코리아연방'은 어떤 나라인가? <월간말>"민주노동당만의 고유한 국가대안"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이 괜찮은 운동단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번 이런저런 선거 때마다 그래도 한표가 아까워서 투표소에 가지 않은 적은 없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50일도 남지 않은 이번 대선에는 아예 투표를 안할 생각이다. 그나마 투표소에 가서 찍는 수고를 하게하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이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는 '내용(컨텐츠)가 없다'는 것도 있다.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그나마 관심있는 나 같은 이도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같다. (그나마 있는 '컨텐츠'도 답답할 따름이다. 권영길 후보의 홈페이지에 걸린 정책들, 특히 "대안경제와 민생"은 민주노동당 내부 경선 때 것이 그대로 걸려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안습'이다.)

그런 점에서 위에 링크된 이용대 씨의 글은 참 역설적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다른 사회에 대한 대안이 있으며 그것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코리아=고려'가 맞겠지) 역시 내용의 빈곤 혹은 부재를 보여주는 그 글에 긍정적인 점을 굳이 찾으라면, 운동진영이 (굳이 선거가 아니라도) 우리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대안사회 이념의 필요성은 올해 여름에 사회운동포럼과 그 평가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안사회의 상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용대 씨처럼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름만 붙어있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대안이라는 동어반복 식의 주장을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게다가 위에 링크된 글에서 조차 이것이 국가대안인지 통일정책인지 글쓴이 스스로 혼란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안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운동의 이념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대안이념이었던, 그리고 많은 부분이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대안사회의 상이 제시되어야할 텐데, 그것은 어떤 고정된 모델이라기 보다는 운동을 진전시키기위해서, 대중의 상상력을 열기 위해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이러한 대안으로 가기 위한 경로가 제시되어야 비로소 대중들이 그것을 공론구가 아니라 현실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용대 씨에게도 그것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 지 모른다. 사정상 밝히지 못했더라도 아마 운동이념은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로서 김일성주의일 것같고, 대안사회의 상은 발전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통일로 완성된) 민족국가일 듯하고, 그것을 위한 경로는 대규모 군중집회와 선거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이용대 씨의 사정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닌데, 도대체 고집불통의 김일성주의자를 제외하고 민족주의+스탈린주의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물론 민족주의로 설득되는 우파들이 있고, 스탈린주의로 설득되는 좌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로 인해서 좌편향과 우편향 사이에서 분열증이 나타난다.) 게다가 대안사회의 상도 문제지만, 경로가 거의 부재하다.

예를 들어서 '진보적 이슈''를 선점하고 있는 문국현은 자신의 성장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세부경로를 제시한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마치 실현가능해보인다. 문국현의 인기는 그가 진보진영이 주장해왔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같은 쟁점에 대해서 마치 현재의 체제 안에서도 해결 가능한 방법이 있는 것처럼 제시한다는 데서도 나온다. (사실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 다른 정책과도 모순된다는 점은 다음 문제이다. 여기 선거판에서는 대중에게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니 제2의 노무현으로서 문국현과 같은 포퓰리즘 정치인이 인기를 끌기 적당하다.)

하지만 권영길 후보에게서는 어떤 정책수단 혹은 대안정치로서 대중운동을 통해 그것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없다. 잘 다듬어서 제시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설마 100만 총궐기가 그 수단이라고 생각하나??)

권영길 후보의 선거정책으로 제시된 공약들은 주로 운동정치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선거정치를 통한 집권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북방대륙경제권 개척sic.이나 노동중심 혁신클러스터sic.같은 것들을 보라.) 그렇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책수단이 제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경로로 제시되는 것은 제도적 경로의 측면에서는 아예 없거나 혹은 100만 총궐기라는 사이비 운동정치의 방식이 된다. 그러니 내용의 부재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선거정치라도 하려면 제대로 하시라는 것이다.)

다른 선거에서는 가족이나 운동하지 않는 친구에게 '그래도 민주노동당'이라는 이야기라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민망하다.

정치광고 덧글 붙이는 분에게도, 그런 내용으로 붙이면 오히려 표떨어지기 쉽상이니 다른 내용을 만들던가 아예 그만두시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나마 내 경우에는 10%정도는 있던 투표소갈 의향이 이제 거의 없어져버렸으니까 말이다.


===
이 포스트를 쓰다가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한번 들어가보니 Firefox에서는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민주노동당 정도면 MS 독점에 비판적일 것도 같은데, 정작 '생각뿐'인가 보다. 요즘에는 Firefox로 제대로 안보이는 사이트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는데 민주노동당 홈페이지도 여기에 추가되고 말았다.(위에 덧글이 링크한 '민중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더 씁쓸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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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Hospital, 이상은


이상은의 작은 앨범이 새로 나왔다.


디지털싱글. Out of Space (자세한 소개는 ; 여기)

타이틀곡 Soul Hospital.
상담하는 의사는 나에게 어떤 "자아의 재통합과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사실, 이게 모두 20대로 퇴행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니 나에게도
"다시 태어나. 어른이 돼. 태양보다 높은 독수리처럼."
이라고 말할 수밖에,

하지만 쓸쓸한 곡.
이상은의 가사를 보면 난 소년이라기보다는, 소녀같군..



Soul Hospital


소녀가 찾아왔네.
가슴에 상처를 입고서.
빗방울 흩뿌려진 유리창 저 너머 별들.
투명한 거미줄로 상처를 조용히 꿰매주었지.

소녀여.
우리들은 보석이 가득 든 상자.
열쇠는 모두 태어날 때 깊은 바다 속에 잃어.
상처의 틈으로 우리의 영혼 반짝이는 보석
흘러나와야 어른이 돼.
달콤한 장미수처럼.

소년이 일어났네.
깨어진 커다란 알에서.
태양은 늘 그랬듯 하늘을 불타며 지나.
독수리의 흰 깃털과 심해수를 뿌려줬지.

소년이여.
우리들은 다시 태어나야 해.

그대라고 믿었던 그 것은 모두 껍질일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한 것.
영혼에 좋은 것.
다시 태어나. 어른이 돼.
태양보다 높은 독수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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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이 걱정되는 이유

풀소리님의 [문국현이라는 고수의 출현] 에 관련된 글.

문국현이라는 쟁점에 대해서는 한번 메모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풀소리님의 포스팅이 있다. 문국현은 이번 대선에게 가장 눈에 띄는 대선주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문국현이 제기하는 쟁점이 대중들이 '갈망'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대중들은 이명박류가 제기하는 발전주의 환상에 다시 동원될 수 있고(적어도 현재까지 그것이 가장 강력하다), 혹은 문국현이 제기하는 사회투자국가류의 대안에 솔깃할 수도 있다.

하지만, 풀소리님이 쓴 것처럼, 문국현은 민주노동당에는 가장 강력한 적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보수정당 후보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그러나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열심히 다루는 것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한미FTA, 농촌, 대안적 발전전략, 중소기업, 남북경협 등등. (그러나 이미 노무현 정권의 정책프레임에 있던 것들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국현이 민주노동당에게 위험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문국현이 아주 뛰어난 어떤 대안을 제기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정치적 입장이 리버럴들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입장이 같다면, 그것이 오히려 실현가능해보이고(당선가능성), 세련되어 보이는(정책역량) 인물에게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노동당은 정책프레임의 측면에서는 리버럴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얼마전에 포스트에도 언급했지만, 예를 들어 권영길 후보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DJ의 벤처정책, 북방정책과 유사하고 심상정의 국제경제정책은 스티글리츠를 연상시킨다. 좌파가 형성해야할 정치의 다른 장소--대중정치가 전적으로 부재한 이 판에서 유능한 리버럴을 상대할 수는 없다.

대중을 주체화시키고,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운동정치는 이미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같다.(하긴 대선을 운동공간이라기 보다는 집권의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순간, 당연한 일이겠지.) 대중들에게, (선거에 제한되지 않게) "함께 이것을 투쟁으로 쟁취합시다"가 아니라 "내가 해드리겠습니다"라는 어법이 전면에 있다. 이것이 "인간이 그 속에서 이 갈등을 의식하고 투쟁으로 해결"(마르크스)하는 영역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과는 이미 몇백광년 떨어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이 선거정치의 고유한 한계일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대안적인 선거정치, 즉 대중을 수동적 대상으로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선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민주노동당 경선 속에서 드러난 민주노동당의 '정치'란 그 프레임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점점 더 짝퉁 리버럴에 불과한 무엇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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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포럼, 곧 열립니다.

2007년 여름의 가장 중요한 운동적 사건이라면 우선 이랜드-뉴코아투쟁, 그리고 사회운동포럼.
역사적인 자리가 되길 예상하고 또 기대하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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