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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이쌍스 마지막 끼어들기

 쥬이쌍스의 마지막 호인데 여차저차 끼어들었음.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주로 낯선 사람들과 알게 되는 자리에서 썩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화제거리를 찾는 데 사는 곳을 물어보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꽤 적당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이런 일반적 상황에서 살짝 비껴서 있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그곳에는 주택가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 “아 거기 옛날에 정말 불야성이었지”(대부분 아저씨들의 반응) “거기서 살면 얼마나 들어요? 거기 건희 사는 데 아닌가?”(우리 동네 근처에 이건희가 산다고는 하는데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저소득층 밀집 구역이다) “거기 있으면 신기한 거 많이 보고 먹겠어요.” (이젠 별로 신기할 것도 없고 신기하고 좋은 걸 먹으려면 꽤 돈이 든다) “외국인들 많은 곳인데 무섭지 않아요?”(2년 동안 살면서 위협적인 외국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등등. 아마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정도가 되겠다. 사실 남이 사는 동네를 두고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인류는 사막에서도 살고 심지어는 빙산 밑에서도 사는데 뭐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태원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행정적 지명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이고, 일반적으로는 이태원으로 불리는 동네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태원에 가려있는, ‘이태원이라는 적당히 퇴색한 유흥가의 뒷골목에 자리한 가난뱅이 동네,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이태원 뒷동네를 동선을 중심으로 보면 이렇다. 우선 어디를 나가려면 버스가 몇 다니질 않기 때문에 6호선 이태원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5~10분 정도가 걸린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1) 게이 바가 밀집해 있어 게이 힐로도 불리는 골목을 지나거나, 2)미군들을 상대하던 이제는 퇴색한 작은 평수의 술집들(일명 후크 힐이란다)이 밀집해 있는 골목을 지나거나, 3)이슬람 중앙성원을 따라 형성된 무슬림들을 상대하거나 무슬림들이 경영하는 가게들을 지나야 한다. 주로 장을 보기 위해서는 이태원역 근처에서 가장 큰 마트인 코아마트를 이용하는데, 이 곳으로 가는 지름길은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장사를 하고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게토를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 골목에는 주로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케밥집들이 몇몇 있고, 오래 전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감자탕, 순대국 집들이 모여 있다. 코아마트는 웬만한 대형 마트나 백화점보다 수입 식재료와 향신료, 양념, 과자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이태원역 4번 출구에 자리한 이곳에서 미군부대가 있는 녹사평역 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이태원의 냄새가 짙어진다. 큰 옷 전문점과 양복점, 명품 모조품을 파는 쇼핑가를 지나 중간중간 과거 미군들을 상대했을 법한 펍과 레스토랑들이 있고, 최근 맛집들로 알려진 수제햄버거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삼각지 방면으로 더 가면 한국 근대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미군부대-국방부-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밀턴 호텔 뒤쪽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들보다 백인들이 많이 보인다.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한강진역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있고, 삼성 그룹의 핵심 회사 중 하나인 제일기획 건물이 괴물처럼 솟아 있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커다란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일본인 혹은 중국인 관광객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곳을 지나 한강진역으로 내려가면 그 뒤쪽으로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월간 미술 건물과 리움 미술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뒤가 바로 남산이다.

다시 이슬람 중앙 성원 쪽으로 돌아와보자. 무슬림들의 가게들을 지나 이태원역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2-3분을 걸어가면 초등학교가 있고 그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성당이 있으며, 초등학교를 바라보면 그 뒤에는 등대처럼 빛나는 모스크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교 근처에 자리잡은 작은 분식집과 문방구들을 거치면 보광동이 등장하는데 이 동네는 서울에서도 꽤 오래된 서민층 동네고 슬슬 외국인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다. 여기서 좀더 걸으면 한강이 나온다. 동네 탓인지 근처의 이촌과는 썩 차이가 나는 한강공원이 보이고 양쪽으론 한남대교와 반포대교가 보인다.

남산과 한강 사이, ‘관광특구’,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으리으리한 신축 용산구청이 이전하는 곳, 트랜스젠더들이 호객을 하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 곳, 한국 최고의 재벌들의 집이 있는 곳, 외국인이 많은 곳, 한국 이슬람 중앙 성원이 있는 곳, 게이들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곳, 흑인들의 미용실이 있는 곳, 서울에서 집값이 아직은 저렴해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곳, 서울에서 미군을 볼 수 있는 곳, ‘짝퉁장인들이 있는 곳, 고급 레스토랑이 많은 곳, 무슬림들의 단식기도 기간인 라마단이 끝나면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장식용 전구가 켜지는 곳,  이 모든  것이  우리 동네 얘기다.

 

무심함이 지탱하는 근대적공간

이 동네의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 한국 사회의 근대화 역사와 한국 사회의 근대성이 압축되어 있다. 화룡점정인 것은 용산이 이제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재개발 대상 지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을 요즘 유행하는 모양새에 맞춰 다문화 공간이니 어쩌니 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내가 살아본 이태원은 연구자들이 원하는 만큼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간은 아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공간에 한정했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구로 지역에 재중동포나 중국출신의 노동자들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형태나, 화교들이 모여있는 인천, 명동과 이태원의 공간 구성은 매우 다르다. 이태원은 한국사회가 낯설어하는 모든 문화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뒤섞여 있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보다 체격이 큰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옷을 사고, 이슬람 신도들은 이곳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른 식재료를 사러 이태원에 오고 기도를 하기 위해 이태원에 온다. 거침없이 게이들은 서로에게 추파를 던지고(!), MTF 성전환자들은 과잉된성정체성을 길거리에서 거침없이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 꺼리길마다하지 않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곳에 형성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모든 이방인들은 모두 이태원에 모여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태원이 작동하고 있는 방식을 보자면 마치 근대화 시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막 올라온 사람들이 느낄 법한 무심함익명성이 그 축에 있다는 느낌이다. 아주 좁은 공간에 작은 골목들이 있지만 각 골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고정적이다. 본인이 필요한 골목만 이용할 뿐, 그 사이의 어떤 상호관계도 목격하기는 힘들다. 본래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순대 골목에 점차 들어서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한국인 상인들은 달갑지 않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리고 철없는 한국인 게이 청년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무슬림들이 이슬람 중앙성원 근처가 아닌 이태원역 근처에 보이자 뒤에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욕지거리를 한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성원 이 자리한 동네에 게이들과 성전환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이러한 잠재적 갈등이 외연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 기반에는 서로의 무심함이 존재한다. 순진한 나는 어떤 이유로든 한국사회라는 상자 속에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의 조금이나마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봤지만 기대했던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가 포비아에 기반해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이건 서로 친한 것도 아니고 갈등적이지도 않다. 아마도 이태원이 소비에 기반한 상업공간이고 이태원의 문화도 그에 맞춰 짜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한 연구자(한양대 인류학과 송도영 교수)의 말대로 다문화 공간이 유지되고 작동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은  무심함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렇듯 이태원은 여러모로 참 근대적공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한국의 근대 역사가 압축되어 있는 듯한 인상에서도, 마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만국박람회장 같은 인상에서도, 도시 생활의 근간인 무심함이 지탱하고 있다는 인상에서도, 서울에서 거의 마지막 재개발 대상 구역이라는 것에서도, 소비가 동선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말이다.

최근 이태원과 녹사평 사이에 으리으리한 마치 밤에 보면 괴물과도 같은 인상의 신축 용산구청 건물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거대 기업에서도 이태원 부근의 땅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요새는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유행이긴 하지만, 조금은 천박해 보이고 조금은 난리법석인, 그리고 한국사회가 부끄러워하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근대적 공간이 다시 한번 자본과 정치권력에 덮어져 버리는 것은 꽤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조선총독부를 그대로 폭파시켜버렸던 한국사회의 천박한 역사관을 재확인하는 기분이 들 뿐 아니라, 이제 이 복잡한 동네는 내가 정 붙이고 사는 동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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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것, 제5도살장의 몇 부분

 다시 읽은 커트 보네것의 <제5도살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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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즈워터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외계에서 온 복음서>였다. 트랄파마도어인과 흡사하게 생긴 외계인 방문자에 관한 책이었다. 그 외계인 방문자는 기독교를 깊이 연구했다.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신약의 어설픈 이야기 솜씨가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은 이렇게 가르쳤다.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그렇게 가는거지.

 

 

*********

 

 

그리스도 이야기들이 안고 있는 결점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실은 우주에서 가장 힘센 존재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외계인 방문자는 말했다. 신약 독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십자가형 대목에 이르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로즈워터는 그 부분을 큰 소리로 다시 읽었다.

 

오, 이런- 그 시람들 이번에는 멋대로 죽일 상대를 잘못 골랐어!

 

그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이런 말이 되었다.

"멋대로 죽이기게 적당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인가? 든든한 연줄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가는 거지.

 

 

 

2.

 

시간에서 조금 해방되어, 심야 영화가 역방향으로 보이다가 다시 정방향으로 보였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미군 폭격기들과 그것들을 모르는 씩씩한 사나이들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빌리가 역방향으로 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곳곳에 구멍이 나고 부상자들과 시체를 가득 실은 미군 비행기들이 영국의 한 비행장에서 후진으로 이륙했다.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군 전투기 몇 대가 그들을 향해 거꾸로 날아왔고, 폭격기들과 승무원들로부터 탄알과 포탄 파편을 빨아들였다. 그들은 지상의 파괴된 미군 폭격기들로부터도 똑같은 행동을 했으며, 그 폭격기들은 후진으로 날아올라 편대에 합류했다.

편대는 화염에 휩싸인 어떤 독일 도시 위를 후진으로 날았다. 폭격기들은 폭탄 투하실의 문을 열었고, 기적 같은 자력을 일으켜 불길을 작게 만든 후 원통형 강철 용기들 속으로 거둬들였으며, 그 용기들을 폭격기의 뱃속으로 끌어올렸다. 강철 용기들은 깔끔하게 거치대에 장착되었다. 지상의 독일군도 기적을 일으키는 장치를 여럿 갖고 있었다. 그것은 길쭉한 강철 튜브였다. 그들은 그 장치를 이용해 폭격기들과 승무원들로부터 더 많은 파편들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부상당한 몇 사람이 있었고, 파손된 폭격기 몇 대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군 전투기들이 다시 올라오더니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새 것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

 

폭격기들이 기지로 돌아갔을 때, 철강 원통들은 거치대에서 내려져 미합중국으로 반송되었고, 그곳 공장들은 밤낮 작업을 하여 원통들을 해체하고 위험한 내용물을 각각의 광물로 분리했다. 애처롭게도,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이었다. 그 광물들은 이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전문가들에게 보내졌다. 광물들을 지하로 보내 다시는 누구에게도 손상당하지 않도록 꼭꼭 숨기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미군 비행사들은 제복을 반납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히틀러는 갓난아기로 돌아갔을 거라고 빌리 필그림은 추측했다. 그것은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빌리가 기지의 사실로부터 미지의 사실을 추정한 것이었다. 모두가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갔으며,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전인류가 생물학적으로 협력하여 아담과 이브라는 두 명의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켰다고 그는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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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 평화.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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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human is alien to me

I am a human.

Nothing human is alien to me.

 

세상의 절반만이라도 저렇다면.

 

부끄러워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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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김혜리 기자

김혜리 기자가 인터뷰를 하니, 정성일도 귀여워 진다능!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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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정성일 편 중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7&article_id=57907

 

귀여운 정성일 씨

 

1.중학생 때 꼭 봐야 할 영화 500편의 리스트를 작성하셨다는데, 당시는 구할 수 있는 정보량도 미미했을 텐데 어떤 자료에 기대어 목록을 작성했나요?
 

=노트 한권 가득이었으니 500편 넘었을 거예요.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명동의 외국 잡지 가게에서 일본의 <스크린>과 <에이가노토모>를 샀어요. 표지 보고 샀다가 답답해서 겨울방학 동안 한자와 가타가나를 조합해 독학으로 읽기 시작했죠. 팬진(fanzine, 스타의 팬을 타깃으로 한 영화잡지)이지만 일부 페이지는 전문적인 잡지여서 매월 누벨바그 베스트5, 고다르 베스트5 등 다양한 베스트5를 뽑는 코너가 있었어요. 일본 잡지를 통해 영화 정보를 구하기 시작한 거죠. 신기한 건, 노트에 영화 제목을 쓰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염원하면 어떻게든 기적처럼 볼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응답이 와요. 영화를 보면 하나씩 노트의 제목을 지워나가는 즐거움이 너무나 컸어요. 나중에 <데쓰노트>를 보면서 내 아이디어를 도둑맞은 게 아닐까 했다니까요. (폭소)

 

2.사회적 상황이 엄혹한 80년대 초였으니 대학생이 영화에 열정을 쏟는다는 사실에 대해 죄의식이나 부채의식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스스로 갈등을 중재했습니까?
=영화는 친구들이 볼 때는 역겨운 취미였고 한심한 여가생활이었죠. 정치적이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을 취미로 삼는 것보다 저급하게 여겨졌어요. 그러나 저는 영화를 그냥 운명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하루는 종로서적에 갔는데 저 멀리서 <고다르 전집>이 ‘줌 인’으로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헉 해서 달려갔더니… <타고르 전집>이었어요. (좌중 폭소) 군대에서 제 첫사랑에게 받은 이별 통보의 마지막 구절은 “성일씨는 제가 아니어도 영화를 사랑하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많이 행복하세요”였어요.

 

 

3.<키노>는 부정적으로 본 영화에 대해선 자세히 비판하기보다 침묵하는 편이었습니다. 그건 좋은 것에 대해 말할 시간과 지면도 부족하다고 판단해서였나요?
=나쁜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 생각이 망가지기 시작한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제 경험상 나쁜 영화에 대해 비판적 글을 쓰고 나면 재활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웃음) 정말 좋은 영화를 일주일 정도 봐줘야 해요. 영화를 참 잘 보던 좋은 필자가, 어느 날 나쁜 영화에 대한 비판적 글을 논쟁적으로 쓰기 시작하고 그 글들이 환호와 관심을 모음에 따라 그도 더욱 그런 글을 찾아 쓰고, 그러다 좋은 영화에 대해 갑자기 눈먼 소리를 쓰는 걸 볼 때가 있어요. 감히 조언은 못하지만 지켜보면 가슴이 아파요. 좋은 연주를 듣다보면 나쁜 연주를 금방 판별하지만 이것저것 잡다하게 들으면 좋은 연주를 들어도 모르죠. 그림도,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영화를 너무도 쉽게 보는 젊은 관객이 영화는 재미있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순간 가슴이 아파요. 본인의 감식안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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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거.

 

좋은 영화는 뭐고 나쁜 영화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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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선언을 읽다가

일을 그만두고 묵혀뒀던 철 지난 책들을 보고 있는데,

개중 <코뮨주의 선언> 머릿말을 다시 보다가.

 

'공통된 것'이 차이나는 것들 사이에만 존재하고 생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썰을 풀던 중,

 

"소통을 꿈꾸면서도 차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차이를 해소하는 것만이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꾸로다.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동일성 안에서다. 동일성 안에 있는 존재들은 둘일 때조차 한 사람처럼 독백한다. 차이들만이 소통할 수 있다. 우리는 매번 그 방법을 발명해야 한다."

 

마침 오전에 엘 워드 마지막 시즌을 다시 봤는데,

거기서 알리스의 질투어린 수다가 생각나는 지점.

 

알리스는 타샤라는 전 군인 출신의 흑인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 제이미라는 친구가 함께 친해지면서 삼각관계에 이르렀는데 그들의 섹스를 질투어리게 상상하며 쉐인에게 투덜거리던 전화 내용 중,

 

"걔들은 일심동체잖아. 걔들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 자위일걸?"

 

 

흐흐 뭐 그랬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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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테러리스트! 2탄(by 웡긔)

(1탄에 이어) 

 

조형물 설치

 

 : 거리에 자신이 만든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이 역시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혹은 단순한 재미.

 

 조형물의 경우 '스트릿 아트'의 '아트'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mark jenkins의 작업처럼, 단순한 아트와 미시적인 문화정치의 맥락은 구분하기 힘들다.

 

 

 

 

 

 

 (출처는 확실치 않지만, 밑에 것은 GRL와 Mark Jenkins와의 Tape Sculpture 합동 작품)

 

 

 

 

 

(바로 위가 mark jenkins의 작품: 아기 tape sculpture)

 

 

Textual healing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건물의 창문에 말풍선을 달고, 알려준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풍선 안에 채워진다. 항상 이용하는 문자서비스(SMS) 기술을 이용한 상호작용 퍼포먼스.

http://www.txtualhealing.com

 

 

  

 

 

* 보통 이러한 활동을 일컬어 street art 라고도 하지만, banksy가 지적하듯이 예술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함축과 소외시키는 기능 때문에 쓰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반달리즘이나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교란행위cultural jamming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들 행위가 가진 본질적인 아트로서의 동기를 가리고, 더군다나 재미없게 되어버린다.

 

 

 

 위의 사례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의 일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일반적인 그래피티라면 압구정동과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일반인과의 접촉을 금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밴크시로 대표되는 스탠실 그래피티의 경우, 필자가 살고 있는 종로지역에서 매우 가끔 목격하기도 하지만 거의 없다고 봐야 옳다. 오히려 한국에서 스탠실 그래피티는 공공기업이나 일반 기업체에서 자신들의 광고를 위한 방법으로 널리 쓰여진다. (사진) 스티커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아무런 이윤의 목적이 없는 경우란 찾기 힘들다. 그 외 다른 종류의 아트로서의 반달리즘은 여러 가지가 시도되고 있지만, 사실상 외국, 그것도 국제적인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다.

 

 

(명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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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테러리스트! 1탄(by 웡긔)

 





 



Vandalism


 

 

 도시에서는 테러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폭탄 공격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와의 합의 없이 강요된 美, 취향, 소비조장, 세뇌광고, 감시 등과 도시의 공백이 이 테러리스트들의 목표이다. 오히려 이들은 힘과 돈을 무기로 우리 주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테러리스트라고 항변한다.

 

 도시의 공공물 또는 사적 재산을 의도적으로 파괴, 변형시키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 발음은 ‘밴덜리즘’이다)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용어의 정의를 분석상 ①범죄, ②정치, ③예술로서의 반달리즘으로 나눈다. 범죄학에서는 이것을 반사회적 행위 상태(ASBO), 즉 상습적으로 경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범죄의 하나로 본다. 분명 유리창을 깨뜨리고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의 일은 어느 누구라도 테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벽에 낙서나 그래피티(graffiti)를 하는 것은 어떨까? 분명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손상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보기 좋다면?

 

여기서 눈여겨 보는 것은 예술로서의 반달리즘이지만, 사실상 문화와 정치가 구분이 모호한 시대라고 한다면, 이 셋은 항상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아트로서의 반달리즘도 분명한 (미시적인)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사방에 지겹게 붙어 있는 광고판이나 전단지, 스티커 등을 귀엽거나 기발한 각자의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변형시킨다면 어떨까. 내가 사는 동네와 이웃에 나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들은 마음대로 자신들의 상품을 현란하게 광고할 수 있는데,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눈과 마음이 즐거울 아무런 권한도 없는 걸까.

 

여기 몇 가지 움직임들이 있다. 이것들이 단지 철없는 사회부적응자들의 한심한 짓거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상징적 저항의 움직임인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공공물 변형

 

대표적인 반달리즘으로 표지판이나 간판 등의 공공물을 '재미 있게' 변형시킨다.

 

 

 

 

 

 

 

 

 

stencil graffiti

 

 Banksy는 스탠실 그래피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보통의 것과 달리 스탠실 기법을 이용한 그래피티다. 뱅크시는 주로 고향인 영국에서 활동을 하며, 공공물 훼손과 박물관에 무단으로 자신의 그림 걸기 등의 奇行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지만, 여기서는 별로 말이 없는 그의 이야기 한 토막을 살펴보고 짧게 넘어가자. 그는 brandalism을 선언한다.

 

Brandalism : “…그들은 당신 삶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한 방 날린 뒤 그렇게 사라진다. 그들은 높은 빌딩 위에서 감시하고 우리를 작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버스에 붙은 건방진 코멘트들은 우리자신을 하찮고 섹시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일은 항상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는 암시를 준다. 그들은 TV를 통해 당신의 애인이 별로라고 생각하게 하며,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기술들을 이용해서 집요하게 당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손댈 수조차 없다. …깽판을 부려라(screw that!). 공공장소의 어떤 광고라도 원하는 대로 해치우자. 그것을 떼던지 변형시키던지 마음대로 하라. …기업들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재배열하며 바꾸어 가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도 (광고를 망치는데 있어) 그들에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 (banksy: wall and piece, 2005)

 

‘brandalism’은 뱅크시가 특히 마구잡이 광고로 일상생활에 관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깽판을 추동하면서 만든 단어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으로는 ‘puma’라는 브랜드를 파마, 피나, 치마, 임마, 엄마, 쿠마, 튜나 등으로, bean pole을 ‘bean gone’ 등으로 바꾸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마저도 사실 또 다른 상품이 되기도 한다. 시장경제는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이용을 할 수 있는데, 특히 ‘커트 코베인’이나 ‘체 게바라’같은 인물들도 티셔츠, 목걸이, 핸드백, 뱃지 등으로 잘 팔리는 자본주의 아이콘이 되었다. 뱅크시는 말한다. “사람들은 혁명가처럼 입으면 실제로는 혁명가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듯 하다.”

 

 

 

 

 

(위 모든 사진은 뱅크시 작업; 마치 내가 찍은 것처럼 서명이 붙었지만 당연히 퍼온 것. 카피레프트쪽이니 퍼도 무방. http://www.banksy.co.uk/)

 

 

 

 

 

 

 

 

stickers

 

 보기 싫은 광고 스티커 위에 자신이 만든 예쁘고 기발한 스티커를 포개놓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 현대의 낙서는 반달리즘이 된다. 물론 이런 짓거리로 코끼리 다리만큼 탄탄한 사회구조가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상 생활영역에서 만큼은, 내가 생활하는 이 공간만큼은 저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작고 보이지 않는 테러는 이데올로기·마케팅 수법·문화가 블렌딩된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분명한 듯하다. 한 예로 미국의 CAUSS라는 단체는 아마도 자유주의적인 시민정신을 발휘해 거리의 모든 불법적인 광고(“street spam”)를 떼어버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달리 단순한 재미와 꾸미기 위해 스티커를 직접 만들어 도시의 빈 공간에 붙이는 사람들도 많다. 돈이 거의 들지 않는 ‘예쑬’을 배우고 싶다면 이곳을 참고하라 :

 

스티커 만들기 강좌 : www.showmesomeart.co.uk

CAUSS : http://www.causs.org/what_is_street_spam.html

 

 

 

 

 

 (처음꺼는 내가 직접 찍었음, london,2006)

 

 

 

 

 

billboard liberations

 

 광고판의 ‘해방’. 이건 보다 스케일이 큰 작업이다. 이 경우에는 행위가 갖는 정치적 함의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외

 

 

 

guerilla gardening

 

 : “우리는 도시의 방치된 공간에 면허나 허락 없이 씨와 묘목을 심습니다. 우리와 함께 이 도시를 반달라이징합시다!” http://publicspace.ca/gardeners.htm

 

 

 

 

 

 

LED 투척

 

: 공공영역을 풍부하게 만들 모든 자료와 정보, 컨텐트를 공유하는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의 실험적 연합체인 The Eyebeam Openlab의 가히 혁명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 ‘Graffiti Research Lab(GRL)’의 대표적인 발명품.

 

 아이빔 오픈랩은 현대 기술을 우리의 삶과 예술에 바로 응용, 연결시키는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민간단체다. GRL은 그들의 프로젝트로 하나로 거리예술을 위한 기술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기업들과 상업적인 문화로부터 개인들을 그것을 변경하고 자신의 환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원조해주는 것이다.”

 

 LED 투척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이미 블로그나 you tube와 같은 곳에서 알려진 바 있다. 이 것은 길 위의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make people think), 자신의 환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일명 발광다이오드라고도 하는 LED를 전지와 함께 엮어 말 그대로 ‘투척’하는 것으로 이것의 위력을 알고 싶다면 아래 주소의 동영상을 보라. 그리고 이곳의 깜짝 놀랄 발명품들을 직접 확인해주시길 :

 

LED Throwies : http://graffitiresearchlab.com/?page_id=17#video

아이빔 : http://research.eyebeam.org/

GRL : http://graffitiresearchlab.com/

 

 

 

 

 

 (2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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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그게 아니라(by 얌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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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깽이(by 얌얌군)

토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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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by 얌얌군)

 

 

이것도 재미없고 마음에 안드는 곳에 낼롬낼롬 붙이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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