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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권서 전비연 의장의 인터뷰와, 에 대한

 
 

비정규직 운동주체들이 정규직노조에 대해서 가지는 양가감정에 대한 지적과 같은 것은 중요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정규직노조의 극악무도한 행태'를 비판하는 가운데 간과되기 마련이다. 정규직 노조도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가운데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지고 점점 스스로가 설정한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점에 대한 중요한 지적들.
 
또한 대리주의, 시혜 등에 대한 지적도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비정규노동법안 투쟁에서 늘 느끼던 것이었는데 사실상  정규직 조직인 민주노총이 교섭도 하고 투쟁도 해서 비정규직에게 '좋은 법안'을 선물해준다는 식의 인상을 받아왔던 것이다. 구권서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권, 스스로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주체들 스스로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투쟁,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노사정 협상으로 생색내기 하고 언론발 타서 '권리보장 입법 쟁취 국면'이 되었다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말이다.
 
인터뷰 내용 중에서,
 
선택적 포섭과 배제라는 개념을 흔히 말하는데 바로 그렇게 관철해 간다. 정규직 노조를 끊임없이 공격,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이제는 대기업 비정규직마저 동일한 논리로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자대중에 대한 분열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 지를 생각해보면 중요한 지적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운동 마저 수혜받은 자로 인식되거나 혹은 인민주의 정치에 직접 동원될 가능성.
 
신자유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면서 또 한편으로는(이 결과로서)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하고 통치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대중동원 양식을 창출한다. 삶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원한의 정치를 통해 인민주의(포퓰리즘) 정치에 동원되고 대중운동은 이 속에서 분열된다.
 
최악의 경우 ;
* 정규직으로 주로 구성된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이 실현불가능한 코포라티즘을 미망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정권에 동원되고
* 불안정노동자들은 원한의 정치 속에서 인민주의 정치가에 직접 동원되고 자율적 조직(노동조합 형태든 아니든)을 건설하지 못하는 가운데 파편화될 수 있다.
 
이중적인 동원과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종속. (정규직에게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신의 조건의 불안정성은 합의를 미망하게 한다. 더구나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민주의 정치의 동원은 그러한 불안을 심화한다.)

이와 다른 노동자운동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들은 ;
*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그 자신의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스스로를 ‘계급’으로 구성하는 역량을 증진하고,
* 자기 운동 속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효과에 대해 ‘사회를 재건하는’ 대안을 스스로 형성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어야할 것이다.
 
인터뷰의 첫 구절
 
"굉장히 절망했고 엄청난 벽을 느꼈습니다. 열사냐 아니냐의 논란. 대공장 기업별 노조가 쌓아 온 성벽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 힘은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량이기도 했지만 거꾸로 그 방향성이 잘못될 땐 어떻게 되나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최근,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기고한 공공연맹의 한 부위원장의 글. 그 글에서 사회를 진보시켜온 힘으로서 정규직 노조운동을 무조건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점잖게 충고하는 구절을 읽었다. 아래는 인용
 
"결론에 대신해서 한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겠다. 흔히들 기업별노조의 저규직 노동자의 책임을 심심치 않게 거론한다. 이미 60% 수준에 달하고 있는 이땅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소외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업별 체제에 안주하며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로 인한 반사적 과실을 취하는 데 대한 질타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0년 가까운 민주노조운동, 10년의 성장과 발전을 눈앞에 둔 민주노총을 과연 누가 지금까지 지탱해오고 있으며, 비정규 개악법안 저지와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준비해온 것은 누구였던가? 더 나아가, 기업별노조의 정규직 노동자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과연 가능했었는가?"
 
정규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역사적 성과를 오늘날 어떻게 하고 있는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라는 이런 비판의 격에 맞는 답변은, 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것인가? 이 두 진술 사이에 심연이 놓여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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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몇개의 토론 (1)

최근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을 할 기회가 몇번 있었다. 토론들을 거치면서 시사점들과 이어진 내 생각들. 첫번째는 철폐연대 회원토론(기관지 읽기 모임)을 다녀와서 메모.
 

1.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 확산의 주요한 양태 - 간접고용의 확산
 
곧이 공공부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최근 비정규직 확대는 간접고용 확산이 주요한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의 확대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따라 (대단히 기만적이기는 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제시되면서 '자기 기관/부서'에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방식은 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범위하게 이른바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이 전략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 대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주체들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은 향후에 비정규직의 문제가 단지 '기간의 정함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노동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하는 구조조정의 문제, 전반적인 노동의 불안정화 문제로 접근되어야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최근 공공부문의 사유화는 반드시 공기업/기관 전체를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발전노조의 파업, 철도노조의 사유화저지 투쟁 등을 거치면서 변화된 측면도 있고 신자유주의 관료들도 전면적인 사유화는 정치적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같다.
 
그 결과 '비핵심업무'의 외주화가 주된 우회로로 나타난다. 이것은 '민간위탁'이라도 불리는 데 제조업 사업장에서 사내/사외 하청과 유사한 형태다. 이런 업무를 사기업에 외주화하면서 노무관리에 대한 부담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예처에서도 경영평가의 명목으로 명식적으로 이를 요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전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은 업무의 30% 이상을 재위탁할 것을 한전으로부터 요구받는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전면적인 사유화보다는 지분참여 방식이 도입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시장개방에도 유용하다.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시장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업종에 대해서도 초국적 자본의 '투자'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물시장 같은 경우에는, WTO FTA 협상에서도 타결이 쉽지 않아 개방 일정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이미 지분참여의 형태로 국내에 광범위하게 진출해있다. 공공서비스를 국내의 '민간기업'에 넘기면서 외국자본의 자연스러운 침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비정규직 확산 문제와 구조조정 문제, 정부 지침/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들이 업무의 외주화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한편, 일정한 시기에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자리에 있더라도 공동으로 느끼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상반기를 거치면서 연맹 안에서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간접고용 확대(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판단이 공유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서로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몇몇 활동가들과 의견이 일치했던 것에 놀랐던 적이 있다. 철폐연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철폐연대와 별도로 토론을 진행해본 바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대상에 대해서 일치하는 분석이 진행된다는 것은 현실의 추세가 그 만큼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상급단체 사업작풍에서의 몇가지 문제 : 큰 문제-구체적인 문제의 연결
 
여기서 어려운 점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확산-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과 이와 관련되어 당장 터진 현안 사업장의 투쟁을 어떻게 관계 맺도록 할 것인가, 각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더군다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비정규사업 담당자로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업무상의 문제까지 제기된다.
 
전반적인 인식 속에서 나올 수있는 추상적인 투쟁계획은 있지만, 이 것은 상당한 시기 동안 기획해서 이루어져야하는 투쟁이다. 그나마 이렇게 할 수 있는 조직들은 여유가 있는 경우다. 갑작스런 사용자의 공격으로 인해 당장 해고투쟁을 진행하는 사업장에 대한 지원, 연대의 조직화와 함께, 이 속에서  전반적인 정부 정책기조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여기에는 간극이 발생한다.
 
당장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 두가지 투쟁을 어떻게 관계맺도록 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모든 투쟁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벌어지며, 어떤 기획된 투쟁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현장의 문제를 경유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공공부문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의 양상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업무가 유사한 경우에는, 입직구(입사경로)의 차이로 인한 차별이 중요하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의 사례가 그랬는데 업무의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도 공채를 통해 들어왔는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들어왔는지가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식이다.
 
(이 '시험'의 문제는 투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도 결국 '내부공채'라는 시험을 통한 정규직화를 극복-거부하지 못하고 개별화되어 힘을 잃었다. 최근의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경우도 유사한데, 경찰청이 제시한 공채를 통한 신규채용을 원칙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험방식을 인정할 경우 정규직화의 문제는 개인의 능력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자본이 가장 원하는 방식, '능력주의'의 수용이다. "비정규직이 된것은 네가 능력이 없어서야!" 난감한 점은 이렇게 시험을 통한 채용방식을 인정하면서도 조합원에 대한 전원채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가 처한 딜레마.)
 
업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은 앞서 언급한 '비핵심업무'의 외주화이다. 이 경우 주로 육체노동이 단순노동='비핵심'노동으로 구별되어 차별된다. 사무실에서 펜대 굴리는 것은 핵심이고 삽질하는 것은 비핵심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시설관리부서 등 부서의 고유한 업무가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부서에서도 육체노동은 비핵심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사실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과 차별이 정신노동-육체노동에 대한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단지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사회적 차별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정신-육체노동의 구별만이 아니라 여성 노동에 대한 차별이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연소자에 대한 차별 등등..
 
여성적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로 인식되며, 연소자의 일자리는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 차별의 다양한 모순들이 고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형식적인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들이 작용하면서 모순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비정규직문제라는 것은 단순한 고용형태의 문제라기 보다는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모순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결과, 이 문제는 빈곤 문제와도 연결된다.)
 
4. 정규직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기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는 조합원이 문제가 된다. 모든 정규직노조들은 '조합원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런 말이 면피용으로 만병통치가 되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조차 방기하는 명분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간부들조차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철도노조의 사례는 흥미롭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노조 내에서 급진적인 경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 걸맞게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 철도매점 투쟁 등에 선도적으로 임했다. 문제는 철도노조 본조직이었는데, 애초에 새마을호 여성 승무원 투쟁이 시작될 시점만해도 투쟁방향, 결합 문제 등에 대해서 서울지방본부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런 입장은 이후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는다. 비정규직 기금 모금 결의, 철도매점 투쟁에 대한 지원 등 어느 정규직노조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의 '내부투쟁'이 작용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조 내부에서 선도적인 그룹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할 경우에 대기업 정규직노조도 전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에 정규직 노조 집행부를 넘어서 조합원들의 문제의식까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또한 지난한 과제이기는 하겠지만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5. 조직경쟁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만큼 노조 조직간의 조직경쟁이 심한 영역도 없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공공연맹만이 아니라 여성연맹, 일반노조 등이 조직경쟁을 하고 있는 형세다. 여성연맹은 100% 공공부문이며 일반노조도 70% 정도는 공공부문이다. 그밖에도 전국여성노조도 공공부문이 주된 조직화 영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것은 공공부문의 조직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별로 비정규직의 대규모로 결집되어 있거나 사용자가 함부로 노동탄압을 할 수 없는 조건 등이 작용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모적인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누가 해당조합원을 조직하는가 문제를 두고 낯뜨거운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일은 이들 조직이 조합원들을 자주적인 주체가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사유물처럼 사고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조직적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조직을 뿐이라는 것인데, 이건 비단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문제만은 아니다. 산별연맹들 사이에서도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일부 산별연맹들은 규모있고 안정된 사업장 확보에 집착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영세 투쟁사업장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조운동의 기본을 다시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조합원의 자주성이 기본이라는 점과, 계급적 단결이 우선이라면 어느 노조에 속하든 무슨 문제냐는 것. 즉 계급적 입장에 따라 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심없는 '연대'가 보증되어야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조직경쟁이 발생하는 것은 자조직이 아니면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자조직의 세를 불리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모적인 조직경쟁을 계급적 입장에 따라 지양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계급적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병행되어야한다. 조직경쟁도 문제지만 그것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측면이 더 강하다.
 

** 이 글의 후속으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토론 등에서의 시사점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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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이야기하다.

민주노총이 '조직혁신'이라는 주제로 현장토론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상반기 동안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가시화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곧장 이야기하자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역시 혁신의 대상들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충분히 예상했어야하는 것일까?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이를 부정하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모두 위기를 말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위기의 양상이나 내용이나 모두 다르다. 아마도 이들이 보는 대상은 같을 것인데,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을 보면서 동일하게 '위기'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현장에 배포하고 있는 '조직혁신' 소책자의 내용을 통해서 자신들이 보는 위기의 양상과 그 해법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자료집을 받아서 참고하면 되겠다.

민주노총 '조직혁신' 소책자의 구성
 
소책자는 조직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양상을 서술하고 △ 이에 대한 대안으로 조직혁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양상은 제시/묘사되어 있으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부재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예정된 결론을 제시한다.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돌파구는 산별노조 운동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진단이다. 이것은 이상한 순환론을 이루는데, 산별노조 건설의 지체라는 것 자체가 위기라고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산별노조 지체가 위기이니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 혁신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도 다른 글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산별노조 건설은 노동자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혹은 어떤 정세에서는 운동의 혁신이 역행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과정에 어떤 실천을 경유하는가에 따라 혁신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퇴보가 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 혁신안은 산별노조를 물신화하는 데,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최근의 서울대병원지부노조 사태 등이 보여주고 있다.
 
 
'위기의 세가지 양상'
 
소책자가 제시하는 위기는 세 가지로 제시된다. (1) 지지부진한 산별노조 건설 (2) 얽혀있는 위기구조 (의식 관행 관계 제도) (3) 사회연대성, 계급대표성의 위기 -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의 위기
산별노조 이야기도 알 수 없지만 '얽혀있는 위기구조' 자체가 위기라니, 도대체 구조가 복합적이라면 모순도 복합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일단 넘어가자.
 
민주노총은 위기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조직적 위기 이상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로 진단한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는 위상의 대안이 모색되어야한다. 조직의 위기가 아니라 '운동'의 위기를 우선 진단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직은 이념, 지향과 함께 운동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혁신안은 모두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을 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운동의 위기가 발생한 계급투쟁 지형의 변화를 진단한 가운데 우선적으로 운동의 이념, 지향에 대해서 진단해야 미봉책이 아닌 조직적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위치지어질 때 조직혁신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혁신안'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조직형식적인 측면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 '전간부 신념과 도덕교육과정 신설, 의무적 이수'라는 식의 대안이 나오는 것이 사례다. 노조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만연한 노사담합구조를 혁파하는 운동내용, 관행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지 신념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은 곧 비정규직을 고용안정판으로 하는 노사담합구조를 깨기 위한 운동적 실천의 과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은 민주노총의 소책자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위기의 양상 묘사를 넘어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조직'의 혁신의 전제로 '운동'의 혁신을 논의하며, 이를 위한 이념과 지향의 혁신을 우선 과제로 해야할 것이다.
 
'혁신의 양대 축'
 
그럼, 위기에 따라 제시되는 '혁신의 양대 축'을 살펴보자.
하나, 산별전환을 위한 특단의 노력 --> 산별노조 건설
둘, 조직민주주의 확립, 도덕성 회복, 재정안정성 확립,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 지도집행력 강화
 
결국 둘은 같은 말이다.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혁신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시하는 혁신안의 본질이 드러난다. 혁신안은 조직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방안이다. (산별노조 건설도 조직정비의 일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정비는 곧 '지도집행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은 민주노총 집행부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오히려 노동운동의 위기라기 보다는 지도집행력의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지도집행력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여튼, 민주노총은 혁신안 6가지를 ① 산별추진 ② 대의원 선거제도, 구성과 운영의 혁신 ③ 비리엄단, 재정투명성 강화 ④ 재정안정성 강화 ⑤ 조직집행체계의 정비 ⑥ 정책대응력, 교육문화사업 강화로 제시한다.
 
산별노조에 관련된 쟁점은 좀 더 살펴보자.
 
혁신안 1번은 산별노조 추진이다. 2006년 3월 전국동시다발 산별전환 조합원 총투표, 산별노조 건설 특위와 추진단 구성,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 로드맵 등이 제시된다.
 
산별노조 건설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어떤 산별을 어떻게 만들것인가는 만들것인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와 함께 나타나는 노조운동의 제도화, 투쟁기풍의 상실, 현장 약화와 같은 문제가 특정한 방식의 산별노조 건설로 오히려 더 악화된다면 산별노조 건설이 '촉진'되어야하는 지에 대해서조차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산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산별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혁신안'은 산별노조 건설의 일정이 제시되고 기대효과도 제시되고 있으나 건설해야할 산별노조의 상이라든가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단지 투표일정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내년 3월의 산별투표라는 것이 가능한가도 문제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전 실천의 내용이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산별노조의 상이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은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무엇을 위해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가가 운동 혁신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이 일정대로 따라가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운동을 혁신하는 과정의 일환이며,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이라는 점. 따라서 ①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갈 (혁신된) 조직은 어떤 구조, 운동방식, 운영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서 광범위한 대중적 토론이 진행되고 ② 실천 속에서 오류가 검증되고 고쳐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설의 과정에는 일정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실천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오히려,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해서 관료화를 방지하고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조직혁신 사업의 과제로 제시되어야한다. 조직규모의 확대와 함께 일반적으로 관료적 지도력이 필요성이 증대하게 된다는 점, 노동운동의 제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운동의 제도화는 조직을 체제의 일부로 전화시키고 이는 필연적으로 관료적 통제를 증진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방안이 산별노조 건설 방안보다 더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산별노조 건설의 한 항목에 불과
 
한편, 민주노총 혁신안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은 단지 산별이행을 위한 결의라는 과제의 부분적인 한 항목으로만 놓여져있다. 혁신안 전체가 조직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데 초점이 가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일이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참 황당한 일이다. 남한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과제를 '정규직 비정규직 단일조직 건설'(그것도 산별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다)과 '차별해소 로드맵 마련'이라는 것으로 달랑 정리할 수 있는 능력에 놀랄 뿐이다.
 
민주노총은 위기의 양상으로 계급대표성의 위기를 든다. 그럼 '쪽수'가 모자라서 대표성이 부족한 것인가? 오히려 계급적 요구를 올바르게 제기하고 실천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전노협이 계급대표성을 가졌던 것은 조직률이 아니라 운동과제와 투쟁의 측면 때문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강제하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계급이 처한 현실의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투쟁과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반대투쟁과 노동의 불안정화 반대투쟁(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혁신과제는 민주노조운동이 변화된 계급투쟁 지형에서 가장 적확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운동의 혁신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것임. 그렇다면 비정규직 투쟁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조직혁신에 있어서도 핵심과제다. 그러나  '혁신안'은 '조직확대'를 주된 문제의식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책자에서는 빠졌지만 초안에서는 산별노조 건설도 노조규모의 문제로 접근하며, 신자유주의 하 노동의 불안정화경향에 대한 투쟁도 '미조직비정규직조직화'라고 해서 조직확대 측면에 주목하고 있을 뿐이다.
 
명백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를 건설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투쟁 과제가 제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여야한다. 계급투쟁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형태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조직적 과제의 측면에서조차 '혁신안'이 제시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단일노조' 건설이라는 당위적 과제로만 제시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비정규직 확대의 양상이 사업장내 비정규직이 아니라 이른바 '비핵심업무'의 외주화로 인하여 중소영세사업장조직화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연맹과 총연맹의 지역본부 강화가 과제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혁신안 전반의 문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산별노조와 관련된 쟁점을 보면, 그것이 운동의 과제라는 측면보다는 당위로서, 조직의 '지도집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로 제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혁신' 항목들도 유사하다. 총연맹 대의원 직선이라든가, 의무금 정률제, 산하조직 업무 표준화 등 집행력 정비, 정책과 문화사업 강화 등이 '혁신'을 위한 항목들이다. 하나같이 조직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조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제시된 대책이다. ; 비리 엄단을 위한 규율위원회 구성. 간부 윤리강령, 도덕교육 의무이수. 군대 마치고 끝난 줄 알았던 주입식 정신교육을 또 받아야하나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러느니 노조활동 그만 두겠다싶다.(그걸 바라나?)
 
자. 혁신안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까지 보신 분들이라면 그것이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도집행력 강화'가 목적인 만큼, 그리고 상급단체 관료들이 모여서 작성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바로, '관료적 조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 이다.
 
이것은 당장 그 자신들이 노동운동 위기의 양상이고 일부인 노동조합의 상층관료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혁신'에 대한 현장의 요구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할 사람들이 '혁신안'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결과다. 이제까지 위기를 악화시켜온 당사자들이 이제까지 한 것도 모자라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혁신안'을 제출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이고 대중운동으로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운동'의 고유한 요소로서 기층 대중의 자발적인 힘이 활성화되어야한다. 그것은 관료적 조직을 강화하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관료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덕교육'이라는 식으로 현장에 대한 관료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활성화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러한 '관료적 조직의 제도적 강화'는 현재의 정세와 맞물려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한의 노동자운동은 전노협의 쇠퇴 이후, 자신의 존재를 보증할 '제도'를 찾는데 몰두해왔다. 이것은 YS 때부터 신자유주의 정권의 노동정치 재편전략과 일정하게 호응하는 부분이 존재했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87년 대투쟁 이후의 변화된 노동정치 지형을 법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불안정성을 제거하고자했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노동정치 제도의 부분적인 '양보'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교환되었다.
 
사회적 합의, 노사관계로드맵, 혁신안
 
그 마지막 귀결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운동을 사회적 합의기구에 포섭하는 것과 일명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이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여러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노동정치 정세의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복수노조 하의 교섭구조를 구성한다든가 이번에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에 적용된 긴급조정의 활성화, 직장협의회 활성화 등 많은 내용이 그렇다. 교섭비용(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제도화된 교섭형태로 적은 비용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관리하고자하는 것이 핵심적인 의도다.
 
민주노총의 비극(혹은 희극?)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하면서 노사관계로드맵을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양립불가능한 요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둘 모두 노동운동이 제도화와 교섭 비용관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더 놀라운 조응은 민주노총의 조직혁신안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 -- 노동자운동의 제도화를 내부로부터 완성하고자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체 과정을 하나의 '세트'로 바로보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제기되는 쟁점들은 모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반적인 노동자운동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실천들도 일관된 흐름으로 진행되어야한다.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 반대로 진행된 투쟁은 노사관계로드맵 저지와 민주노총 혁신안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중운동을 재활성화하는 다른 방향의 혁신운동으로 전개되어야한다. 노동자운동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혁신안'은 그러한 실천 속에서 대중들이 만들어 줄 것이다.
 

※ 이 글은 다른 토론들에 제출된 바 있는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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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교수 강의에 대한 몇 개의 메모


* '빌리 엘리어트'와 노동자계급 문화의 남성적 전통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보면 전투적이고 계급적인 의식을 가진 남성 노동자들이 남성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자존과 긍지를 지켜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학교와 계급재생산'에 대한 글에서 고민했던 것도 이런 지점인데, 남성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남성성의 강조, 성차별주의/가부장제와의 결합이 문제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이다. 노동자 계급의 상징을 남성적인 것에서 전위시킬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남성성은 노동자계급을 민족국가가 동원하며 여성노동력을 평가절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반동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이것은 언제든지 다시 민족국가에 동원될 수 있다. (또 파시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특성이 반여성주의라는 점을 기억하자) 따라서 당장 남성 노동자대중을 동원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흡인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상징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전술적 필요에 의해서 전략적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원칙일 텐데, 잠시 후에 언급할 다른 쟁점과도 연관된다.)

노동자 투쟁에서 여성노동자 투쟁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계승하고 현재적으로 활성화하는 것,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여성노동자 투쟁의 폄하/분리는 계급본질주의적 시각과 연결된다. 계급본질주의는 내적으로 남성중심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사고하고 있다. '밥꽃양'은 억압-분리되고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미약한 前史로 취급된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운동문화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상문화에 침투해야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사례는 다른 나라의 대중운동에서도 별로 없는 것같다. 여튼,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여기서 활동가들의 위상이다.
 
* 활동가들의 위상, 이론의 위상, 이데올로기
 
대중운동의 활동가들은 대중과 끊임없는 전이-역전이의 관계에 있다. 활동가들이 가지는 의식은 이론으로부터 형성된 것으로부터 대중으로터 전이된 것까지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혼동하게 되고 상호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변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운동문화(결국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다)를 변화시켜내는 활동에 있어서도 현존의 대중 이데올로기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활동가들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활동가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론에 있어서도 정도는 다르더라도 사실일 수 있다. 특히 계급투쟁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계급투쟁 속의 이론에 있어서는 그러한 역전이는 이론에 있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맑스주의가 여성억압의 문제에 대해서 무지했다면 이것은 이론의 영역에 대해서 대중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후대의 맑스주의자들은 물론 맑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시 활동가들로 되돌아오자. 활동가들에게 있어서 대중과의 전이-역전이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이 속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대중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 복수의 정체성과 '국면'
 
임지현 교수는 본질주의와 환원주의를 비판한다. 복수의 정체성, 복수의 모순을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 복수의 정체성을 사고하고 주체 내의 모순에 대해서 사고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복수의 정체성들이 드러나는 어떤 '국면'인가의 문제일 텐데,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단일한 기원과 본질의 환원주의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주체의 내적인 복합성은 어떤 국면-정세에서 외부와 만나고 각각 다른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따라서 대중은 정치적 쟁점들에 대해서 일관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노동자계급의 단일성 혹은 이를 반영하는 당의 무오류성을 부당전제하지 않을 수 있다.
 
* 오리엔탈리즘과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서구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왜일까? 서구는 식민지를 야만으로 인식하면서 제국의 남성이 식민지의 여성을 봉건적인 질곡에서 구출한다는 플롯을 창조했다. 식민주의자들의 텍스트 속에는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형상화한다. 이것은 비극적인데, 페미니즘이 서구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밖에도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를 여성으로 표상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아직도 그러한 영향은 깊게 남아 있는데 임권택 감독이 상을 받는 영화들은 서구의 시선 속에서 한국의 전통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라는 사례
 
* 파시즘의 주요한 특징으로서 반여성주의

남성적인 노동자계급 문화가 남성중심성, 여성폄하와 함께 파시즘에 동원될 우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족국가의 남성 시민은 민족국가가 징병제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쟁에 남성들을 동원하면서 형성되는데 내적 기원에 있어서 민족국가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미국에서 네오콘의 경우도 반여성주의의 특징을 보여준다. 남한에서도 새롭게 형성되는 우파들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
 
* 모성보호법안

임지현 교수는 모성보호법안이 '국가경쟁력을 위한 것'으로 제기되는 것에서 국가주의의 혐의를 읽어낸다. 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를 언급하는데, 국가에 대한 의무를 통해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일부 여성진영의 시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에 대한 전시 동원에 여성운동의지도자들이 여성이 국민으로 인정받는 계기라고 판단하고 적극 협력하였다. '국가를 위한'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으로서 모성보호법안은 위험할 수 있다. (이것도 전술적 필요에서 전략을 희생하는 사례일 것)

최근에는 한겨레21이 여성도 군대를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식의 편의적인 입장이 여성운동 내에 존재하는 것은 문제다. 특히 모성보호를 '국가경쟁력을 위한' 출산정책과 연결할 경우, 여성의 자기 육체에 대한 권리를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운동이 오히려 국가를 위해 여성의 육체를 동원한다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모성보호도 보호지만, 더욱 강력하게 국가의 출산강요를 비판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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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민노회 수련회에서 몇가지 메모

지난 주말에 있었던 체신민주노동자회 수련회.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몇가지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들이 있다.
 
 
* 김진숙 지도위원 강의 중, 다 듣지는 못하고 군데군데만 들었지만 몇가지 메모
 
o 문화적 행동과 물질적 조건
남성 노동자들이 집에서 말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노동의 성격이 단순노동으로서 어떤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공장에서 하루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노동자들의 문화적 행동들과 그들의 작업장, 노동의 물질적 성격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o 비정규노동자운동의 목표는 무엇인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목표가 노동해방이 아니라 오직 정규직화. 비정규직은 정규직화에 몰입하는데, 그 자체가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전망을 정치적으로 것으로까지 밝혀가지 못하고 정규직화에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사측의 선별적인 정규직화 시도에 곧장 조직이 무너지는 등 단결이 약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노동해방 이념의 중요성은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에도 마찬가지로 강조되어야한다는 점. 그렇다면 정규직화 요구에 몰입하고 정작 정규직화 된 이후에는 운동적 전망을 상실하는 경우들을 볼 때, 또 일부가 정규직화된다고 해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 난망하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에 있어서도 정규직화 요구를 넘어서는 요구를 정리해야한다.
 
o 한일 FTA와 노무현정권의 노사관계 로드맵의 관련성.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한일 FTA에서 일본의 요구사항과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이 같다는 지적이다. 몇몇 자료를 찾아보니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 내용적 유사성에 대한 내용들이 있다. 노사관계로드맵이 추진되는 정세적 이유중에 중요한 요인이 세계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 투쟁을 연결해야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노동기본권 쟁취투쟁과 세계화 반대투쟁을 단락시키고 대중운동을 급진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 그밖의 발제, 대화들에서.
 
o 어용세력의 전문가주의
어용세력은 교섭의 전문가주의를 내세우면서 조합원을 대상화시키고 권력을 유지한다. 이 전문가주의는 관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관료적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지식독점을 전제하는 데 지식이 권력이 된다. 이러한 지식독점을 통한 권력 독점은 부르조아가 프롤레타리아에 대해서 행사하는 것인데 노조 조직 안에서 노조관료들이 이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주의는 민주주의에 적대적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조 운동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경계해야한다. 지식의 보편적 확산, 민주화가 중요한 과제이다. 지적노동, 육체노동의 분할을 철폐하는 것은 노동자 조직 안에서부터 진행되어야한다.
 
o 허구적인 자격증제도
집배원 채용에 워드자격증 등 정보통신 관련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배원 업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수 없는 이들 자격증 강요는 자격제도라는 것이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이 점은 '학교와 계급재생산 '의 저자가 지적한 바 있다. 노동자계급 자녀들은 이를 '간파'하기 때문에 자격증을 무용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언급과 함께 말이다. http://blog.jinbo.net/rudnf/?cid=2&pid=10)
 
o 현장조직의 임무
현장 조직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집권인가 현장의 민주화인가? 그것이 대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어떤 시기에는 선택의 문제로 드러날 때가 많다. 많은 대공장노조에서 집권을 통한 민주화라는 프로젝트는 현장조직을 선거조직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아직 어용세력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는 체신노조와 같은 곳에서는 집권 프로젝트을 떠난 현장민주화의 전망을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몰입해서는 안되며, 선거조직으로 전락한 다른 현장조직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어떤 구체적인 실천들이 여기에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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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노동자운동의 혁신에 기여할 것인가?

월간 사회운동 2005년 6월호에 실은 산별노조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자운동 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기는 한데,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해 전진적인 방식으로 논쟁이 구성된다기 보다는 조직형식적 논쟁, 정파적 이해에 근거한 논쟁으로 퇴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군데 현장동지들과 토론도 했었는데요, 여러 쟁점들과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글입니다.
 
월간 사회운동 사이트 원문은 여기 ;
 
***
 
산별노조, 왜 문제인가
 
민주노총과 산하 각 산별 연맹들은 산별노조 건설을 최우선의 조직적 과제로 상정하고 조직재편을 위한 논의를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산별노조 추진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어 왔지만, 산별노조 추진 흐름은 최근 더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산별노조 논의가 불붙는 데는 (아마도 추진주체들 대부분은 더 거창한 이유를 말하겠지만) 2007년부터 기업단위의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는 등 노동관계 제도의 변화가 임박했다는 점이 실상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현상적인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른바 '87년 노동정치체제'라 불리던 특정한 노동정치체제가 체계적인 위기에 처했으며 전화의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1)

2007년 변화하는 법·제도도 그러한 압력의 일환이며, 당장 올해 하반기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이른바 노사관계로드맵)에서 다시 다루어지게 되어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정치세력들은 모두 '현재의 체제'가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각자가 제기하는 해결의 방안은 다르지만, 그 문제들의 해결 과정에서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조직의 변화를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는 동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금속연맹 선거와 같이 좌파와 우파의 불안정한 동거가 가능했던 정세적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모든 정치세력이 합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어쨋든 산별노조 건설'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상급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정박기식, 형식적 조직통합 방식의 산별전환 드라이브라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
 
산(업)별노조(industrial union)는 같은 종류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의하여 직종과 기업을 초월하여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의 초기형태인 직업별 조직형태를 취하지 않고 직종은 차이가 있더라도 하나의 사업장,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하나의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점에서 직종을 초월한다. 자본의 구획에 따라 묶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필요에 따라 묶인다는 점에서 사업장을 넘는다. 이와 함께 일반적으로 노조의 문제의식, 투쟁과제도 사업장을 넘어 산업과 계급 전체로 확대되는 데 유리하다.
 
남한의 기업별노조가 조합원 가입에 있어서 기업의 취업한 노동자만으로 구성되고, 기업 내에서 정규직 노동자를 배타적인 가입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해고자 혹은 해당 산업에 종사했던 실업자, 취업 대기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조직형식의 측면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광범위한 단결에 보다 유리하다.
 
남한의 노조는 한국전쟁 이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모두 파괴된 가운데 대한노총 산하로 조직되었다. 1961년에 건설되어 대한노총을 이은 한국노총은 1964년 노동법 개정을 거쳐 형식적으로는 산별노조로 조직되었으나 실질적인 운영은 기업별노조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산별노조 체제는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었다. 애초 한국노총이라는 조직자체가 5·16 쿠데타 직후 모든 노조연맹을 해체한 가운데 중앙정보부가 재조직한 것이었다. 조직체계와 무관하게 사용자와의 단체협상(단협)은 기업 노조(당시 조직체계에서는 분회) 수준에서 거의 이루어졌고 산업별 교섭과 투쟁은 부재한 반면, 산별 조직은 분회 해산권을 가져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었다.2) 이후 1980년 노동법 개정은 기업별노조 체제를 다시 복귀시키면서 노조운동의 기업별 분할을 강제했다. 이는 1970년대 말부터 다시 분출하는 노동자운동을 분할, 노조간 연대를 봉쇄하기 위한 조치로서, 이른바 '노동계 정화지침'과 함께 수행되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도 제3자 개입금지 등 법적 제도적 요인, 기업별 노조를 넘어서는 연대 차단과 상급단체에 대한 불인정, 가혹한 탄압 등의 영향으로 기업별 노조가 관행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때로는 산별노조 형태로 때로는 기업별 노조 형태를 강요했다. (오히려 정권과 자본에게 있어서도 노동조합 조직형태는 정세에 종속된다는 점.)
 
그러나 1987년 이후 노동현장의 직접민주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업별 노조 형태는 단일한 작업장을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가 항상 가능하도록 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노조의 의사결정이 작업장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고려 사항이 없다는 점에서 지도부 소환, 협상안에 대한 총회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들이 제도적인 수준으로까지 강화되었다. 또한 역설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노조의 부재는 국가 차원의 코포러티즘 형성에 난점으로 작용한다. 기업 내 쟁점에 노조가 몰두하면서 코포러티즘적 제도 형성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노조의 교섭력보다 기업의 지불능력이 임금, 노동조건 결정의 중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른바 '종업원의식'과 상호작용하고 노동자 대중의 시야는 개별기업 내에 제한되었다.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의 적용범위도 극히 제한적이어서 기업종업원, 노조가입 대상인 정규직 직원 내부에만 적용된다. 특히 제3자 개입금지의 영향 등으로 기업별 노조 외부와의 연대는 항상 제한되었는데, 단위 노조 외곽의 다른 노조, 운동단체와의 연대가 제한되면서 노조의 경제주의가 심화된다.3)
 
또한 이러한 체제는 대공장 정규직--중소 영세 비정규직의 분할로 발전해갔다. 대공장 노조는 자신의 투쟁력과 함께 독점자본의 지불능력 덕분으로 높은 임금 인상률을 쟁취했으나,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기업별 노조로는 조직화도 힘들뿐더러 투쟁을 통해 많은 성과를 얻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사정은 89년 이후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심화된다.
 
산별노조 추진, 현재의 의미
 
민주노총은 2005년 정기대대에 제출된 사업계획 중 산별노조 건설계획으로 ①산별노조 전환 및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②산별 연맹 통합재편, ③산별 교섭 쟁취와 산별 공동투쟁, ④ 2007년 이후 대산별 노조 건설 본격화 및 복수노조 시대 대응, 1국1노총 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시기의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당위적 이유로 제시되는 것은 ①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②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대응 1 : 비정규직화/사회양극화에 대한 대응, ③신자유주의공세에 대한 대응 2 : 노조 무력화대응, ④복수노조허용 /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등의 변화에 대한 대응과 같은 것들이다.4) ①~③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④가 민주노총이 2007년이라는 특정 시한까지 산별노조 건설 시한을 설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제 정파들은 산별노조 건설이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합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보다 광범위하게 노동자운동의 위기, 노동자운동에 대한 제도들의 위기이며 이 위기를 불러온 자본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87년 노동체제'의 위기로도 불리는 이 위기에 대해서, 정부, 자본과 노조운동의 정치세력 등 여러 주체들은 각자 제시하는 과제 혹은 쟁점들은 ①사회적 합의기구 구성, ②복수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 노사관계선진화방안(노사관계로드맵), ③비정규법안 + 정규직유연화(노사관계로드맵), ④산별노조 전환과 산별교섭, ⑤1국1노총(양대 노총 통합) 등 다양하다. 현재의 산별노조 전환의 흐름은 ①~⑤까지의 각 주체들의 대응과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하고 각자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트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특히 정부 내 자유주의자들과 노조운동 안의 우파는 유럽식의 '민주적 코포러티즘' 구조를 지향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권도 노동자 운동의 관리차원에서 (실현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 노동연구원, 노동교육원 등을 통해서 이러한 모델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되는 산별노조 전환은 애초부터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전후의 특수한 케인즈주의적 타협과 냉전 시기 반공노조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남한에서 그대로 가능할 수 없다. 이른바 '87년 노동체제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화, 노동자운동의 위기의 남한에서의 현상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이 위기에 대한 나름의 체계적인 대안인 셈이다.
 
급진적인 노동자운동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신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 속에서 조직적 혁신과 정치/이념적 혁신 과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산별노조와 관련된 쟁점은 주로 조직적 혁신의 쟁점과 연관되어 있으나 정치/이념적 혁신의 과제와 결합한 전체적인 전략 속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조직형식적 공론에 그칠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에서 제기되어온 쟁점들
 
산별노조 건설에 제기되는 쟁점에 대한 논쟁은 핵심적인 조직논쟁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의 역사와 함께 계속 이어져왔다. 과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의 주체들도 전노협이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과도기적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1992년 이후 전노협 조직발전논쟁(조발논쟁)과 함께 산별노조는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민주노총 건설과 산별노조 건설 경로를 중심으로 시작된 당시 논쟁의 구도는 지역노동조합협의회(지노협)를 강화하고, 전노협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단결시키고 그 성과를 토대로 업종분과를 산별연맹으로 발전시키자고 했던 전노협 1안과, 전노협의 주도성에 집착하지 말고 전노협 미가입 중간노조를 폭넓게 포괄하는 민주노조 진영의 총단결 조직을 조속히 건설하자는 전노협 2안 사이에서 형성된다.
 
전노협의 조발논쟁은 1987년 이후 지역연대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폭넓게 단결하여 즉각 대산별로 조직을 건설하자는 입장과 업종간 연대의식과 동질성을 살려 단계적으로 업종을 중심으로 한 소산별노조 조직을 우선 건설하자는 입장 사이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은 전노협 사업장이 제조업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금속산업연맹 건설 논쟁으로 이어진다. '대산별론'은 1987년 이후 지역차원의 활발한 연대운동이 보여주듯이 이미 업종별 차이를 넘어서는 실천의 성과가 존재하므로 이를 바탕으로 대산별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건설은 대산별 건설과 함께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전노협을 구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을 바탕으로 단결해야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서 '소산별론'은 동질성이 높은 업종끼리 소산별(업종) 조직을 구성하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대산별로 나가자는 것으로, 조선, 자동차, 금속일반의 세 업종의 소산별노조를 건설하고, 이 업종별 단위를 산별조직의 골간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 입장은 민주노총을 가급적 빨리 건설할 것을 요구한다.5)
 
이러한 논쟁은 이전 시기의 전노협 조직발전 논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후에도 금속산별노조 건설, 공공산별노조 건설 논쟁 등 대상과 방식을 변주해가며 유사한 구도로 반복된다.
이러한 논쟁 과정에서 제기되어온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자.
 
o 산별교섭과 산별투쟁
 
우선 "산별노조의 필요성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다. '노동조합=교섭조직'이라고 보고 산별노조는 산별교섭이 핵심이라는 입장은, 조직을 확대할 경우 이에 따라 조직의 역량이 확대되므로 산별로 뭉치자고 주장한다. 교섭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산별노조의 핵심이 산별교섭인 만큼 이에 걸맞는 산별교섭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에 몰두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논자들이 산별교섭이 교섭비용을 줄인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산별교섭 실현을 위해서라도 노사정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며, 산별교섭과 짝을 이루어 진행되어야한다고 보는 입장으로 연결된다. 이에 대한 비판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확대라는 점에서 산별노조를 사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산별교섭만 놓고 본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한데, 남한의 자본가들이 독일과 같이 산업별로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산업별로 보다는 재벌기업별로 구획되어 있어 기업별 지불능력에 따른 교섭이 실리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별노조처럼 단일 조직을 구성한 후에도 내부에 상이한 몇 개의 교섭질서가 가능한 것이라면 산별노조 건설이 교섭구조의 실현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비판할 수 있다.
 
산별교섭을 강조하는 입장은 1국1노총 주장으로도 연결된다. 진정한 산별교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1산업1노조, 1국1노총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특히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경우는 꾸준히 1국1노총을 주장해왔다.6) 이후 사회적 교섭, 산별교섭을 위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산별교섭을 둘러싼 쟁점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투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는 쟁점으로 연결된다. '산별교섭 쟁취투쟁'이 쟁점이다. 1998-99년 금속연맹은 산별노조 건설투쟁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면서, '기필코 산별'을 기치로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서 별도의 투쟁으로 '산별교섭 쟁취'를 내걸고 연맹지도부가 삭발/단식 투쟁을 전개한다. 이는 오히려 당시 쟁점이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보건의료노조의 2004년 투쟁도 산별교섭 쟁취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산별교섭에 대한 집착은 보건의료 산별협약 10장2조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10장2조는 산별협약을 최저기준이 아니라 지부단협에 대해 우선 적용하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대병원 지부 등 일부지부의 임단협이 하향평준화되는 효과를 만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별협약은 지부의 투쟁과 이를 위한 교섭권, 쟁의권을 억압/봉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는 우연한 실수는 아닌데, 자본가들이 산별교섭에 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단위 사업장별 교섭비용의 절감과 통제에 있기 때문이다.(노조 측에서도 교섭비용 절감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로의 단결이 '투쟁'을 통해야 가능하다는 것은 모든 정치세력이 동의하지만 과연 어떤 투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것이다.
 
2005년의 경우에도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 구성 등 교섭상대 구성과 관련해서도 다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데, 투쟁의 요구가 다시 '산별교섭 쟁취'라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한편, 2006년을 예상해보더라도, 민주노총이 제시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사회적 교섭을 위한 압력수단으로 조직될 경우 이를 매개로 한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것은 사회적 교섭에서 산별교섭으로 이어지는 교섭구조 구축과 연결될 수 있다.
 
o 대산별노조, 소산별노조, 그리고 건설의 경로와 조직운영의 방식
 
당면한 산별노조 건설이 금속단일노조, 공공단일노조 등 대규모로 구획되어야한다는 입장과, 보다 세분화된 산업 혹은 업종이어야 한다는 입장은 전노협 조직발전 논쟁에서부터 제기되어 왔다. 당면한 산별노조 건설이 세분화된 산업 혹은 업종을 중심으로 해야한다는 입장은 대산별노조로 발전해야한다는 지향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당면과제'의 성격, 단계론적 성격을 강조해왔다.
 
소산별노조 혹은 업종노조도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업종별 이해'라는 일종의 경제적 이해가 존재한다고 보고 이를 쟁취하는 실리적 조직형태를 긍정한다. 이는 산별교섭에 있어서도 업종단위로 조직을 건설해야만 이에 따라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고 산별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산별교섭을 중시하는 입장이 소산별노조 혹은 업종노조를 옹호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실상은 자본이 업종별로 단결해있지 않은 마당에 교섭을 위해서라도 업종노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자본가가 뭉치는 '사용자단체 구성'을 노조가 요구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쟁점은 건설이후 조직운영의 방식에 있어 지역중심인가, 업종/기업지부 중심인가라는 쟁점과도 연결된다. 산별노조의 발전된 형태가 기업별, 업종별 조직을 유지하지 않고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데는 전반적인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실론'은 업종과 기업별 질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기간을 상당히 길게 상정한다. 대산별노조를 주장하는 입장은 이에 비해 업종별 구획을 부차화하고 지역별로 조직 골간을 구성할 것을 제시한다.
 
산별노조 건설의 일시론, 단계론과도 연결된 이 논쟁은 그러나 금속연맹의 산별노조 전환이 현대자동차노조 등 대기업 노조의 잇따른 투표 부결로 인해 과거와 같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대기업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일시적이든 단계적이든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오히려 대기업노조가 산별노조에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이 논란이 된다. 이러한 논란의 과정에서 완성차 노조나 철도, 화물과 같은 운수부문 등 자체만으로 충분히 파괴력 있는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단위는 자기완결적인 소산별노조 혹은 업종노조를 구성하려는 경향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능한 단위, 파괴력 있는 투쟁을 할 수 있는 단위들끼리 모이기는 쉽다는 입장이 제시된다. 그러나 그 '파괴력'이 해당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것에 머무를 때에는 기업별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를 조금 더 확장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산업의 파괴력을 활용할 경우 해당 노조들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투쟁은 힘을 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적 파괴력만을 중심으로 사고할 경우 불안정노동자 조직화 등 기존노조 운동의 혁신과제는 간과될 수 있다. 사회를 바꾸는 변혁투쟁, 정치투쟁도 힘있는 산업만의 파괴력 있는 투쟁이 아니라 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의 반란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산별노조의 이념이 '완성차 노동자는 하나다'거나 '운수노동자는 하나다'를 넘어서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지향을 가진다면 보다 광범위한 단결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실현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 실천과제는 보다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그밖에 총연맹(내셔널센터)의 위상이 전국적 투쟁본부인가, 정책과 대정부 협의를 담당하는 단위인가 하는 쟁점이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은 임금단체투쟁(임단투)은 산별연맹이 담당해야할 과제이지 민주노총이 담당해야할 과제는 아니라는 점에서 전국 중앙조직은 노동운동의 이념 정립, 사회개혁투쟁과 정책참가를 포함한 정책 제도 개선 활동, 정치세력화 등을 기본임무로 하고, 산별연맹은 임금인상, 고용안정 등을 둘러싼 단체 교섭과 조직확대, 해당 산업에 걸맞는 사회개혁 투쟁과 산업정책 개발 등에 활동에 중점을 두어야한다고 주장한다.7) 내셔널센터는 사회협약이나 정책참가, 정치세력화를 주임무로 하고 임단투·고용문제 등은 산별노조가 수행한다고 분리하는 것인데, 이러한 관념이 코포러티즘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서 그간 좌파진영은 산별노조의 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전선으로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내셔널센터는 이러한 방향으로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할 수 있도록 강화되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산별노조의 건설이후 조직운영에 있어서 지부 지회 등 현장민주주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도 중요한 쟁점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단위 사업장 지회의 파업권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쟁점으로 드러났다. 지난 해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과 서울대병원 지부의 투쟁과 관련된 논쟁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사업장 지회의 파업권이 인정되더라도 산별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협약이 성립된 후에는 지부 파업권이 규약에 있느냐와 무관하게 지회의 독자 투쟁은 억압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산별노조의 운영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된다. 단지 규약에 정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는 사업집행의 인적, 재정적 역량을 중앙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현장 간부가 부족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장 공동화(空洞化)'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제기된다.8) 단위노조의 집행간부는 단지 '집행실무자'가 아니라 조직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기되어온 쟁점들에 대한 평가
 
기존의 여러 쟁점들은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지배적 형태인 기업별 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쟁점은 이미 1990년대 초에 대부분 형성되었다.
 
쟁점은 기존 조직의 구획, 통합 이후의 운영 등에 대한 것인데, 이러한 쟁점이 제기될 수 있었던 것은 산별노조 건설이 주로 기업별 노조 조직간의 통합으로 사고되었기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가 통합하면 그것으로 조직화의 공백은 없을 것이라고 사고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산별노조건설 방식이 주로 존재하는 기업별 노조의 통합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여전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의 쟁점을 간단하게 기각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여전히 이러한 쟁점에 대해서 계급적인 원칙에 입각한 입장이 있어야한다. 조직통합을 넘어서는 노동자운동의 전화에 대한 노력이 있어야 대기업노조의 산별노조 전환 실패가 곧바로 '산별노조실패 = 노동자운동혁신의 실패'라는 식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주로 '대공장 이기주의'라고 불리는, 대기업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할 수 없는 이유들을 제거하는 노력도 가능할 수 있다.
 
기업별 노조의 통합을 중심으로 형성된 쟁점은 조직형식적 논쟁으로 전개될 뿐 아니라 기존의 기업별 노조 중심의 조직화 공백을 간과할 수 있다. 이미 노동의 불안정화 속에서 기존의 기업별,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은 급격하게 실리적으로 변화했으며, 불안정노동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왔으나 이를 조직하지 못했다. 1990년대 초반이후 노조가 몰락한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 여성노동자 조직화는 조직통합을 중심으로 한 논쟁에서는 부차적으로 취급된다. 불안정노동자와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문제는 산별노조의 장점을 부각하기 위한 여러 수식어 중 하나로 제시될 뿐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공세와 노동의 불안정화, 기존 노조운동의 이에 대한 대응의 실패와 함께 1990년대에는 미처 사고하지 못했던 노동자운동 혁신의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처한 상황과 노동자 대중의 존재방식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변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쟁점들이 제기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의 입장을 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대안이 필연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과제는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투쟁, 노동조합의 사회운동적 성격 복구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주로 쟁점이 되어온 것들은 이러한 노동자운동의 혁신이 요구되는 계급지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논쟁은 확장되고 새로운 논점을 중심으로 전화되어야한다.
 
비정규직의 조직화에서, 조직방식, 자원투입, 조직편제의 문제 등이 제기되고,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있어서 지역일반노조의 성과, 특수고용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국적인 수준의 직종노조의 활성화라는 조건은 산별노조 건설에서 기업별 노조의 통합을 넘어서는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남한에서 민주노총이 이념형으로 생각하는 서유럽형태의 산별노조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별도로 발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전후의 자본주의 황금기에 가능했던 구조라는 점이나 산업적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차이(재벌지배경제구조), 자본가들의 조직구조, 노동조합 출발의 역사적 차이 등을 볼 때 오히려 제3세계의 노조운동 역사,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전평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것 자체가 쟁점은 아니었다. 제3세계 국가들도 대부분 이미 초기업 노조 형태를 띄었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남한에서 추진되는 것과 유사한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방식으로 노조운동의 혁신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다. 기존의 노조에서 민주화된 노조 분파가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는 경우에도, 국가-자본가 단체와 안정적인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는 '산별교섭'을 목적으로 한 경우는 없다. 전평의 경우에도 강력한 투쟁력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산별 단일노조를 건설했던 것이지 '산별교섭'을 위해서 산별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잠시 외국과 일제 하, 전평 시기를 검토하자.
 
역사적 사례들
 
현재의 산별노조 건설 추진 흐름들은 많은 외국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들은 하나같이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에 한정되어 있으며, 역사적인 과정보다는 주로 현재 운영되는 '완성된 모델'을 소개하고 이를 적용하기 위한 교훈을 얻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산별노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쟁과정에서도 건설 과정이 아니라 산별노조의 운영모델을 소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의 건설이 단지 조직모델을 수입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산별노조 형태가 특정한 정세에서, 특정한 운동의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검토가 먼저 이루어져야한다.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는 노동자운동의 역사의 한 항목으로서 다루어질 수 있을 뿐이다.
 
o 유럽과 미국, 19세기 말 20세기 초9)
 
1890~1914년 기간 동안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새로운 노조주의가 출현한다. 19세기말 세계경제의 불황과 영국헤게모니의 쇠퇴, 대량생산체제의 도입은 이제까지 조직된 직종별노조를 통해서는 조직할 수 없는 새로운 미조직 노동자 대중인 미숙련, 반숙련 노동자층을 형성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은 영국의 신노조주의(new unionism)와 일반노조운동, 독일의 산별노조운동, 미국의 산별노조운동 등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혁명 시기에는 독일의 평의회주의, 러시아의 소비에트 등 대안적 노동자 조직형태가 출현한다.
 
(1)영국: 신(新)노조주의 운동
 
19세기 중반 영국의 노동자운동은 직종을 중심으로 숙련 노동자들이 주도하여 확립되었다. 이때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파업기금'을 확보하고 개별 교섭 과정에서 조합에서 설정한 임금 이하의 노동력 판매를 거부하고 이를 통해 실업 = 파업을 하는 조합원에게 생계비를 지급한다.(클로즈드 샵(closed shop)) 그러나 이들이 조직하지 못하는 새로운 미숙련, 반숙련 노동자층이 등장하는 데, 이들을 조직하는 영국의 신노조주의는 1889년 런던부두파업을 계기로 폭발한다. 부두의 대중적 파업에서 기존 노조에 포괄되지 못한 미숙련, 임시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파업이 승리하고, 이후 미숙련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파업과 조직화가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숙련노조도 미숙련 노동자 조직화를 시작하여 철도에서도 1889년 저임금·임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철도노동자일반노조가 결성되는 등, 이들은 상호부조라는 전통적 노조의 활동을 넘어서는 전투적 노조를 천명하고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신노조주의를 주도한 것은 미숙련·저임금·일용직노동자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부문주의를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를 하나의 노조로 조직한다는 일반노조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인 조직형태를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는 이념적 성격이 운동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일반노조들은 특정 산업에 상대적으로 집중하면서 산별노조 형태를 띄거나 기존의 직종노조와 통합하면서 산별노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의 노조운동의 전통은 업종과 산업을 불문하는 조직형태가 많아 '산별노조'라 부르는 만큼 '일반노조'라 부를 수 있으며 업종별로 무관해 보이는 조직끼리의 통합도 일반적이고, '1산업 1노조' 식으로는 조직되지 않는다.
 
(2)독일의 산별노조운동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주자로서 국가를 중심으로 강력한 산업화 정책을 시행했다. 자본가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은행자본을 중심으로 트러스트, 카르텔을 구성하면서 독점을 심화하고, 기업은 수평적으로 통합되고 자본가들은 국가의 지원아래 산업별로 조직화된다. 이는 독일식의 산별교섭 모델이 가능한 토대가 되는데 노동자의 단결 이전에 자본가의 단결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중반, 장인 중심의 노동조합이 있었으나 광범위한 노동조합의 결성 이전에 사회민주당이 우선 활성화된다. 1878~79년의 심각한 경제불황기에 기존 노조조직은 국가의 박해로 거의 파괴되지만, 反사회주의법이 시행된 10여 년 동안 오히려 사회민주당은 성장하면서 노동자 조직을 확대한다. ('영웅적 시기') 1880년대 독립노조 운동이 재개되는데 노조 간부들은 대부분 사회민주당 당원이었다. 1888~9년 전국적인 파업의 물결이 있었지만 여전히 숙련공 중심의 직종노조가 주류였다. 1890~1914년 동안 점증하는 기계화와 노동분업에 따라 전통적인 숙련공은 쇠퇴하고 미숙련·반숙련 노동자가 증가하고 노조는 '산별원리'를 채택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직종의 틀을 사실상 넘어서지 못했다. 곧이어 1차 세계대전시기 사회민주당의 전쟁협력으로 사회주의 운동은 위기에 빠진다. 독일 패전과 함께 독일제국은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되면서 이시기 독일 노동자들은 1919년 독일노총을 결성하고 논쟁은 "전국적 중앙노조 vs 평의회", "산별연맹 vs 직종연맹"의 구도로 진행된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광범위한 노동의 탈숙련화는 지체되고 숙련 노동자 헤게모니가 유지되는 가운데 직종노조 형태가 계속된다. 나치 시기 노동조합의 파괴 이후 현재 형태의 독일의 산별노조는 전쟁 후 재조직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AFL-CIO와 미군정의 지원을 중심으로 노조에서 공산주의자를 배제(정치적 급진주의의 거세)하고, 현재와 같은 형태의 산별노조 형태가 비로소 정착한다.
 
(3)미국의 산별노조운동
 
미국 사회는 1865년 남북전쟁이 종식된 후 빠른 산업화의 과정으로 진입한다. 자동화된 생산체제는 미숙련·반숙련 노동자들을 증가시키는 반면 숙련노동자들은 점차 약화된다. 1880년도와 1890년도 불황기 노동자대중의 위기는 1886년에는 미국노동총동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 AFL) 건설로 이어진다. 이는 직종별로 조직된 형태(직종별 노조주의(craft unionism))로 숙련노동자들만 가입되었고, 반숙련 혹은 미숙련 노동자, 그리고 흑인노동자들은 가입하지 못했다. 1905년에는 산별노조를 추구하는 생디칼리즘 경향의 노동자조직인 세계산업별노동조합(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 IWW)이 조직된다. 그러나 1차 대전 중 탄압이 가중되고 1918년에만 100명 이상의 IWW 지도자들이 반역죄로 투옥되면서 1924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조직이 붕괴한다. AFL의 조합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직종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테일러주의의 도입에 따라 광범위한 반숙련·미숙련 노동자, 즉 기존의 숙련 직종 노조로는 조직할 수 없는 노동자대중이 중가한다. 따라서 1930년대에는 많은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들이 산업별노동조합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 : CIO)로 조직되었으며 산별 노조주의가 주류의 움직임으로 되어간다. 약 400만 명의 노동자들이 1934∼1938년 사이에 CIO로 조직되었다. CIO는 주로 대규모 공장(주로 자동차 산업)이 집중된 지역에서 성장했다. CIO의 전략은 낡은 직업별노조와 과감하게 결별하고 새로운 형태의 전국적인 산업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CIO 지도부는 AFL 내부의 개혁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력한 조직화를 진행했다.
한편,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이 도입된다. 뉴딜 정책은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운동에 유화적인 제도가 허용된다.(와그너법) 그러나 대공황 종식 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다시 탄압이 시작된다. 1947년 태프트-하트리법을 통해 노동분쟁에 금지명령제도 부활,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가 규정되고, 클로즈드 샵이 금지된다. 이러한 법안 통과와 조직률 정체, AFL의 산별노조화, CIO 내부의 공산주의자 축출 속에서 AFL과 CIO는 1955년 통합한다. 1959년 제정된 랜드럼-그리핀법은 노동조합 내부의 재정을 국가가 감시하고 사용자로부터 교섭단체로서의 승인을 목적으로 한 피케팅 행위를 제한하는 등 노조활동을 제한한다.(최근 남한에서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등 법·제도 개편과의 유사성에 주목할 수 있다.)
 
이들 나라의 사례를 보면 산별교섭과 관련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영-미의 경우에는 자본의 수평적 통합이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식' 산별교섭-산별협약은 정착되지 않는다. AFL-CIO도 독일식의 산별교섭을 시도했지만 사용자단체를 찾을 수 없었다. 반면 독일의 경우에는 자본이 산업별로 수평적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산별교섭-산별협약이 가능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자본의 요구이기도 했는데 독일식 독점자본은 코포러티즘의 물질적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o 라틴아메리카, 1970년대 이후 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의 노조운동
 
남한은 세계자본주의의 반주변부로서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보다 남미 등 신흥공업국의 사례와 유사할 수 있다. 특히 어용노조의 민주화과정에서 새로운 노조운동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사례도 주요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의 새로운 노조운동은 국가의 전국적인 노동통제에 저항하면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탈집중화 경향을 보여준다. 이들 국가에서 전형적인 산업-지역별 조직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관료화·어용화 되었으며 이에 대항하는 운동은 공장단위의 노조대표 선출, 공장위원회 건설 등을 중심으로 했는데, 이는 사업장 단위 조직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다. 남한의 경우에도 사업장 조직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된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사업장 단위의 민주화를 통해서 어용적인 전국조직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결을 모색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멕시코의 경우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사실상의 부속조직으로 노총(CTM)이 존재하고 강력한 코포러티즘 정책을 통해 노동조합을 노무관리기관으로 유지해왔다. 1970년대 이후 독립노조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전자산업노조 내 민주파, 자동차 산업노조(기업별) 등의 독립노조운동이 있었으나 산업적 단결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브라질은 국가가 관리하는 어용노총 체제에서 19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의 성장과 경제위기라는 정세에서 노동자운동이 폭발한다. 1978~80 대파업투쟁, 상파울로 주변의 ABC 공단의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대파업 진행은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을 형성한다. 대파업 이후 노조의 민주화는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반대파, 공장위원회, 전투적인 노조의 공장대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어용적인 산별노조에 대항해 공장단위로 구성된 공장위원회는 민주적인 노조를 촉진한다. 이후 별도의 공장조직을 구성하는 것보다는 노조의 공장지부를 장악하는 것으로 전개되지만 이들은 이후 독립노조로 발전하거나 노조를 민주화한다. 이들은 1981년 브라질의 민주노총이라고 할 수 있을 노총(CUT)을 결성한다. 사업장 단위의 전투성과 직접교섭 전략이 성공하면서 어용노조를 압도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CUT는 자신들이 만든 노동자당(PT당)과 함께 지속적으로 우경화 되었다. CUT 자체가 관료화되고 국가 보조금에 의존하는 측면이 클 뿐 아니라, CUT의 이전 간부들이 주로 노동자당에서 이후 의회 선거의 후보자에 포함되어있거나 입각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PT당과 결합하면서 제도화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독특한 코포러티즘 전통으로 페론주의가 존재했다. 노총(CGT)은 노동관료가 노조를 장악하고 국가의 대해 협조하는 대가로 일정한 권력과 고용안정과, 사회보장을 약속 받았다. 군사정권과 민간정권의 교체 과정에서 노조의 분열과 통합이 진행되고 여전히 CGT가 주도하였지만, 1969년 산업도시인 코르도바의 지역총파업을 계기로 노조민주화 투쟁이 강화된다. 여기서도 공장단위의 투쟁적인 지도부를 구성이 활성화된다. 1976년 군사정권 하 민주적인 노조활동가의 대량 살해되지만 경제위기와 고용불안 속에서 노조는 다시 급진화 되고 노총은 몇 개로 분열했지만 공장단위에서는 '조합간 조정위원회'를 통해서 사업장단위의 투쟁 전개했다.10)
 
라틴아메리카 사례에서는 노조민주화의 과정에서 사업장 단위 조직이 갖는 중요성이 확인된다. 또한 브라질과 같이 '민주노조'가 초역사적으로 민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o 일제하 노동운동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일제하 운동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산별노조 건설이 단지 '조직통합'의 과정이 아니며, 동시에 현장을 강화하는 노조운동의 재편과 혁신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30년대 산별노조운동을 먼저 살펴보자.11) 일제하 노동조합은 초기에는 지역별(일반)노조로 결성되었다가 지역별 업종노조로 분화한다.(대표적으로 고무업종, 섬유업종 등) 1920년대 중반부터 직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조선공산당의 지도방침에 따라 서울에서 인쇄노조를 출판노조로 변경하는 등 각 지역별로 산별조직화가 진행되었다. 산별노조 방침은 이후 1930~31년 사이 전국 각지의 노동단체를 통해 실현된다.
각 지역에서도 인쇄출판업이 산별노조 건설을 선도하고, 다른 부문으로 확대된다. 경성 섬유공조합, 출판노조, 용산의 금속노조, 인천의 금속노조, 항만노조, 함흥의 화학공조합, 부산의 부두노동자조합, 원산의 운수노동자조합 등이 이때 결성된다. 이때의 산별노조란 지역별로 구성된 산별조직을 의미하는데, 대도시에서 시작되어 중소도시로 파급되어 간다.(이에 비해서 현재에는 주로 전국조직만을 산별노조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중소도시의 경우 영세업종의 통합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힘든 경우 일반노조 형태인 '합동노조'로 조직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러한 산별노조 운동은 1920년대 중반기의 일시적인 침체를 극복하면서 조직을 쇄신-부활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이 시기의 산별노조 조직방침은 지역내 각 공장에 공장반을 두어 노조의 분회를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 산업에 따른 산별노조 지부를 설치한 후, 이를 전국적으로 통일한다는 방침이었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 흐름과 동시에 공장 내 공장반 설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공장반 설치는 활동과 조직의 중심이 공장과 사업장 현장으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했다. 노조활동에 있어서도 보다 현장에 밀착한 생생한 요구를 수립했는데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이 현장을 강화하는 작업을 동시에 의미했다는 것이다. 산별노조 재편과정에서 노조 내에 부인부, 청소년부, 실업부를 조직하여 미숙련·불안정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이러한 산별노조 시도는 아직 미약하지만 1930년대 일본의 중화학공업이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군수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자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 발달과 이른바 산업합리화 정책의 진전으로 숙련노동의 쇠퇴와 미숙련 노동자의 증가, 실업자 증가, 여성과 청소년 노동이 증가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의 변화, 노동자 증가는 전면적인 수준이라 보기는 힘들었으며 당시의 노동운동가들이 산별노조를 지향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강했다.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의 지침이 산별노조를 지향하고 있기도 했을 뿐더러, 전국적 차원의 단일조직을 조직하여 전국적 연대와 단결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 투쟁을 지향한 것이다.
이후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면서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노조운동으로 전환한다. 혁명적 노조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산업별 조직방식을 채택. 아래로부터의 통일전선인 공장위원회를 강화하고 산별노조 지부 구성, 각 산별노조 지부의 지부협의회와 이를 바탕으로 한 도 협의회, 전국 중앙협의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해방이후 노동자운동은 1945년 11월 1~4일 집중적으로 16개 산별노조를 결성하고 11월 5~6일 전국노동조합평의회를 건설한다. 일제 시기부터, 혹은 해방직후 급속히 확대된 직장별, 직종별, 산업별 형태의 각종 조직이 지역산별노조로 결집하면서 전국적인 산별노조 체계를 급격하게 구축된 것이다. 16개의 산별노조로 조직되었고 산별노조는 -- 지역별 산별[지부] -- 공장[분회] -- 직장[반] -- 5명 단위[조]로 구성되었다. 지역일반노조 형태의 지역합동노조는 지방평의회에 직속으로 가입한다. 지역에서는 전평 전체의 도평의회가 구성되고 여기에서 산별지부가 결합했다. 이러한 공식 골간 외에도 현장의 통일전선 강화를 위해 공장(관리) 위원회, 자치위원회, 직장위원회, 투쟁위원회 등이 활발하게 결성된다. 전평의 강력한 활동은 중앙집권적 산별노조를 통한 지도도 중요했지만 강력한 현장조직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현장 기초단위가 구성되어 가능할 수 있었다. 또한 전평이 계급적 원칙에 입각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공산당 세포모임이 사업장마다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12)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산별노조 건설이 현재 추진되는 방식처럼 반드시 전국조직을 상층에서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산별노조 건설이 오히려 현장을 강화하는 의미를 가지고 추진되었다는 점, 산별노조의 힘은 '산업별 조직형태' 이전에 강력한 현장조직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기되어야할 쟁점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유럽이나 미국, 1970년대 이후의 제3세계의 사례 모두는 노동조합 조직의 심대한 변화(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는 계급구조의 변화와 이에 따른 계급투쟁의 전환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노동정치체제의 동요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재편 방향은 노동자운동의 혁신 혹은 실패를 반영하는 것일뿐더러 그 재편방향 자체가 계급투쟁의 장소가 된다.
 
남한 노동자운동에서 위기의 성격이 복합적이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에 대한 대안도 여러 가지로 제기되고 있다. 노동자운동의 재편방향은 이후 더욱 뚜렷하게 분기할 것인데, 이러한 분기는 당분간 '산별노조 건설의 쟁점'이라는 조직발전 전망을 둘러싼 쟁점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것이 초역사적인 과제는 아니라면 지금 시기에 노동자운동에 요구되는 과제를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발전 전망이 세워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계급주체 형성을 위한 과제의 하위과제로서 조직형태의 재편이 제기될 수 있다. 산별노조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조직형태의 재편의 일부분인 것이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응하기 위한 효율적인 조직화 방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형태를 실현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 해답이 곧바로 현재 논의되는 형태의 산별노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신자유주의 하 노동자대중에 가해지는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압력에 대응하는 적합한 조직형태는 무엇인가라는 방식의 질문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 쟁점이 구성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노조운동이 사업장 단위의 전투적 경제주의로 제한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선 단결의 확대와 함께 노조운동의 사회운동적 강화를 위한 조직의 혁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운동의 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산별노조를 통해 '사회공공성'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적 교섭기구'에서 논의하고, 또 이를 압박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배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노조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 물질적 조건 자체의 변화(그리고 장기적 변화를 추동하는 운동의 경향)가 필요한데, 이는 지역을 중심으로 '취업한 노동자'에 제한되지 않는, 기층민중에게 조직적으로 열려있고 활발하게 연대하는 구조로 재편되어 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조직적 과제를 넘어서 노동자 운동의 혁신을 위한 과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한다. 특히 노동자 운동이 축적조건(객관적 조건)과 이념/조직(주체적 조건)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조직적 재편전망과 아울러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이를 대중운동과 이 이데올로기, 조직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노동자운동의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불안정노동자 조직화의 측면만 보더라도 이 과제는 조직확대를 위한 사업은 물론이지만 기존 노조운동의 이념이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에 적합한 내용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50억 기금 모금이나 조직활동가 배치를 통해서도 성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노조 운동은 이념과 조직을 포괄하는 하나의 '운동'이지 양적 성과를 중심으로 하는 외판사업 비즈니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한다고 할 때, 그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이를 추진하는 주체들과 타협이 아니라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토론과 실천을 위한 몇 가지 제안
 
현재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하여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쟁점을 논의해보자.
 
o 산별노조와 지역일반노조 - 비정규직 조직화의 쟁점
 
지역을 근거지로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으로 일반노조가 활성화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지역노조가 지역을 중심으로 단지 조합원을 조직하는 역할을 넘어서, 지역을 운동이 근거지로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지역 일반노조는 산별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별 노조 형태로 조직을 유지할 수 없는 중소·영세 비정규직 - 불안정노동자에게는 거의 유일한 의미있는 조직형태이다.
 
산별노조 추진주체들에게도, 여전히 기업별 노조의 통합이라는 것이 주된 관심이기는 하지만 지역일반노조의 고민과 수렴하는 측면이 있다는 데 주목해야한다. 금속노조의 지역지부 건설, 공공연맹의 지역공공서비스노조 건설 등은 산별노조를 지역적 차원에서부터 일반노조와 유사하게 확장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지역 일반노조 주체들에게 있어서도, 지역 일반노조가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에서 결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단위도 있는데 이는 산별노조가 일반노조를 품어 안을 만큼 충분히 가입대상을 확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대규모의 공공,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여성 불안정노동자를 확산시키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 불안정노동자들은 불과 수개월 단위로 실업과 취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조직하는 것은 기업별 노조로서는 불가능할 뿐더러 기업별 노조의 연합형태로서의 산별노조로서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고민들의 진전은 지역을 근거로 하는 불안정노동자조직화에 있어서 산별노조 건설과 지역일반노조가 경향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조직적 통합을 직접 지향하는 수렴이라기 보다는 노조 조직화의 문제의식과 그 형태가 수렴해간다는 것. 따라서 조직적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여부는 토론과 함께 주체들의 실천적인 노력, 상호 파괴적인 조직경쟁을 하지 않는 존중과 예의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이 19세기말 20세기 초 직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과정이나 영국의 신노조운동에서 일반노조 운동의 활성화, 산별노조의 조직화 병행과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산별노조, 일반노조의 건설은 폭발적인 미조직노동자(미숙련노동자)들의 조직화 과정에서 실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조직적 진출이 새로운 조직의 출현을 위한 조건이라는 것인데, 그러나 현재 남한에서 기업별 노조의 통합을 통한 산별노조건설이라는 현재의 시점에 미조직노동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진출이 아직 기존의 노조를 압도, 상대화하고 새로운 조직을 출현시킬 만큼 폭발적이지 않다. 따라서 결국 기존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결의로 산별노조를 건설해야한다는 난점이 발생한다.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미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난점은 현재의 산별노조 건설이 가지는 한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조직화에 있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의 중요성에 비추어본다면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또한 조직된 노동자운동이 새로운 노동자대중의 진출, 새로운 운동의 개시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현재의 산별노조 건설이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내용과 형태로 진행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o 지역중심, 지역을 골간으로 하는 산별노조의 건설
 
지역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고 실질적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현장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도, △사업장을 넘어서는 공동투쟁이 가능하며, △지역에서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고, △지역의 민중운동, 사회운동과 결합할 수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골간을 구성하고 지역의 사회운동과 연대하거나, 지역의 광범위한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나 그 연합체제로서 연맹, 그러한 수준을 유지하는 산별노조로는 불가능하다. 앞서 예를 든 '사회적 일자리'의 불안정노동자들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형태로 계속 확산되는 불안정노동자를 '업종노조'나 '업종을 골간으로 한 산별노조' 형태의 조직이 조직대상으로 포괄할 수 없으며, 각 업종조직의 지역조직의 규모 상 조직화와 투쟁을 책임질 수도 없다.
 
산별노조가 단지 특정 산업에 제한된 조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산업적 이해'라는 것을 특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업장을 넘어서는 지역의 사회운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대상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동-사회운동단체에도 열려야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지만, 노동자 회원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는 그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조합'의 하나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기적으로 조직적 결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복수노조 제한 규정이 사라진다면 법적으로도 조합원의 이중가입도 가능해지고 사업장단위를 넘어서 노조의 유연한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단지 조합원 가입의 문제만이 아니라 조직적 결합과 함께 이들 사회운동이 제기하는 과제를 산별노조의 운동의제로 결합할 수 있어야한다.
 
한편, 이러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골간 구성을 위해서는 '대산별' 형태가 유리하다. 업종노조의 형태로는 규모의 한계 때문에 지역별 골간을 구성하고 운영할 수도 없으며, 자신의 운동과제, 조직화 대상을 일반화할 수도 없다. 대산별 형태로 조직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서 노조의 이해를 허구적인 '산업별 이해'라는 방식으로 협소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을 크게 만든다고 조직의 투쟁과제가 자동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계급적 과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운동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지역의 연대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는 지역을 골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부지역에서는 산별노조로 재편되면서 금속노조 안의 단결은 증진되었을지언정 지역연대에는 더 소홀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산별노조가 '무슨무슨 노동자는 하나다'는 식의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는 하나다'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직형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계급형성을 위한 투쟁의 과제들이 있고, 이를 운동의 요소로서 끊임없이 실현해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지역의 투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산별노조를 지역을 중심으로 강화하는 과제도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은 '조직도'를 멋있게 그려내는 것과는 또 다른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o 노동자운동의 전화를 위한 이념적 전망의 수립
 
산별노조 형태이든 일반노조 형태이든, 조직형태의 변화를 통해서만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다만, 조직형태의 변화가 맹아적인 행태일지라도 운동의 특정한 지향을 표현하고 그것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맹아적 지향을 추출-강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요구되는 이러한 이념적 전망을 좌파들은 '계급적 산별노조'라는 방식으로 추상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즉, 산별노조의 건설과정이 노동자운동의 '계급성'을 다시 강화하는 과정이 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계급성'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추상적일 뿐이라는 점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명료한 정치적, 이념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특히 정치적 이념적 전망의 수립은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재편과정과 분리된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것과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결합되어야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대중 이데올로기로 결합하지 않고서는 이 글에서 제기하고 있는 조직적 재편조차도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산별노조를 관통하는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어야한다.
 
산별노조가 현재 남한 노조운동의 주류형태인 기업별 노조보다 나은 형태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결의 확장이라는 것은 항상 노동자운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적으로는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노동자 연대의 강화와 계급 형성의 과제를 수행하기 유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은 당면한 노동운동이 혁신을 위해 추진되는 전략의 일부이며, 산별조직 건설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은 다시 한번 강조해야한다. 그것을 간과하는 순간 산별노조만 건설하면 노조운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처럼 부풀리는 이른바 '산별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현재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은 낮은 조직률의 고착과 노조운동의 대표성의 위기, 법·제도의 불리한 변경에 따라 수세적으로 제기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몰두는 밀리고 밀려서 진행되는 노동자운동의 퇴각에 대한 사후적인 반응, 그것도 한발 더 물러선 퇴행적인 반응이 될 가능성도 크다. 보다 공세적으로 노동자운동 혁신의 과제를 실천하는 투쟁에서, 하나의 과정으로서만 산별노조가 고민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운동의 혁신과 새로운 조직의 전면적인 건설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 ①새로운 미조직 노동자들의 진출 ②새로운 급진적 이념의 수용 ③새로운 조직형태를 통한 단결 폭의 확대 ④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장 현장의 강화
이후 남한에서 산별노조 건설 과정을 단지 기업별 노조의 통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혁신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과정은 노동자운동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조운동의 체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이다. 따라서 여러 운동 주체들이 이러한 변화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가에 따라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노조운동의 성격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된 쟁점을 전화시키기 위해서는 실천적인 노력은 특히 중요하다. 지역을 중심으로 불안정노동자를 광범위하게 조직하기 위한 조직적 근거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관건이다. 지역 중심의 운동이 필요하다거나 불안정노동자 조직화가 의미있다는 말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주장해도, 현실에서 그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물질적으로 산별노조 건설 흐름이 지역강화와 불안정노동자 조직화의 과제를 받아안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노조 조직들도 계급형성의 과제를 함께 수행하면서 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진출이 활성화된다면, 어쩌면 산별노조에 관련된 이상의 쟁점들은 모두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다.
산별노조 건설의 쟁점을 넘어, 새로운 노동자 대중의 진출을 촉진하고 계급형성의 과제를 실현하는 노동자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비판과 실천을 조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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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정치체제' 개념은 아래 이종래가 정리한 노중기의 개념을 참고한다.
"노동정치(labor politics)를 생산의 정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 자본, 노동 삼자의 정치적 전략적 상호작용 일반이라는 자신의 개념정의 방식에 따라 노중기는 노동정치 개념을 행위개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노동정치가 과정적으로 반복되면서 일정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응집되어 구조화된 상호작용의 틀이 생산되는데 이것을 노동정치체제라고 말한다."(이종래「노동체제의 개념정의와 논쟁적 지점」『한국사회학비평』, 2002)
한편, 이 글의 논지와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정치체제의 변동과 관련하여 산별노조 건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로는 임영일, 『1987년 노동체제의 성격과 전환의 압박』, 경상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2001 참고. 본문으로
 
2) 최장집,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열음사, 1988 본문으로
 
3) 임영일, 『한국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1987~1995)』, 경남대학교출판부, 1998 본문으로
 
4) 공공연맹 산별기획단, 「공공산별노조 건설 원칙과 계획(안)」 중 본문으로
 
5) 최광은, 『노동자운동과 산별노조』, 박종철출판사, 1999 본문으로
 
6)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할 점은 단순히 민주노총 소속 산별연맹 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 산별연맹과의 통합까지 폭넓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할 때만이 조직의 양적 확대와 질적 강화가 가능하고, 동종 산업내에서 유일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산별노조 건설과 단일노총 건설도 촉진할 수 있게 된다." (김유선「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 『노동사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998년 9월호) 그밖에 김금수 노사정위 위원장(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의 각종 인터뷰를 통해서도 연구소의 이러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김유선「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 『노동사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998년 9월호 본문으로
 
8) 조효래, 『노동체제 전환과 노동조합 조직구조의 변화』, 경상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2001 본문으로
 
9) 이하의 유럽 사례는 2000년에 진행된 사회진보연대 불안정노동연구팀 세미나의 정리를 주로 참고했다. 본문으로
 
10) 한국사회연구소, 『노동조합조직연구』, 백산서당 , 1989 본문으로
 
11) 1930년대 산별노조 운동에 대해서는 김경일, 『한국노동운동사 2 - 일제하의 노동운동 1920 ~ 1945』, 지식마당, 2004 참고 본문으로
 
12) 최광은, 앞의 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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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렸던 제 인터뷰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이제는 '사회운동'이라는 제호로 나옵니다)에 실렸던 글입니다. 제 인터뷰인데, 제 블로그에 대한 개인 소개 겸 해서 올려봅니다. 하는 일, 직책 등.. 중심적인 고민은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뭐 대동소이합니다.
 
그러고 보니 밑부분에는 홈페이지 이야기도 나오는군요. 흠흠..
 
 
***
 
[회원코너-바로그한사람]  박준형 회원을 만났습니다. 
진재연 | 편집부장 


4월의 봄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하루 일정을 마친 박준형 동지를 만났다. 박준형 동지는 단위노조일정을 마치고 뒤이어 마련되었던 삼겹살 뒤풀이마저 포기하고 회원코너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 주었다. 그는 공공연맹,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박준형 동지 개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조목조목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대중운동 경험에서 느꼈던 진솔한 이야기를 실타래 풀 듯 이야기했고, 우연적인 계기들 속에서 얻은 교훈과 반성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였다. 개인활동의 경험이 하나하나 쌓여서 운동의 원칙을 세우게 됨을 깨닫게 하는 자리였다.
 

Q 공공연맹에서는 언제부터 일 하셨어요?
 
A 연맹 사무처는 2002년 가을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정보통신관련업무를 했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조직실에 있죠. 공공연맹은 업종별 분과위원회로 조직이 편재되어 있는데, 저가 담당하는 곳은 '공공시설환경관리분과'예요. 지방자치단체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원들이죠. 환경미화원이나, 도로보수, 녹지관리 등의 일을 하는 상용직 노조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Q 어떻게 공공연맹에서 활동하게 되셨죠?
 


2002년에는 제가 노조 부위원장을 맡았죠. 임단협을 하면서 임금인상, 연봉제 도입저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주요 요구로 내걸었죠. 사측은 임금인상은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임금인상 요구는 양보하더라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만큼은 꼭 이뤄내서 앞으로의 투쟁에 '디딤돌'을 만들자는 것이 노조의 방침이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진전이 없었죠. 노조는 파업까지 전제로 하는 단계별 투쟁을 시작했어요.
말로는 노조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사실 사장은 회사의 관리방침에 순응하는 의견수렴기관인 노조를 바라고 있었던 거죠. 노조의 투쟁수위가 높아지니까 돌연히 사장이 잠적해버리는 거예요. 당시 회사는 현금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사장의 잠적은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죠. 회사가 망하냐, 인수되냐 하는 흉흉한 유언비어가 나도는 가운데, 조합원 안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비정규직과 정규직, 물류 부서와 사무직 부서 사이에 갈등도 있었어요. 일부에서는 사장을 불러오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노조를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입장도 강경했죠. 그런 상황에서 조합원 총회를 진행했고 '지도부 탄핵' 안건이 상정되었지만 부결됐어요.
사측이 위원장, 부위원장 퇴사를 조건으로 사장이 돌아온다는 안을 던진 게 총회가 끝난 후였어요. 근데 내부적인 진지한 논의 없이 위원장과 제가 이 안을 수락했는데, 당시 그 결정은 알라딘 노조에게나 저에게나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의 중대하고 영구적인 전환점이 되었죠. 당시 지도부의 입장은 회사정상화를 통한 고용안정 확보였거든요. 이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단결과 투쟁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반대로 회사에 항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했던 것이죠. 총회에서 조합원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꼴이 되었구요. 위원장과 저는 2002년 5월에 퇴사를 했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어요.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했어요. 이런 패배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의식 있는 활동가'를 지향한다면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한 것을 반성했고 물론, 그런 '실수'를 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대중들과 올바르게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 나의 문제로써 어떤 결정을 해야하는가, 어떤 점이 취약했을까?" 2002년 발전파업 때 잘못된 지도부의 판단을 비판했지만 결국 나도 같은 판단을 한 것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활동의 원칙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삼 깨달았어요. 당시 대중들의 모습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죠. 대중은, 어떤 측면/순간에는 한없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어떤 측면/순간에는 한없이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이런 양면성이 교차하는 모순적인 존재인 것 같아요. 아무튼,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직도 제 활동의 중요한 목표죠. 아직 저에게 "대중"은 그 자체로 거대한 수수께끼라고나 할까.
퇴사후 반성의 시간을 갖고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또 합격했죠. 마침 공공연맹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었구요. "좋은 경험하는 셈치고 한번 해봐라"는 말에 마음을 먹었어요.
 

Q 공공연맹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습니까?
 
A 공공연맹에 와서 처음 3개월 정도는 조직이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놀랬죠. 규모가 크고 역사가 있는 조직이다보니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치밀한 활동의 메카니즘이 있더라구요. 활동가들의 실력이나 판단능력도 대단했구요. 이런 곳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 설 정도였죠.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문제점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효율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관료화, 개량화 되어 있었죠. 그 장단점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배울 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경험'의 공력은 대단한 것인데, 공부는 너무 안 하거나 할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죠.
개인적으로는 특히 조직실에서 이용석 열사투쟁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노조운동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 실마리가 아주 조금은 보인다고 할까요. 그걸 각각의 투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역사적 투쟁 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또 남겨야 할지가 고민이죠.
최근에는 단위사업장을 넘어서는 수준의, 연맹이나 총연맹, 전체 노동자운동을 조망하는 시각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정세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계급대립의 지점에 대한 포착만이 아니라 전체 투쟁의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조망하는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죠.
 
Q '노조운동의 원칙'이 실마리가 보인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글쎄요. 아직 그냥 '감'인데요. (웃음) 아직은 대중간부로서의 원칙정도에 불과해요. 대중에 대한 신뢰가 문제인 것 같아요. 대중조직의 관료는 '대중이 판단해야할 때 자신이 판단하겠다고 나서고, 자신이 판단해야 할 때 대중에게 판단을 미룬다'는 말을 어떤 선배활동가가 했는데, 곱씹어볼 말 아닌가요? 간부에게는 대중에 대한 신뢰가 문제라면, 대중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기결정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문제죠. 노동부문 연석회의 할 때 대중단위에 있는 스스로를 가리켜 '관료'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사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관료주의는 대중조직 활동가가 자신의 안팎에서 항상 직면하게 되는 위험이니까요. 주변에 중년의 노조 활동가 중 어떤 분들은 '관료'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그런 고유한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활동가의 윤리학 정도에 머무는 고민이고 여전히 알라딘 노조에서의 문제의식의 연장에 있지만요.
 

Q 최근 공공연맹에서는 위원장 성폭력 사건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사건 해결과정을 보면서 느꼈던 점과 현재상황을 이야기 해주세요.
 
A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좌우파 모두의 기회주의'는 매우 실망스러웠어요.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고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사건을 이용하려는 모습뿐이었죠. 해결을 위한 활동과정에서 나타난 정파간 상호비방은 올바른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겠죠. 피해자가 사건을 드러낸 것은 '정치적' 제기가 아니었고, 성폭력 자체를 문제제기 하고자 한 거잖아요. 그런데 좌파든 우파든 대부분의 남성활동가들은 시종일관 이 사건을 (노동조합 내부'정치'라는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마치 그것이 '현상 뒤의 대단한 본질'이라는 식으로 제멋대로의 망상에 빠져있었죠. 오히려 그렇게 망상하는 사람들이 내부정치에 사건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없던 정치적 의미들이 겹겹이 덧칠해졌구요.
어떤 입장도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죠.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여성활동가들도 원칙을 세워 활동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왜곡과 음해가 판치는 상황에 일침을 가하면서 여성이 스스로 세력화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죠. 사건을 거치며 연맹은 지도부의 지도력이 훼손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죠. 위원장 보궐선거는 후보 등록이 없어 무산된 상태구요. 그야말로 오리무중인데, 얼마 후 있을 임시대의원대회(4월28일)에서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겁니다.
 
Q 분위기를 전환해서 '겨울철쭉의 독서일기'라는 인기 있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시던데요
 
A 말 그대로 '그냥' 만든 건데요. 자기 강제의 측면이 강하죠. 스스로 책 읽고 글 쓰게 하려고, 책 읽을 계기를 주려고 만들었어요. 이거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잘 되든 아니든, 쭉 해볼 생각이구요.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읽은 책 중 좋은 책 2권을 추천해 드릴께요. 하나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녘)이라는 책인데요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 유기 농업으로 사회전체를 생태적으로 개조하고 스스로 '再生'된 쿠바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우리가 건설해야 할 사회주의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을 때 쿠바가 매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사회주의자의 사기를 높여주는 책이죠.
또 하나는 '서준식의 생각'(야간비행)이라는 책이예요. 사실 저는 '책'의 가치는 이론적으로 어떤 새로운 사고를 제시하는가에 있다는 생각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인 것만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활동가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새로 하게 되었죠. 제 활동에 대한 반성들에 또 몇 개의 목록을 더 해준 책입니다.
 
Q 사회진보연대가 회원들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인천지부에서 회원활동을 하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낮은 수준부터 회원 활동이 가능해야겠죠. 조직 운영 전반에 대한 논의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회원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 모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무규정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식 활동 뿐 아니라 회원들 대상으로 하는 작은 기획들을 실제로 진행해보는 것도 필요하구요.
 
Q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주세요.
 
A 땅에 발을 딛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대중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대중과 교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사회진보연대는 언제나 정세적으로 올바른 분석으로 사회운동의 내용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합니다. 활동기풍이 바꿔나가야겠죠. 전이뿐 아니라 역전이도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진보연대를 보면 역전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진보연대 둘레의 안테나를 적극 활용해야죠.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이 아닌 활동가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사회진보연대 '주류' 노선과 쟁점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마다 활동가들의 입장 속에는 그들의 활동 안에서 형성된 진실이 있을 거고 서로간의 교통 속에서 서로 그것을 배워갈 수 있겠죠. 집행위원들과 대중단위 활동가, 양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죠.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준형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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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하여] 걸으면서 생각하기와 뛰고나서 생각하기

오랜만에 만난 윤병우 선배가 말했다.
 
"천천히 걸으면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데 뛰면 생각할 수 없고 그뒤에 숨을 고르기에 급급하다"
는 선배의 말.
 
책을 읽을 때도 급하게 읽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생각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할 수 있다. (그냥 책을 하나씩 '떼는'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려러고, 권수를 늘이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빨리 더 많이 라는 소비자본주의의 덕목과도 유사하다.
 
오히려 중요한 책, 몇번이고 읽어야할 책을 그렇게 읽고, 찬찬히 보아야한다. 보면서 자기 머리로 책의 내용을 생각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자신의 것으로 되씹어 소화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뛰듯이 읽어서는 모두 잊혀질 뿐이다.

** 독서일기를 다시 쓰는 것이 이런 점에서 필요하다. 속도보다 제대로된 책을 꼭 제대로 읽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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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만들다

새 블로그를 진보넷에 만들었습니다. (여기군요)
 
만들어 놓고 잘 사용하던 개인 홈페이지를 한참동안 관리하지 않으면서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거든요.
 
(타이틀바에도 링크는 걸려있습니다)
 
뭐랄까, 오래살던 집에서 이사가는 느낌입니다. 안그래도 얼마있다가 사는 집도 이사할 형편인데 기분이 묘하군요.  이사를 가서는 책장을 하나 장만할 생각입니다. 집에 있는 책장이 모자라서 책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데 늘 마음이 아팠거든요.
 
아마도 이 블로그도 하나의 책장이 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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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적 성향은?

보라돌님의 [정치적 성향 알아보기] 에 관련된 글.
 
 
 
아래 링크에 가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설문을 통해서 평가해주는군요.
 
http://www.digitalronin.f2s.com/politicalcompass/questionnaire.php
 
제 경우에는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흠흠..

Your political compass

Economic Left/Right: -9.63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7.08

 
기성정치인들은 아래와 같은 분포를 보인다고..
아래에 있는 것은 제 것을 그림 상에 나타낸 경우군요. 거의 뭐 구제불능의 리버럴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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