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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기-비자

싼 비행기 티켓을 구하느라 일찌감치 발권을 해 놓고

이제는 가는구나 라며

혼자 심란해하던 나에게

한 친구가 물어봤다.

 

"비자는 받았니?"

"아니!"

"얘가, 얘가..."

 

혼자사는 30대 여자가, 그것도 딱히 재정과 직업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이

미국이나 영국에 가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일장 연설을 듣고

서류 순서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미국가는 비자를 리젝트 당했던 그 친구의 생생한 사례도 듣고

왠만하면 비자 대행해주는 곳을 택하라는 마지막 충고도 들었으나

충격은 잠시,

내가 간다는데 왜 비자를 안줘?

라는 생각 뿐.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뭐 이런 걸 다 요구하고 난리나며 툴툴거리다가

너 비자는 나오는 거냐는 사람들 이야기에

뭐 나오겠지라며 의기양양.

 

연일 이어지는 환송 술자리에

몸도 지치고 날도 무지하게 덥던 지난 토요일

택배 아저씨가 전해준 영국 대사관에서 온 우편물을 뜯으며

뭐, 어렵다더니 빨리만 나오네...했는데...

허걱!

이게 왠일인가?

여권을 앞으로보고, 뒤집어 봐도

영국 비자는 보이지 않는 거였다.

 

어머, 어찌 된 일이야?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우편물을 자세히 보니

뭔 서류가 하나 따라 왔다.

 

정신이 없어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영문 서류는

비자를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위협적인 어조와 문체로!

뜨악! 어째? 어째?

 

내가 신청한 비자를 거절한다는 내용인 즉,

 



1. 넌 직업이 노동조합 활동가라며 월급을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무릇 활동가라 함은 자원활동이라고 알고 있다.

 

뭐라고? 왜 노동조합 활동가는 월급을 받을 수 없지?

한참을 생각해 보니, 직업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 Trade union activist라고 했는데

문제는 그 Activist였던 것 같다. 난 내 직업이 활동가라고 생각했는데, 내 서류를 심사한 영사는 활동가는 월급을 받는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 조합원들한테도 늘상 섭섭했던 일을 영국 대사관 영사한테 또 당했다!!! 도대체 내 직업은 뭐냔 말이지...

 

 

2. 니 경제형편상 니가 하려는 공부가 맞지 않는다. 또 넌 사회학을 공부했고, 노동조합이 직업이었다면서 방향을 확 틀어서 왠 "이주민 연구"과정을 공부하려고 하냐?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무래도 공부 이외에 영국에 오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넌 공부가 끝난 다음에 영국에 계속 머물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아... 난 이 비현실적이라는 단어에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다. 내 지나온 삶을 볼 때, 이 공부는 나에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니...내 경제형편에 이 공부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배분을 하는 것이냐니.. 뭐 그건 나도 참 고민 많이 했던 일인데... 게다가 공부 이외에 딴 목적? 앗! 그건 어떻게 알았는지 딱 걸렸네~ 아니 지가 뭔데 남의 일에 이렇게 참견이냐는 생각만 들었다. 비현실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말야! 그리고 너무 일관되게 살아 고민하는 나 한테 지나온 내 삶이 잘 연결이 안 된다니... 이렇게 개인의 삶을 맘대로 평가해도 된단 말이야?

 

 

3. 니가 그 주제를 공부하려면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이 요구 되는데 넌 영어 점수 증명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증말, 영국 대사관 홈피에도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도 영어점수 내라는 얘기는 없었는데, 도대체 나만 무시하는 거야? 뭐야?

 

위와 같은 이유로 영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받고 말았다.

학교도 정해지고, 비행기 티켓도 다 끊어 놓고, 송별식도 매일매일 하고 있었는데...

어쩌란 말이야???

 

비자 거부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려면 하라고 서류를 보내왔는데,

그거 하려면 5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말 그대로 약올리는 서류다.

티켓이고, 학교고, 뭐고 다 필요없어!

지금부터 영국 출입국과의 투쟁에 돌입해 버려?

하는 불끈도 잠시,

금새 풀이 죽어 이젠 어째야 하나 우울 모드로 돌입해 버렸다.

우울했던 주말이다!

그냥 정중하게 사유서를 쓰고, 온갖 서류들을 더 첨가해서

다시 신청을 해 보는 수 밖에 없다는 결과.

그것도 무지하게 불안한 상태로.

 

예전에 뱅기 티켓 끊어놓고 심란해서 동대문 갔던 날,

나 이제 좀 있으면 가!

라고 했더니

찬드라 동지가

비자는 받았냐?

고 물었는데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그놈의 비자!

이주의 시작이다.

 

과연 시작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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