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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

미루가 얼굴도 건조하고

또 변비가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갔습니다.

 

"선생님, 얘가 또 며칠 째 똥을 안 싸는데요..."

 

"어디, 애 거기 눕혀봐요..."

 

의사선생님은

미루 배를 꾹꾹 누르십니다.

 

"뱃속에 딱딱한 게 조금 만져지긴 하는데,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예요..."

 

"네..."

 

"가만 있어봐...좀 더 확인해볼까? 기저귀 좀 내려주세요"

 

뭘 하실려고 그러시나

궁금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비닐 장갑을 끼더니

순식간에 미루 항문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으아아앙~~"

 

아,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미루는 난생 처음 당하는 정말 당황스러운 일에 놀라

엄청 크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눈물까지 뚝뚝 흘립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돌립니다.

 

순간,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 10년 전쯤에 장이 안 좋아서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었습니다.

 

검사실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의사선생님은 안 계시고,

그냥 웬 아저씨가 작은 페인트 통에 담긴

흰 액체를 젓고 있습니다.

 

"저기, 대장 검사 하러 왔는데요..."

 

"아, 왔어요? 잠깐 이것 좀 젓고 있어요.."

 

그 아저씨는 처음 본 저에게

자기가 젓고 있던 흰 액체를 좀 저으라고 했습니다.

 

검사 받으러 온 환자한테

일을 시킨 겁니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자, 인제 이 가운으로 갈아입고 저기 누워요...속에는 옷 다 벗고.."

 

기계 위에 누웠습니다.

 

아저씨는 어디선가, 석유통에서 난로로 석유 옮길때 쓰는 도구 비슷한 걸 가져오더니

한 쪽 관의 끝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저한테 푹 꽂았습니다.

 

"헉..."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도구의 다른 한 쪽 끝은 아까 제가 저었던

하얀 액체에 담겨 있었습니다.

 

"쭉, 쭉, 쭉..."

 

하얀 액체가 관을 타고 몸 속으로 들어갑니다.

 

"모니터 봐봐요...저기 하얀거 퍼져 나가죠? 저게 있어야 사진이 찍혀요.."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미루가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심정을

저는 잘 압니다.

 

"뭐, 똥 거의 안 찼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네..."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

저는 다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미루를 위로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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