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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회진보연대에 실렸던 제 인터뷰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기관지(이제는 '사회운동'이라는 제호로 나옵니다)에 실렸던 글입니다. 제 인터뷰인데, 제 블로그에 대한 개인 소개 겸 해서 올려봅니다. 하는 일, 직책 등.. 중심적인 고민은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뭐 대동소이합니다.
 
그러고 보니 밑부분에는 홈페이지 이야기도 나오는군요. 흠흠..
 
 
***
 
[회원코너-바로그한사람]  박준형 회원을 만났습니다. 
진재연 | 편집부장 


4월의 봄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하루 일정을 마친 박준형 동지를 만났다. 박준형 동지는 단위노조일정을 마치고 뒤이어 마련되었던 삼겹살 뒤풀이마저 포기하고 회원코너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 주었다. 그는 공공연맹,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박준형 동지 개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조목조목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대중운동 경험에서 느꼈던 진솔한 이야기를 실타래 풀 듯 이야기했고, 우연적인 계기들 속에서 얻은 교훈과 반성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였다. 개인활동의 경험이 하나하나 쌓여서 운동의 원칙을 세우게 됨을 깨닫게 하는 자리였다.
 

Q 공공연맹에서는 언제부터 일 하셨어요?
 
A 연맹 사무처는 2002년 가을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정보통신관련업무를 했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조직실에 있죠. 공공연맹은 업종별 분과위원회로 조직이 편재되어 있는데, 저가 담당하는 곳은 '공공시설환경관리분과'예요. 지방자치단체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합원들이죠. 환경미화원이나, 도로보수, 녹지관리 등의 일을 하는 상용직 노조 등을 담당하고 있어요.
 
Q 어떻게 공공연맹에서 활동하게 되셨죠?
 


2002년에는 제가 노조 부위원장을 맡았죠. 임단협을 하면서 임금인상, 연봉제 도입저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주요 요구로 내걸었죠. 사측은 임금인상은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임금인상 요구는 양보하더라도 비정규직 정규직화 만큼은 꼭 이뤄내서 앞으로의 투쟁에 '디딤돌'을 만들자는 것이 노조의 방침이었는데, 특히 이 부분이 진전이 없었죠. 노조는 파업까지 전제로 하는 단계별 투쟁을 시작했어요.
말로는 노조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사실 사장은 회사의 관리방침에 순응하는 의견수렴기관인 노조를 바라고 있었던 거죠. 노조의 투쟁수위가 높아지니까 돌연히 사장이 잠적해버리는 거예요. 당시 회사는 현금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었는데 사장의 잠적은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죠. 회사가 망하냐, 인수되냐 하는 흉흉한 유언비어가 나도는 가운데, 조합원 안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비정규직과 정규직, 물류 부서와 사무직 부서 사이에 갈등도 있었어요. 일부에서는 사장을 불러오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노조를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입장도 강경했죠. 그런 상황에서 조합원 총회를 진행했고 '지도부 탄핵' 안건이 상정되었지만 부결됐어요.
사측이 위원장, 부위원장 퇴사를 조건으로 사장이 돌아온다는 안을 던진 게 총회가 끝난 후였어요. 근데 내부적인 진지한 논의 없이 위원장과 제가 이 안을 수락했는데, 당시 그 결정은 알라딘 노조에게나 저에게나 어떤 의미에서든 하나의 중대하고 영구적인 전환점이 되었죠. 당시 지도부의 입장은 회사정상화를 통한 고용안정 확보였거든요. 이 결과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단결과 투쟁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반대로 회사에 항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했던 것이죠. 총회에서 조합원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꼴이 되었구요. 위원장과 저는 2002년 5월에 퇴사를 했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결정이어요.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했어요. 이런 패배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의식 있는 활동가'를 지향한다면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한 것을 반성했고 물론, 그런 '실수'를 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대중들과 올바르게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 나의 문제로써 어떤 결정을 해야하는가, 어떤 점이 취약했을까?" 2002년 발전파업 때 잘못된 지도부의 판단을 비판했지만 결국 나도 같은 판단을 한 것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활동의 원칙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삼 깨달았어요. 당시 대중들의 모습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죠. 대중은, 어떤 측면/순간에는 한없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어떤 측면/순간에는 한없이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이런 양면성이 교차하는 모순적인 존재인 것 같아요. 아무튼,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아직도 제 활동의 중요한 목표죠. 아직 저에게 "대중"은 그 자체로 거대한 수수께끼라고나 할까.
퇴사후 반성의 시간을 갖고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또 합격했죠. 마침 공공연맹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있었구요. "좋은 경험하는 셈치고 한번 해봐라"는 말에 마음을 먹었어요.
 

Q 공공연맹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습니까?
 
A 공공연맹에 와서 처음 3개월 정도는 조직이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놀랬죠. 규모가 크고 역사가 있는 조직이다보니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치밀한 활동의 메카니즘이 있더라구요. 활동가들의 실력이나 판단능력도 대단했구요. 이런 곳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 설 정도였죠.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니까 문제점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효율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관료화, 개량화 되어 있었죠. 그 장단점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배울 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경험'의 공력은 대단한 것인데, 공부는 너무 안 하거나 할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죠.
개인적으로는 특히 조직실에서 이용석 열사투쟁을 하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노조운동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 실마리가 아주 조금은 보인다고 할까요. 그걸 각각의 투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역사적 투쟁 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또 남겨야 할지가 고민이죠.
최근에는 단위사업장을 넘어서는 수준의, 연맹이나 총연맹, 전체 노동자운동을 조망하는 시각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정세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계급대립의 지점에 대한 포착만이 아니라 전체 투쟁의 구체적인 조건과 상황을 조망하는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죠.
 
Q '노조운동의 원칙'이 실마리가 보인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글쎄요. 아직 그냥 '감'인데요. (웃음) 아직은 대중간부로서의 원칙정도에 불과해요. 대중에 대한 신뢰가 문제인 것 같아요. 대중조직의 관료는 '대중이 판단해야할 때 자신이 판단하겠다고 나서고, 자신이 판단해야 할 때 대중에게 판단을 미룬다'는 말을 어떤 선배활동가가 했는데, 곱씹어볼 말 아닌가요? 간부에게는 대중에 대한 신뢰가 문제라면, 대중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기결정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문제죠. 노동부문 연석회의 할 때 대중단위에 있는 스스로를 가리켜 '관료'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사실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관료주의는 대중조직 활동가가 자신의 안팎에서 항상 직면하게 되는 위험이니까요. 주변에 중년의 노조 활동가 중 어떤 분들은 '관료'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그런 고유한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활동가의 윤리학 정도에 머무는 고민이고 여전히 알라딘 노조에서의 문제의식의 연장에 있지만요.
 

Q 최근 공공연맹에서는 위원장 성폭력 사건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사건 해결과정을 보면서 느꼈던 점과 현재상황을 이야기 해주세요.
 
A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좌우파 모두의 기회주의'는 매우 실망스러웠어요.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고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사건을 이용하려는 모습뿐이었죠. 해결을 위한 활동과정에서 나타난 정파간 상호비방은 올바른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겠죠. 피해자가 사건을 드러낸 것은 '정치적' 제기가 아니었고, 성폭력 자체를 문제제기 하고자 한 거잖아요. 그런데 좌파든 우파든 대부분의 남성활동가들은 시종일관 이 사건을 (노동조합 내부'정치'라는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마치 그것이 '현상 뒤의 대단한 본질'이라는 식으로 제멋대로의 망상에 빠져있었죠. 오히려 그렇게 망상하는 사람들이 내부정치에 사건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없던 정치적 의미들이 겹겹이 덧칠해졌구요.
어떤 입장도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죠.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여성활동가들도 원칙을 세워 활동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왜곡과 음해가 판치는 상황에 일침을 가하면서 여성이 스스로 세력화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죠. 사건을 거치며 연맹은 지도부의 지도력이 훼손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죠. 위원장 보궐선거는 후보 등록이 없어 무산된 상태구요. 그야말로 오리무중인데, 얼마 후 있을 임시대의원대회(4월28일)에서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겁니다.
 
Q 분위기를 전환해서 '겨울철쭉의 독서일기'라는 인기 있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시던데요
 
A 말 그대로 '그냥' 만든 건데요. 자기 강제의 측면이 강하죠. 스스로 책 읽고 글 쓰게 하려고, 책 읽을 계기를 주려고 만들었어요. 이거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잘 되든 아니든, 쭉 해볼 생각이구요.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읽은 책 중 좋은 책 2권을 추천해 드릴께요. 하나는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녘)이라는 책인데요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 유기 농업으로 사회전체를 생태적으로 개조하고 스스로 '再生'된 쿠바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우리가 건설해야 할 사회주의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을 때 쿠바가 매우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사회주의자의 사기를 높여주는 책이죠.
또 하나는 '서준식의 생각'(야간비행)이라는 책이예요. 사실 저는 '책'의 가치는 이론적으로 어떤 새로운 사고를 제시하는가에 있다는 생각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인 것만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활동가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새로 하게 되었죠. 제 활동에 대한 반성들에 또 몇 개의 목록을 더 해준 책입니다.
 
Q 사회진보연대가 회원들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A 인천지부에서 회원활동을 하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낮은 수준부터 회원 활동이 가능해야겠죠. 조직 운영 전반에 대한 논의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회원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 모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무규정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식 활동 뿐 아니라 회원들 대상으로 하는 작은 기획들을 실제로 진행해보는 것도 필요하구요.
 
Q 사회진보연대에 바라는 점을 이야기해주세요.
 
A 땅에 발을 딛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대중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대중과 교통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사회진보연대는 언제나 정세적으로 올바른 분석으로 사회운동의 내용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합니다. 활동기풍이 바꿔나가야겠죠. 전이뿐 아니라 역전이도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진보연대를 보면 역전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진보연대 둘레의 안테나를 적극 활용해야죠.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이 아닌 활동가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사회진보연대 '주류' 노선과 쟁점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마다 활동가들의 입장 속에는 그들의 활동 안에서 형성된 진실이 있을 거고 서로간의 교통 속에서 서로 그것을 배워갈 수 있겠죠. 집행위원들과 대중단위 활동가, 양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죠.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준형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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