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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재우기 위해 집을 나서다

오늘은 아침 10시부터

미루가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결심한대로 미루를 번쩍 들어 안아서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무 보채는 게 걱정이 돼서

병원으로 먼저 갔고 아픈 데는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인제 어디 갈까?"

 

택시를 타고 백화점엘 갔습니다.

 

평일 대낮에 백화점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올까 궁금했었는데

 

그곳은 유모차의 세상이었습니다.

 

수십만대의 유모차가

저희들 앞에서, 뒤에서 지나갑니다.

저 앞쪽 코너를 돌아나오고, 길을 건넙니다.

 

떡볶이를 사먹는 엄마들 4명 뒤엔

유모차 4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보채는 애를 달래면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도 있습니다.

"응~아이스크림이 아직 꽁꽁 안 얼었대.."

별 뻥을 다 칩니다.

 

자기 유모차를 자기가 끄는 애들도 있습니다.

엄마가 좀 편해보입니다.

 

이런 저런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렇게 백화점 이곳 저곳을

3시간 동안 왔다갔다 했습니다.

 

"인제 집에 갈까~?"

"지금 들어가면 또 울것 같애.."

"그럼, 조금만 더 있자.."

 

둘 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너무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신세입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좀 편하게 쉴 수 있는 데를 찾아보자.."

 

백화점 옆 공원을 갔습니다.

그 사이에 미루는 놀랍게도 잠이 들었습니다.

 

공원 안에서 벤치를 찾은 우리는

혹시 다른 사람이 앉을까봐

서둘러서 벤치를 차지했습니다.

 

주선생님은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했고

저는 그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더니

자는 미루와 안 자고 있는 자기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합니다.

 

"애기 자네...너도 자라...휴..."

 

아,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30분 쯤을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벤치를 덮고 있던 나무그늘이 옆으로 옮겨갈 때 쯤

인제 일어나서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아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우리 앞을 지납니다.

애기는 아직도 안 자고 있습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들어가니

그곳 역시 엄마와 아이들이 총출동입니다.

 

한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었습니다.

 

애가 둘인 엄마는 한 손으론 큰 아이 손을 잡고

끌고 온 유모차의 의자 앞쪽으로 작은 아이를 앉히고

의자 뒤쪽에 물건을 이것저것 놓습니다.

 

우리는 제가 유모차를 밀고, 주선생님이 카트를 미니까 훨씬 낫습니다.

시식 코너에서 강세를 보입니다.

 

그럭저럭 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싱크대엔 설거지 거리가 그대로 있고

기저귀도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아침에 잠깐 켰던 컴퓨터는 켜진 체이고

먹고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려던 가지볶음은 식탁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침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도 집이 편합니다.

퉁퉁 부은 다리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살 것 같았습니다.

 

...

 

30분 후에

우리는 보채는 미루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백화점 보다 배는 시원한 공원 공기를

1시간 30분 동안 실컷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온 삭신이 다 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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