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협동조합? 수익모델은?

[잡생각]

“재기발랄하고 기상천외한 강좌로 대중과 만난다” - ‘불안정한 연구 노동자들’, 인문학 협동조합 꾸린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비정규직 강사의 협동조합’? 황당했다. 대학에서 강의 자리를 얻지 못한 강사들이 일자리를 만들려고 설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짜 인문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비정규직 강사의 협동조합’? 황당했다. 대학에서 강의 자리를 얻지 못한 강사들이 일자리를 만들려고 설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짜 인문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문학 협동조합 준비위원회에서 총괄기획 책임을 맡고 있는 임태훈 성공회대 외래교수(34세ㆍ교양학부)는 “박사수료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 연구 노동자’들의 연대 거점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에 출발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출판ㆍ예술 노동자들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 대학이 아닌 다양한 곳에 있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만화, 영화,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마니아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시인,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 ‘총체적 인문학’을 지향한다.

 

인문학 협동조합 설립에 88명의 인문학 연구자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고, 20여명이 구체적인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7월 말에 인문학 협동조합 발기인 총회를 갖고, 8월에는 정식으로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크게 세 가지 주요 사업을 선정해 준비 중이다. 시민인문학과 도농인문학, 인문학 연구자 출판ㆍ기획 사업이다. 웹기반 인문학사전과 실버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30대 초중반 신진세대들이 주축

 

인문학 협동조합은 박사수료 이상의 ‘불안정한 연구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룬다. 대학원 박사과정생, 박사수료, 시간 강사 등이 주로 참여한다. 30대 초ㆍ중반의 신진세대들이다.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10여명의 전임교수는 서포터즈 역할을 맡았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강사법’은 이들이 인문학 협동조합을 준비하게 된 주요 배경 중에 하나다. 인문학 협동조합 설립 준비에 참여 중인 홍덕구 씨(31세ㆍ국문학)는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박사논문을 쓰면서 강의를 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는 유지가 됐다. ‘강사법’의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업강사를 중심으로 강의가 배치되면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힘들어 졌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강사로서의 진입장벽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시간 강사들의 위기의식에서 ‘기회’를 찾게 됐지만, 상아탑 인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현실에 비판적인 문제인식에서 비롯됐다. 임태훈 외래교수는 “‘학진 체제’에서 연구과제를 신청하고 연구비를 따내고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진짜 인문학’운동을 하려고 한다”며 “연구자 자신도 논문 글쓰기와 하고 싶은 연구가 분리되면서 많이들 지쳐있다. ‘학진 체제’에 얽매여 길들여지는 것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짜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 협동조합은 ‘생활’과 ‘삶’을 주목하고 있다. “총체적인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에 밀착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학진 체제’에서 하지 못한 게 무엇인가? 연구자들은 다양한 언어를 갖지 못했다. 논문 글쓰기에선 ‘나’는 빠져 있었다. ‘나’를 밀어 넣고 글을 쓸 수 있다면, 글쓰기 전략도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언어를 구사하고 싶다.”(임태훈) 인문학 협동조합은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를 활용할 계획이다. 팟캐스트 활동은 물론 웹진, 웹툰 등을 활용하고, 강의가 아니라 놀이로서의 인문학 등 다양한 방식과 포맷으로 대중에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홍덕구 씨는 “상아탑 인문학은 이미 그 자체가 구조화돼 있다”며 “새로운 발상과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동등한 관계를 이룬다. 학벌과 학력, 나이, 경력을 떠나 발상 대 발상, 지식과 지식이 직접 소통하는 관계를 추구한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동등하게 소통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은 수유 너머, 푸른역사 아카데미 등 인문학 연구공동체와 수운잡방 등 다양한 인문학 모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년 초에는 인문학 협동조합의 색깔과 기획력을 보여 줄 예정이다. “대학의 인문학, 백화점 인문학, 고전강독식의 인문학은 지양한다. 기존 인문학 강좌를 뛰어 넘어 재기발랄하고 기상천외한 인문학 강의를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임 외래교수는 ‘인문학 강좌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비엔날레’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 밖 인문학 운동의 가능성

 

이들 신진세대들의 뒤에는 10여명의 든든한 우군이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의 시민인문학팀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도농인문학팀에는 한만수 동국대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권보드래 고려대 교수와 권명아 동아대 교수, 김춘식ㆍ박광현 동국대 교수도 서포터즈를 자청하고 나섰다. 국문학쪽에 적을 둔 이들 역시 비교적 '젊은' 인문학자들이다.

 

한만수 동국대 교수는 “(인문학 협동조합은) 젊은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전임교수들은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이 뼈아프다.  “지금 대학에선 학문간 소통이 부족하다. 분과학문 내에서도 세부전공체제에서만 맨 돈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인데, 대중과 소통이 되겠나?” 그래서 한 교수도 인문학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중과 인문학은 어떻게 만나는 게 좋은 지부터 고민하고 있다. 대중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문학 교육내용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래야 인문학이 산다. 이런 대학 밖의 인문학 운동이 대학 안의 교육에도 자극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인문학 교육내용과 대중과의 소통까지 쇄신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서 이 협동조합 운동의 미래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쥔 소통과 상상력이 어떤 날개를 달지 궁금하다.

 

이번주 교수신문에 저런 기사가 실렸다. 몇 달 전에도 다른 신문에 비슷한 기사가 올랐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은 읽어보면 '별다른'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걸리는 것이 있다(황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조합의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나 쉽게 간과한다는 점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이든 뭐든 간에, 협동조합은 '수익모델'이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진짜 인문학'은 구성원들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좀 부족한 것 같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인문학 협동조합이 하려고 했던 실험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다른 분야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가령, 문화영역에서 활동가들이 방과후 학교나 참여 미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것이 얼마나 자체적인 재생산 동력을 지녔는지 사실 의문스럽다(그렇다고, 내가 이런 활동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 돈이 나올 구석은 이른바 '수요자'와 정부기관(혹은 기업)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요자라면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교양을 추구할 경우에나 가능하고, 아니면 각급 정부기관, 학교, NGO 등일 텐데, 내가 과문해서인지 아직까지 자체적으로 생존력을 갖춘 '인문학' 집단은 없는 것으로 안다. 성공적인 모델이라면, 생협이나 공동육아, 대안학교 정도로 보이는데, 이들의 모델은 분명한 조직대상과 수익구조가 그나마 존재한다. 어디에서 돈이 나오든 말이다. 어쨌든, 중산층의 교양에 빌붙지 않으려면 뭔가 다른 방식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인문학 협동조합이 단순한 생산자 조합에서 벗어나서 소비까지 포괄하는 완결된 형태를 구성하려면, 소비자가 누구인지 명확히하고 그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인문학' 협동조합이 '수익모델'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표명하면 '진짜 인문학'은 그것이 아카데믹한 연구를 뜻한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이 기본적으로 '교육' 모델이라면, 아마도 '연구'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기존의 아카데미 연구라는 관념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말이다. 기사에 의하면, "강의가 아니라 놀이로서의 인문학 등 다양한 방식과 포맷으로 대중에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그리고 "인문학 협동조합은 수유 너머, 푸른역사 아카데미 등 인문학 연구공동체와 수운잡방 등 다양한 인문학 모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일단, 이들이 언급하는 집단들은 연구자 집단이기는 하지만, 집단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곳은 아니고 주로 세미나와 대중 강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것도 좀 여유가 있는 청년과 중장년을 대상으로 말이다. 인문학 협동조합이 이러한 곳을 모델로 한다면, 그냥 양질의 강사를 공급하는 '파견업체'가 되겠다는 말인데...그것이  좋은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아카데믹한 연구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 지적하면, 연구자가 아카데믹한 논문을 생산하고 글을 쓰는 것과 강의(교육활동)하는 것을 동시에 해내려면, 기존의 정규직 교수의 조건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비제도권에서 이를 해내는 경우는 안타깝지만 거의 전무하다. 특히, 고용조건이 불안정한 경우, 교육과 연구는 시간적으로 상충한다. 여하튼 비제도권에서 교육과 연구는 분리 될 수 밖에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강의'는 '놀이'가 될 수 없다. 배움은 쉽지 않다. 쉬운 건 그냥 교양일 뿐이다. '진짜'로 배우려면, 오랜 기간 힘든 수련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사실, 이러한 아카데믹한 수련은 기존의 아카데미(즉 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의 아카데미 기능이 무너졌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학계 외부의 비제도권에서 연구자(저술가나 교육자)가 제대로 키워졌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들은 대부분 제도권 내에서 키워졌고 부분적으로 비제도권의 활동에서 보완적으로 양성되었을 뿐이다. 이들이 현실적으로 일반적인 교양 수준의 '강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하고 있다. 나는 이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이 비제도권 내에서 체계적으로 균형감 있게 키워졌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이른바 대학원 수준의 '밖센' 강의나 세미나가 이루어지는가? 그런 곳에서?

 

나아가, 이런 강의를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수강생들이 꾸준한 교양이라도 쌓았는가? 예외적으로, 일부는 가능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수강생들이 연구자가 되었는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강의는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가? 결국, 강의료를 지불할 할 수 있는 '대중'이나 정부기관이었다. 인문학 협동과정이 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지만...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그것은 이들이 예로 드는 수유+너머나 푸른역사아카데미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명목으로 이들이 하는 것은 그냥 고급 교양 과외인 것이다(다만, 이런 강의를 들으려면, 수강생들이 한가 해야 하는데...그런 계층도 중산층 이상이나 그 가족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앞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봐야 하는 문제이다). 솔직해 지자. 박사급 연구자들이 정부(학진이나 프로젝트), 지자체, 기업, 대학이 아니라 먹고 살만한 일은 결국 교양층의 주머니를 노리는 과외 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고생 과외나 입시 논술의 대상자가 바뀌 것 뿐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학원이나 프로젝트 회사를 차리는 게 낫지 않을까? 최근에 서울시에서 만든, 청년들을 위한 협동조합 -- 과외 협동조합처럼 말이다.

 

그냥 모여서 서로 위로받고 임파워하는 거야 좋은 일이다. 그게 어디인가? 그렇지만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고, 나아가 연구자로서 뭔가 성과를 내는 활동과는 직결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인문학 협동조합은 잘하면 먹고 사는 방안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인문학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먹고 사는 활동과 양질의 연구는 병행될 수 있을까? 이것은 더욱 의문스럽다. 먹고 사는 일은 만만한 게 아니다. 그것을 하려면 24시간을 소비해도 모지랄 지경이다. 그래도, 연구자가 품앗이를 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걸어보자. 그런데 품앗이를 하면 먹고 살기 힘들 것이다....왜냐하면, 품앗이 한 만큼 수익을 1/n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등등. 인문학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연구자인지 교육자(혹은 활동가)인지 양자 택일 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욕망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위치, 즉 정규직 교수를 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인문학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유기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그냥 많이 배운 활동가라고 해두자.

 

기사를 알려준 게***님께 감사...드리고...인문학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분들에게도 지지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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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15:14 2013/07/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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