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집이란?

요새 재미난 것을 알게 되어서 탐구중이다. 빈집이라고...

나도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그런 공간을 꿈꾸었기에...

내가 살아가는 집이라기보다 , 어느 정도 뜻이 비슷하고,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그곳이 집이다.

나는 내 집을  소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 사는 집도 언니네가 고친 것을 나는 그냥 몸만 들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대신 나의 방식대로 요리와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언니는 미안해하지만...(너무 착한 사람이다..)

 

진안에서도 그 비슷한 생활을 했을 때 아주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다. 

물론 정서적인 부분이나,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 어려운 난관들도 있었지만

남녀가 물론 다른 집을 쓰지만 여성과 남성, 여동생과 언니 오빠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서적인 외로움을 충족시켜주고 이성과의 대화도 하게 해 주는 그런 대화거리와 시간,공간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았다.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인 방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함께 사는 것의 불편함에 무뎌서인지 나는 그저 그렇게 살만했다.

 

그러나, 내가 피해를 조금 주었을게다.

변온동물이라 보일러를 켰다 껐다 하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실수로 밟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만큼은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 컴플렉스이긴 하다.

 

지금도 언니와 아이들 둘과 강아지와 한 집에 산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유대감이 느껴진다

성품이 좋으시고, 배려심이 있어서다.

 

강아지가 한밤중에 짖어서 잠을 설치는 것이 딱 한 가지 문제라면 문제겠다.

 

어젠 밭을 일구었는데 큰아이가 자기는 일을 좋아한다며 나서서 괭이질도 하고 삽질도 했다.

보기 드문 어린이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자라서 일이 낯설지가 않댄다.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라 귀엽지만 땡깡 부리는 걸 보면서 나중에 내가 아기를 키우고 대할 때 많은 참고가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동거생활

여자들만의 생활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또 한 친구 부부네 집은 손님들이 많아서 가끔 손님들과의 대화가 간절해지면 그 집으로 놀러가면 된다. ㅎㅎ 그래서 오늘은  그 집으로 고고씽이다.

 

어느 새 나는 또 다른 이들과 한 집에서 생활한다.

솔직히 혼자 사는 것은 재미없다... ㅠ.ㅠ

하지만 결혼이나 동거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왜인지...

남자와 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보다.

여성성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조금 나을까?

 

나는 진안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조금 부지런해졌다. 그리고 요리실력과 의지도 조금 늘었다.

그래서 지금은 청소가 습관화가 되었다. 같이 사는 건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비록 안 좋은 경험일지라도...

 

 

김디온, 아규 - 도심 속 공동주거실험 2년 ‘빈집’

 

[행복한인터뷰]


 
빈집의 진실 “2000원에 주인되는 집?” 
 
1월 1일 모 일간지 일면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2000원에 주인 되는 집! 주거난에 허덕이는 이들을 단박에 유혹하는 이 제목은 서울 용산2가 해방촌에 있는 대안적 주거공동체 ‘빈집’을 소개한 기사였다. 빈집은 하루 2,000원 이상의 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일종의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다. 하루를 묵는 것도 몇 달을 머무는 것도 자유다. 다만 각자 주인으로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면서 공동의 삶을 꾸려간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이들이 빈집의 문을 두드렸다. 언론에 소개된 맛집이 한바탕 몸살을 앓듯, 빈집은 1월 내내 호기심 인파로 휘청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신문 보고 찾아왔던’ 손님들은 오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제아무리 커피 값보다 싼 방값이라도 여럿이 매일매일 살아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걸까. 
 
접기
새해 벽두 한바탕 해프닝을 터놓는 빈집설립자 아규와 장기투숙자 김디온. 그들은 이번처럼 빈집이 알려질 때마다 ‘빈집이 도대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목 아프게 답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물음을 바꿔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빈집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빈집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로. 나무처럼 조금씩 자라는 빈집에서 동고동락하는 그들을 2월 4일 봄의 길목에서 만났다. 
 
빈집의 탄생 “공간절약 재미만빵! 같이 살자”
 
“빈집을 만들기 전, 일 년 동안 짝꿍(남친)과 배낭여행을 다녔어요. 동남아와 유럽을 돌면서 주로 게스트하우스나 텐트에서 먹고 잤죠. 말레시아에서는 방한 칸 빌려서 한 달을 지냈고요. 거기서 아나키스트 친구를 만났어요. 그들은 일찍이 독립해서 방 한 칸에서 살더라고요. 여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방법으로 살아보면서 느꼈죠. 우리가 사는 공간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또 어떤 곳에서 산다 해도 24시간 공간을 점유하는 것도 아니고 세탁기도 한 달에 서너 번 밖에 안 돌리는데 집집마다 있는 건 낭비잖아요.”

배낭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정해야 했던 아규. 그는 여럿이 밥해 먹고 사는 주거공동체를 꾸리기로 결심했다. 짝꿍도 동의했다. 둘이 지내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살면 절약도 되고 재밌겠다 싶었다. 다른 친구와 셋이서 의기투합해 서울 남산 아래 해방촌 다세대 주택 4층에 둥지를 틀었다. 2008년 2월 손님(賓)들의 집, 가난한 이들(貧)의 집 ‘빈집’이 탄생한 것이다.
 
방 세 칸짜리 ‘아랫집’에서 시작한 빈집은 인근의 ‘윗집’(2008년 11월) ‘옆집’(2009년 2월) ‘가파른 집’(2009년 4월) 수색 부근의 빈농집 (2009년 10월)까지, 두해를 넘기며 다섯 채로 늘었다. ‘빈마을’이 된 이곳에서, 현재 아기가 있는 부부를 포함해 10대부터 50대까지 32명과 고양이 세 마리가 장기 거주한다. 단기투숙자도 월 20여 명 다녀간다. 
 
빈집의 고민 “혼자 있고 싶을 땐 어떡하지”
빈집은 주인이 없는 하지만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이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그렇지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한 지붕 아래서 먹고 자는 것은 어쩐지 두렵다. 혼자서 고독을 씹고 싶을 땐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그거였어요. 저는 철저히 혼자 사는 걸 추구했거든요. 친구와 같이 살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다시는 누구랑 안 산다고 결심했죠. 빈집이 처음 생기고 집들이 할 때부터 알았는데, 밖에서 1년 간 지켜봐도 들어갈 엄두가 안 났지요. 낮 동안 힘들게 일했는데 집에 와서 또 사람이랑 부대끼면서 쉬지도 못하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자다니 끔찍하잖아요. 무엇보다 내가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걱정이고요. 그 엄청난 정서운동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지요.” 
오랜 망설임 끝에 빈집 식구가 된 김디온 씨. 실은 남친한테 먼저 빈집에 살고 있으라고 하고는 간을 보다가 결국 옆집으로 이사하면서 빈집 살이를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일 년 째 빈집에 잘 지내고 있다. 두려움이란 괴물은 빈집이 아니라 마음에 있었고, 그것은 낯선 존재들과의 무수한 부딪침을 통해서 서서히 사라졌다. 담력이 커졌고 소통기술도 늘었다. 사람들 속에서 유유자적 고독을 씹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빈집의 약속 “낯섦을 즐기는 환대의 기술”
빈집은 딱히 금기가 없다. 생활수칙은 집집마다 벽면마다 무수한 쪽지가 대신한다. 설거지 하는 법, 화장실 이용법, 세탁기 사용법 등을 보고 각자 처리한다. 윗집은 아예 장기투숙자 6명이 주방정리, 마루청소, 분리수거, 회계, 화장실, 반찬 만들기 등 6가지 가사노동을 분담한다. 그렇다고 일상이 척척 맞물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빈집에 사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은 신뢰, 공간에 대한 힘이 강고하기에 손님이 들어와도 눈치껏 일상을 살아냈다. 크고 작은 갈등은 대화로 조율이 가능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장기투숙자들이 서서히 취직하고 신입 단기투숙자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장기투숙자들이 낮 동안 집을 비우자 환대의 질이 떨어지고 밥 짓고 청소하는 공동생활의 리듬이 흔들렸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여 논의했다. 빈집은 집별로 월2~3회, 마을단위로는 월 1~2회 회의를 연다. 그런데 사안은 달라도 결론은 늘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대의 의무를 다하자는 것, 빈집에 기여하는 활동을 스스로 늘리자는 것이다. 
“장기투숙자들은 손님에 대한 환대의 의무가 있어요. 낯선 사람이 올 때마다 이 공간에 대해 설명해야하죠. 이렇게 하라고요. 그런데 아무 일도 안 하고 무임승차 하려는 사람이 꼭 있어요. 외출할 때 뒷정리나 가사노동을 안 해놓으면 잔소리하죠. 우린 하숙생! 기생인! 이게 가장 심한 욕이에요.(웃음) 당신은 왜 여기 있느냐 왜 같이 살려고 하느냐 묻고 또 묻죠. 못 견디고 스스로 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먼저 나가라고는 말하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계속 대화로 풀어갔죠. 그 정서노동의 피로가 무척 커요.한 말 하고 또 하고 당한 일 또 당하고. 그런데 또 그게 힘들면서 보람이기도 해요. 새로운 사람들의 반응에 힘이 생기고 조금씩 변하고 나누는 게 좋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아규가 고집해온 환대의 기술이다. 이제는 힘에 부쳐 조금 뒤로 빠졌지만 아규는 줄곧 마음을 열고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은근과 끈기의 소통법으로 손님을 맞았다. 김디온은 조금 다르다. 직설화법으로 말한다. 일단 일을 시켜 몸소 터득하게 하는 실리형이다. 집안일을 조금만 잘해도 칭찬하고 “믿고 나가요”라며 주인의식을 고취시킨다. 
 
빈집의 환상 “저렴한 하숙집 아니거든”
공동주거에서 가장 난제였던 부엌일은 반찬팀을 만들어 해결했다. 지난 12월부터 한 사람당 2만원씩 낸다. 매주 수요일 낮에 모여 찬거리를 사고 일주일치 밑반찬 만들어서 집집마다 나눠 먹는다.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은 반찬팀을 해야 한다. 자발적 강제다. 건강팀에서는 아침에 약수를 길러 집집마다 나르고 요가와 108배 등 정서적 건강까지 챙긴다. 빈책팀에서는 좋은 책을 골라서 함께 읽는 세미나와 빈집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팀활동은 주거공간에 리듬과 균형을 잡아주고 유대를 돈독히 해주었다.
“하숙집이나 고시원 전전하다가 ‘저렴한 하숙집’의 환상을 품고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런 이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가사노동이죠. 생활인이 아니라는 게 문제에요. 기본적인 가사노동에 서툴고 여럿이 무얼 한다는 것을 번잡스러워 해요. 회의한다고 하면 왜 자꾸 모이느냐 불만을 갖죠.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하고 좋아지는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한두 달 만에 가버려요. 나갈 때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런 말 들으면 아주 서늘하죠.(웃음)”  
아규에 이어 김디온은 반대 사례를 소개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상경해 6개월간 고시원에 살던 한 친구는 카레가루 푼 멀건 카레밥만 먹다가 빈집에서 사니 “밥 같은 밥 먹고 등 따시고 천국이 따로 없다”고 좋아한다는 것. 또 빈집에 오자마자 첫날부터 빗자루 들고 청소를 하면서 공간을 장악하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빈집의 주인이 되는 거죠. 남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하진 않잖아요.”
 
빈집의 가족 “독거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렇다. 집은 사적공간의 대표명사다. 내 삶에서 내 몸에서 나오는 노폐물을 버리고 큰 불편함 없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빈집에서는 낯선 존재들과 공동의 삶을 만들어간다. 그들에게 집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아규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집이란 것이, 혼자 사느냐 같이 사느냐 그 차이 같아요. 애인, 부모 등 누구와 살면 어차피 고요한 사적 공간의 기능은 사라지니까요. 짝꿍이랑 사는 순간 침실부터 부엌, 화장실 모두 공유하잖아요. 두 사람이나 여러 명이나 똑같아요. 시간을 두고 지내면 서로에 대한 신뢰도 싹트고 재밌게 살다보니까 사적공간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요.”   
집에 대한 해석이 바뀌면서 가족에 대한 개념도 변했다. 김디온은 얼마 전 친동생이 아기를 낳아 산후조리를 도왔다. 자매애가 남달라 괜시리 애틋한 감정을 느꼈다. 아랫집에서 같이 사는 ‘뚜리’도 소중하다. 꼬물꼬물 신생아 때부터 줄곧 성장을 지켜보았고 매일 서너 시간은 돌보다 보니 정이 흠뻑 들었다. 조금 더 짠하고 덜 짠하고의 미세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지고 볶고 살면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 아닐까, 그는 말한다. 
 
“뚜리가 처음 왔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애기가 우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밤에 잠도 못자고 공부도 못하고 일상이 엉망이 됐죠. 화가 나서 뒷담화도 하고 상처도 주고받고 그랬어요. 뚜리를 계기로 아기랑 사는 것에 대해, 아기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생각하게 됐고, 또 뚜리아빠가 인도사람이거든요. 이주민 소수자의 삶도 고민하게 됐죠. 많이 배워요. 얼마 전엔 뚜리엄마가 빈집이 아기를 키우기 위한 공간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데 왠지 서운하더라고요.”  
빈집의 비밀 “사적소유, 섹스 감각 바뀐다”   
김디온의 고백처럼 빈집의 공동주거는 혈연중심의 가족주의를 무력화시켰다. 내 집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면 내 가족, 내 물건의 사적소유의 감각도 해체되기 마련. 아규는 잠자리까지 공유하는 사이에 “사적소유 웬말이냐”고 정색했다. 처음엔 어색해서 내 것을 챙기는데 점점 공유의 폭이 넓어지더라는 것. 
“그래도 마지막에는 감정적으로 치환되기도 해요. 잘 지내다가 감정 틀어지면 이름과 용도를 붙이게 되죠. 하하. 근데 전 아직도 손톱 깎기는 꼭 제 서랍에 넣어둬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에 질세라 김디온이 거든다. “나도 그런 거 있어요. 누가 내 책에 누가 줄긋는 거 싫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 사적공간이 아닌 공동주거 공간에서 섹스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김디온과 아규를 포함해 빈집에는 총 다섯 커플이 있다. 그간은 이집 저집의 남자방 여자방에서 따로 흩어져 지냈으나, 손님맞이용 여유로운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방 하나에 이층 침대를 놓고 커플들을 위한 방으로 정할까 궁리중이라고 한다. 아니, 대체 커플들이 한 방에서 지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김디온은 빈집에 살면 커플에 대한 감각도 달라진다고 얘기한다.
 

 

“섹스가 꼭 육체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세미나 하면서 정서적으로 교감이 이뤄지면 에로틱한 감성이 생기기도 하고. 관계를 열어두게 돼요. 일상을 폭넓게 공유하는 게 중요하지 커플이라고 해서 별도의 침실이 있고 거기서 단둘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거죠. 물론 커플끼리 내밀한 얘기도 하고 싶고 싸우기도 하고, 꼭 섹스가 아니라 그냥 둘이 뒹굴면서 놀고 싶기도 하지요. 그럴 때는 운 좋으면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해요.” 
김디온에게 빈집은 사랑이 쑥쑥 자라는 양질의 토양이다. “저는 공부하고 남친은 목수일목수일을 했었거든요. 둘만의 공감거리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 공간에 살면서 두 사람의 공감거리가 훨씬 풍부해졌어요. 정서적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빈집에 같이 묶여서 복닥복닥 하다보면 재밌어요. 가난한데 풍요로워요.”   
김디온은 이어 빈집에 살면 공부거리가 계속 생긴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령 뚜리가 아플 때는 육아서적을 보게 되고, 어떻게 공간을 배치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위해 주거학과 욕망을 공부하고, 빈마을 카페를 만들기 위해 바리스타가 되는 법을 공부하는 식이다. 빈집에서 성희롱 발언 사건이 있을 때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보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다가 읽고 공부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솔솔 하다.” 
 
빈집의 관문 “인종주의자입니까? 내려가십시오”
진심어린 환대의 기술로 빈집을 빈마을로 키워낸 아규는 최근 빈집의 ‘문턱’ 만들기에 고심한다. 남에게 무관심 하고 자신의 신체, 자신의 소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기생하는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는 빈집과 가장 안 어울리는 존재다. 그들이 틈입할 수 있는 구조를 애초에 차단하는 시스템을 궁리 중이다.
“빈집에 어떤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어요. 장기투숙자와 단기투숙자를 나누는 기준이라든가, 장기투숙자들의 공동운영책임 등 여러 가지 것들이요. 이를 테면, 고양이랑 함께 살 수 있는가, 20인분의 식사를 한 번에 할 수 있나 이런 것도 물어보고 어느 정도는 합의가 되어야지 안 그러면 별의 별 사람이 다 오니까 너무 지치더라고요.”
얼마 전 빈집 회의에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절이나 성당이 누구에게나 열렸지만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공간인 이유는 사천왕문, 일주문 같은 단계별 관문이 있기 때문이라며 빈집도 계단마다 문구를 새겨 넣어 여과장치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죠. 당신은 인종주의입니까? 내려가십시오. 당신은 마초입니까? 내려가십시오. 페미니스트입니까? 올라오십시오. 동물을 사랑하십니까? 환영합니다. 어때요? 괜찮겠죠? 하하.”  
아규가 이처럼 유쾌한 문턱을 만드는 동안 김디온은 알찬 사업을 구상한다. 그간은 아기도 보고 환대의 기술을 익히는 등 관계에 집중했다면 이제 탄탄한 유대관계를 토대로 하나씩 일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원래부터 빈집은 막걸리나 맥주 등 술을 빚어 먹었고 옥상 텃밭에서 채소도 키웠다. 대안생리대와 비누도 만들었다. 빈집이 소비의 공간이 아닌 생산의 공간이 되도록 실천해나갔다. 그 범위와 대상을 확장하려는 것.
“빈집에서는 한 달에 30~60만원이면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우리 안에서 인적재원을 활용해 그 돈을 버는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빈마을금고, 빈마을카페 만들기 등등 빈집이 빈마을을 넘어 해방촌 지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나는 실험계획서는 빈집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오른다. 빈집의 좌충우돌 성장일기를 지켜볼 수 있다.
 
빈집의 확산 “우리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2008년 2월, 애초에 빈집을 서울 한복판에 마련한 이유는 ‘주거공동체’ 확산 전망과 맞닿아 있다. 아규는 서울외곽이나 지방으로 빠지면 마당 있는 집도 구할 수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며 남산도 가깝고 큰 도서관과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가 있는 해방촌이 여러모로 젊은이들의 주거실험 장소로 맞춤했다고 말했다. 도심에서라면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도시가 이런 빈집 같은 공간이 더 절실하거든요. 서울에 사람은 많은데 비해 마땅히 살 공간이 없잖아요. 학교나 센터 형태로만 있는데 사람들이 밥, 술, 잠을 해결할 곳이 필요하거든요. 저희들처럼 이렇게 많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전에 선배가 와서 밥 한 끼 먹더니 그러더라고요. 가난한 것들이 왜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사느냐고요.(웃음) 가난해도 같이 살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현재 빈집 기록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빈집 매뉴얼을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책팀’이 매주 2회 모여 학습과 집필에 착수했으며, 빈집에 사는 주현숙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은 빈집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미래의 불안 때문에 오늘을 빼앗기고 희생하는 사람들, 살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에게 ‘빈집보고서’가 중요한 삶의 솔루션이 되기를,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생생한 정치팜플릿이 되기를, 그래서 빈집이 민들레 꽃씨처럼 번져나가기를 그들은 희망한다.
김디온은 교육, 생태, 여성, 주거, 노인 등 삶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을 빈집에서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나 노인같이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과 빈집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같이 살 것인가를 고민해봤어요. 얼마 전 엄마가 아프셨을 때 빈집에 모시고 올까 하는 얘길 했더니 다들 환영하더라고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안에서 혈연관계가 어떻게 재조정될까도 궁금하고, 일단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려고 해요. 빈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여기저기에 빈집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2000원에 주인 되는 집. 주인이 되기는 쉬우나 주인으로 살기는 어려운 집. 하지만 주인이 되면 누구보다 행복해지는 집. 주거공동체 빈집은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이고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를 외치며 단 한번 뿐인 인생, 단 한 번뿐인 삶의 소중한 실험을 이어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