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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과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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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과 사라지는 것들
청계천에 말걸기
류제홍 
지난 6월초 청계천의 출발지인 청계광장에서는 원활한 용수 공급을 점검하는 통수식이 열렸다. 현재 90%가 넘는 공정을 보이고 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은 7월초 종합적인 통수시험 이후 교량공사, 반차도와 각종 경관조명시설 등의 설치를 거쳐 10월에 완공될 계획이다. 한편 복원사업 진행 중 문화재 파괴의 문재와 함께 청계천 일대가 문화유적으로 지정되면서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이들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청계천은 안녕하게 '복원'되고 있는가. '복원' 혹은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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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보면 내 몸에서 녹 냄새가 나는지 잘 몰라. 그런데 하루는 집에 가서 포옹 신고를 하는데 아내가 녹 냄새를 맡더군. 고마웠어. 내 존재를 알아주니 말이야…장기 계획? 확실한 건 없어. 청계천에 들어온 지 26년째인데 솔직히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게 쉽나? 우리같은 금형이나 기계 산업은 옮기면 망하기 십상이야. 기계나 금형 같은 산업은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거든. 주문 받아서 재료 구해서 만들고 납품하는 게 이 동네 안에서 완벽하게 돌아가거든. 서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거지.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옮기라고 하면 인맥이나 일하는 네트워크가 와해될 수밖에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하겠지만 어디 그 공백을 서울시나 정부에서 메워주나?…요샌 그냥 장기나 두는 게 편해. 뭐 사람들도 복원 공사나 이전 문제에 대해서 별 말도 없고…앞으로 2년 동안 내가 어떻게 소멸해 가는지 봐 두게. 그게 청계천의 역사일 거야.

―이용진 (을지로 3가 대진정밀)

2002년 6월 서울시장 선거 공약으로 청계천 복원이 대중적인 이슈로 대두된 이후 현재 서울시장이 당선되자 청계천추진본부가 구성되어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리고 상인과 시민단체들은 각기 복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던 상황이었다. 청계천 환경 복원에는 찬성하되 그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속도조절론, 용수를 끌어 대는 인공공원 대신 상류 지천부터 살려야 한다는 자연생태론, 매몰되거나 사라져 가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켜야 한다는 원형복원론, 천변 상인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민주절차론, 고층·고밀화와 난개발을 막고 상인대책과 교통대책 등을 실제로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대책론 등이 다 같이 서울시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했다. 하지만 이들이 교차하는 전체 지형은 불안하게 봉합되어 있으며 각각의 입장은 서로 충돌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나는 우선 청계천을 복원을 바라보는 내 나름의 접근방법을 찾기 위해 청계천의 특수함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서는 ‘삶의 기술’과 ‘공간의 동력’을 살피는 것으로 좁혀졌고, 이는 다시 ‘근대적 공간을 비근대적으로 살아 낸 삶의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다시 말해서 천변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으로, 그 속의 삶은 비근대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낙후되고 지저분한 근대적 공간에 깃들어 있는 ‘삶의 기술’ 부분은 천변 사람들의 오래된 집단적 꿈과 연결되는 것으로 가시성을 초월하는 측면이 강하다.

과거의 개발이 고가도로와 대형 복합상가라는 근대화된 도시공간의 환영을 통해 천변의 역사, 문화, 환경을 보이지 않도록 했다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은 천변의 역사, 문화, 특히 환경을 가시화한다면서도 실상 역사-문화-환경과 천변의 삶-공간이 맺는 관계나 맥락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고 있으며, 대신 국제금융업, IT-부품산업, 의류-패션업 등을 위한 지구들을 조성하여 고층·고밀의 도시상업공간들을 가시화하려는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청계천 복원’계획은 청계천을 ‘복원’하되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며, 문화적 맥락 없는 생태복원과 역사문화복원은 그 자체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원형보존신화에 불과하다.

이 ‘이상한’ 현상은 복원과 개발에 대한 고민 이전에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공간을 대규모로 조성하는 것,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은 긍정적 의미에서나 부정적 의미에서나 공간파괴라고 할 수 있다. 청계천의 경우는 부정적 공간파괴다. 왜냐하면 이번 청계천 복원과 천변 개발은 청계천 공간의 문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청계천이라는 공간의 삶과 그곳을 살아낸 삶의 방식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자연성과 역사성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간적인 것으로 개천으로서의 청계천을 입체적이고 가상적인 홍보 이미지들을 통해 환히 비춤으로서 청계천 주변, 즉 천변의 (재)개발 공간을 시계(視界)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역사문화 복원’이라는 명목을 통해 역사를 근대 이전으로 퇴행시킴으로서 근대역사를 역사의 시계(時計)에서 폐기해야 할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 그대로가 아니며 거의 항상 인간의 시공간과 상호침투하면서 자기 흔적을 갖는다. 따라서 자연은 역사화, 정치화, 경제화, 사회화, 문화화를 거친다. 이러한 자연의 역사성, 정치성, 경제성, 사회성, 문화성 때문에 나는 ‘Nature’를 ‘자연’이 아니라 ‘자연성’이라 부른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천을 하천 자체의 ‘자연’으로 규정하고 청계천의 ‘자연성’을 보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인다. 영조 이후부터 청계천은 준설을 통해 만들어진 도심부 하수천이며 ‘개발시대’에는 복개된 대형 하수로라는 자연성을 갖는다. 건천에서 하수천으로, 다시 하수천에서 하수로로 자연성이 변하여 온 ‘자연사’(Natural History)를 갖지만, 하수를 담는 통로라는 점에 청계천의 한결같은 정체성이 있다.

이는 동시에 주변 공간의 ‘자연사’를 형성한다. ‘청계천’이 하천이면서 주변 지역 또한 지칭하는 이름이듯이 하수에서 살아가는 등이 휜 물고기처럼 천변의 열악하고 치열한 삶은 청계천의 또 다른 생태환경이 아닌가. 따라서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항과 같은 인공 공원의 조성이 아닌 하수천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천변의 지난한 삶의 허리를 펴주는 방식으로 청계천의 자연성을 변화시켜야 한다.

서울시의 역사관을 청계천 복원사업을 통해 거칠게 보면, 개천에 대해서는 전(前)근대 역사로서 복원의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하며, 주변에 대해서는 현대 또는 탈근대적 도시공간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복원할 수 있지만 ‘역사성’은 역사를 복원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역사성에 대한 협의적 이해는 역사를 전근대적 범주로 국한하여 박제화하는 결과를 낳고 문화를 현대적인 것, 즉 현대문화로 국한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현재의 천변공간과 문화를 역사화한다는 명분하에 현재까지 삶의 맥락이 이어지고 있는 천변문화를 박제화하거나 과거의 문화로 기념하는 것에 찬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청계천의 근대는 현대의 삶과 문화와 경제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계천 주변의 근대적 삶의 문화와 공간의 동력에 대한 문화가치평가가 필요하다. 전근대의 역사와 현대적인 문화가 근대적인 것을 매개로 이어질 때 역사는 문화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천변은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이며, 잘못 조성된 근대적 구조물이라 하더라도 그 그늘에서 30-40년을 살아 낸 천변 사람들의 삶의 문화가 축적된 역사적 공간이다. 지금까지 우리네 삶에 자양분을 공급해 온 천변문화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 상이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은 처음부터 허상에 불과한 또 하나의 개발신화에 불과하다.

청계천을 재생천으로

앞서 서술하였던 ‘청계천 복원’ 사업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들, 즉 ‘자연성’과 ‘역사성’의 문제들을 염두해 두면 하나의 해결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 청계천과 천변을 기본적으로 근대적 공간으로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청계천을 그 자연사적 존재에 따라 근대적 도심 하수가 흐르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천변의 온갖 재생산업의 개념에 맞게 하수가 정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드는 것이다. 생성과 됨의 과정을 담는 물길 말이다. 필요하다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하수를 정화조와 같은 형태로 1차 처리하고 갖가지 정화 기술을 동원하여 하류로 갈수록 상급수로 변화시킬 수 있다. 더불어 상류 지천을 살리고 우기때 물 모아 건기때 방수한다든지, 다양한 자연정화기술을 동원할 수도 있겠다.

서울시의 계획처럼 하수를 따로 처리하고 어항과 같은 인공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청계천과는 상관도 없을뿐더러 다른 도시공간에도 좋은 리가 없다. 과도하게 시각중심적인 청계천 기본 설계안을 보면 너무 조경적인 경관만 중시하는 한편 사실상의 계획의 중심이 삶의 질보다는 경제중심적인 개발논리에 치우치는 이중성을 드러낸다. 또한 생태적 환경만 고집하는 것도 하수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면 진정한 고집도 아니려니와 청계천과도 상관없는 ‘자연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자연’ 자체를 중심으로 고려한다면 오히려 삼청동천을 복원한다면 청계천의 상류도 살리면서 경복궁과 사간동, 열린시민공원을 경유하여 문화관광부와 미대사관 뒤를 지나 청계천 복원의 시점부까지 멋진 자연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천변 개발의 문제다. 천변 속에서도 내성을 키우며 치열하게 살아낸 공간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피상적으로 보면 청계천의 자연성은 비유컨대 청계천의 하수에서 살아가는 등이 휜 물고기처럼 천변의 열악하고 지난한 삶이 되겠다. 하지만 천변 사람들은 근대의 괴물같은 공간의 그림자와 공해 물건을 재생시키듯이 말이다. 개발이 필요하다면 청계천 공간의 동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생산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해체와 재생 및 모방기술을 체계적으로 재생산 할 수 있도록 공간구조를 정비하여야 한다. 고층으로 공간가치를 높이려면 기존의 저층 구조의 공간 네트워크를 최대한 살리면서 상층구조는 새로운 공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안이 있겠다. 공간의 역능이 필요한 부분들은 단순히 파괴하고 새 공간으로 대치할 것이 아니라, 덧붙이고 변형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하여 생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아야 한다.


류제홍, 시각문화비평가
누가 전문가인가 http://weekly.culturalaction.org/maynews/read2.php?table=organ&item=3&no=2078
청계천 박람회… 그리고 만물공원 http://weekly.culturalaction.org/maynews/read2.php?table=organ&item=3&no=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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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 2년, 그곳에 다시 가다

 
    칼럼 > 칼럼
청계천 복원 2년, 그곳에 다시 가다
최인기 
다쓰러지는 건물의 끝에서 포크레인이 고개질 한다. 거리는 여전히 무덥고 을씨년스럽다, 차도위에 갇힌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채 끝간데 없이 이어져 있다. 복원공사의 막바지를 알리는 소리가 요란해도 청계천 8가 황학동 뒷골목은 옛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위 빽판이라 불리는 음반을 유통하던 레코드사들도 그대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 80년대 모든게 척박한 시절 음악 좀 들었다는 이들에게 청계천은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던 샘물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중 필자가 자주 가던 ‘장안레코드사’ 의 간판도 그대로다. 교복의 갈래머리 소녀는 지금 아주머니가 되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니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가게 입구에는 중년의 신사가 신청한 듯 진공관식 아날로그 전축의 낡은 스피커에서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그 앞 대로변에는 20년 넘게 신발을 만들어 파는 소순관(남52) 씨가 있다. 그를 만나 노점상과 상인들의 이주 문제에 대하여 들어봤다.

‘이곳에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장사를 하던 노점상들은 떠났다. 가장 많을 때는 3천 명이 넘었다. 이중 2천 명은 어디로 뿔뿔히 흩어졌는지 모른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보나마나 어디에선가 좌판을 펴고 장사를 하지 않겠나 나머지 노점상은 동대문 운동장에 들어가서 장사를 하고 있다.

‘상인들도 이전을 시킨다는데’

‘그렇다 청계천변의 상인들은 송파구 문정동으로 이전을 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2003년 7월 1일 이후 상가에 입주한 세입자들은 이전하는데 있어서 대상이 아니다. 이전이 확정된 상인들도 현재와 같이 불황이 계속된다면 장사가 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기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용산 전자 상가와 같이 성공 사례도 있지 않은가?’

‘현재 황학동에 남아있는 업종은 고물을 수리해서 재활용해 팔거나 중고서적과 비디오판매 같은 사양업종들이다 이들 업종은 이전하면 모두 죽는다. 다만 이들은 문정동 지구에 상가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투기효과나 노려보자는 것이다’

이미 지나 버린 것, 낡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 청계천은 고집스러운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 인가? 자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속도의 시대에 어찌보면 그들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데이 서울에 실려 있는 영화배우 정윤희의 빛바랜 사진은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도톰한 입술과 노란수영복을 걸친 채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렇다. 청계천은 지난한 시절의 슬픔과 기쁨의 아련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청계천은 없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 7월 2일 청계천 삼일 아파트

부슬부슬 내리는 장마 비를 맞으며 약 50여 명의 학생과 사회단체 회원들이 청계천 구석을 구석을 돌았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갔던 길도 갑자기 낮설다. 자고 나면 건물이 들어서서 그 길이 이 길인가 도통 헷갈리고 의심이 간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자 주민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들을 지켜본다. 어둡고 적막한 골목의 일상을 깨트리고 이들이 던지는 선동에 주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삼일고가도로를 따라 청계천 변에 줄을 지어 서있던 판자촌을 가리기 위해 지어졌다는 삼일 아파트는 숭인동만 남겨 진채 거의 철거를 당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콘크리트 더미 사이사이에는 부랴부랴 떠난 세간살이들이 앙상한 뼈를 들어낸 채 마냥 뒹굴고 있다. 철지난 달력과 찢긴 신문들, 연체료 고지서, 버리고 간 겨울옷과 신발, 교과서 몇 권과 주인 잃은 곰 인형, 곰팡이가 검게 피어오른 벽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가족사진은 집안의 내력을 알려준다. 멈춰버린 쾌종시계가 2시 즈음을 알리고 있다.

청계천 삼일아파트 철대위 임병근 (남 58세) 위원장에게 이곳의 상황을 들어 봤다.

"이제 몇 집이 있나?"

"약 50세대 명 정도가 있다"

"왜 아직도 이주를 못하고 있나"

"임대주택을 줘도 이들은 입주비 천5백여만이 없기에 들어 갈 수가 없다.
주민 대부분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갖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몇 년째 주거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싸움을 하다보니 생활은 완전 파탄 지경에 왔다."

"지난번 종로구청에서 약속이 있었지 않았나?"

"지난 3월에 전빈련 차원의 투쟁을 통해서 가수 용 단지를 주는 것으로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보다시피 전기도 수도도 모두 끊어버리고 주민들을 고립 시킨 채 계속 위협을 가하고 있다. 올 초는 장애인과 노숙자들까지 동원을 하여 없는 사람들끼리 싸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파렴치한 작태까지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구청과 건설회사에서는 7월 18일 이후 강제로 행정집행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연대를 호소하는 세대위 위원장의 간절한 눈길을 뒤로 우리는 삼일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주민들은 수고들 한다고 우리들에게 간단한 음료를 대접하며 어깨를 다독여 준다. 학생들의 온몸에서는 단내가 폴폴 난다 잔잔히 내리는 비를 맞아서 만은 아니다 열정으로 발산되는 열기 때문이리라

- 청계천 공구상가 -

우리는 무슨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마냥 텔레비전과 냉장고들이 층층히 쌓여있는 가게를 지나 공구상가 골목에 섰다. 스페너, 망치, 그리고 드릴 같은 것들이 천장 높이 촘촘히 쌓여 있다. 누군가 건들면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 같은 위태위태한 모습이지만 천만에 끄떡 없다. 그들 방식의 경험과 지혜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망치 하나, 못 하나, 아무렇게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자리에 놓여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눈을 감고 손만 뻗어면 쥘 수 있는 적재적소에 공구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 사이사이를 저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누볐는지 모른다. 때로는 공구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 한낮의 달콤한 잠에 취했으리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문도 봤을 것이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한 끼의 식사도 마쳤을 것이다. 어두워질 무렵이면 자신의 전 재산일 수도 있는 물건들을 살아온 만큼이나 견고한 쇠사슬로 칭칭 동여매고 하루의 노동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를 붙잡고 막걸리 한사발로 시름을 달랠 것이다.

-10월이면 청계천이 새롭게 열립니다?-


서울시에서 내건 프랭카드가 거리 곳곳에 걸린채 부푼 몸을 날리며 펄럭인다. 청계천 복원사업 2년째다. 외국에서는 보통 10년을 걸려 완공을 한다는 사업을 2년 동안 밀어붙여 공정률 98%를 보이고 있단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수구 신문들은 이를 기념하듯 치적을 알리는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포털싸이트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처음에는 개발을 반대하고 극렬하게 투쟁하시던 분들이 지금은 서울시의 절대 지지자가 됐습니다. 상인들과 우리는 얼마 전까지 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서울시가 이렇게까지 우리를 배려해 줄 줄은 몰랐다고 감동했다"고 한다.

도대체 누굴 만났기게 감동을 했다는 것인가.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밀려난 사람들 이들이 다시 수십 년 동안 군락을 형성해오며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촘촘히 엮인 그물망처럼 청계천에 생계의 터전을 닦아 왔다. 하지만 이명박 서울시장의 2년 동안의 밀어붙이기 사업으로 이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노동현장에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도시공간을 배외하며 이윤을 낳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서울 전역에 환경과 문화 역사복원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쓰고 도시곳곳을 휩쓸고 있다. 지난번 양윤재 부시장의 구속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청계천 복원 사업은 이명박 서울 시장의 정치적 야욕과 비리로 점철된 사업에 불과 하다. 서울 전역에 자본의 이윤을 넓히기 위한 그리고 이를 지리적으로 원활히 집중하고 배분하기 위한 민관합작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이글의 일부는 필자의 청계천 관련 다른 자료에도 쓰여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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