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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너희가 전태일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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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전태일거리,다리’에 박힐 황동에 전현직 대통령 친필...
조수빈 기자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해 청계천 6~7가를 전태일거리로 조성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역사와 일상, 그리고 미래 전망’이란 제목의 ‘전태일거리조성안’을 18일 제출했으며 서울시의 최종 심의만 남아 있다. 심의 결과는 제출일로부터 2주후인 8월 1일 발표된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


지난 15일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청계천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청계천전태일기념관 건립기본계획안 발표회와 전태일거리,다리조성사업’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은 것.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각계각층에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 양대노총 위원장까지 각계 인사들이 자리를 빛(?)냈다.

청계천 6~7가에 설치될 전태일다리와 거리의 주테마는 ‘전태일 이어달리기’와 ‘전태일모뉴멘트’다. ‘전태일모뉴멘트’는 전태일 기념 조형물로 청년 전태일이 남긴 ‘나는 돌아가야 한다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라는 ‘말의 꽃’을 든 소녀상이다.

‘전태일 이어달리기’는 벽돌모양의 판돌에 시민들의 친필을 새겨 전태일거리 바닥을 조성하는 것으로, 손학규 경기지사,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가수 안치환 등 각계의 인사들과 시민 6천여 명이 참여한다. 즉, ‘전태일다리(‘버들다리’)’ 바닥에 전태일에게 혹은 자신의 염원과 희망을 직접 써서 담은 글을 모아 황동을 제작하여 설치하는 것.


‘전태일이어달리기’ 프로젝트 참여 인단 중 주목할 만한 이들이 있었으니 소위 ‘좋아보인다 싶으면 꼭 끼는 사람들’, 바로 노무현, 김영삼, 김대중 전현직 대통령 그들이다.

이들이 황동에 남긴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
김대중 전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 전태일! 영원한 우리들의 영웅 전태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民主主義(민주주의)와 自由(자유), 人權(인권)을 향한 高貴(고귀)한 犧牲(희생) 2005년 7월 金泳三(김영삼)”

‘만나달라고 만나달라고’ 죽도록 면담요청해도 코빼기도 안보이던 그들 아니던가! 아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도 안 들어주던 그들이 어쩐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전태일’이 누구이기에. ‘전태일’은 누구인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500여 명의 노동자들과 경찰, 평화시장 경비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평화시장, 전태일이 자신의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나타난 그날이. 그는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쥔 채로 몸에 불을 당겼다. 이른바 ‘근로기준법’ 화형식,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가운데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짦고 긴 세 마디 외침을 남겼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둘이었다.

1965년 열일곱의 나이로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을 시작하여 70년까지 성장지상주의와 산업현장의 비인간화 현실에 맞선 그는 오늘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 또 노동자들에게 한국노동의 역사로 동시에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놓인 ‘자신’으로 투영되고 있다.

전태일은...

‘전태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기자가 태어난 지 1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달리 했을 그를 기억할 리 만무하나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는 ‘참여정부 1년’ 되던 2003년,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며 목숨을 끊은 ‘김주익 열사 같은 이’다. 2003년 10월17일 사측에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129일 동안 투쟁광장 앞에 있는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김주익 열사.

‘국민의 정부 5년’ 되던 2002년 노점 단속에 항의하다 중구청장실에서 분신한 ‘박봉규 열사 같은 이’는 또 아니었을까! 2002년 8월23일 청계천 시장에서 공구좌판을 하던 노점상 고 박봉규 씨는 구청의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중구청장실에서 분신자살을 기도, 같은 해 9월6일 숨을 거둔다. 서울시의 대대적인 단속계획과 도시빈민의 삶이 배제된 청계천복원 사업으로 삶을 터전을 잃은 박봉규 열사의 죽음이 전태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문민정부 3년’ 되던 1995년 현대중공업 본관 정문 앞에서 어용 노조 집행부의 노동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한 ‘양봉수 열사’ 또한 그렇다. 1995년 5월 12일 사측과 어용 집행부의 노동탄압 및 민주노조 말살 책동은 한 젊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노동탄압 분쇄하고 민주노조 사수할 것”을 요구하던 양봉수열사의 죽음 또한 전태일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리하여 기자가 곰곰이 되짚어 본 결과 아마도 ‘전태일’은 김주익, 박봉규, 양봉수 같은 이였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순간 주책스럽게 2003년 4월 국회등원을 앞두고 캐주얼 복장을 한 유시민 의원이 국회의사당 단상 앞에서 의원 선서가 좌절된 해프닝이 생각난다. 그가 현재 어디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 잠시 동안, 그래 아주 잠시 동안 많은 이들이 ‘그의 넥타이를 매지 않은 평상복 차림에’ 속았지 않았나! 결국 유시민 의원의 국회등원이 그 다음날로 미루어지긴 했지만 이날의 해프닝으로 유시민 의원은 ‘권위주의에 맞선 진보적 더 나아가 개혁적 인물’로 평가되는 울지 못해 웃어야 하는 낯 뜨거운 시츄에이션이 발생한 것.

이때부터였던가 요즘 “보혁, 보혁” 하는데 당최 누가 ‘보수’고 ‘개혁’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4대 개혁입법’하며 ‘개혁’, ‘개혁’하는 요즘 우리는 도통 무감각하다. 어떤 이는 이런 것을 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오히려 울고 싶다. 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누가, 또한 IMF를 내세운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순응한 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재물 삼은 누가, 노동자들의 머리에 신자유주의 칼바람을 꽂고 있는 또 누군가, ‘전태일’이라는 네임밸류를 이미지 쇄신용으로 톡톡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한마디 하겠다는데 갸륵하게 생각지 못하는 기자의 못된 심사도 원망스럽지만 ‘전태일’은 전태일 한 개인이 아닌 까닭에 그들의 제스츄어는 가당찮기 짝이 없다.

청계천 복원으로 많은 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그 자리를 대신해 초국적자본으로 채워지고 있는 가운데 도대체 노무현(직업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은 무엇이며 김대중(전 대통령)이 언급한 “양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영삼(전 대통령), 그가 인권을 알긴 아는가!

도대체 너희가 ‘전태일’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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