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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26
    블로그유감이란 글을 읽으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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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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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발리바르-역사유물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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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유감이란 글을 읽으며...

* 이 글은 에이브님의 '블로그 유감.'이란 글과 관련 된 글입니다.

 

 

에이브님의 글에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몇자 끄적여 봅니다.^^

 

 

글을 읽으며 블로그를 통해 유포되는 익명의 화려한 말말말들에 새삼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티의 속성 자체가 그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나를 위해 만들어져야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역할을 해야하는 건지

많이 햇갈리게 되네요..^^

블로그라는 것이 단순히 자기를 표현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죠 ^^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아직은 블로그라는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것 같네요.

사실 블로그를 만들고 이용한지 한달여 되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제 얘기를 하고 있는듯,

트랙백도 처음해보는데 위 첫줄에 저것처럼 코멘트하면 되는건가요? ㅎㅎ

혹시나 다른 더좋은 방법이 있다면 지도편달 부탁드려요~ ^^

 

여기저기 블로그 커뮤니티를 둘러보다보면,

이용자(펌돌이나 글 도용하는이 같은..)나 서비스제공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꾀 많던데요...

전적으로 그들에게만 비판의 화살을 돌려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퍼서 담는데에도 그 선별과정에서의 세계관 또한 드러나기 때문에 펌돌이들을 향한 심심챦게 보이는 무차별적인 폭격은 부당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온전히 자기 얘기를 해본적이 없는것 같아요. 그리고 저또한 지금 이순간 절실히 느낀는 고질적인 글쓰기의 어려움(경험의 부재)....

머...더 생각은 안나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들 또한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솔직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어 개성있는 블로그를 만들자는 데는 일정 동의하지만,

약간은 조심스러운 면도 있긴하네요..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실제 자기 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신이 드러내고 자하는 아바타같은..

그런 속성이 있어서요..

 

말이 좀 꼬이긴하지만,

개개인의 개성과 주장을 온전히 드러내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이었구요 ^^

(말주변이 없어서 ㅋ)

 

 

다만 매체를 통하여 무엇을 할것인가 하는 각자의 뚜렷한 목표가 드러나는 블로그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물론 블로그 뿐 아니라 싸이월드나 까페 등등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 겠지만.

 

아름답고, 재미있고, 눈길을 끄는 포스트들로 채워지면 더욱 금상첨화겠지만,

그보다는 블로그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좀이상하다 ㅎㅎ) 논리적 일관성 같은거 말이죠..그게 더 중요할것 같은데요 ^^

 

누구나 화려한 글잔치에 즐거워하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명확한 논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블로그의 모든 포스팅이 타인을향한(방문자를 위한)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같은경우 여기저기 인터넷상에 흩어진 자료를 모으는데도 활용하거든요 ^^

물론 그것이 타인의 것들이지만...

출처만 제대로 밝혀놓는다면 잘 정리하여 수시로 들러 참고하기 편하게, 자기 블로그에 그것들을 줏어 담아 기록해 두지 말라는 법은 없을것 같아요. 머 블로그를 이러이러하게 이용해야한다라는 법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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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게시물은 네이버의 것?

출처 : http://www.ngotimes.net/times/news.html?id=times&keyword=서형원&no=21818&ss=on

 

네이버 블로그 게시물은 네이버의 것?
 [서형원의 녹색정치] 시민사회단체와 블로그
 
 

작성날짜: 2004/08/25
시민의 신문(http://www.ngotimes.net) 서형원기자

 

연합뉴스 기사 <`블로그 게시물'은 주인이 없다(?)>

 

  나는야 초보 블로거. 방금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포털 회사들이 네티즌들이 올린 싸이나 네이버의 블로그 게시물를 임의로 사용할 권한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탈퇴한 회원들의 게시물도 회사가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싸이월드(http://www.cyworld.com)의 경우, 회사나 회사가 허락한 제3자가 회원의 게시물을 운영, 전시, 홍보할 사용권을 부여받는다는 식으로 약관에 규정되어 있단다. 또한 회사는 네티즌 게시물의 복제, 수정, 개조, 전송, 전시, 배포 등등을 할 수 있으며 탈퇴한 회원의 게시물도 회사가 계속 사용권을 갖도록 했단다. 


1인미디어, 21세기형 대안언론 등 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블로그’는 최근 각 포털뿐 아니라 언론, 주요기업 등 역시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 인터넷의 새로운 자유공간이라는 칭송과 달리, 블로그의 상업적 이용에 대한 논란 역시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네이버의 한 블로거 페이지.

 

네이버 블로그는 회원의 게시물에 대한 사용권을 회사가 갖도록 돼 있고, 싸이와 마찬가지로 탈퇴한 회원의 게시물 사용권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네이버 블로그와 까페를 이용하면서, 원작자인 나와는 관계없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블로그가 폐쇄될 수도 있고, 블로그 기능이 맘에 들지 않아도 회사가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공짜다 보니 광고와 아이템 판매 같은 게 내 집을 어지럽혀도 참아야 한다는... 그런 게 찜찜하긴 했다.

 

그렇지만 사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 같은 큰 회사가 구축한 시스템은 나 같은 이용자에겐 매우 편리하고 재미를 줄만큼 기술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그런 찜찜함을 참아왔다. 기술적인 안정성이나 편리성... 블로그 같은 걸 이용하다보면 이게 은근히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미디어몹이 더욱 분발하길...!)

 

며칠 전, 에피소드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시민단체(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선배와 대화를 나누면서, 기술적으로 부족한 면에 대해 불만이 많지 않느냐고 질문 했더니 그런 면이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고, 도리어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꾸며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 홈페이지, 초록정치에 자체 블로그를 두는 것은 계속 망설였다. 언젠가는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알뜰살뜰 가꾼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기업의 변덕에 따라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일 따위는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98년부터 운영하던 개인 홈페이지를 회사의 사업 철수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된 아픈 기억이 있다. 엘지가 운영하던 갤럭시라는 홈페이지 서비스... 한때는 매일 500명이 찾아오는 홈페이지였다. 회사가 망하던 때에는 관리를 중단한 상태긴 했지만, 아예 없앨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시 올려두었던 웹페이지들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회사에서 제공했던 게시판에 올라온 소중한 대화와 사연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인터넷의 활력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그 공간이 좌우하는 힘이 몇몇 기업들에게 있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꾸며가고 발전시키는 공간, 가능성을 만들지 않는다면, 인터넷은 그곳을 독점한 몇몇 기업들이 제공한 놀이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들에게 새로운 웹진을 만들어보자고, 이른바 "블로그 기반의 멀티미디어 커뮤니티 초록 웹진"을 만들자고... 그런 이야기를 꺼냈고, 지금도 짬 나는대로 생각은 하고 있는데... 하여간 그런 호화판 커뮤니티 웹진이 아니어도... 뭔가 하긴 해야하지 않을까..?

 

블로그와 까페에 올린 글들이 내 품 안의 자식이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함 생각해본다. 웹진 초록정치에 개인 블로그를 만들게 하고 그 블로그를 연계하여 커뮤니티도 만들고 웹진도 되는, 그런 시스템을 얼렁 만들었으면...


 - 서형원 (녹색정치 준비모임 간사, 웹진 초록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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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아래글과 같은곳에서 퍼왔어요 ^^

출처 : KJLAB.com(http://kjlab.com)에서 퍼왔는데 좋은글이네요 ^^

 

1. 序 - "Blog라는 유령이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웹써핑(파도타기)이라는 명목 아래, 시간만 뺏기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당신을 위해 작성되었다. 당신은 이제 인터넷에 제법 익숙해져서 '다음'에서 e-메일을 주고받으며, '네이버'의 지식 검색도 찾을 줄 알고, 'MSN messenger'로 재잘거려도 보고,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만들어보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답답함과 무언지 모를 소외감이 찾아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이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기존의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답답한 틀과 제약들을 넘어 자유로이 자신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더 표현하길 원하고, IT자본들에 휘둘리기 바쁜 소비자로만 남아있는 자신을 견딜 수 없다면, 이 글은 당신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IT 문화의 주체적인 수용자, 나아가 생산자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오직 당신만의 사이버 공간을 구축할 수 있게 할 '개인 홈페이지 만들기'의 대략적인 절차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블로그(Blog)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블로거(Blogger)가 될 수 있는 방법까지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이 글은 결코 그 방법들에 대한 기술적인 설명을 제공하고자 함이 아닌, 그것들이 별로 어렵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쓰인 만큼, 전문적이지 않은 원리와 개념의 설명들이 주가 될 것이다. 이 글의 독자는 인터넷에 제법 익숙해진 인터넷 사용자로 간주하겠다.



2. 홈페이지 - 어디에,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2.1. 어디에 만들어야 하는가?

홈페이지는 분명 인터넷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인터넷(internet)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진부한 물음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은 통신망과 통신망을 연동해 놓은 망의 집합을 의미하는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의 약어로서, 서로(inter)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컴퓨터들을 묶어놓은 네트워크(network)를 뜻한다. 미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네트워크가 세계 규모의 통신망으로 커진 것이 인터넷이다. 우리가 ‘다음’등의 사이트에 수시로 접속하여 e-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사가 우리의 전자 우편 관련 자료들을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를 24시간, 365일 켜진 채로 인터넷에 물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기능들을 하는 컴퓨터가 ‘서버'(server)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연결이 가능한 컴퓨터를 통해 ‘다음’ 서버에 접속함으로써 e-메일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미 눈치 빠른 이는 알아챘겠지만,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란 인터넷에 24시간 연결된 컴퓨터나 저장공간(계정)을 확보하여 그곳에 우리가 운용하고 싶은 자료(data)들을 저장해두는(upload) 작업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저장공간을 구하는 방법인 "웹 호스팅"을 권한다. 비용 면에서도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며, 관리 또한 비교적 쉬운 편이기 때문이다. 유료 웹호스팅을 제공하는 업체로는 '카페24'(
http://cafe24.com )와 '우뜨넷'(http://woto.net ) 등을 추천하는 바이며, '네이버'(http://homepage.naver.com )와 '네이트'(http://makehome.nate.com ) 등의 포털에서도 제한적인 웹호스팅이나마 무료로 제공하니 시험삼아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2.2.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앞에서 인터넷에 늘 연결되어 있는 저장공간인 '서버'의 계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멋진 공간에 무엇을 채워넣어야 할 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는 먼저 우리 홈페이지의 대문이 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로 짜여진 'index.html'이란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인터넷 탐사자'라는 Microsoft의 'Internet Explorer' (이하 IE) 같은 브라우저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프로그램일까? 브라우저는 인터넷 공간들에 저장되어있는 HTML로 작성된 문서나 멀티미디어들을 읽어들여 우리 컴퓨터에 그 컨텐츠를 보여주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한다. 우리가 IE의 주소창에 'naver.com'이라고 입력하면, IE는 인터넷상에서 'naver.com'에 해당하는 컴퓨터를 찾아 접속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index" 파일을 찾아 그 내용을 보여준다. 그렇다, 한 개의 간단한 HTML 문서를 만들어 당신의 계정에 저장시키는 것만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당신의 페이지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HTML은 무엇일까? 당신은 흔히 '태그'로 통용되는 HTML의 서너 개를 이미 알고 있다. 당신이 어딘가에 게시물을 작성했을 때, 사진을 걸기 위해 사용했던 img, 글씨색과 크기를 바꾸기 위해 사용했던 font 등이 바로 HTML 태그의 명령어들인 것이다. HTML은 인터넷에서 보이는 문서의 글자크기, 글자색, 글자모양, 그래픽, 인터넷 상에서의 이동(하이퍼링크) 등을 정의하는 명령어들을 뜻한다. 당신이 img와 font만으로 간단하게 index.html을 작성하였다고 하자. img가 브라우저로 하여금 화면에 이미지를 표시하는 명령이므로, 당신 페이지의 접속자는 이미지 파일을 보게 될 것이다. 또, 여기서는 font가 브라우저로 하여금 화면에 출력되는 글자에 주황색을 입히는 명령이므로, 접속자는 주황색으로 된 글씨를 읽게 될 것이다. (그림 1. 참조) 이런 HTML 태그들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index.html로부터 한 홈페이지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곳을 위의 명령들을 이용하여 예쁘게 꾸며놓을 수도 있고, 그 곳에 a href="" 태그를 이용하여 방문자들이 게시판으로 이동(하이퍼 링크)할 수 있게 하는 버튼을 만들 수도 있다.(그림 2. 참조)

index.html과 같은 문서를 직접 만드는 것이 아무래도 낯선 이에겐 '나모 웹에디터'(
http://namo.co.kr 에서 시험판을 구할 수 있다.)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홈페이지 건설에 익숙해질 것을 권장하는 바이다. '나모 웹에디터'를 사용함으로써 메뉴와 비주얼 조작을 통해 간편하게 브라우저가 읽을 수 있는 문서들을 만들 수 있다. HTML 말고도 웹사이트를 구현하는 언어들은 Java, PHP, XML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미뤄두겠다. 일단 index.html 파일을 만들었다면, 웹호스팅 업체가 제공하는 자체 FTP(File Transfer Protocol)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알FTP'와 같은 FTP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자신의 계정(서버)에 저장하는 것이 마지막 작업이다.(그림 3. 참조) 당신의 index.html이 인터넷 상에서 로딩되는 것을 확인하였다면 당신은 홈페이지 만들기의 절반을 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HTML 전반에 대한 도움말을 얻기 위해서는 '릴로야닷컴'(http://liloya.com )을, 나모웹에디터 강좌는 '스타트홈페이지'(http://www.starthomepage.com/custom/namo/namo.jsp )를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3. 새로운 물결, Blog에 대하여
3.1. 블로그란 무엇인가?

'블로그'란 "Web + Log"의 약어로서 텍스트나 멀티미디어를 웹에 수록ㆍ전시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블로그에 대한 정의는 분분하나, 실상은 '개인 홈페이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이다. 거기에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과 더 많은 개방성을 구현하기 위해 'RSS'와 '트랙백'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로 날개를 단 격이다. 개인 홈페이지는 어느 정도 인터넷 기술에 익숙한 이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포탈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편리한 블로그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며 더욱 블로그 문화를 촉발시키고 있다. 그런 블로그 서비스들은 넓은 저장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사용법도 크게 어렵지 않아 디지털 카메라의 폭발적인 보급과 맞물려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고 있다.

요컨대, 기존의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가 동호회 및 같은 관심과 취미를 가진 이들의 공동 공간이었던 것에 비해, 블로그는 1인 미디어의 생산과 소통에 중점을 두는 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블로그의 차별성은 생생함, 역동성과 개인의 고백적인 육성 수록에 있다. 특히 블로그들이 9.11 사태와 관련하여 생생한 뉴스를 제공하면서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블로그 전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김중태 문화원'의 블로그방(
http://www.help119.co.kr/blog/archives/cat_ii.html )을 직접 찾아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3.2. 블로거(블로그를 운영하는 이, blogger)가 되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포털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가입형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어 블로그를 구현하는 '설치형 블로그'를 운영하는 방법이 있다. 대규모로 분양하는 아파트에 무료로 입주하는 것이 전자이겠고, 어느 정도의 실비와 수고를 들여 자신만의 단독주택을 장만하는 것이 후자라고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를 택한 이는, '네이버'(
http://blog.naver.com ), '이글루스'(http://egloos.com ), '야후'(http://kr.blog.yahoo.com ) 등의 블로그 서비스에 가입하는 즉시 블로그 공간을 배정받아 바로 블로거가 될 수 있다. '싸이월드'는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통 블로그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 중론이다.

홈페이지 운영에 익숙한 이들에게 권할만한 후자의 경우는 '블로그툴'을 사용하거나 기존의 제로보드와 같은 게시판 시스템에 RSS와 트랙백 기술을 도입하여 블로그를 구현하는 방법이 있다. Movable Type(
http://www.movabletype.org/ ), pMachine(http://www.pmachine.com ) 등의 막강한 기능을 갖춘 외국산 블로그툴이 호응을 얻고 있으며, 제로보드 Database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ZOG(http://zog.co.kr ), 그리고 디자인이 수려한 테터툴스(http://tatertools.com ) 등의 국산 블로그툴도 한글과 용이함을 강점으로 블로거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제로보드 기반의 홈페이지에 RSS와 트랙백의 날개를 다는 소스들은 paz의 제로블로그(zeroblog.com target=_blank>http://zeroblog.com )에 공개되어 있다.

3.3. '싸이월드'와 비교하여 짚어본 블로그의 매력
블로그를 구축하면, 우선 자신이 작성한 게시물의 요약(RSS feed)을 보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새로운 방문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RSS 기술 덕분인데, 자신이 블로그에 어떤 글을 작성하면 '중앙 RSS 수집 페이지' (ex. '네이버 블로그'의 '따끈따끈 포스트')로 그 정보가 보내진다. 그것들을 수집하는 '중앙 RSS 수집 페이지'의 블로그 중개를 통해 자신의 게시물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검색엔진에 자신의 게시물이 검색될 수 있기도 하니 검색엔진을 통해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경우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거나 랜덤 방문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타인의 방문이 불가능한 '싸이월드'의 폐쇄적인 구조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다. 설치형 블로그 사용자들에게는 '블로그코리아'(
http://blogkorea.org )와 같은, RSS를 전문적으로 수집하여 중개하는 싸이트의 가입이 권장된다. 물론 가입형 블로그 사용자들도 '블로그코리아'에 가입하여 자신의 블로그 정보를 보낼 수 있다.

또, Trackback(먼거리 댓글, 엮인 글)을 통하여 블로그와 블로그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타인의 블로그를 읽다가 작성하게 되는 짧은 댓글(리플, 꼬릿말)이 길어질 필요가 있는 경우, 자신의 블로그에서 답변을 작성하여 글로 저장한 후에 그 사실을 타인의 블로그에 통보해줄 수 있는 편리한 기능이다. 이는 공동프로젝트의 진행이나 온라인 토론 등에 더 많은 효율성을 부여한다. 직접 사용해보면 말처럼 그리 복잡하지 않다.

4. 結. - "넷 문화, 능동적 수용자의 길은 멀지 않다!"
지금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홈페이지 만들기가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고, 최근의 트렌드인 '블로그'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여기서 더 본격적으로 나아가려면, 이 글에 표시된 링크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더 많은 연구를 해야한다.

홈페이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여, 만인의 브라우저에 보여질 하얀 도화지에 네 마음껏 그려보라. 브라우저의 하얀 스크린을 채워넣는 것은 HTML과 같은 오직 자신의 붓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 시작이 간단하게도 img src=" " 같은 명령들임을 알았으니 두려워 말라. 그리고 블로거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랜덤 방문 말고도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할까 한다. 잃을 것은 그저 킬링타임을 위한 웹써핑이요, 얻을 것은 싸이월드의 틀 따위를 깨부술 진정한 넷의 참뜻이라!

※ 필자의 블로그 홈페이지 KJLAB.com (http://kjlab.com)의 guest 코너에서 이 글과 관련한 어떠한 문의 사항이라도 받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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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관하여'란 글을 中心으로..

출처 : KJLAB.com(http://kjlab.com)에서 퍼왔는데 좋은글이네요 ^^

 

▨ '싸이월드에 관하여'란 글을 中心으로.. ▧


일러두기.
파란색으로 찍힌, 숫자가 달린 글들은 싸이월드에서 돌고있는 "싸이월드에 관하여"란 글에서 직접 인용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화살표를 달고 제시되는 부분들이 제가 그 글에 주를 달아놓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매끄러운 글의 전개를 위하여 인용된 원문의 순서를 바꾸었음을 일러두는 바입니다.


0. 처음엔 도대체 몰 하는곳인지, 1촌은 몬지, 파도타기가 몬지, 스킨이구 미니룸이구 왜이렇게 복잡한거야 하면서 멀리한다 싸이리쿠루팅 정말 힘들다. 여길 모르는 사람을 일루 데려온다는것은 정말 힘든 과제이다.

1. 어느날 중독위험이 높다는걸 알게된다. 중독이 된후 부터는 싸이로그인 하는걸 "싸이질"이라구 불러준다

9. 싸이질 하는 친구들끼리 만났을때 대화내용에 1/3은 적어도 싸이관련 얘기다..."누구누구 홈피 갔는데....." "야, 너 홈피에...." 등등

-> 고백컨대, 나 역시 싸이월드가 한국 블로그 시장의 천하통일자가 될 가능성을 전혀 점치고 있지 않았다. 우선 이 형태가 블로그 시스템의 멋진 한국 '이식 형태'였음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너무 조잡하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용이성, 1촌시스템, 파도타기 등으로 네티즌들을 또 하나의 wired 중독 - 통신수단과 자기가 접속되어 있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 으로 가뿐히 이끄는 솜씨를 보고 그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인간의 뇌가 직접 넷과 연결되는 멀지 않을 미래를 그려본다. 네이버 지식in이 당신의 개성없는 뇌를 대체할지도?



2. 써버느릴때 아무리 짜증나두 새로 업뎃된 사진은 꼭 봐야한다

17. 싸이가 "뜬" 가장 큰이유는 프리첼이 유료화라는 바보같은 짓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아무리 무료화로 돌려봐도 소용없는 짓이라는걸 깨달았겠지

-> 싸이월드의 막강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싸이월드와 프리챌의 차이는 SK와 프리챌홀딩스(프리챌의 모회사)의 차이에 다름 아니다. 사진 등의 컨텐츠 저장용량이 무제한이라니! 대체 이것이 왠말인가. 젊은이들 3명 중 2명은 디카를 보유하고 있으며, 1명은 항상 휴대하는 작금의 세태에, 이 시대의 멋진 리더라는 우리 네티즌 여러분들[비꼬는 의도 과분함]은 자신들의 쿨한 사진을 전시할 공간이 급히 필요했다. 게시판처럼 주로 글을 다루는 공간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사진 올리다보며, 자연스레 넋두리하다보니 금새 채워지는 나의 공간이라니, 아, 뿌듯하기도 하여라?

프리챌은 유료화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수익모델의 문제보다도 회사가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료화 실패 후 실제로 회사가 넘어갔다. 그러나 SK? 너무 영리하게도 계정 용량을 부담없이 마구 나눠주며 도토리 장사[이게 젤 어이없다, 여기서 도토리는 다람쥐밥이 아니라 분명히 돈이다.]를 시작했다. 최고의 사기 및 이상적 장사는 전국민을 상대로 100원씩만 빼어먹는 장사이다. 그리고 도토리가 수익성을 보일 때까지[필자는 싸이가 아직 흑자 전환하지 않았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국민에게 그깟 몇 백메가 이상씩 뿌리는 일들, SK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다. 독과점 시장을 만들 날까지 거인은 어디가 긁혔을지 느낌도 없다. 접속이 폭주해서 써버가 느려지고, 그 트래픽량이 폭발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질 우리의 용사, "자본"이 다 마그마? 대기업이 이렇게까지 정말 있는 장사 없는 장사, 다 개입해서 해먹어야겠냐?!

거기에 싸이월드가 무리하며 도메인을 NATE가 포함된 형태로 바꾼 것이 최근의 일이다. 뭐 시스템을 조금 손봤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첫째가 무선모바일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일 것이고, 둘째로는 칼라링 받을때만 접속하는 NATE.com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이리라. 제발 이미 변해가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기업 SK의 배려라고 감동하지는 말아주시길.

더욱 영리한 것은 흔히 빠지기 쉬운 e-mail 계정 만들어 나눠주기의 함정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거들떠 볼 필요도 없었다. 아직도 DAUM의 카페와 연관되어 큰 힘을 발휘하는 DAUM 한메일의 아성을 깨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판세가 굳었으므로 명함 다시 고쳐찍거나 새로 주소를 홍보하기 힘들 이들에게 DAUM-한메일의 지배는 꽤 오래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e-mail 계정, 결국 자신이 가장 로그인 많이 하는 싸이트의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므로, 앞으로도 시장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요즘 아무도 안 써주는 황현정씨가 짜잘한 요리프로에 출현할 때마다 언급하는 그녀의 막강한 남편, 이 모씨 [아마 그런 족속들 - 김희애 부군, 고현정 부군 - 은 TV보다가 드라마도 일종의 홈쇼핑 프로인줄 알고 "저거 살테야!"라고 하면 자기집에 실제로 연예인이 배달되기도 하는지 모를 일이다.] , MSN Hotmail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을것으로 점쳐진다. 그리고 NATE-ON(그렇게 편리하다매요?) 등으로 야금야금 NATE.com에 집중하는 SK에게 더 이상의 e-mail 사업은 혼선만 빚을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6. 사진은 매일매일 조금씩 업뎃 되는 홈피가 재밌다. 한꺼번에 몇십장 올라오면 흥미를 읽게된다

-> 너무 많은 정보량은 오히려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지금의 정보화 시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홈피 사진도 전략적으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만 올려야 그 페이지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며, 그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홈피주인, 즉 사진게재자의 모든 사생활을 자기가 다 꿰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3. 첨에 파도타기하다가 아는사람보면 펄쩍뛰며 신기해한다

4. 어느정도 싸이에 익숙해지면 이세상이 정말 쫍다는걸 느끼구 그담부턴 누구누구 홈피에서 누구누구를 봐도 놀라지도 않는다

5. 차츰 몰래몰래 다녀가는 미니홈피들이 생긴다 자신한테두 싸이코 기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차츰 들어온다

6. 내가 몰래몰래 다니는 만큼 누가 내 홈피를 다녀가서 조회수를 높이나 궁금해한다

10. 싸이월드에서 몰래 봐왔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을때 캡 어색하다 아는척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싸이월드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 존재 인물들이다. 진짜 길거리에 지나가는걸 본적두 있다. 특히 코엑스 몰, 압구정동, 백화점 등에서.

15. 일단 나는 모든걸 비공개루 하지만 남들도 비공개 하면 짜증난다. 그리구 모르는 사람 홈피 갔을때 모든게 전체공개 되어있으면 신이나서 구경한다.

-> 모든 이들의 링크화, 막강하다. 그 사람의 싸이월드 홈피를 알게되면 그 이와 밀접한 이들(사진도 보아주고, 답글도 써주고..)의 홈피까지 알 수 있게되는 것, 이야말로 관음에 굶주린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취미이다. 넓게 사람을 알아가고, 자기가 알고있는 사람의 친구들까지 어떤 인물들일지 대충 알아갈 수 있다는 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부분이 물론 많겠으나, 대개는 '훔쳐보기'의 일종일 것만 같은데?

10번에 관한 부분은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는데, 첫째는 자신의 cyber-showing이 그 인지도에서나 조회수(Hit개념까지 설정해놓았다니 역시 치밀해!)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자신이 넷상의 스타[투데이 멤버 소개 개념? 교묘한 덫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집요하다. 상줘야겠다?]라도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위의 기준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당신의 총알은 결국 마지막엔 오직 도토리이기 쉬워라. 둘째는 타인과 인간관계할 때, 그이가 내게 제공하지 않은 정보를 나 혼자 훔쳐보기로 알아내서 보유하고 있을 때의 애매함이다. 훔쳐봤다고 말하기도 쑥쓰럽고, 모른척하자니 다 아는 내용이고 말이다.




7. 스크랩수가 올라갈때마다 누가 퍼갔을까 반걱정 반호기심

8. 이전엔 습관적으로 자유롭게 친구들이랑 찍던 사진들두 이제는 밖에서 레스토랑같은데서 사진찍을때면 쳐다보는 사람들이 "쟤네 저거 싸이에 올릴려구 찍는거야!" 하구 생각할까봐 좀 쪽팔린다. 그리구 본인두 남들이 사진찍으면 그렇게 생각한다

-> 이런!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물론 나 역시 내 싸이버-공간에 올리기 위해서 미국과 유럽에서나 최근의 일상에서나 틈나는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거 아니냐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는다면, 그에 결코 거짓이라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까지 알 바는 아니다만[내 머리만으로도 복잡해죽겠다.. 네생각은 네가 알아서 좀 해라.], 싸이를 위해서는 결코 아닌데! KJLAB.com(http://kjlab.com ) Forever!!



11. 스킨을 직접 살때와 선물받은 스킨을 사용할때 기분이 백만배 차이난다

12. 어느날 모든 미니홈피의 음악이 짜증나서 볼륨을 죽여버린다

-> 역시 도토리의 성공사례라 하겠다. 싸이월드가 친절하게 생일이나 기념일까지 알려준다 하는것 같던데, 그런 통보를 받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당사자에게 음악이든 스킨이든 뭔가 해주어야한다고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에이, 500원도 안하는데, 까짓..라는 가벼운 생각, 우리는 우리가 이런 고민들에 빠지는 사이, 여기서 돈을 모아 고소영(Oh, My Goddess!)과 살고 있을 최태원과 전경련 회장도 못해먹겠다는 손길승을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13. 1촌신청할때 매우 고민한다. 저쪽에서 내가 1촌신청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사진은 보여주고싶구 어떤 사진은 안 보여주고 싶고.....등등. 마찬가지로 별로 1촌하고 싶지않은 누가 나한테 1촌신청하면 수락안할수도 없구 좀 난처해진다.


14. 1촌에도 레벨이 있었으면 한다. 근데 사실상 불가능이란걸 알지만. 그렇다구 홈피를 3-4개 만들수 있는것두 아니구.

-> 1촌시스템, 실로 치밀하다. 단계를 두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니? 손쉽게 Gate-keeper(정보의 통로, 길목에서 정보의 접속을 통제하며 실리를 챙기는 세력)가 된 자신의 모습에서 우월감을 느끼자! 14번의 지적, 역시 일리있다, 오~ 미다스 SK, 그냥 2촌,3촌도 만들지 그래? 그러려면 도토리가 몰래 50원씩은 올라야할지도 모를 일이지.



18. 세상에는 딱 2가지 사람들이 있다. 싸이하는 사람들. 싸이 안하는 사람들.

-> 지금 여기까지 글을 흥미있게 읽어온 당신이라면, 이미 중독이다! 정상적인 반응은 "에이, 이게 뭐람, 또 오바하고 있는거야!"하고 반쯤 읽다 다른 페이지로 날아갔어야 정상이란 말이지. 그리고 두 가지 부류에 한 가지 부류가 더 있다. 아예 개인홈피를 차려놓고 너무(!) 쓸데없이 집중하는 사람들(나도 속해있겠지?), 이건 아예 '구제불능'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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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터미널'..외국인 넉달째 인천공항 체류

<한국판 `터미널'..외국인 넉달째 인천공항 체류>
 
[연합뉴스 2004-09-14 09:37]
 
(영종도=연합뉴스) 임주영기자 = 한국 입국이 거부된 다수의 외국인들이 인천공 항에서 집단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여권이 없어 넉달째 공항안에서 장기 체류중인 외국인도 있다.
이는 최근 개봉된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서 고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여권효력이 정지되면서 입국이 거부돼 뉴욕 JFK공항에 장기 체류하게 된 남자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4일 인천국제공항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남자 A 씨는 지난 5월1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입국이 거부돼 국내로 송환됐다.

A씨는 한국을 출발, 스위스에 도착해 여권을 찢고 망명을 요청했으나, 스위스 정부가 심사 끝에 "망명을 시도할 난민으로 볼 수 없다"며 우리나라로 추방한 것.

결국 A씨는 이전 경유지인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권이 없어서 국내에서도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무국적자'로 판명, 입국이 거부됐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A씨는 자신이 아프리카에 있는 모 국가 출신이며, 자신 의 국가는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측은 A씨의 주장을 검토하기 위해 일본에 있는 A씨 출신 국가 의 대사관에 연락을 취한 뒤 신원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A씨의 여권과 탑승권이 없어서 확인에 시간이 걸렸고, 출입국사무소측은 A씨를 입국 터미널내 모처의 `출국 대기실'(Detention Room)에 머물게 했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이 흘러 이달 13일까지 120일이 흐른 것.

현재 출국 대기실에는 A씨를 비롯, 범죄전력 등 명백한 거부사유로 입국이 불허 된 다수의 외국인 입국 거부자들이 기거하고 있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매일 20∼30여명이 대기실에 머물며, 입국거부 당일 송환되 는 사례가 많지만 여권 재발급을 기다리다 1∼2주일 이상이 걸릴 때도 있다.

이들은 경유 공항에서 다른 공항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환승여객(Transf er Passenger)과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행동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 정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공항 노숙자'인 셈.

그러나 공항 당국이 의식주 해결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며, 대기실에는 침상ㆍ화 장실ㆍ샤워실과 TV, 인터넷, 공중전화까지 설치돼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다.

동남아 출신 입국거부자가 많아 특정 언어로 된 기내 신문도 매일 제공된다. 장 기 체류자의 경우 옷을 빨아 널고 잠을 자는 등 `일상생활'도 편안히 유지하고 있다.

A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 관계자는 "대기실 외국인의 상당수는 불법체류를 위해 입국을 시도하다 좌 절된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적법절차에 따라 이전 경유지로 송환되는 게 원칙이며 A씨도 여권이 나오는 이달말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zoo@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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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열정사이ost_첼로를 들으며...

나른해지는 오전 사무실, '냉정과열정사이OST_첼로'를들으며,

혹시나 피렌체성당에서와 같은 서른살 생일의 약속이

나에게도 있을까 가만히 까마득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본다.

역시나 없었다 ㅡ,.ㅡ



냉정과 열정사이
(冷靜と情熱のあいだ, Between Calm and Passion, Calmi cuori Appassionati)

 

이상하게 난 재밌고 감동적인 책을읽고 나면 곧 영화가 나와 그 감동을 배로 즐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멜깁슨의 사랑이야기, 폭풍의언덕, 백야, 러브스토리, 냉정과열정사이 등등 ^^
사실 읽은 책이 몇개 안돼서 그럴지도 모른다 ㅋㅋ 영화부터 보고 책을 읽으면 왠지 재미없을것 같다.

책을 읽을때는 '아..남자랑 여자랑 같은것을 경험하여도 서로 이렇게 다르구나..라고 느꼈다'
10년동안 이태리 피렌체에서 몇번의 우연한 만남을 갖게되고, 준세이는 하나씩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간절히 그리워하지만, 깊은 우물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오이는 입밖으로 소리내어 자신의 아픔을 얘기하지 않은것 처럼..
물론 남녀의 행동양식을 일반화시킬 의도는 없다. 다만 약간 느낌이 다른건 희미하게나마 알수가있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수 없지만..^^

책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영화를 볼때는 스토리에 대해 그렇게 집중하지 않아도 돼었다....그래서인지 여운에 남았던 것은..
준세이가 아오이에게 보낸 편지의 나레이션과
피렌체의 아름다운 장면장면 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준세이(順正)와 아오이(靑)는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영어를, 서로 불필요한 대화를 할 때는 이태리어를,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비로소 일본어를 선택하는 식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단다.

정말 처음 책이(처음에는 남자작가와 여자작가가 동시에 써나가난 연재소설이었다고 한다^^) 기획될때부터 제목의 특이함, 영화로 완성되어(완성이란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OST음반의 곡들이 큰 인기를 얻게되는것 어느하나 독특하고 신기하지 않은게 없는 작품이었던것 같다..

책을 소장해 두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영화라도 다시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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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시장의 붕괴는 음악 시장의 붕괴인가?

트랙백주소 : http://www.funnyplan.com/blog/?no=385

 

음반 시장의 붕괴가 음악 시장 자체의 붕괴가 아님에도 동일하게 이해되어 지고, 왜곡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박하기 위해 자료를 좀 뒤지고 있었고, 정리를 하려던 참에 이현우의 인터뷰가 떳길래 핑계삼아 정리를 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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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가수들이 너무 불쌍하다" 
가수 이현우, "노래만으로 부와 명예 꿈꾸는 시대 지났다”
 

- 한국 대중음악이 유례없는 불황이다. 
예전에는 음반 시장이나 좋았지. 지금은 휴대폰 벨소리 등 음반 관련 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콘텐츠를 제공하는 가수들은 다 거지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 받고 한 사람들이 가수들을 그렇게 만든 것 아닌가.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왜 욕하는가. 음반을 사주고 그러면 가수들이 그러겠는가. 난 요즘 후배 가수들을 볼 때면 너무 불쌍하다. 내가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는 100만장 넘는 가수들이 흔했지만, 지금은 10만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 어떻게 하면 음반산업이 다시 호황기를 맞을 수 있을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CD라는 유형의 형태로 앨범을 내는 것은 LP가 끝났던 시대처럼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CD로 가공하는데 엄청난 돈이 드는데 그것을 거둬들일 방법이 없다. 다른 형태를 모색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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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현우를 좋아합니다. 개인인 이현우의 인터뷰를 꼬뚜리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 시장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 혹은 음악 관계자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기 위하여 인용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1. 음반 시장의 붕괴의 주범이 무료 MP3 때문인가?

이현우가 말했던 것처럼 음반 시장은 중흥기였던 2000년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cd플레이어보다는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고, 휴대폰의 컬러링과 벨소리를 음악으로 꾸미고, mp3플레이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된 것이다. MP3가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속화시켰을 지언정 음반 시장을 붕괴시킨 주범은 아니라는 것이다.

2. 음반 시장 = 음악 시장?  

음악이나 영화는 콘텐츠다.  콘텐츠는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수많은 매체는 항상 새로운 기술에 의해 새로운 매체로 대체된다. 오히려 기존의 매체를 새로운 매체가 대체하면서, 강력한 새로운 매체에 의해서 시장이 더 커지게 된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순히, 음반 시장의 붕괴를 음악 시장의 붕괴와 동일시 하려는 것은 흑백TV가 칼라TV로 대체된다고, 드라마시장이 죽는다느니 탤런트들이 다 거지가 된다라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소비자가 음반을 사지 않아 가수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이미 오프라인의 시장을 넘어서 온라인 음원 시장에서 더욱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3. 소비자는 무료 MP3만 다운로드받으면서 가수탓만 한다?

아래 참고자료의 설문자료에서 볼수 있다시피 소비자는 언제든 적정한 가격에 MP3를 구입할 의향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곡을 듣기위해 10곡이 들어있는 1만원짜리 음반을 사야한다면, 얼마나 불합리한가?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미 MP3로부터 화제가 되어 음반 판매 베스트셀러가 된 예가 있으며, MP3로 인해 신인가수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홍보할 기회를 갖는다. 기존의 매스미디어에 의존해오던 음반 홍보방식은 댄스, 발라드 등 음악 편중 현상을 나았고, 제작자들은 유행에 편승해 컴필레이션 음반을 양산하다 자신의 음반을 팔 기회를 잃고 있었다. 가수는 자신의 가수로서의 자질을 키우기보다 개인기 연마에 힘썼고, 매스미디어에 한번더 얼굴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반을 잘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뮤직비디오를 예쁘게 만들고, 누구를 어느 프로에 출연시킬까에만 집중했다. 음원권리자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손해분을 만회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기업들의 자유로운 음원 비지니스의 기회를 박탈하고 일률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면서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4. 콘텐츠를 제공하는 가수들은 다 거지다?

예로부터 해적행위는 지속되어 왔다. 영화산업이나 음악산업이 해적 행위로부터 활성화된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해적행위가 특히 인터넷 사용자인 '네티즌'과 'MP3'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지속되어 왔던 복제와 공유가 더욱 악랄한 행위로 묘사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3000만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인터넷 사용자라고 본다면, 국민 모두가 해적 행위를 일삼는 범죄자인 셈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이 이미 오프라인의 음반구입 가격을 넘어서는 음원을 구입하고 있다고 볼때, 콘텐츠를 제공하는 가수들의 다 거지가 된 사연은 그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던 오프라인의 불합리한 유통구조와 귀신도 모르는 판매 집계, 제작사와 가수간의 불공평한 계약관계, 수익의 분배과정의 불합리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현재까지의 음악의 소비 편중이 다양화 되면서 싱글음반이 활성화되고 콘서트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더욱 많아지는 요즘을 볼 때, 음악산업이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음반 시장의 붕괴는 음악 시장의 붕괴인가?

그림 1) 음반 시장 추이

표 1) 온라인 음악시장 매출액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음반시장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급속히 음반시장이 침체되었지만, 온라인 음악시장은 수직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03년 온라인 음악시장은 1,85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대비 37.6% 증가한 수치이다. 같은해 국내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전년대비 35.9% 감소한 1,833억원을 기록했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온라인 음악 수익창출 무한지대 中 

이미, 온라인 음악시장이 2003년에 오프라인의 음반시장을 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매출액을 합쳐보면 3,683억원으로 호황기인 1990년대 후반의 음반판매량에 버금가는 액수이다. 음반시장의 침체로 음악 산업 전체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억지이다. 2000년이후 불황기를 겪고있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감안할때, 음반 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온라인 음원시장이 음반시장의 매출 감소를 충분히 보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관계업체들은 2007년에는 음원 시장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책임을 소비자와 인터넷업체에게 오히려 전가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으며, 그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온라인 음원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기위한 몸부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음반 판매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 거대 음반사들은 가수들과 매니저들을 앞세워 인터넷업체와 MP3 휴대폰 업체들을 압박하고, 뒤로는 축적된 자본으로 포털과 전자분야의 대기업과 제휴하여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들이나 음악 관계자들은 이것을 깨닫고, 누가 적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6.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가수나 제작사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접점을 좁힘으로써 대형 음반사들의 횡포와 불합리한 유통구조에서 오는 불공정한 수익배분을 회피하면서 더욱 합리적인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으며, 음반 하나를 채우기 위해 10곡을 채워 팔아야하는 쓸데없는 수고와 비용의 낭비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신인 가수들은 누구나 TV에 출현하지 않고도 자신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게 되었고, 직접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음악의 다양함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선택하고,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원하는 곡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음원 시장에 있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재해 있다.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대형 음반사들의 가격 정책 통제로 인해 기업들은 자유로운 비지니스의 기회를 잃고 있으며, 음악 산업 종사자들끼리 자신의 이권다툼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음원 또는 음반을 구입할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을 책망해야 한다.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차비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메리트를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일, 음반 판매를 하고 싶다면 이와 같은 메리트를 제공하여야 한다. 음반을 사면 그 음반에 들어있는 모든 음원을 휴대폰으로 다운받아 즐길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만일, 음원을 판매하고자 한다면, 소비자가 살만한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서 소비자가 음반도 사지않고, 음원도 사지 않고 무료로 즐기니까 우리는 다 거지가 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떼를 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관계자들은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는 것임을 관계자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끝 -

▽ 참고 자료

네티즌 "정보 유료화 반대안해"...LG애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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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파일 공유 안되면 네티즌 음반 구입 줄어"
디지털 시대에 대중음악이 사는 길
[문화 비평] 국내 음반시장, 도대체 미래는 있는가
새 술은 새 부대에
온라인 음악 수익창출 무한지대 [키움닷컴 연구원 남혜진] 
파일공유(P2P)와 음반시장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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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가치와 사회계급 [발리바르-역사유물론 연구]

출처: http://currentinside.net/mirrh/view.php?id=AB&no=220 (Power to the People)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에띠엔 발리바르 지음/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위치
  엥겔스; 정치경제학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인간 사회의 물질적 생활 수단의 생산과 교환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과학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어떠한 새로운 개념도 도입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비판적 작업을 되풀이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경제학적 개념에 신비적으로 반영된 모순의 표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다. 이 잉여가치에 대한 입장이 여러 논자들을 특징짓는다.

맑스주의의 문제제기
  맑스의 문제는 동일한 수준에서의 대체, 확장이 아니다. 차이는 대답의 수준이 아니라 이에 앞선 질문의 수준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관점의 적절한 이론적 정식화는 정치경제학의 제 곤란을 해결하기는커녕, 그 속에 해결불가능한 제 모순을 도입한다. 맑스의 이론은 하나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제 조직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정치적 위기를 격화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사회구성체 개념의 도입
  맑스 이론의 제한; 맑스의 이론이 연구하는 것은 제 사회구성체 일반의 역사가 아니라 오직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만의 역사적 경향이다. 보다 정확히는, 혁명의 필연성을 낳고 발전시키는 모순과 이 모순의 통일이다.
  이것은 계급투쟁의 존재양식은 분석한다. 이 분석은 생산에서의 그 위치와 효과에 의해 현존 사회의 혁명적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에 자신을 둔다. 이 관점의 변경은 이론적 단절(연구대상의 변경), 실천적 단절(계급적 관점의 변경)의 통일로 실현된다. 또한 이 두 가지 변경은 서로의 변경 속에서 실현된다.

맑스주의 내의 두개의 기회주의적인 경향
  ①객관주의적 경향; 맑스의 고립된 정식을 이용, 제국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을 만들려 시도한다. 부르조아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제 개념을 수용한다. 맑스주의를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에 병렬시킨다. ②주관주의적 경향; 맑스주의를 하나의 '학과'로서, '비판'으로서만 사고한다. 맑스주의를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비판'으로만 소극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연구대상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규정한 본질적인 두 가지 부분
①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이론적 정의 ②프롤레타리아, 부르조아 계급의 이론적 정의



1.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잉여가치론 (118)
(1) 불가능한 자본주의 경제사
여러 가지 부르조아 경제학의 관념
  (신)고전파; 자율적인 경제 체계가 존재하며 이 체계는 '외부적' 요인들, 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제 질서의 개입에서 근본적으로 자유롭다.
  케인즈; 독립적 경제주체인 '국가'를 상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으로' 체계의 구조 속에 기입되어 있다.
  이 속에서 체계의 전화과정이란 의미에서 진정한 경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경제적 사실만의 기술이 있을 뿐이다.

맑스주의자가 공유하는 부르조아 경제학의 관념
  균형, 변동, 성장 대신 경제적 진화의 법칙에 대한 관념을 대체시켰다. 이것은 생산체계 발전의 제 단계를 선험적으로 제시하고 그 대체를 증명하려 한다. → 이들은 역사적 계급투쟁에 대해 부차적인 기능만을 부여한다.
  이러한 관점은 카우츠키, 플레하노프, 스탈린이 공유한 관념이다. 이들은 이론적으로 부르조아 경제이론과 동일한 지반 위에 서있다. 생산력 발전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동떨어진 그 자체 설명 불가능한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경향으로 생각한다.

(2) 역사적 생산양식의 문제 설정 (122)
독특한 역사적 제 조건의 연구
  특정의 사회구성체의 구조를 구성하는 사회적 제 관계(생산관계)가  축적, 성장 등의 경제적 제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며 그 역은 아니다.(생산력-생산관계의 관계에서 생산관계의 우위) 사회관계로서 자본의 역사적 제 조건의 전화와 그 특징을 '경제분석' 속으로가 아니라 경제학이 인식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문제의 입장(계급투쟁!)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자본을 상품생산의 사회적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단지 '하나의 생산요소'로 보이는 임노동이 자본의 본질적인 규정임이 밝혀진다. 여기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사회적 계급투쟁의 인식이 가능하다.
사회과정의 설명에 대한 새로운 결합의 설정
  고전파적 표상에 의하면 모든 '경제외적' 요인은 자연적 경제법칙의 객관성과 대립되는 '주관적' 결과이다.그러나 이 해결은 관념의 강조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제 관계의 결합의 독자적인 형태를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여야한다. 즉, 이들 모든 관계나 그 경향적 변형이 생산의 제 조건의 생산 및 재생산에서의 물질적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양식 개념의 도입
  전제; 제 생산양식의 일반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생산양식은 독자적인 이론에 의존한다. 다만 그 일반적인 과학적 문제설정이 필요하다.
①생산양식은 생산적 노동자, 비생산자, 물질적 생산수단 사이에 전제하고 재생산하는, 제 생산관계의 성질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 지워진다. 여기에 비생산자계급의 존재 때문에 생산양식은 사회적 노동의 착취양식이다.
②생산양식은 생산관계의 존재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적 제 생산력의 성질에 의해 부차적으로 특징 지워진다. 모든 생산양식은 특정의 생산관계의 효과에 의해 현존의 생산력이 겪는 경향적 전화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생산관계-생산력의 상호고립이나 절대적 조응이 아니다. ex. 자본주의-사회적 기술적 분업의 성질
③생산양식은 제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필요한 상부구조의 형태와, 이 형태가 생산관계가 전화하지 않는 한에서 변동하는 한계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3) 자본주의 생산양식 :잉여가치 (126)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기본적으로 성격 짓는 것은 잉여가치의 생산과정 속에서 노동자와 자본을 대립시키는 생산관계이다. (잉여가치의 존재가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양식과 구별한다.)
  상품가치의 잉여가치와 노동력 가치로의 분할은 사후에야, 자본주의적 생산 조직의 결과로 발생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잉여가치의 생산이 동시에 가치의 형성과정이다.

잉여가치의 통속적 정의와 그 문제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소비수단의 가치 이상으로 사회적 노동에 부과된 신 가치의 초과분이다.
  통속적 정의의 문제; ①잉여가치의 회계화로 본질이 은폐된다. (초과적 가치의 존재와 그것의 비생산적 계급의 영유도 공통적이다.) ②자본주의에서 왜 모든 생산물이 가치형태를 취하는가에 대한 문제의 해결을 전제한다. 잉여가치를 올바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형태로 정의해야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이 초과분의 확보는 생산과정 밖의 외부적 강제가 아니라 동력이 생산력에 합치되는 직접적 생산과정 내부에서의 강제를 통한다.)
  cf. 이 초과분이 확대된 규모로 생산수단의 축적에 기여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을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

상품의 가치의 형성
  상품의 가치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a.생산수단에 대응하는 부분 b.노동력 가치에 대응하는 부분 c. 초과분에 대응하는 부분.
  생산수단의 위치; 생산수단은 노동력의 지출 속에서만 재생산되어 생산물에 이전된다. 생산적인 노동력의 소비가 없다면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생산될 수 없다. 또한 생산수단은 이 소비의 '흡입'수단이다.
  여기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간의 본질적 차이는 상품형태의 화폐적 표현 속에서 주기적으로 소멸한다. 이 차이는 자본의 가치 증식과정인 생산과정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차이는 또한 자본을 전 사회적 규모에서 분석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

잉여가치의 형성
  이러한 가치보존-가치창조의 이중과정은 잉여노동을 생성시키는 자본주의 고유의 메커니즘이다. 자본제 생산양식의 본질은 영속적으로 잉여노동을 노동의 필요조건 일반으로 하는 과정의 모순적 통일이다.
  이것은 곧 계급투쟁의 특정의 제형태의 내적 결합의 분석이다. 잉여가치란 이 착취형태들의 유기적 통일이며 생산과정에서의 계급투쟁이다.
  잉여가치의 정의에서 이것은 계급투쟁이 파생되는 경제적 메커니즘으로 정의하는 경제주의, 억압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적으로 열거하는 절충주의를 모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부르조아 정치경제학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의 관점; ①가치형태란 무조건적 전제이며 설명되지 않는다. 오직 주어진 한에서의 가치의 양적 변동만이 문제이다. ②(고전파의 경우)노동시간과 상품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 어떠한 조건하에서 노동은 측정 가능한 크기가 되는가./ 왜 노동이라는 양은 가치라는 대리자의 양적 형태로 간접적으로 표현되는가.
  부르조아 정치경제학이 회피하는 문제; ①생산물의 양적 결정이 가치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을 내포하는 사회적 과정의 구조란 무엇인가? ②노동력을 일정가치의 상품이게 하고 그것을 생산물 속에 기장할 수 있게하는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③ 소비수단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균등성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노동력 가치의 결정은 노동자의 소비를 노동력의 단순 재생산으로 축소시키는 계급투쟁의 형태에 의존한다.

사회적 노동의 분석
  보다 근본적인 가치의 원천으로서의 사회적 노동의 분석은 착취의 문제이다.
  맑스의 문제지점; 가치의 양적 원리의 결과의 발견이 아니다. 생산물에 가치 형태를 보편적으로 부여하는 사회적 노동조직의 특수형태, 즉 계급적 적대관계를 내포한 사회적 노동조직의 특수형태를 설명하고 이들 조건의 역사적 전화를 문제삼는다. 착취를 경제적 메커니즘의 결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의 이중성의 전면적 발전
  노동의 이중성의 발생은 생산수단을 노동력으로부터 분리시켜 이 노동의 직접적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인간 노동을 흡입하는 수단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다.

(4) 자본주의 생산양식; 토대와 상부구조 (135)
자본주의의 '경쟁적/독점적 단계'
  이른바 자본주의의 '경쟁적 단계'란 사실 경쟁이 아직 덜 격심하고 불균등한 단계이다. (19c 유럽)
  이에 비하여 '독점적'이라 불리는 단계는 사실상 경쟁이 가장 격렬한 단계이다. ('민족적 질곡'이라는 것도 경쟁이 극도로 발전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독점자본주의는 경쟁의 폐지가 아니라 경쟁의 격화이다.

결정력이 불균등한 두 요소의 통일로서의 자본주의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제 생산관계의 기본적인 요소를 이룬다. 이것은 우리가 기본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화폐자본의 금융시장과 상품기장에서의 제 자본의 운동, 따라서 그 고유의 모순을 동반하는 자본간의 경쟁과 집적의 운동은 이 기본적인 측면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부차적인 요소이다.

화폐소유와 법적 소유
  자본제 발전에서 역사적으로 개인적인 '법적 소유'의 일반화가 달성된다. 소유에 접근하는 수단으로서의 화폐소유와 함께 법적 소유도 화폐를 처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전 인민의 국가'
  기본적 생산관계 그 자체는 형식적 평등에 기초한 생산자와 비생산자 간의 개인적 자유(적어도 시민적인)의 경향적 발전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발전된 상부구조의 제 형태, 특히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제 형태를 생산관계와 접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본제 국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인민의 국가'로 모든 개인의 '대표자'로 나타난다.

(5) 사회구성체 (137)
추상적 정의
  ①이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 사회계급의 총체이다. 혹은 보다 엄밀히 말해 제 계급 상호간의 관계의 총체이며 이것이 역사적인 계급투쟁의 구조를 형성한다.
  ②이들 계급관계는 모두 실천적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불균등한 결정력을 갖는다. 도식적으로 사회구성체는 생산, 유통의 제 관계('경제적'이지는 않으나 '경제적 효과를 낳는' 제 관계)라는 물질적 토대와 상부구조의 총체이다.
  ③'재생산의 총과정'의 연구가 필요하다. → 이것이 토대/상부구조의 역사적 조응의 열쇠이며 제 생산관계의 결정적 역할을 표현한다. 제 사회관계의 모순적 통일의 핵심이다.

철학적 주의사항
  ①사회구성체는 특수한 생산양식, 그것이 내포하는 계급투쟁의 발전으로부터 생기는 구체적 형태로만 존재한다. → 추상적 정의는 오직 실재분석에 도입될 때 정확히 볼 수 있다.
  ②사회구성체의 분석은 결코 전체성의 표상은 아니다. '진정한' 구조, '최종적' 원인을 알기 위하여 '모든' 측면을 '예외없이'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된 전체성의 야망은 하나의 이론적 환상이다.
  ③과학적 분석의 목표는 계급투쟁에 대하여 불균등하게 작용하는 제 관계 속에서 그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성의 표상이 아니라, 경향적인 결정, 제 결정의 불균등성과 복합성, 그리고 그것이 결합되는 구체적인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④이러한 의미에서 사회구성체는 혁명투쟁의 전술·전략의 정치적 실천의 두드러진 목표이다. →기본적인 적대관계(자본/프롤레타리아)가 다른 모든 적대관계에 의해 어떻게 '과잉결정'되며 또 역으로 어떻게 그것을 결정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계급적대의 다양한 제 형태를 서열화하고 접합시킬 필요가 있다.

계급분석에 대한 테제
  ①맑스주의 계급분석은 계급에 대한 역사/통계/사회학적인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계급분할의 영속적 과정과 그 연속적인 제 형태에 대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관계 자체의 분석-자본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②맑스주의 계급분석은 제 계급을 통일, 즉 대립시키는 관계 내부에서의 제 계급의 본질적인 비대칭성을 드러낸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의 관계는 위계제도, 대면하는 유사한 제 항(項)의 한 짝도 아니다. 적대관계는 일대일 대응관계가 아니다.(자본 자체의 분석 속에서 그것을 기초지을 수 있어야 한다.
  ③제 계급은 사회집단과 구별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집단을 계급이 아니다. 그렇다면 계급적대와 그 효과의 외측에는 어떤 다른 것도 위치하지 않는다. 사회계급의 역사는 착취의 발전에 의해 창조된 제 조건의 총체에 기초한 재생산의 역사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의 양극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는 경향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라는 두개의 현실적 계급만이 존재한다. 지배적이지 않은 다른 관계조차도 자본에 의해 경향적으로 파괴되어 자본은 계급적대를 단순화, 철저화시킨다.
  새로운 사회학적 집단-'중간층'조차도 계급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계급투쟁의 발전의 효과로서 재생산 과정 안에 위치한다.

두 계급의 상이한 위상
  프롤레타리아; 토대에는 생산 그 자체에 있어서의 착취의 조직이 있다.
  부르조아; 토대에는 독자적인 제 모순을 수반하는 제 개별자본의 유통/축적의 과정이 있다.

2. 계급적대의 첫번째 위상; 프롤레타리아와 자본 (141)
계급분석에서 주의할 점
  맑스주의의 위대한 이론가들은 사회학자들과는 달리 실재로 제 사회계급의 일람표를 제시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V.I.Lenin;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생산체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대개의 경우 법률에 의해 성문화된)에 의해,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에 의해, 따라서 그들이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사회적 부의 획득양식과 그 중요도에 의해 서로 구별되는 인간들의 큰 집단을 계급이라 부른다. 계급이라는 것은 특정의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의 차이로 인하여 그 중의 한쪽이 다른 한쪽의 부를 전유할 수 있는 인간집단이다.
  위의 정식은 계급투쟁 이전의 통계적 분류를 우선하지 않는다. 계급관계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의 대상을 이루는 것은 직접적으로 제 계급의 적대구조와 그 변형과정이지 그에 선행한 분류가 아니다. 계급의 일람표를 구성하는 것은 법적/사회학적/수입상의 서열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 사회적 노동조직에서의 역할,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되는 비생산자 계급에 의한 잉여노동의 전유 메커니즘이다.  

(1) 노동자계급의 '분파'와 경향적 분할 (144)
  노동자계급의 분파는 현존하는 제 생산수단의 사용조건이며 동시에 그 역사적 변형의 조건이다. 이의 분석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의
 프롤레타리아트로서의 노동자계급은 그 역사적 통일성에 의하여 정의해야한다. 이 통일성은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시기의 하나의 경향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처음부터 제 분할, 나아가 제 모순으로 정의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성은 분할의 작용에 의해 직접적 생산과정/노동력의 재생산과정 속에서 경향적 통일성으로 형성된다.

비숙련 노동자
  이 노동자 부분은 '이동성', 즉 최대의 고용 불안정성을 갖는다. 따라서 교체가능한 노동자간의 직접적 경쟁도 최대이다. 이들에게 노동력 시장은 지배적 구매자의 독점일 뿐이다. 이들은 분업의 최첨단에서 완전히 기계제에 통합되어 자본제 생산과정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하층분파'가 아닌 것이다.)
  cf.실업; '호경기'나 '완전고용기'에 조차 실업은 존재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급속한 소모와 조합에 대한 투쟁수단으로서 인원의 급속한 회전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숙련 노동자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조합적/정치적 조직의 역사적 토대를 형성한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분파이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귀족과는 혼동되어서는 안된다.이들은 표준노동의 위쪽부분의 직업부류의 노동자가 아니라 대공업에서 과업의 세분화로 인하여 스스로 전문화된 노동자이다.
  이들은 경향적으로 노동의 탈 숙련/과도숙련의 사이에 위치한다. 산업의 불균등한 발전은 새로운 숙련을 창조하지만 사실상 기존의 숙련을 소멸시키거나 비숙련에 접근시킨다.
  이에 비해 노동귀족은 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나 극히 소수이고, 특정의 생산부분에 제한되어 있다.

현재의 경향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기술적 분업은 변동은 하지만 완화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들의 제 분파는 자본제적 분업의 동일한 경향의 제 효과에 종속되어 있다. (숙련의 정도와 무관하게)
  그러나 그 일부는 프롤레타리아트화의 경향을 벗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생산적 노동에 더하여 노동의 조직 및 지휘의 영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재생산 과정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 (150)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이라는 문제
  분류라든가 단순한 기술학적 서술을 넘어서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은 그 고유한 역사적 전화와 독립적으로는 계급으로서 정의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형성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 내에서 사회적, 기술적 분업의 역사를 포함하며, 이 분업의 역사는 노동자계급의 통일 및 그것에 상응하는 현실적 분할을 부여하는 제일의 요소이다.

노동력 재생산의 관점과 분석을 개입하는 필수적인 이유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자신으로부터 자손에 의해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주어진 생산과정의 상태가 결정하는 사회적 제 조건의 총체에 입각해서 재생산된다. 이 과정은 생산과정과 모순될 수 있다.(학교-대학/가족/청년의 위기 등)

노동자계급을 형성시키는 것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전화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최대한의 잉여가치 생산성이라는 견지에서 상이한 노동자 분파를 사회적 규모에서 동일한 '집합노동자'안으로 통일시키는 기능적 관계이다. 주어진 노동수단의 기초 위에서 각자의 노동을 다른 사람의 노동을 최대한 착취하는 수단이게끔 하는 관계의 기능적 통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존재의 물질적 토대는 단지 기계체제로의 노동자의 통합, 그들 노동력의 '생산적 소비'만이 아니다.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보증하는 제 조건의 총체도 그 물질적 토대이다.
  현존의 제 조건에 따라서 잉여가치 생산을 최대한으로 하는 결합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자본제 생산요소의 관리, '경영'의 주요 목표이다.

기술의 발전
  물질적 생산의 제 전형은 생산의 기술적 발달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자본이 그것에 필요한 노동력을 발견해 내려고 집적하는 제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
  경제적 토대의 내부에서의 생산력의 발전은 그것이 그 실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역사에 의해 지휘되고 지배된다.

제국주의의 두 경향
  제국주의는 자본수출을 통해 식민지의 수공업을 파괴하고 식민지의 단순노동력을 본국으로 수입하므로서 산업예비군을 창출한다. 이에 따라 제국주의는 노동자들 사이의 특권 범주를 만들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분할시킨다.

프롤레타리아트화
  프롤레타리아트화는 우선적으로 노동자계급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업.금융자본 및 국가 공무원으로 불리는 노동자와도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노동력은 잉여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자본의 재영유를 위해 착취당한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제 분파를 경향적으로 통일시키는 계급적 통일의 원리를 그들 자신의 생산적 기능 속에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생산과정은 일반 노동자의 그것에 접근하며 이들은 단일한 노동시장에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노동력 재생산의 조건도 일치하여 간다. (ex.제국주의에서의 학교교육의 일반화) 노동자계급이 피착취노동전체의 역사적 중핵을 이룬다는 것을 승인케하고 그 새로운 제형태를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객관적 존재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화의 불균등한 과정 하에서만 역사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조는 주어진 사회구성체의 역사적으로 특정한 제 조건 속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화 경향의 지표일 뿐이다. 노동력의 재생산의 관점을 도입하는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계급의 존재
  어떠한 시기에 통일적인 '계급의식'과 함께 계급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동일화시키는 것은 주어진 물질적 제 조건 속에서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제 계급 사이의 제 관계이다.
  사회계급은 그들의 관계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과로서 생긴다. 사회의 사회계급으로의 분할은 그들의 역사적 투쟁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계급 개념은 '공통의 본질'이라는 표상을 갖는 개념이 아니다. 맑스주의에서 계급개념은 어떤 집합을 이루는 제 요소의 유사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체계 또는 분할의 체계를 지칭하며 이 차이는 물질적으로 결정된 적대의 효과 아래서 발전/전화한다.
  사회계급의 맑스주의적 분석은 분류가 아니라 사회계급의 분석, 이것은 사실상 계급투쟁의 분석이다.

프롤레타리아 정당
노동자계급의 상이한 분파가 착취에 반대하여 벌이는 투쟁은 '자생적으로는' 단일한 혁명적 실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투쟁을 요구한다. 이 투쟁의 도구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제 모순의 '해결'이다.

3. 적대의 두번째 위상: 자본과 부르조아지 (158)
질문의 방향
  부르조아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어떠한 특정의 사회구성체에 있어서 자본의 분배와 집적의 제 형태를 묻는 것과 같다.
  왜 그러한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지는 사회적 생산의 총과정 속에서 대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으로서 주기적 생산과정에 물질적으로 통합된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가 아니라 '자본'을 대면한다. 노동자계급은 그 자신이 가변자본의 일부가 되어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의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임노동자의 상이한 제 범주의 기술에 의존해야한다.
부르조아지; 프롤레타리아트와는 다른 방식이다.
①경제적 위치; 제 자본으로 분할된 사회적 자본의 유통, 축적의 과정, 이 과정을 지배하는 사회관계가 특정의 경제적, 사회적 제 실천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본가는 대리인에 불과하지만 필연적인 대리인이다. 부르조아 계급이 자본의 소득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 재생산하는 것은 부르조아 계급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독점을 실현하는 자본의 재생산의 제 기능을 수행하는 한에서이다. 자본가는 이전의 지배계급과는 달리 '경영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관리기능과 소유기능의 상대적인 법적 분리는 이 생산관계의 영속성에 비하면 이차적이다.)
②국가의 매개; 국가는 자본제 생산양식의 개시부터 필수적이다. '야경국가'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이후의 곤란
  자본주의를 법령으로서 '폐지'시킬 수는 없다. 실제의 소유가 법령을 앞서 법령을 지배한다.
  이제까지의 혁명은 '집단'으로서의 부르조아를 제거하여야 했으나 그들을 계급으로 정의하는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제거하지는 못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기능을 인수하여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새롭고 가공할 만한 제 모순이 발현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천 자체 내부에서 해결하여야할 적대관계를 새로운 형태로 설정한다.

소비에트에서의 임노동의 전화(특히 재생산 부분에서)
  장기적인 학교교육의 일반화, 민주화, 실업의 완전한 소멸; 이들은 노동의 착취조건을 수정하였다.

세가지 검토될 문제
①자본과 소유관계의 역사적 전화. 법적 소유의 이용을 통해 사회적 생산수단의 계급적 독점이 실현되는 제 형태
②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지배적 자본분파의 성질
③그 구성 속에서 국가의 역할을 내포하는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내적 제 모순의 성질과 그 경향적 통일의 제 형태

(1) 자본제적 소유의 역사적 전화 (161)

자본의 집적
  자본주의의 발전은 불가피하게 (균일하지는 않게) 하나의 결과, 즉 자본의 집적에 이른다. 이 자본의 집적은 잉여가치의 상승을 보장한다.

집적의 두가지 형태
  ①잉여가치의 자본화에 의한 새로운 생산수단의 축적(맑스가 말하는 고유의 의미에서의 집적) ②구별되는 제 개별자본의 동일 소유로의 법적 결합(단순한 집중)
  이러한 집적은 자본주의 소유 제 형태의 근본적인 전화를 낳는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본이 임노동에 대항해서 소유의 법적 형태로 집적됨을 필연적으로 의미한다.

자본 소유의 제 형태
  이것은 각 부르조아지의 존재의 토대를 구성한다. 즉,
개인적, 사적(소)자본/ 익명의 회사자본, 주식자본/ 상호 긴밀히 결합된 공업.상업.은행 등의 거대기업의 독점자본/ 국가의 저축.신용 등을 맡는 은행 등을 비롯한 국유기업, 공공부문의 국가자본
  법적 차이와 무관하게 단순한 주식회사 자본과 독점자본의 구별은 필수적이다. 기업의 독점적 성격은 시장의 할당된 부분이나 매출액이 아니라, 연관된 제 자본을 종속시키고 그것이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취득하면서 시장의 일부를 지배하는 실천적 가능성으로 측정된다.

독점자본주의
  금융자본에 의존하는 경제적 제 관계의 체계이며, 생산의 집적, 다양한 법적 제 형태에 따른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이다. (여기서 은행은 단순한 단순한 중계자가 아니라 스스로 상이한 생산부문간의 자본의 배분을 통제하고 산업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열거한 자본의 제 형태는 동일한 사회적 관계가 각각의 사회구성체에서 불균등하게 발전된 역사적 제 형태이다. 그들은 모두 전화도상에서 불안정한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독점자본과 국가자본의 사이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모두 법적 소유형태의 관점이나 생산의 국제화의 관점에서나 '상급의' 형태이다. 독점자본이 국가자본으로 전화되는 경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사(公/私) 구별의 부르조아 법 이데올로기
  공/사의 구별이라는 것은 허위이다. 사회적 자본의 제 분화인 한에서 '공적'자본의 운동은 '사적'자본의 운동과 다르지 않다.
  재생산의 총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의 분파로서의 분할을 분석할 때 그 법적 지위가 아니라, 재생산 속에서의 기능의 관점에서 자본분파를 연구하여야한다. 공적소유는 개별의 제 조건을 변화시키지만 경제과정의 기능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법적 차이로 인하여 사적/공적 자본의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공적소유-국가소유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사적영유, 즉 하나의 계급 부르조아지에 의한 생산수단의 영유의 제 형태중의 하나이다.


(2)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지배 (166)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조아계급의 배치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본형태가 지배적인가를 알아야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한 경향
  "공적 자본은 이미 최대한 이윤율로 가치를 증식시키고자 하는 엄밀한 의미의 자본이 아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집단적 착취자로서 기능하는 단일한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독점자본주의를 넘어 제국주의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하나의 국면을 이룬다."
  우선, 이러한 시각은 제 자본의 법적 소유형태에 배타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판되어야한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경제학으로서의 맑스주의라는 관념을 가지고 잉여가치 분석에 기초한 이윤분석이 아니라 이윤분석으로 잉여가치 분석을 대체하고 있다. 자본을 착취의 사회적 관계로서가 아니라 회계상의 크기로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결과를 그것을 결정하는 계급투쟁의 결과가 아닌 '이윤의 논리'의 결과로 분석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이 그 경제적, 정치적 위치에 의해 초과이윤을 항상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된 반면, 사적이든 공적이든 여타의 제 자본이 보다 낮은 이윤율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후자의 제 자본이 '가치저하'된다거나 사회적 규모에서 축적에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차이는 생산된 잉여가치의 분배에 관계하는 것이지 생산의 수준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부분의 자본도 독점자본만큼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국가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에 제 국민의 경쟁과 전쟁에 직면한 사회적.경제적 제 조건의 결과이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는 세계분할의 완료와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제 열강의 생산력의 불균등한 발전은 이 분할의 전환을 위한 투쟁을 야기한다. 따라서 사실상 국가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필연적인 한 특징이고 그 토대를 이루는 독점자본주의의 지향은 아니다. (그러므로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적절치 않다.)

(3)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통일과 모순 (170)
자본과 부르조아지
  동일한 사회구성체 내에서 공존하는 자본 제 형태의 다양성(그 기능과 집적이라는 의미에서) 및 그들과의 제 관계의 복합성에 대해서 사회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동일한 복합성이 필연적으로 대응한다.

부르조아지의 분할
  부르조아지는 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항상 몇 개의 분파로 분할된 계급이며 이들의 경향적 통일이 유물론적 분석의 대상이다.
  부르조아지의 각 분파는 사회 속에서 생산되는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경쟁한다. 자본의 상이한 대표자가 잉여가치 생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경쟁이라는 형태를 통해서이다.
  자본의 제 형태의 발전에 따라 부르조아지도 법적.경제적 지위로 분할된다. 따라서 '간부', '관료' 등을 포함한 부르조아지 전체는 단순한 소유자의 연합이나 자본가 집단은 아니다.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는 불평등이 크다. 그들의 정의는 공통적인 기술적 성격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화와 관련하여 연구해야 한다.

제국주의와 부르조아지
  제국주의는 세계경제의 불균등성과 제 모순을 강화시키는 것과 함께 각각의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부르조아지의 불균등성과 제 모순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금융자본에 대한 부르조아지 전제의 종속을 강화한다.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성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성과 그 내적 모순 사이에는 양립불가능성이란 없다. 이 양자는 함께 발전한다.
  부르조아지의 통일성은 자생적으로 일치하는 물질적 이해관계의 동일성이 아니라, 대부르조아지가 잉여노동의 일부를 영유하는 모든 사회집단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헤게모니)의 결과이다. 이 부르조아지 내의 지배분파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고려하면서 축적과 착취의 '진보'를 대변한다.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은 그 내적 모순과 불가분 하다. 그것은 모든 역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 통일성을 제지하는 제 원인의 효과에 종속된 경향적 통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배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은행이다.)
  이해대립과 적대의 구분;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이해대립이 아니라 '적대'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분배가 아니라 생산에서의 착취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르조아지 사이에는 경제적 이해의 현실적 대립이 있기는 하지만, 단지 이해대립만이, 즉 불평등한 분배와 이 분배의 변경/강화를 둘러싼 투쟁만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부르조아지의 통일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를 단순한 사회적/경제적 이해대립으로 기술하거나 대부르조아지를 소부르조아지를 '착취하는'자로 제시하여 이 대립/모순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국주의 시대의 은행의 역할
  "여러 은행들이 발전하여 소수의 은행으로 집적됨에 따라서 그들은 단순한 중재자이기를 그치고 자본가 및 소기업주 전체의 화폐 자본을, 또한 특정 국가 또는 여러 국가 전체의 생산수단 및 원료의 대부분을 뜻대로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독점체가 된다. 다수의 단순한 중개자가 한줌의 독점체로 되는 이 전화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전화되는 본질적인 과정의 하나를 이룬다." -레닌 [제국주의] 228쪽
  이리하여 금융자본의 발전은 삼중의 효과가 있다.; 생산과 유통의 자본제적 '사회화'/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 금융자본의 지배에 의한 자본가계급의 조직화
  "...금융자본은 중소자본가들만이 아니라 극히 영세한 자본가나 기업주의 대다수도 그 권력에 종속시킨다.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의 분할과 다른 국가에 대한 지배를 둘러싼 타국의 금융집단과의 첨예한 투쟁이 전개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해 소유자계급은 하나가 되어 제국주의 진영으로 넘어간다." -레닌 [제국주의] 308쪽

부르조아 국가의 분석의 필연성
  금융자본의 부르조아지 전체에 대한 지배는 부르조아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의 적대관계의 부르조아지에 대한 효과이다. 이 모순의 경향으로서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이 존재한다. 여기서 부르조아 국가의 존재와 활동이 고려되어야 한다.

부르조아 국가의 문제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부르조아지의 이해에 따른 국가의 형성/ 지배계급의 형성에 있어서의 국가의 역할
  상품과 자본의 유통, 생산과정에서의 착취과정의 실천적 조직화는 부르조아 계급 존재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부르조아 계급을 만들기에는 불충분하다. 부르조아 계급은 시장, 상품생산으로서의 자본제 생산의 직접적인 산물이 아니다.
  지배계급의 조직화에서 국가의 역할은 '경제적'인(공경제의) 것은 아니다. 반대로 '다른 것'이다. 부르조아 국가의 존재와 지배계급의 조직화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부르조아지 내부의 모순과 이해대립이 화해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모순과 대립은 프롤레타리아의 착취와 종속의 유지를 위해서 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순수히 경제적인' 방식으로는 화해될 수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르조아지의 부르조아지 전체에 대한 경제적 지배가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은 (억압적, 이데올로기적인)국가장치의 존재, 작용 및 전화를 항상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
  cf. 통속적인 '생산-토대'와 '국가-상부구조'를 병렬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다른 하나로 설명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부르조아지의 형성에서의 국가의 필연적 역할
  국가의 기능은 사회적 규모에서의 자본의 유통, 착취의 조직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부르조아의 역사는 처음부터 부르조아 국가의 역사이다.
  국가의 존재와 독립된 시장의 존재라는 표상은 환상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국가의 개입에 의한 시장의 조직화, 즉 일반적 등가물(모든 통화는 국가통화이다.)의 정의와 국경, 관세를 전제한다.
  잉여가치의 실현이 의존하는 상이한 생산부문들 간의 상대적 균형, 따라서 시장을 매개로 하는 자본의 재생산은 제자본의 경쟁을 통해서만, 따라서 일정한 자본의 여타 자본에 대한 지배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국가의 개입의 분석은 국내시장의 '관리' 이외에도 자본축적의 특정 형태의 다른 제 형태에 대한 지배의 수단과 결과로서 고려해야 한다. '경제정책', 정확히는 정치 그 자체는 항상 자본가 상호간의 일정한 세력관계의 수단이며 결과이다.
+
'제국주의의 본질은 독점이다.'라는 정의
  이중의 경제주의를 모면하고 있다.; ①제국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무시하여 제국주의를 대자본의 상황적 정책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 ②제 생산관계의 전화를 그 제 측면 중의 하나(생산 또는 소유의 집적, '자유'경쟁의 소멸)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
  독점은 단순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생겨나는 상이한 제 경향의 결합이다.(생산의 집적, 원료 및 노동력 원천의 독점, 금융자본의 발전, (신)식민지 정책, 세계의 분할) 그것은 단순한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부르조아 국가의 전화를 포함하는 제 사회관계의 전화이다.

지배적 자본 분파의 조건
  시장과 자본경쟁의 제 모순은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에 의해 과잉결정된다. 이에 이와 관련한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도 노동자를 자본제적 착취에 종속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주어진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하여 이 세력관계를 조직하고 유지할 수 있는 부르조아 분파만이 부르조아지 내부의 내적 지배도 유지할 수 있다.

부르조아 국가가 착취를 유지하는 형태
  자본주의 역사에서 국가의 발전은 모두 그것이 불균등하게 달성하는 이중의 결과를 목표로 한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착취의 전체적 조건을 재생산하고 그 '정상적인' 연속성을 보증하는 것, 그리고 있을 수 있는 '타협'을 대가로 하여 부르조아지 자체 내부에서의 지도적 한 분파의 지배, 주어진 역사적 제 조건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착취 및 축적 형태를 대표하는 한 분파의 지배를 재생산하는 것.
  두번째 목표는 항상 첫번째 목표 하에서 추구되며, 따라서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은 그 자신의 내적 투쟁을 통해서 착취의 유지와 발전에 의존한다. 그러나 첫번째 목표는 두번째 목표가 달성되는 경우에만 달성된다. 그 때문에 착취의 발전은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통일이 깨지는 경향이 있을 때마다 바로 위협받게 된다.
  부르조아지의 통일의 수단은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착취노동자 전체에 대한 지배의 수단과 동일하며 그것은 사회 전체를 국가 속으로 조직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이리하여 부르조아 국가가 자본제적 착취와 그 제 조건의 유지를 보증하는 특수한 형태가 국가기능으로서의 전 인민의 '참가'형태이다. 대부르조아지는 일반적인 헤게모니를 발전시키는데 성공할 수록 그만큼 더 잘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가설
1. 국가라는 것은 부르조아지가 이전의 지배계급으로부터 그것을 그대로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인수하는 부동의 역사적 형태는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은 국가의 구조를 전화시키고 이 전화만이 부르조아 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부르조아지와 부르조아 국가 사이에는 어느 것도 선행성이 없다. 다만 상호전화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2. 모든 부르조아지는 역사적으로 '국가 부르조아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존재와 활동은 부르조아지의 지배와 계급적 통일의 과정에서 내재적이다.
  이러한 특징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타당하다. 이것은 새로운 모순을 수반한다. 모든 부르조아지는 동일한 의미에서 '민족 부르조아지'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민족적 형태는 필연적이다. 억압적 측면과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접합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은 점점 더 '민족적'이지 않다. 그때 부르조아지의 역사는 '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의 내적 모순의 역사로 된다. 부르조아지에게 국제주의란 없으며, 최강 제국주의의 헤게모니 하에서의 제 모순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민족적 동맹만이 있을 뿐이다.

4. '....결론적으로 일체의 잡다한 운동과 문제해결이 귀착되는 계급투쟁' (181)
이제까지의 분석의 주제
  맑스주의적 분석에서 계급투쟁의 기본성격을 발전시키고 명확히 반영하는 것. 맑스주의 분석은 계급투쟁 이외에는 다른 대상을 갖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계급투쟁의 결정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계급투쟁은 자기자신 이외의 것에 의해서 미리 존재하는 자연적, 혹은 이념적 필연성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계급투쟁의 다양한 제 형태와 그 상호작용의 구체적 변증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주의; 형식주의
  계급투쟁을 보편적인 열쇠로서,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생각할 때, 오히려 현실적 분석의 장애물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계급투쟁을 직접적으로 주어진, 절대적으로 단순한 본질로 삼아버렸기 때문이다.
  명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계급투쟁 자체를 그 복잡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해야하며, 계급투쟁의 개념을 결정하고 그 개념을 차별화시켜야 한다. 계급투쟁을 하나의 해결/대답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로 생각해야한다.

최종심에서의 결정
  계급투쟁은 처음부터 몇 가지의 다른 형태로 전개된다. 이러한 전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결합되고 또 바로 그 때문에 구별되어 서로 대체될 수 없다. 계급투쟁을 말하는 것은 곧 주어진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의 상이한 형태와 그 접합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 접합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들 제 형태들 중 하나에 의한 결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이 결정은 최종심에서 생산관계의 영속인가 전화인가를 둘러싼, 생산관계의 효과 아래서의 물질적 생산 속에서의 계급투쟁이다.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하여

  각각의 생산양식의 특징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기본적 생산(착취)관계의 성질에 의해, 그 다음으로 부차적으로 제 생산력의 성질과 그 경향적 전화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생산양식의 분석과 계급분석(또는 그것의 '정의')은 오직 하나의 동일한 문제라는 것이 나온다. 계급분할의, 따라서 계급관계의 역사과정의 분석으로 되는 계급분석만이 생산양식의 내적 접합과 경향적인 역사적 운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계급투쟁을 서술하는 장소의 변경/ 계급투쟁의 시작으로서의 착취
  최종심급에서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계급투쟁을 생산양식의 단순할 결과가 아니라 생산양식의 정의 자체 속에 기입하는 것이다. 착취자체가 계급투쟁의 기본적인 역사적 형태라는 것이다.
  직접적 생산과정 속에서 계급투쟁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착취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형태들 자체와 함께 이미 시작된다.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자본의 체계적인 계급투쟁이 이미 존재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발전의 영속적 원동력이며, 이 발전 하에서 그 발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제 생산력 발전의, 따라서 보다 진전된 노동조직의 형태와 노동수단 발전의 원동력이다.
①(기술과 산업조직의 형태는 사용방식의 옳고 그름 이전에 인류의 진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자본가 계급의 체계적인 계급투쟁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이 보다 '진보적인' 새로운 생산 '방법'을 도입할 때마다 어쩔 수없이 저항하게 한다.(생산방법이란 결국 착취의 한 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서 새로운 분업형태가 발견되어야 한다. ②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계급투쟁은 단지 방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반면 이 토대 위에 선 정치투쟁은 공격적이며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으로 나갈 수 있게 한다. 자본은 어떤 시기에나 어떤 자본이나 영속적으로 공격을 전개하는데, 이는 자본이 존재하고 재생산되기 위한 그 내재적 필연성에 의해서 노동을 초과착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자본1]의 분석. 매뉴팩춰와 대공업의 역사적 분석. 양자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계기적 형태이다. 생산력 발전에 있어서 계급투쟁의 역할)

주의;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한 주관주의적/상대주의적 관념 (186)
  이 생산관계의 우위에 대한 정식은 자본제 생산양식이 생산력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다거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관념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관계의 존재란 노동과정의 그 물질적 효과와 실질적인 실현의 제 형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사회란 제 제도와 제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나의 분업과정이며, 이 과정 속에서 제 개인은 이 과정 자체가 생산하고 전화하는 주어진 제 사회관계의 효과 아래서 물질적으로 서로 작용함으로서만 자연에 작용한다. 노동과정을 단순히 제 요소(노동대상, 노동수단, 노동력)와 결과(생산물)만이 아니라 그 현실적 제 조건의 총체에 의해서 과정으로 사고해야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정을 그 자체로서 분석하여 그 사회형태를 정의하고 그 제 국면과 실현의 필연적인 연관을 지배하는 제 생산관계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노동과정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과정은 전화되는 특수한 역사적 제 형태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이 제 형태보다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실천, 무엇보다도 사회적 노동은 제 개인 및 그들의 활동과 선행하여 존재하는  원료와 물질적 노동수단의 객관적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오직 그것들 자체가 노동력을 생산수단에 종속시켜 하나를 다른 하나에 대해 배치하는 특이한 사회관계-생산관계를 실현하고 있는 한에서만 작용한다. (ex. 자본제 사회의 경우 맑스의 분석에 의하면 - 생산수단이 현실적으로 생산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항상 이미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영유수단, 지출된 노동력의 '흡입' 수단인 한에서이다.) 노동과정과 사회적 과정이라는 두개의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과정만이 존재한다. 즉, 그 속에서 사회적 생산관계의 형태가 노동력과 제 생산수단의 배치 및 그 상호작용의 방식 속에서 물질적으로 실현되는 노동과정의 내적 조건으로 되는 과정이 존재할 뿐이다.
  즉, 생산력 속에서(그리고 그 노동과정 속에서) 노동력에 대한 생산수단의 우위는 각각의 역사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형태 하에서 생산력 그 자체에 대한 생산관계의 우위를 반영한다. 사실 생산관계란 제 인격간의 관계가 아니라 제 계급과 물질적 생산수단과의 관계이다.
  주의; ①생산관계의 우위라는 명제가 '인간'의 우위나 생산수당에 대한 노동력의 우위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②기본적 생산관계 자체(자본/임노동)와 거기서 유래하는 '부차적인' 생산관계(제 자본의 운동,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ex. 제국주의 시대의 급속한 생산력의 발전은 제국주의가 부여한 새로운 형태 하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의 효과이다.
  생산양식 전화의 동인은 무엇인가? / [정치경제학비판]의 '생산력의 발전과 제 생산관계의 성질 간의 모순'에 대하여 ― '설명 불가능한 생산력의 자립적 운동, 혁명이 없는 한 부동의 생산관계(파국론!)'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 맑스가 분석하는 것은 생산력의 모순적인 발전, 거기서 역사적으로 현실화되는 기본적인 생산관계·착취관계의 효과 하에서의 생산력 발전에서의 모순, 따라서 실제로 독자적인 계급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모순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의 자본제적 사회관계의 연구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자본제적 사회관계를 연구한다는 것은 제 개별자본의 운동의 분석을 자본 일반의 운동의 분석에 종속시키는 것, 즉 이윤 분석을 잉여가치의 분석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이윤추구와 제 개별자본의 경쟁은 궁극적으로는 착취의 역사적 동력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윤추구와 경쟁은 단지 '자본제 생산의 내재적 경향이 제 개별 자본의 운동에 반영되어 경쟁의 강제법칙으로 관철'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이윤추구를 지배하는 것은 잉여가치 착취 및 새로운 착취를 위한 잉여가치의 축적이다. (제 자본운동의 과학인 정치경제학은 이 반대의 방식으로 부르조아의 이론적 관점을 실현한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 관계의 비대칭성
  동일한 의미에서의 계급, 계급일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 계급이란 불변의 개인처럼 서로 마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계급은 투쟁 속에서 전화된다.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역사는 단순히 세력관계의 발전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투쟁장소 자체의 이동, 즉 '지배'계급의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형으로부터 '피지배']계급의 지형으로의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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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물론 연구

저자 : 에티엔 발리바르
역자 : 이해민
출판사 : 푸른미디어
출판일 : 1999년 8월 25일
페이지수 : 304
판형 : A5

마르크스 주의에 세 가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가 역사유물론에 관한 다섯 가지 입장을 모아 정리한 저서. 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주의를 비롯해 2장 <공산당 선언>의 정정, 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4장 역사변증법에 대하여(<자본을 읽자>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 소견)까지 총 4장에 걸쳐 내용을 수록하고, 역사유물론 해석에 대한 재해설을 책 끝에 덧붙였다. 

 
목차

서문
제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주의
1. 마르크스의 정치의 제단계 ...19
2. 마르크스의 이론 ...47
제2장. "공산당선언"의 정정
1.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에 대한 "선언"의 테제 ...76
2. 꼬뮌의 교훈 ...91
3. 정정 ...96
제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정치경제학 비판서설)
1.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잉여가치론 ...118
2. 계급적대의 첫번째 위상:프롤레타리아트와 자본 ...141
3. 적대의 두번째 위상:자본과 부르조아지 ...158
4. '...결론적으로 일체의 잡다한 운동과 문제해결이 귀착되는 계급투쟁' ...181
제4장. 역사변증법에 대하여
1. '물신성 이론'에 대하여 ...200
2. '최종심에서의' 결정과 '이행'에 대하여 ...223
주 ...242
'해설' 에티엔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해석/이해민
1. 머리말 ...275
2. 역사유물론과 유물변증법의 재정의 ...277
3. "자본" 해석 ...279
4. "제국주의" 해석 ...288
5.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 ...296
6. 맺음말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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