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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09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발리바르-역사유물론 연구]
    달콤한상상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발리바르-역사유물론 연구]

출처: http://currentinside.net/mirrh/view.php?id=AB&no=220 (Power to the People)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에띠엔 발리바르 지음/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위치
  엥겔스; 정치경제학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인간 사회의 물질적 생활 수단의 생산과 교환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과학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어떠한 새로운 개념도 도입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비판적 작업을 되풀이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경제학적 개념에 신비적으로 반영된 모순의 표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다. 이 잉여가치에 대한 입장이 여러 논자들을 특징짓는다.

맑스주의의 문제제기
  맑스의 문제는 동일한 수준에서의 대체, 확장이 아니다. 차이는 대답의 수준이 아니라 이에 앞선 질문의 수준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관점의 적절한 이론적 정식화는 정치경제학의 제 곤란을 해결하기는커녕, 그 속에 해결불가능한 제 모순을 도입한다. 맑스의 이론은 하나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제 조직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정치적 위기를 격화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사회구성체 개념의 도입
  맑스 이론의 제한; 맑스의 이론이 연구하는 것은 제 사회구성체 일반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만의 역사적 경향이다. 보다 정확히는, 혁명의 필연성을 낳고 발전시키는 모순과 이 모순의 통일이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존재양식은 분석한다. 이 분석은 생산에서의 그 위치와 효과에 의해 현존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에 자신을 둔다. 이 관점의 변경은 이론적 단절(연구대상의 변경), 실천적 단절(계급적 관점의 변경)의 통일로 실현된다. 또한 이 두 가지 변경은 서로의 변경 속에서 실현된다.

맑스주의 내의 두개의 기회주의적인 경향
  ①객관주의적 경향; 맑스의 고립된 정식을 이용, 제국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만들려 시도한다. 부르조아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제 개념을 수용한다. 맑스주의를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에 병렬시킨다. ②주관주의적 경향; 맑스주의를 하나의 '학과'로서, '비판'으로서만 사고한다. 맑스주의를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비판'으로만 소극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연구대상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규정한 본질적인 두 가지 부분
①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이론적 정의 ②프롤레타리아, 부르조아 계급의 이론적 정의



1.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잉여가치론 (118)
(1) 불가능한 자본주의 경제사
여러 가지 부르조아 경제학의 관념
  (신)고전파; 자율적인 경제 체계가 존재하며 이 체계는 '외부적' 요인들, 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제 질서의 개입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롭다.
  케인즈; 독립적 경제주체인 '국가'를 상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체계의 구조 속에 기입되어 있다.
  이 속에서 체계의 전화과정이란 의미에서 진정한 경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경제적 사실만의 기술이 있을 뿐이다.

맑스주의자가 공유하는 부르조아 경제학의 관념
  균형, 변동, 성장 대신 경제적 진화의 법칙에 대한 관념을 대체시켰다. 이것은 생산체계 발전의 제 단계를 선험적으로 제시하고 그 대체를 증명하려 한다. → 이들은 역사적 계급투쟁에 대해 부차적인 기능만을 부여한다.
  이러한 관점은 카우츠키, 플레하노프, 스탈린이 공유한 관념이다. 이들은 이론적으로 부르조아 경제이론과 동일한 지반 위에 서있다. 생산력 발전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동떨어진 그 자체 설명 불가능한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경향으로 생각한다.

(2) 역사적 생산양식의 문제 설정 (122)
독특한 역사적 제 조건의 연구
  특정의 사회구성체의 구조를 구성하는 사회적 제 관계(생산관계)가  축적, 성장 등의 경제적 제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며 그 역은 아니다.(생산력-생산관계의 관계에서 생산관계의 우위) 사회관계로서 자본의 역사적 제 조건의 전화와 그 특징을 '경제분석' 속으로가 아니라 경제학이 인식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문제의 입장(계급투쟁!)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자본을 상품생산의 사회적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단지 '하나의 생산요소'로 보이는 임노동이 자본의 본질적인 규정임이 밝혀진다. 여기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사회적 계급투쟁의 인식이 가능하다.
사회과정의 설명에 대한 새로운 결합의 설정
  고전파적 표상에 의하면 모든 '경제외적' 요인은 자연적 경제법칙의 객관성과 대립되는 '주관적' 결과이다.그러나 이 해결은 관념의 강조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제 관계의 결합의 독자적인 형태를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여야한다. 즉, 이들 모든 관계나 그 경향적 변형이 생산의 제 조건의 생산 및 재생산에서의 물질적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양식 개념의 도입
  전제; 제 생산양식의 일반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생산양식은 독자적인 이론에 의존한다. 다만 그 일반적인 과학적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①생산양식은 생산적 노동자, 비생산자, 물질적 생산수단 사이에 전제하고 재생산하는, 제 생산관계의 성질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 지워진다. 여기에 비생산자계급의 존재 때문에 생산양식은 사회적 노동의 착취양식이다.
②생산양식은 생산관계의 존재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적 제 생산력의 성질에 의해 부차적으로 특징 지워진다. 모든 생산양식은 특정의 생산관계의 효과에 의해 현존의 생산력이 겪는 경향적 전화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생산관계-생산력의 상호고립이나 절대적 조응이 아니다. ex. 자본주의-사회적 기술적 분업의 성질
③생산양식은 제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상부구조의 형태와, 이 형태가 생산관계가 전화하지 않는 한에서 변동하는 한계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3) 자본주의 생산양식 :잉여가치 (126)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기본적으로 성격 짓는 것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 속에서 노동자와 자본을 대립시키는 생산관계이다. (잉여가치의 존재가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양식과 구별한다.)
  상품가치의 잉여가치와 노동력 가치로의 분할은 사후에야, 자본주의적 생산 조직의 결과로 발생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잉여가치의 생산이 동시에 가치의 형성과정이다.

잉여가치의 통속적 정의와 그 문제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소비수단의 가치 이상으로 사회적 노동에 부과된 신 가치의 초과분이다.
  통속적 정의의 문제; ①잉여가치의 회계화로 본질이 은폐된다. (초과적 가치의 존재와 그것의 비생산적 계급의 영유도 공통적이다.) ②자본주의에서 왜 모든 생산물이 가치형태를 취하는가에 대한 문제의 해결을 전제한다. 잉여가치를 올바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형태로 정의해야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이 초과분의 확보는 생산과정 밖의 외부적 강제가 아니라 동력이 생산력에 합치되는 직접적 생산과정 내부에서의 강제를 통한다.)
  cf. 이 초과분이 확대된 규모로 생산수단의 축적에 기여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을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

상품의 가치의 형성
  상품의 가치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a.생산수단에 대응하는 부분 b.노동력 가치에 대응하는 부분 c. 초과분에 대응하는 부분.
  생산수단의 위치; 생산수단은 노동력의 지출 속에서만 재생산되어 생산물에 이전된다. 생산적인 노동력의 소비가 없다면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생산될 수 없다. 또한 생산수단은 이 소비의 '흡입'수단이다.
  여기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간의 본질적 차이는 상품형태의 화폐적 표현 속에서 주기적으로 소멸한다. 이 차이는 자본의 가치 증식과정인 생산과정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차이는 또한 자본을 전 사회적 규모에서 분석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

잉여가치의 형성
  이러한 가치보존-가치창조의 이중과정은 잉여노동을 생성시키는 자본주의 고유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제 생산양식의 본질은 영속적으로 잉여노동을 노동의 필요조건 일반으로 하는 과정의 모순적 통일이다.
  이것은 곧 계급투쟁의 특정의 제형태의 내적 결합의 분석이다. 잉여가치란 이 착취형태들의 유기적 통일이며 생산과정에서의 계급투쟁이다.
  잉여가치의 정의에서 이것은 계급투쟁이 파생되는 경제적 메커니즘으로 정의하는 경제주의, 억압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적으로 열거하는 절충주의를 모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부르조아 정치경제학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관점; ①가치형태란 무조건적 전제이며 설명되지 않는다. 오직 주어진 한에서의 가치의 양적 변동만이 문제이다. ②(고전파의 경우)노동시간과 상품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 어떠한 조건하에서 노동은 측정 가능한 크기가 되는가./ 왜 노동이라는 양은 가치라는 대리자의 양적 형태로 간접적으로 표현되는가.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이 회피하는 문제; ①생산물의 양적 결정이 가치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포하는 사회적 과정의 구조란 무엇인가? ②노동력을 일정가치의 상품이게 하고 그것을 생산물 속에 기장할 수 있게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③ 소비수단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균등성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노동력 가치의 결정은 노동자의 소비를 노동력의 단순 재생산으로 축소시키는 계급투쟁의 형태에 의존한다.

사회적 노동의 분석
  보다 근본적인 가치의 원천으로서의 사회적 노동의 분석은 착취의 문제이다.
  맑스의 문제지점; 가치의 양적 원리의 결과의 발견이 아니다. 생산물에 가치 형태를 보편적으로 부여하는 사회적 노동조직의 특수형태, 즉 계급적 적대관계를 내포한 사회적 노동조직의 특수형태를 설명하고 이들 조건의 역사적 전화를 문제삼는다. 착취를 경제적 메커니즘의 결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의 이중성의 전면적 발전
  노동의 이중성의 발생은 생산수단을 노동력으로부터 분리시켜 이 노동의 직접적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인간 노동을 흡입하는 수단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다.

(4) 자본주의 생산양식; 토대와 상부구조 (135)
자본주의의 '경쟁적/독점적 단계'
  이른바 자본주의의 '경쟁적 단계'란 사실 경쟁이 아직 덜 격심하고 불균등한 단계이다. (19c 유럽)
  이에 비하여 '독점적'이라 불리는 단계는 사실상 경쟁이 가장 격렬한 단계이다. ('민족적 질곡'이라는 것도 경쟁이 극도로 발전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독점자본주의는 경쟁의 폐지가 아니라 경쟁의 격화이다.

결정력이 불균등한 두 요소의 통일로서의 자본주의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제 생산관계의 기본적인 요소를 이룬다. 이것은 우리가 기본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화폐자본의 금융시장과 상품기장에서의 제 자본의 운동, 따라서 그 고유의 모순을 동반하는 자본간의 경쟁과 집적의 운동은 이 기본적인 측면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부차적인 요소이다.

화폐소유와 법적 소유
  자본제 발전에서 역사적으로 개인적인 '법적 소유'의 일반화가 달성된다. 소유에 접근하는 수단으로서의 화폐소유와 함께 법적 소유도 화폐를 처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전 인민의 국가'
  기본적 생산관계 그 자체는 형식적 평등에 기초한 생산자와 비생산자 간의 개인적 자유(적어도 시민적인)의 경향적 발전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발전된 상부구조의 제 형태, 특히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제 형태를 생산관계와 접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본제 국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인민의 국가'로 모든 개인의 '대표자'로 나타난다.

(5) 사회구성체 (137)
추상적 정의
  ①이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 사회계급의 총체이다. 혹은 보다 엄밀히 말해 제 계급 상호간의 관계의 총체이며 이것이 역사적인 계급투쟁의 구조를 형성한다.
  ②이들 계급관계는 모두 실천적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불균등한 결정력을 갖는다. 도식적으로 사회구성체는 생산, 유통의 제 관계('경제적'이지는 않으나 '경제적 효과를 낳는' 제 관계)라는 물질적 토대와 상부구조의 총체이다.
  ③'재생산의 총과정'의 연구가 필요하다. → 이것이 토대/상부구조의 역사적 조응의 열쇠이며 제 생산관계의 결정적 역할을 표현한다. 제 사회관계의 모순적 통일의 핵심이다.

철학적 주의사항
  ①사회구성체는 특수한 생산양식, 그것이 내포하는 계급투쟁의 발전으로부터 생기는 구체적 형태로만 존재한다. → 추상적 정의는 오직 실재분석에 도입될 때 정확히 볼 수 있다.
  ②사회구성체의 분석은 결코 전체성의 표상은 아니다. '진정한' 구조, '최종적' 원인을 알기 위하여 '모든' 측면을 '예외없이'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된 전체성의 야망은 하나의 이론적 환상이다.
  ③과학적 분석의 목표는 계급투쟁에 대하여 불균등하게 작용하는 제 관계 속에서 그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성의 표상이 아니라, 경향적인 결정, 제 결정의 불균등성과 복합성, 그리고 그것이 결합되는 구체적인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④이러한 의미에서 사회구성체는 혁명투쟁의 전술·전략의 정치적 실천의 두드러진 목표이다. →기본적인 적대관계(자본/프롤레타리아)가 다른 모든 적대관계에 의해 어떻게 '과잉결정'되며 또 역으로 어떻게 그것을 결정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계급적대의 다양한 제 형태를 서열화하고 접합시킬 필요가 있다.

계급분석에 대한 테제
  ①맑스주의 계급분석은 계급에 대한 역사/통계/사회학적인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계급분할의 영속적 과정과 그 연속적인 제 형태에 대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관계 자체의 분석-자본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②맑스주의 계급분석은 제 계급을 통일, 즉 대립시키는 관계 내부에서의 제 계급의 본질적인 비대칭성을 드러낸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의 관계는 위계제도, 대면하는 유사한 제 항(項)의 한 짝도 아니다. 적대관계는 일대일 대응관계가 아니다.(자본 자체의 분석 속에서 그것을 기초지을 수 있어야 한다.
  ③제 계급은 사회집단과 구별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집단을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면 계급적대와 그 효과의 외측에는 어떤 다른 것도 위치하지 않는다. 사회계급의 역사는 착취의 발전에 의해 창조된 제 조건의 총체에 기초한 재생산의 역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의 양극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는 경향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라는 두개의 현실적 계급만이 존재한다. 지배적이지 않은 다른 관계조차도 자본에 의해 경향적으로 파괴되어 자본은 계급적대를 단순화, 철저화시킨다.
  새로운 사회학적 집단-'중간층'조차도 계급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계급투쟁의 발전의 효과로서 재생산 과정 안에 위치한다.

두 계급의 상이한 위상
  프롤레타리아; 토대에는 생산 그 자체에 있어서의 착취의 조직이 있다.
  부르조아; 토대에는 독자적인 제 모순을 수반하는 제 개별자본의 유통/축적의 과정이 있다.

2. 계급적대의 첫번째 위상; 프롤레타리아와 자본 (141)
계급분석에서 주의할 점
  맑스주의의 위대한 이론가들은 사회학자들과는 달리 실재로 제 사회계급의 일람표를 제시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V.I.Lenin;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산체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대개의 경우 법률에 의해 성문화된)에 의해,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에 의해, 따라서 그들이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사회적 부의 획득양식과 그 중요도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인간들의 큰 집단을 계급이라 부른다. 계급이라는 것은 특정의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차이로 인하여 그 중의 한쪽이 다른 한쪽의 부를 전유할 수 있는 인간집단이다.
  위의 정식은 계급투쟁 이전의 통계적 분류를 우선하지 않는다. 계급관계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의 대상을 이루는 것은 직접적으로 제 계급의 적대구조와 그 변형과정이지 그에 선행한 분류가 아니다. 계급의 일람표를 구성하는 것은 법적/사회학적/수입상의 서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되는 비생산자 계급에 의한 잉여노동의 전유 메커니즘이다.  

(1) 노동자계급의 '분파'와 경향적 분할 (144)
  노동자계급의 분파는 현존하는 제 생산수단의 사용조건이며 동시에 그 역사적 변형의 조건이다. 이의 분석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의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노동자계급은 그 역사적 통일성에 의하여 정의해야한다. 이 통일성은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시기의 하나의 경향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처음부터 제 분할, 나아가 제 모순으로 정의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성은 분할의 작용에 의해 직접적 생산과정/노동력의 재생산과정 속에서 경향적 통일성으로 형성된다.

비숙련 노동자
  이 노동자 부분은 '이동성', 즉 최대의 고용 불안정성을 갖는다. 따라서 교체가능한 노동자간의 직접적 경쟁도 최대이다. 이들에게 노동력 시장은 지배적 구매자의 독점일 뿐이다. 이들은 분업의 최첨단에서 완전히 기계제에 통합되어 자본제 생산과정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하층분파'가 아닌 것이다.)
  cf.실업; '호경기'나 '완전고용기'에 조차 실업은 존재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급속한 소모와 조합에 대한 투쟁수단으로서 인원의 급속한 회전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숙련 노동자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조합적/정치적 조직의 역사적 토대를 형성한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분파이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귀족과는 혼동되어서는 안된다.이들은 표준노동의 위쪽부분의 직업부류의 노동자가 아니라 대공업에서 과업의 세분화로 인하여 스스로 전문화된 노동자이다.
  이들은 경향적으로 노동의 탈 숙련/과도숙련의 사이에 위치한다. 산업의 불균등한 발전은 새로운 숙련을 창조하지만 사실상 기존의 숙련을 소멸시키거나 비숙련에 접근시킨다.
  이에 비해 노동귀족은 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극히 소수이고, 특정의 생산부분에 제한되어 있다.

현재의 경향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기술적 분업은 변동은 하지만 완화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들의 제 분파는 자본제적 분업의 동일한 경향의 제 효과에 종속되어 있다. (숙련의 정도와 무관하게)
  그러나 그 일부는 프롤레타리아트화의 경향을 벗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생산적 노동에 더하여 노동의 조직 및 지휘의 영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재생산 과정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 (150)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이라는 문제
  분류라든가 단순한 기술학적 서술을 넘어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은 그 고유한 역사적 전화와 독립적으로는 계급으로서 정의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형성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 내에서 사회적, 기술적 분업의 역사를 포함하며, 이 분업의 역사는 노동자계급의 통일 및 그것에 상응하는 현실적 분할을 부여하는 제일의 요소이다.

노동력 재생산의 관점과 분석을 개입하는 필수적인 이유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자신으로부터 자손에 의해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주어진 생산과정의 상태가 결정하는 사회적 제 조건의 총체에 입각해서 재생산된다. 이 과정은 생산과정과 모순될 수 있다.(학교-대학/가족/청년의 위기 등)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는 것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전화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최대한의 잉여가치 생산성이라는 견지에서 상이한 노동자 분파를 사회적 규모에서 동일한 '집합노동자'안으로 통일시키는 기능적 관계이다. 주어진 노동수단의 기초 위에서 각자의 노동을 다른 사람의 노동을 최대한 착취하는 수단이게끔 하는 관계의 기능적 통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존재의 물질적 토대는 단지 기계체제로의 노동자의 통합, 그들 노동력의 '생산적 소비'만이 아니다.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보증하는 제 조건의 총체도 그 물질적 토대이다.
  현존의 제 조건에 따라서 잉여가치 생산을 최대한으로 하는 결합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자본제 생산요소의 관리, '경영'의 주요 목표이다.

기술의 발전
  물질적 생산의 제 전형은 생산의 기술적 발달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자본이 그것에 필요한 노동력을 발견해 내려고 집적하는 제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의 내부에서의 생산력의 발전은 그것이 그 실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역사에 의해 지휘되고 지배된다.

제국주의의 두 경향
  제국주의는 자본수출을 통해 식민지의 수공업을 파괴하고 식민지의 단순노동력을 본국으로 수입하므로서 산업예비군을 창출한다. 이에 따라 제국주의는 노동자들 사이의 특권 범주를 만들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분할시킨다.

프롤레타리아트화
  프롤레타리아트화는 우선적으로 노동자계급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업.금융자본 및 국가 공무원으로 불리는 노동자와도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노동력은 잉여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자본의 재영유를 위해 착취당한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제 분파를 경향적으로 통일시키는 계급적 통일의 원리를 그들 자신의 생산적 기능 속에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생산과정은 일반 노동자의 그것에 접근하며 이들은 단일한 노동시장에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도 일치하여 간다. (ex.제국주의에서의 학교교육의 일반화) 노동자계급이 피착취노동전체의 역사적 중핵을 이룬다는 것을 승인케하고 그 새로운 제형태를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객관적 존재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화의 불균등한 과정 하에서만 역사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조는 주어진 사회구성체의 역사적으로 특정한 제 조건 속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화 경향의 지표일 뿐이다. 노동력의 재생산의 관점을 도입하는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계급의 존재
  어떠한 시기에 통일적인 '계급의식'과 함께 계급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동일화시키는 것은 주어진 물질적 제 조건 속에서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제 계급 사이의 제 관계이다.
  사회계급은 그들의 관계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과로서 생긴다. 사회의 사회계급으로의 분할은 그들의 역사적 투쟁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계급 개념은 '공통의 본질'이라는 표상을 갖는 개념이 아니다. 맑스주의에서 계급개념은 어떤 집합을 이루는 제 요소의 유사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체계 또는 분할의 체계를 지칭하며 이 차이는 물질적으로 결정된 적대의 효과 아래서 발전/전화한다.
  사회계급의 맑스주의적 분석은 분류가 아니라 사회계급의 분석, 이것은 사실상 계급투쟁의 분석이다.

프롤레타리아 정당
노동자계급의 상이한 분파가 착취에 반대하여 벌이는 투쟁은 '자생적으로는' 단일한 혁명적 실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투쟁을 요구한다. 이 투쟁의 도구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제 모순의 '해결'이다.

3. 적대의 두번째 위상: 자본과 부르조아지 (158)
질문의 방향
  부르조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어떠한 특정의 사회구성체에 있어서 자본의 분배와 집적의 제 형태를 묻는 것과 같다.
  왜 그러한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지는 사회적 생산의 총과정 속에서 대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으로서 주기적 생산과정에 물질적으로 통합된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을 대면한다. 노동자계급은 그 자신이 가변자본의 일부가 되어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의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임노동자의 상이한 제 범주의 기술에 의존해야한다.
부르조아지;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른 방식이다.
①경제적 위치; 제 자본으로 분할된 사회적 자본의 유통, 축적의 과정, 이 과정을 지배하는 사회관계가 특정의 경제적, 사회적 제 실천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본가는 대리인에 불과하지만 필연적인 대리인이다. 부르조아 계급이 자본의 소득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 재생산하는 것은 부르조아 계급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독점을 실현하는 자본의 재생산의 제 기능을 수행하는 한에서이다. 자본가는 이전의 지배계급과는 달리 '경영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관리기능과 소유기능의 상대적인 법적 분리는 이 생산관계의 영속성에 비하면 이차적이다.)
②국가의 매개; 국가는 자본제 생산양식의 개시부터 필수적이다. '야경국가'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이후의 곤란
  자본주의를 법령으로서 '폐지'시킬 수는 없다. 실제의 소유가 법령을 앞서 법령을 지배한다.
  이제까지의 혁명은 '집단'으로서의 부르조아를 제거하여야 했으나 그들을 계급으로 정의하는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제거하지는 못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기능을 인수하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새롭고 가공할 만한 제 모순이 발현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천 자체 내부에서 해결하여야할 적대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설정한다.

소비에트에서의 임노동의 전화(특히 재생산 부분에서)
  장기적인 학교교육의 일반화, 민주화, 실업의 완전한 소멸; 이들은 노동의 착취조건을 수정하였다.

세가지 검토될 문제
①자본과 소유관계의 역사적 전화. 법적 소유의 이용을 통해 사회적 생산수단의 계급적 독점이 실현되는 제 형태
②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지배적 자본분파의 성질
③그 구성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내포하는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내적 제 모순의 성질과 그 경향적 통일의 제 형태

(1) 자본제적 소유의 역사적 전화 (161)

자본의 집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불가피하게 (균일하지는 않게) 하나의 결과, 즉 자본의 집적에 이른다. 이 자본의 집적은 잉여가치의 상승을 보장한다.

집적의 두가지 형태
  ①잉여가치의 자본화에 의한 새로운 생산수단의 축적(맑스가 말하는 고유의 의미에서의 집적) ②구별되는 제 개별자본의 동일 소유로의 법적 결합(단순한 집중)
  이러한 집적은 자본주의 소유 제 형태의 근본적인 전화를 낳는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본이 임노동에 대항해서 소유의 법적 형태로 집적됨을 필연적으로 의미한다.

자본 소유의 제 형태
  이것은 각 부르조아지의 존재의 토대를 구성한다. 즉,
개인적, 사적(소)자본/ 익명의 회사자본, 주식자본/ 상호 긴밀히 결합된 공업.상업.은행 등의 거대기업의 독점자본/ 국가의 저축.신용 등을 맡는 은행 등을 비롯한 국유기업, 공공부문의 국가자본
  법적 차이와 무관하게 단순한 주식회사 자본과 독점자본의 구별은 필수적이다. 기업의 독점적 성격은 시장의 할당된 부분이나 매출액이 아니라, 연관된 제 자본을 종속시키고 그것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취득하면서 시장의 일부를 지배하는 실천적 가능성으로 측정된다.

독점자본주의
  금융자본에 의존하는 경제적 제 관계의 체계이며, 생산의 집적, 다양한 법적 제 형태에 따른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이다. (여기서 은행은 단순한 단순한 중계자가 아니라 스스로 상이한 생산부문간의 자본의 배분을 통제하고 산업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열거한 자본의 제 형태는 동일한 사회적 관계가 각각의 사회구성체에서 불균등하게 발전된 역사적 제 형태이다. 그들은 모두 전화도상에서 불안정한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독점자본과 국가자본의 사이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모두 법적 소유형태의 관점이나 생산의 국제화의 관점에서나 '상급의' 형태이다. 독점자본이 국가자본으로 전화되는 경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公/私) 구별의 부르조아 법 이데올로기
  공/사의 구별이라는 것은 허위이다. 사회적 자본의 제 분화인 한에서 '공적'자본의 운동은 '사적'자본의 운동과 다르지 않다.
  재생산의 총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의 분파로서의 분할을 분석할 때 그 법적 지위가 아니라, 재생산 속에서의 기능의 관점에서 자본분파를 연구하여야한다. 공적소유는 개별의 제 조건을 변화시키지만 경제과정의 기능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법적 차이로 인하여 사적/공적 자본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공적소유-국가소유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사적영유, 즉 하나의 계급 부르조아지에 의한 생산수단의 영유의 제 형태중의 하나이다.


(2)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지배 (166)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조아계급의 배치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본형태가 지배적인가를 알아야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한 경향
  "공적 자본은 이미 최대한 이윤율로 가치를 증식시키고자 하는 엄밀한 의미의 자본이 아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집단적 착취자로서 기능하는 단일한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독점자본주의를 넘어 제국주의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하나의 국면을 이룬다."
  우선, 이러한 시각은 제 자본의 법적 소유형태에 배타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판되어야한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경제학으로서의 맑스주의라는 관념을 가지고 잉여가치 분석에 기초한 이윤분석이 아니라 이윤분석으로 잉여가치 분석을 대체하고 있다. 자본을 착취의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회계상의 크기로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결과를 그것을 결정하는 계급투쟁의 결과가 아닌 '이윤의 논리'의 결과로 분석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그 경제적, 정치적 위치에 의해 초과이윤을 항상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된 반면, 사적이든 공적이든 여타의 제 자본이 보다 낮은 이윤율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후자의 제 자본이 '가치저하'된다거나 사회적 규모에서 축적에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차이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관계하는 것이지 생산의 수준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부분의 자본도 독점자본만큼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에 제 국민의 경쟁과 전쟁에 직면한 사회적.경제적 제 조건의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는 세계분할의 완료와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제 열강의 생산력의 불균등한 발전은 이 분할의 전환을 위한 투쟁을 야기한다. 따라서 사실상 국가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필연적인 한 특징이고 그 토대를 이루는 독점자본주의의 지향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적절치 않다.)

(3)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통일과 모순 (170)
자본과 부르조아지
  동일한 사회구성체 내에서 공존하는 자본 제 형태의 다양성(그 기능과 집적이라는 의미에서) 및 그들과의 제 관계의 복합성에 대해서 사회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동일한 복합성이 필연적으로 대응한다.

부르조아지의 분할
  부르조아지는 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항상 몇 개의 분파로 분할된 계급이며 이들의 경향적 통일이 유물론적 분석의 대상이다.
  부르조아지의 각 분파는 사회 속에서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경쟁한다. 자본의 상이한 대표자가 잉여가치 생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경쟁이라는 형태를 통해서이다.
  자본의 제 형태의 발전에 따라 부르조아지도 법적.경제적 지위로 분할된다. 따라서 '간부', '관료' 등을 포함한 부르조아지 전체는 단순한 소유자의 연합이나 자본가 집단은 아니다.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는 불평등이 크다. 그들의 정의는 공통적인 기술적 성격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화와 관련하여 연구해야 한다.

제국주의와 부르조아지
  제국주의는 세계경제의 불균등성과 제 모순을 강화시키는 것과 함께 각각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부르조아지의 불균등성과 제 모순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금융자본에 대한 부르조아지 전제의 종속을 강화한다.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성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성과 그 내적 모순 사이에는 양립불가능성이란 없다. 이 양자는 함께 발전한다.
  부르조아지의 통일성은 자생적으로 일치하는 물질적 이해관계의 동일성이 아니라, 대부르조아지가 잉여노동의 일부를 영유하는 모든 사회집단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헤게모니)의 결과이다. 이 부르조아지 내의 지배분파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고려하면서 축적과 착취의 '진보'를 대변한다.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은 그 내적 모순과 불가분 하다. 그것은 모든 역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 통일성을 제지하는 제 원인의 효과에 종속된 경향적 통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배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은행이다.)
  이해대립과 적대의 구분;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이해대립이 아니라 '적대'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분배가 아니라 생산에서의 착취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르조아지 사이에는 경제적 이해의 현실적 대립이 있기는 하지만, 단지 이해대립만이, 즉 불평등한 분배와 이 분배의 변경/강화를 둘러싼 투쟁만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부르조아지의 통일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를 단순한 사회적/경제적 이해대립으로 기술하거나 대부르조아지를 소부르조아지를 '착취하는'자로 제시하여 이 대립/모순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국주의 시대의 은행의 역할
  "여러 은행들이 발전하여 소수의 은행으로 집적됨에 따라서 그들은 단순한 중재자이기를 그치고 자본가 및 소기업주 전체의 화폐 자본을, 또한 특정 국가 또는 여러 국가 전체의 생산수단 및 원료의 대부분을 뜻대로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독점체가 된다. 다수의 단순한 중개자가 한줌의 독점체로 되는 이 전화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전화되는 본질적인 과정의 하나를 이룬다." -레닌 [제국주의] 228쪽
  이리하여 금융자본의 발전은 삼중의 효과가 있다.; 생산과 유통의 자본제적 '사회화'/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 금융자본의 지배에 의한 자본가계급의 조직화
  "...금융자본은 중소자본가들만이 아니라 극히 영세한 자본가나 기업주의 대다수도 그 권력에 종속시킨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의 분할과 다른 국가에 대한 지배를 둘러싼 타국의 금융집단과의 첨예한 투쟁이 전개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해 소유자계급은 하나가 되어 제국주의 진영으로 넘어간다." -레닌 [제국주의] 308쪽

부르조아 국가의 분석의 필연성
  금융자본의 부르조아지 전체에 대한 지배는 부르조아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의 적대관계의 부르조아지에 대한 효과이다. 이 모순의 경향으로서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이 존재한다. 여기서 부르조아 국가의 존재와 활동이 고려되어야 한다.

부르조아 국가의 문제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부르조아지의 이해에 따른 국가의 형성/ 지배계급의 형성에 있어서의 국가의 역할
  상품과 자본의 유통, 생산과정에서의 착취과정의 실천적 조직화는 부르조아 계급 존재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부르조아 계급을 만들기에는 불충분하다. 부르조아 계급은 시장, 상품생산으로서의 자본제 생산의 직접적인 산물이 아니다.
  지배계급의 조직화에서 국가의 역할은 '경제적'인(공경제의) 것은 아니다. 반대로 '다른 것'이다. 부르조아 국가의 존재와 지배계급의 조직화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부르조아지 내부의 모순과 이해대립이 화해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모순과 대립은 프롤레타리아의 착취와 종속의 유지를 위해서 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순수히 경제적인' 방식으로는 화해될 수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르조아지의 부르조아지 전체에 대한 경제적 지배가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은 (억압적, 이데올로기적인)국가장치의 존재, 작용 및 전화를 항상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cf. 통속적인 '생산-토대'와 '국가-상부구조'를 병렬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다른 하나로 설명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부르조아지의 형성에서의 국가의 필연적 역할
  국가의 기능은 사회적 규모에서의 자본의 유통, 착취의 조직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부르조아의 역사는 처음부터 부르조아 국가의 역사이다.
  국가의 존재와 독립된 시장의 존재라는 표상은 환상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국가의 개입에 의한 시장의 조직화, 즉 일반적 등가물(모든 통화는 국가통화이다.)의 정의와 국경, 관세를 전제한다.
  잉여가치의 실현이 의존하는 상이한 생산부문들 간의 상대적 균형, 따라서 시장을 매개로 하는 자본의 재생산은 제자본의 경쟁을 통해서만, 따라서 일정한 자본의 여타 자본에 대한 지배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국가의 개입의 분석은 국내시장의 '관리' 이외에도 자본축적의 특정 형태의 다른 제 형태에 대한 지배의 수단과 결과로서 고려해야 한다. '경제정책', 정확히는 정치 그 자체는 항상 자본가 상호간의 일정한 세력관계의 수단이며 결과이다.
+
'제국주의의 본질은 독점이다.'라는 정의
  이중의 경제주의를 모면하고 있다.; ①제국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무시하여 제국주의를 대자본의 상황적 정책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 ②제 생산관계의 전화를 그 제 측면 중의 하나(생산 또는 소유의 집적, '자유'경쟁의 소멸)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
  독점은 단순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생겨나는 상이한 제 경향의 결합이다.(생산의 집적, 원료 및 노동력 원천의 독점, 금융자본의 발전, (신)식민지 정책, 세계의 분할) 그것은 단순한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부르조아 국가의 전화를 포함하는 제 사회관계의 전화이다.

지배적 자본 분파의 조건
  시장과 자본경쟁의 제 모순은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이에 이와 관련한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도 노동자를 자본제적 착취에 종속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주어진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하여 이 세력관계를 조직하고 유지할 수 있는 부르조아 분파만이 부르조아지 내부의 내적 지배도 유지할 수 있다.

부르조아 국가가 착취를 유지하는 형태
  자본주의 역사에서 국가의 발전은 모두 그것이 불균등하게 달성하는 이중의 결과를 목표로 한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착취의 전체적 조건을 재생산하고 그 '정상적인' 연속성을 보증하는 것, 그리고 있을 수 있는 '타협'을 대가로 하여 부르조아지 자체 내부에서의 지도적 한 분파의 지배, 주어진 역사적 제 조건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착취 및 축적 형태를 대표하는 한 분파의 지배를 재생산하는 것.
  두번째 목표는 항상 첫번째 목표 하에서 추구되며, 따라서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은 그 자신의 내적 투쟁을 통해서 착취의 유지와 발전에 의존한다. 그러나 첫번째 목표는 두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경우에만 달성된다. 그 때문에 착취의 발전은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이 깨지는 경향이 있을 때마다 바로 위협받게 된다.
  부르조아지의 통일의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착취노동자 전체에 대한 지배의 수단과 동일하며 그것은 사회 전체를 국가 속으로 조직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이리하여 부르조아 국가가 자본제적 착취와 그 제 조건의 유지를 보증하는 특수한 형태가 국가기능으로서의 전 인민의 '참가'형태이다. 대부르조아지는 일반적인 헤게모니를 발전시키는데 성공할 수록 그만큼 더 잘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가설
1. 국가라는 것은 부르조아지가 이전의 지배계급으로부터 그것을 그대로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인수하는 부동의 역사적 형태는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은 국가의 구조를 전화시키고 이 전화만이 부르조아 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부르조아지와 부르조아 국가 사이에는 어느 것도 선행성이 없다. 다만 상호전화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2. 모든 부르조아지는 역사적으로 '국가 부르조아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존재와 활동은 부르조아지의 지배와 계급적 통일의 과정에서 내재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타당하다. 이것은 새로운 모순을 수반한다. 모든 부르조아지는 동일한 의미에서 '민족 부르조아지'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민족적 형태는 필연적이다. 억압적 측면과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접합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은 점점 더 '민족적'이지 않다. 그때 부르조아지의 역사는 '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의 내적 모순의 역사로 된다. 부르조아지에게 국제주의란 없으며, 최강 제국주의의 헤게모니 하에서의 제 모순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민족적 동맹만이 있을 뿐이다.

4. '....결론적으로 일체의 잡다한 운동과 문제해결이 귀착되는 계급투쟁' (181)
이제까지의 분석의 주제
  맑스주의적 분석에서 계급투쟁의 기본성격을 발전시키고 명확히 반영하는 것. 맑스주의 분석은 계급투쟁 이외에는 다른 대상을 갖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계급투쟁의 결정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계급투쟁은 자기자신 이외의 것에 의해서 미리 존재하는 자연적, 혹은 이념적 필연성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계급투쟁의 다양한 제 형태와 그 상호작용의 구체적 변증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주의; 형식주의
  계급투쟁을 보편적인 열쇠로서,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생각할 때, 오히려 현실적 분석의 장애물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계급투쟁을 직접적으로 주어진, 절대적으로 단순한 본질로 삼아버렸기 때문이다.
  명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계급투쟁 자체를 그 복잡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해야하며, 계급투쟁의 개념을 결정하고 그 개념을 차별화시켜야 한다. 계급투쟁을 하나의 해결/대답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로 생각해야한다.

최종심에서의 결정
  계급투쟁은 처음부터 몇 가지의 다른 형태로 전개된다. 이러한 전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결합되고 또 바로 그 때문에 구별되어 서로 대체될 수 없다.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은 곧 주어진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의 상이한 형태와 그 접합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 접합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들 제 형태들 중 하나에 의한 결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이 결정은 최종심에서 생산관계의 영속인가 전화인가를 둘러싼, 생산관계의 효과 아래서의 물질적 생산 속에서의 계급투쟁이다.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하여

  각각의 생산양식의 특징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기본적 생산(착취)관계의 성질에 의해, 그 다음으로 부차적으로 제 생산력의 성질과 그 경향적 전화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생산양식의 분석과 계급분석(또는 그것의 '정의')은 오직 하나의 동일한 문제라는 것이 나온다. 계급분할의, 따라서 계급관계의 역사과정의 분석으로 되는 계급분석만이 생산양식의 내적 접합과 경향적인 역사적 운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계급투쟁을 서술하는 장소의 변경/ 계급투쟁의 시작으로서의 착취
  최종심급에서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계급투쟁을 생산양식의 단순할 결과가 아니라 생산양식의 정의 자체 속에 기입하는 것이다. 착취자체가 계급투쟁의 기본적인 역사적 형태라는 것이다.
  직접적 생산과정 속에서 계급투쟁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착취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형태들 자체와 함께 이미 시작된다.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자본의 체계적인 계급투쟁이 이미 존재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발전의 영속적 원동력이며, 이 발전 하에서 그 발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 생산력 발전의, 따라서 보다 진전된 노동조직의 형태와 노동수단 발전의 원동력이다.
①(기술과 산업조직의 형태는 사용방식의 옳고 그름 이전에 인류의 진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자본가 계급의 체계적인 계급투쟁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이 보다 '진보적인' 새로운 생산 '방법'을 도입할 때마다 어쩔 수없이 저항하게 한다.(생산방법이란 결국 착취의 한 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서 새로운 분업형태가 발견되어야 한다. ②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계급투쟁은 단지 방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반면 이 토대 위에 선 정치투쟁은 공격적이며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으로 나갈 수 있게 한다. 자본은 어떤 시기에나 어떤 자본이나 영속적으로 공격을 전개하는데, 이는 자본이 존재하고 재생산되기 위한 그 내재적 필연성에 의해서 노동을 초과착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자본1]의 분석. 매뉴팩춰와 대공업의 역사적 분석. 양자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계기적 형태이다.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계급투쟁의 역할)

주의;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한 주관주의적/상대주의적 관념 (186)
  이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한 정식은 자본제 생산양식이 생산력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다거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관념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관계의 존재란 노동과정의 그 물질적 효과와 실질적인 실현의 제 형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사회란 제 제도와 제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의 분업과정이며, 이 과정 속에서 제 개인은 이 과정 자체가 생산하고 전화하는 주어진 제 사회관계의 효과 아래서 물질적으로 서로 작용함으로서만 자연에 작용한다. 노동과정을 단순히 제 요소(노동대상, 노동수단, 노동력)와 결과(생산물)만이 아니라 그 현실적 제 조건의 총체에 의해서 과정으로 사고해야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정을 그 자체로서 분석하여 그 사회형태를 정의하고 그 제 국면과 실현의 필연적인 연관을 지배하는 제 생산관계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노동과정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과정은 전화되는 특수한 역사적 제 형태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이 제 형태보다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실천, 무엇보다도 사회적 노동은 제 개인 및 그들의 활동과 선행하여 존재하는  원료와 물질적 노동수단의 객관적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오직 그것들 자체가 노동력을 생산수단에 종속시켜 하나를 다른 하나에 대해 배치하는 특이한 사회관계-생산관계를 실현하고 있는 한에서만 작용한다. (ex. 자본제 사회의 경우 맑스의 분석에 의하면 - 생산수단이 현실적으로 생산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항상 이미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영유수단, 지출된 노동력의 '흡입' 수단인 한에서이다.) 노동과정과 사회적 과정이라는 두개의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과정만이 존재한다. 즉, 그 속에서 사회적 생산관계의 형태가 노동력과 제 생산수단의 배치 및 그 상호작용의 방식 속에서 물질적으로 실현되는 노동과정의 내적 조건으로 되는 과정이 존재할 뿐이다.
  즉, 생산력 속에서(그리고 그 노동과정 속에서) 노동력에 대한 생산수단의 우위는 각각의 역사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형태 하에서 생산력 그 자체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를 반영한다. 사실 생산관계란 제 인격간의 관계가 아니라 제 계급과 물질적 생산수단과의 관계이다.
  주의; ①생산관계의 우위라는 명제가 '인간'의 우위나 생산수당에 대한 노동력의 우위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②기본적 생산관계 자체(자본/임노동)와 거기서 유래하는 '부차적인' 생산관계(제 자본의 운동,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ex. 제국주의 시대의 급속한 생산력의 발전은 제국주의가 부여한 새로운 형태 하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의 효과이다.
  생산양식 전화의 동인은 무엇인가? / [정치경제학비판]의 '생산력의 발전과 제 생산관계의 성질 간의 모순'에 대하여 ― '설명 불가능한 생산력의 자립적 운동, 혁명이 없는 한 부동의 생산관계(파국론!)'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 맑스가 분석하는 것은 생산력의 모순적인 발전, 거기서 역사적으로 현실화되는 기본적인 생산관계·착취관계의 효과 하에서의 생산력 발전에서의 모순, 따라서 실제로 독자적인 계급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모순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의 자본제적 사회관계의 연구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자본제적 사회관계를 연구한다는 것은 제 개별자본의 운동의 분석을 자본 일반의 운동의 분석에 종속시키는 것, 즉 이윤 분석을 잉여가치의 분석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와 제 개별자본의 경쟁은 궁극적으로는 착취의 역사적 동력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윤추구와 경쟁은 단지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경향이 제 개별 자본의 운동에 반영되어 경쟁의 강제법칙으로 관철'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이윤추구를 지배하는 것은 잉여가치 착취 및 새로운 착취를 위한 잉여가치의 축적이다. (제 자본운동의 과학인 정치경제학은 이 반대의 방식으로 부르조아의 이론적 관점을 실현한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 관계의 비대칭성
  동일한 의미에서의 계급, 계급일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 계급이란 불변의 개인처럼 서로 마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계급은 투쟁 속에서 전화된다.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단순히 세력관계의 발전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투쟁장소 자체의 이동, 즉 '지배'계급의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형으로부터 '피지배']계급의 지형으로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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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물론 연구

저자 : 에티엔 발리바르
역자 : 이해민
출판사 : 푸른미디어
출판일 : 1999년 8월 25일
페이지수 : 304
판형 : A5

마르크스 주의에 세 가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가 역사유물론에 관한 다섯 가지 입장을 모아 정리한 저서. 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주의를 비롯해 2장 <공산당 선언>의 정정, 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4장 역사변증법에 대하여(<자본을 읽자>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 소견)까지 총 4장에 걸쳐 내용을 수록하고, 역사유물론 해석에 대한 재해설을 책 끝에 덧붙였다. 

 
목차

서문
제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주의
1. 마르크스의 정치의 제단계 ...19
2. 마르크스의 이론 ...47
제2장. "공산당선언"의 정정
1.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에 대한 "선언"의 테제 ...76
2. 꼬뮌의 교훈 ...91
3. 정정 ...96
제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정치경제학 비판서설)
1.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잉여가치론 ...118
2. 계급적대의 첫번째 위상: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 ...141
3. 적대의 두번째 위상:자본과 부르조아지 ...158
4. '...결론적으로 일체의 잡다한 운동과 문제해결이 귀착되는 계급투쟁' ...181
제4장. 역사변증법에 대하여
1. '물신성 이론'에 대하여 ...200
2. '최종심에서의' 결정과 '이행'에 대하여 ...223
주 ...242
'해설' 에티엔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해석/이해민
1. 머리말 ...275
2. 역사유물론과 유물변증법의 재정의 ...277
3. "자본" 해석 ...279
4. "제국주의" 해석 ...288
5.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 ...296
6. 맺음말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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