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범철 선생이 참세상에 서평을 해주셨는데, 나보다 책을 잘 요약한 것 같네요.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부채를 권리로, 금융 논리를 새롭게 전유하기 (클릭하시면 기사로 이동합니다.)
올해 초에 알려드린 대로 제가 심심해서(?)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크리스티안 마라찌(지음), <금융자본주의의 폭력-부채위기를 넘어 공통으로The Violence of Financial Capitalism>, 갈무리, 2013. 링크를 클릭하시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책 소개는 여기를 클릭하시면 갈무리 출판사로 연결됩니다.
이 책은 원래는 짧은 포켓북이지만 저자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사람이고 요즘 각종 현안에 대하여 정보를 보충하기 위해 영어권에 소개된 마라찌의 인터뷰를 몇 가지 덧붙였습니다. 본문 보다는 인터뷰부터 보시는 게 더 쉽고 핵심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보도자료나 책 소개에는 '마케팅' 차원에서 약간 띄우기를 했지만, 이 글은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경제위기에 관한 지형과 원인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니, 일독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요점은 첫째, 전지구적 경제 금융 위기가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따라서 정치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둘째, 전지구적 금융 위기의 근원은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신자유주의 때문이고, 여기서 신자유주의는 생산 측면에서 포스트 포디즘(혹은 사회적 공장이나 생명자본화)과 금융 측면에서 글로벌화와 '약탈적' 형태에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 실물경제와 금융이 사실상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결합되고, 주택대출이나 카드문제, 연금처럼 금융이 일상적으로 삶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다만, 경제 용어(와 자율주의적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 주제넘긴 하지만 -- 각주를 제법 많이 달았습니다.
또한 자율주의에 비판적인 분들도 그냥 심심파적 삼아 보셔도 될 듯한데, 저자의 논의가 심히 거슬리겠지만요. 개인적으로 자율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들이 제안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변형과 오늘날의 주체성을 연결시키는 작업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라, 번역하면서 갸우뚱하면서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아울러, 번역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출판사에는 미안하고 역자로서 좀 그렇긴 하지만^^;;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한 듯하네요. 다만 본문은 직역 위주이고 인터뷰는 의역을 많이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장 늦게 시작한 책이 가장 빨리 나와버렸네요. 여기 진보넷에서 인연이 된 분들이 제게는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이 짧은 글에 관심이 있으시면, 혹은 관심이 없더라도, 필요하신 분은 3명까지 선착순 받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서울에서는 직접 전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번역본에 실린 글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책 소개에 대신해 <가디언>에 유럽의 경제 위기와 관련해서 마라찌가 기고한 글을 올려둡니다.
유럽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내핍과 억압은 유럽을 위기에서 구출할 수 없다. 우리는 자유시장 정치에 맞서 사회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유럽의 국채 위기는 회원국의 공공 채무로 촉발되었지만 2008년 위기 이후 취해진 은행 구제 조치 때문에 가속화되었다. 유럽의 국채 위기는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첫째, 통화는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자본주의는 시장만으로 관리될 수 없다. 셋째, 내핍 조치는 유럽을 위기에서 구제하기는커녕 사실상 위기를 악화시켜 결국에는 유로를 붕괴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위기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유럽의 정치적 재발명은 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에 맞서는 사회적 투쟁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통치가 오로지 시장과 그것의 자기조절 능력에 기초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관념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두머리 없이 유로에 의해 상상적으로 통합된 유럽, 바로 이러한 거대한 환상을 떠받치고 있다. 그런데 유로는 금융시장의 논리에 따라 역내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를 통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유럽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유일한 언어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표현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나아가 향후 몇 달 동안 전개될 사회적 갈등에 대처하고자 한다. 유럽에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핍 정책과 억압의 관리만 존재할 뿐이다.
유럽 은행들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사실상 쓸모가 없다. 그것은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을 조금 더 연명시켜줄 뿐이다. 이들 은행은 부실해진 유럽연합 주변부 국가의 국채에 노출되어 있다. 독일이 보여준 최근의 경제적 성공, 특히 유로존 외부를 비롯한 수출 증가는 악화 일로에 있는 유로의 위기를 도저히 되돌릴 수 없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의 정치는 경제적으로 튼튼한 국가와 산업적으로 취약한 국가의 분열을 조장했으며, 갈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십중팔구, 이번 위기의 최종적 결말은 독일의 유로 탈퇴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스나 스페인의 유로존 탈퇴로는 유럽연합의 중심 블록에서 발생한 분열, 즉 독일과 프랑스의 균열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은 아시아와 남미 시장에 집중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경제적 힘과 정치적 신용을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위기, 그리고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성장 속도 둔화는 유로화에 치명적 일격을 가할 것이며 나아가 유럽연합 기획을 고수하려는 정치적 야망을 분쇄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와 미국 연준이 사용하는 경제부흥책은 소진될 것이고, 중국은 부동산 거품의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성장률을 완화할 것이며, 인도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약한 유로의 이점과 강한 독일 경제에 기초한 유럽 경제의 부활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유로존 국가에 강제된 내핍 정책은 실행될 수 없을 것이다. 역내 국가들은 유럽 안정화계획에서 앞다투어 달아날 것이다. 헝가리에서 곧바로 나타났듯이, 그러한 계획은 회원국의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럽의 탈유럽화를 목도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가 금융을 점점 더 중요시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면, 바로 이 위기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어도 당장, 새로운 유럽 헌법을 작성한다고 해서 해결책은 도출되지 않는다. 방법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제헌 과정을 재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꿋꿋이 시행되고 있는 내핍 정책에 맞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는 임금 삭감에 저항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의 축소에 반대해야 한다. 금융자본이 전유하는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경제성장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은 이곳에 존재하는 인민과 차이를 특징으로 한다. 유럽의 구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이 파괴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