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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가 축구공을 밟아 터뜨린 이유는?

제가 모 사이트에서 소설을 하나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작으로는 세 번 째. 전에 연재하던 것을 조금 안좋은 일로 중간에 그만두는 바람에 반 년 만에 연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작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해서일까요? 어떻게 된 게 리플마다 전에 쓰던 작품만을 이야기하네요. 그거 언제 연재 다시 할 거냐고. 그 소리 들을 때마다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그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날려버리고 싶더군요. 화가 나서.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아주 좋아하구요. 가장 저다운 작품이면서 또한 제가 다시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게 된 건 그 무렵 신경이 날카로워있던 터라 리플로 인한 화를 참아내지 못해서였지, 작품 자체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장기연재를 고려해서 여러가지 많은 준비를 해두었었습니다. 설정이라든가, 캐릭터라든가, 시납시스라든가, 거의 2년 분은 준비해 두었을 겁니다. 그런 걸 한 순간 실수로 중단해버린 거죠.

워낙에 뜻하지 않게 중간에 끝내버린 거라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 몇 번인가 리메이크를 시도하기도 했었죠. 결국은 중간에 한 번 단절된 것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지만요. 역시 중간에 한 번 리듬이 끊기고 나니 전처럼은 안되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때가 되면 리메이크 하기로 하고 일단은 지금까지의 글과 설정, 캐릭터들을 봉인해두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금 쓰는 것에 전념하려구요.

그런데 정작 새로 연재하고 있는 작품에 달리는 리플이라는 게 바로 그 전에 연재하던 작품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언제 다시 연재하냐고. 그 뒷부분 어디서 볼 수 있느냐고. 지금 쓰고 있는 건 전혀 다른 소설인데 엉뚱하게 이미 연재를 중단해버린 작품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전부이기라도 한듯 말이죠.

화가 나더군요. 진짜 화가 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 지금 연재하고 있는 건 그게 아닌데. 그럼에도 자꾸 지나간 것들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증오스럽기까지 합니다. 제가 쓴 소설인데 제가 증오하게 되어버립니다.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아, 주성치가 그래서 축구공을 밟아 터뜨렸구나 하구요. 그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나는 지금 <쿵푸허슬>을 보여주려는 거야! <소림축구>따위는 잊어!" 라는.

창작자에게 있어 전작에 대한 사랑은 영광이면서 또한 굴레입니다. 자신의 작품에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관심과 애정이 지금 새로운 창작에까지 집착으로서 작용하게 되면 그것은 굴레가 되어버리죠. 자기가 자기가 아닌게 되어버리는, 오로지 과거의 한 점에 고정되어버리는 그러한 구속입니다. 예전에 게임을 만들 때도 느꼈었죠. 만화를 그릴 때도요.

차라리 제가 전작에 대해 미련이 많은 타입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 어떤 작가처럼 자기 작품만 죽어라 리메이크하는 완벽주의자라면 또 괜찮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지나간 일에 대해 크게 연연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저처럼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원고를 쉽게 태워버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저보다 더 자기 글 잘 지워버리고, 많이 지워버린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몇 년 새 지운 글만 거의 2천 개가 넘으니까요. 남아있는 글과 지운 글의 수가 거의 비슷하죠.

그런 성격이다 보니 이미 지난 일은 지난 일이 되어버립니다. 언제고 다시 생각이 다서 새롭게 창작한다면 모를까 이미 쓸 때가 아니라 생각되어 봉인한 거라면 더이상 생각할 것도 없는 지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지금 쓰고 있는 이것 하나가 중요하죠. 그런데 거기다 대고 과거의 작품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돌아버릴 밖에요. 아주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솔직히 성질난다고 날려버리기엔 그 작품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조용히 참고 있다가 나중에 다들 잊을 때가 되었을 때 그때 다시 리메이크 할 겁니다. 지금보다 더 멋지게 말이죠. 그동안 글 쓰면서 느낀 건데 소설은 확실히 나이를 따라가더군요. 경험한 만큼 글이 나옵니다. 아무리 글 잘써도 경험이 일천하면 글도 일천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을 믿습니다. 시간이 지금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하여튼 자기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때문에 그 작품을 증오하게 된다는 것이 어이없는 역설입니다. 어떻게 자기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작품을 증오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것이 부모가 자식을 증오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엇나가는 거죠. 사랑이. 사랑이 엇나가 결국 채워지지 못한 사랑이 증오가 되는 겁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주성치의 심정이 되어 생각해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하고. 그냥 무시하고 계속 쓰느냐. 아니면 요구에 따라 조기 리메이크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예 아이디를 바꿔 새로운 사람인 양 새로운 작품을 쓰느냐. 어느쪽이든 전부 바보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 연재하는 것을 완성해야겠죠. 나머지는 그 다음에 고민할 문제입니다. 스트레스의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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