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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동향] 대외 정책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낸 독일 사민당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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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동향] 대외 정책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낸 독일 사민당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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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정책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낸 독일 사민당 대회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WSWS)」12/8 울리히 리페르트

12월 7일 베를린에서 독일 사민당 당대회가 개막되었다. 3일 동안 열리는 이 회의는 오스카 라폰텐이 당 총재와 재무장관 자리를 사임한 이후 처음 열리는 전국대회이자 지난 여름 주 선거와 지방선거에서의 압도적인 패배를 뒤이은 것이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이번 대회가 갖는 중요성에 관해 많은 억측이 있었다. 라폰텐이 자신의 저서 『내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에서 슈뢰더 총리와 다른 정부 인사들을 비판한 이후, 그가 당대회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할 것이라는 소문이 횡행했다. 당 지도자들이 라폰텐이 루돌프 샤핑 총재를 밀어내고 당 권력을 장악한 1995년의 만하임 당대회를 기억해내면서 사민당 본부인 빌리브란트 하우스는 커다란 소란에 휩싸였다. 몇몇 논평가들은 사민당이 분당의 위협을 겪고 있다고까지 말하였다.
그러나 당대회가 가까워오면서 사태는 진정되었다. 라폰텐은 자신은 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며 당분간은 당의 일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당내 위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인물이자 관료적 책략의 대가인 프란츠 뮌테페링 신임 사무총장은 주 및 지역 차원에서 많은 당대회를 조직함으로써 당원들이 울분을 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슈뢰더는 몸소 이들 지부 당대회에 참석하여 "기층 당원들의 거센 비판"을 듣고 "사장들의 동지"라는 비난을 견뎌냈으며, 자신은 기층의 여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러나 정부의 기존 정책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가부장처럼 답변하였다. 이제 분위기는 반대로부터 탈피한 듯이 보이며, 파산한 필립 홀츠만 건설회사에 대한 은행들의 구제금융 계획에 총리가 적극 개입한 이후 많은 노조 간부들은 그를 "일자리의 구세주"라고 성원하고 있다.
당대회 개막을 통해 두 가지 상황이 즉시 사람들의 뇌리에 스쳤다. 하나는 사민당 내 좌파를 자임하는 세력의 정치적 파산이다. 이들은 정치적 전망은 고사하고 당 지도부의 우익적 정책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갖고 있지 않다. 둘째는 대외 정책과 관련한 당의 새로운 견해들이다. "우리는 유럽 안에 함께 살고 있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함으로써 점증하는 사회적 긴장과 부자와 빈자 사이의 사회적 분할 증대를 무디게 만들기 위해 유럽 문제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앙적 과거사에 직면한 독일 국수주의는 이제 유럽연합이라는 색채로 자신을 감싸고 있다. 진부한 독일 격언을 재가공하면서 이제 "독일식 삶의 방식"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 국한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민당은 현재 "우린 미국식 관계를 원치 않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유럽식 사회제도와 가치체계의 방어"를 선전하고 있다. 대외 정책과 관련해서 이러한 관점은 지금까지 미국과 가져왔던 긴밀한 관계를 단계적으로 단절하는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 정책에 있어서는 지배집단의 이해 아래 모든 사회 계층, 계급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 문제가 당대회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당 전체적으로 정치적 전환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사민당에서 악명 높은 우익 지도자인 북라인 베스트팔리아 위원장 볼프강 클레멘트였다. 클레멘트에 따르면 사민당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전례를 따라야 한다. 케네디는 인류를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꿈으로 모든 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민당은 유럽이라는 전망을
통해 국민의 폭넓은 동원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초의 국제정치"를 위한 당 지도부의 초안은 "유럽을 위한 책임성"이라고 제목이 붙어있다. 첫 단락에서 유럽은 "평화와 문명의 모델"로 격찬되는 한편 호혜적인 대외, 안보 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의안의 첫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과 세계정치의 형성에는 유럽의 이해에 관한 -특히 국제 안보와 금융기관과 관련된- 공통의 정의(定義)와 향상된 조정이 요구된다."
만약 누군가 사민당이 독일의 집권당으로서 적절한 외교적 언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면, 유럽의 이해에 관한 강조가 -"우애의 정신 아래 미국과의 협력"과 같은 정식화가 있다손 치더라도- 미국 정부와의 갈등 증대를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군사적] 위기의 방지와 극복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은 "독자적인 이니셔티브 위에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행동들은 "자신의 군사적 능력"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된다. 나토 내에서 "유럽의 정체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안보정책으로부터의 거리두기는 러시아와의 접근에서 분명해진다. 미국 정부가 남동유럽에서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러시아와의 심각한 갈등의 위험을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사민당의 의안은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결의안은 이 문제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여기서는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민주적 러시아"에 독일이 커다란 이해를 가진다는 점이 강조된다. "독일과 여타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 러시아에 투자해야 한다."
"유럽의 안보를 위해" 모든 수준에서 "러시아와의 동반자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쟁의 조정과 관련하여 "결정이 이루어지는 즉시 초기 단계에서 러시아를 공동 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
독일-러시아간 협력이 "부패와 조직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언급될 뿐만 아니라 "테러리즘과의 투쟁"과 관련하여 특별히 지적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옐친 정권이 체첸에 대해 벌이는 야만적 전쟁의 슬로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9페이지로 구성된 이 결의안 전체에서 체첸 전쟁은 비판되지도,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를 선호했고 이러한 이유에서 기꺼이 대(對)세르비아 폭격에 참여한 반면, 러시아의 경우에는 가급적 붕괴를 막고자 하고 있다. 이는 인권이라는 문제가 각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냉전 시기 동안 외교관계는 분명했고 서구 동맹 내에서의 미국의 지도적 역할은 한번도 진지하게 문제제기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의 붕괴 이후 국제 관계는 급변하기 시작하였다. 자원과 시장, 영향력을 둘러싼 주요 강대국들의 분쟁은 그후 급속하게 강화되었다.

"좌파"의 역할

독일 대외정책의 새로운 정의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 모든 정당들 내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이는 독일의 정치적 풍경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새로운 정치적 정향의 선구자는 바로 사민당 내 좌파이다.
코소보 전쟁 당시 "나토와의 군사적 동맹 및 미국의 전략적 목표로부터 단절할 것"을 요구했던 사민당 쾰른 의원인 콘라트 길게스는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웨일즈부터 블라디보스톡까지 전유럽적 상호안보 체제를 구축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당 지도부는 단지 나토가 주도적 역할을 할 때만 이러한 체제를 수용, 가동할 것
이라고 비난하였다. 사민당 지도부는 이러한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미국이 유럽 정책에 대해 갖고 있는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은 유럽 안보 체제 안에서 "경제적 힘과 인구 규모, 지리적 위치 등으로 인해 독일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이러한 전망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위협을 가하며, 사민당과 녹색당 지도부는 이러한 책임을 떠맡는 것에서 꽁무니를 빼고 있다."
오스카 라폰텐이 최근 저서에서 주장한 것도 이와 매우 유사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동독의 스탈린주의 정당인 공산당(SED)의 계승자인 민주사회주의당(PDS)을 계속 언급하고 있으며, 자신은 이들과의 연정 구성에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대외정책과 안보라는 문제에 관한 새로운 정향은 또한 다른 정치 진영들로 하여금 민주사회주의당에 관심을 갖게끔 만들었다. 어쨌든 민주사회주의당은 냉전 기간 동안 다른 편에서 활동해온 독일의 유일한 정당이며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호의적 관계를 누려왔다. 민주사회주의당 의원단은 이미 독일의 대(對)러시아 정책의 전개에 관한 정책문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극단적인 보수층 내에서도 동구에 대한 친화적 입장이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열린 크반트 재단의 5차 유럽포럼을 다룬 「남독일차이퉁」 기사의 제목은 "유럽 건설현장 -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였다. "러시아는 어떻게 자신을 적응시킬까?"가 이 논쟁의 중심지점이었다.
하바드대 교수 리차드 파이프스는 과학자, 기업가, 정치가들이 러시아에 너무 많은 희망을 걸면서 구 소련의 "분권 세력"을 평한다고 경고한 반면, 독일측 연사들은 유럽연합의 "동구 확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남동유럽과 독립국가연합 문제의 "권위자"인, 헬무트 콜 총리의 전(前) 자문 호르스트 텔트쉬크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다. 텔트쉬크는 "유럽의 전망은 밝으며 독립국가연합까지 참여할 경우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의 민족주의자들 또한 유럽공동체, 특히 독일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 공산당 당수 주가노프는 지난 11월 베를린을 방문했을 당시 고위 정치인과 정부 대표 및 경제 전문가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독일이 "러시아 정치와 경제에 현저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러시아의 총선을 앞두고 주가노프는 새 정부에 참여할 경우 독일-러시아 관계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독일은 "세계 정치 무대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떠맡아야 하고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거대한 유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외정책과 관련된 경계선의 이동이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는 한편으로 정치, 군사적 수준에서는 구체적 단계들이 진행되고 있다.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 폭격 이후 반년만에 독자적인 유럽군의 창설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런던에서 열린 영국-프랑스 정상회담 이후 파리에서 며칠 전 열린 독일-프랑스 정기회동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모두 유럽연합을 위한 공동 군사 구조에 동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군사력, 유럽연합에 의한 계획과 작전 지도력"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결의안은 아직 비밀로 붙여지고 있지만, 다가오는 유럽공동체 헬싱키 정상회담에서 통과될 계획이다.
독일은 유럽 군수 산업의 합병을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는 다자(Dasa)사와 프랑스 기업인 아에로스파티알 마트라 S.A.의 합병으로 유럽항공방위우주사(EADS)를 탄생시킨 것에서 알 수 있다-일 뿐만 아니라 모스크바를 향한 파리-베를린 추축의 확장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민당-녹색당 정부는 동구의 "영향권(Lebensraum)"을 추구하는 구 제국주의 전략의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폰텐은 베를린 당대회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지점에 대해 논쟁의 기조를 잡았다. 대의원들은 다른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현상태를 유지시키면서 "사회 정의"를 쓸데없이 언급하기만 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부정의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민당 재무장관 한스 아이헬의 비용삭감 정책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지지받았다. 라퐁텐은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자는 요구로 인해 보다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당 내의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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