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간증이라...

[잡생각]

지난 주말 EM님과 자본론 읽기 모임에서 개최한 모임에 갔다 왔다. 

(자본론을 읽는 불효자녀들이여!)

장소는 홍대 공중캠프 였고,

참석자들은 15명 내외였던 것 같은데...

한 두번 봤던 분들도 있고 처음 뵌 분도 있고,

나름 친구들도 있었고...

여튼 외국에 체류 중인 H님의 한국 방문을 기념하여, 

나는 왜 자본을 읽는가?, 를 주제로 일종의 가벼운 '간증' 시간이었는데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장면은 H님의 조근조근하면서도 단호한 토크,

그리고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 독일 신학자의 고백이었다.

나머지는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이런저런 얘기들로 오후와 저녁을 채웠다.

한마디로 즐거웠다.

그건 그렇고.

 

나의 맑스, 혹은 자본론에 대한 '간증'도 해야겠지.

고백은...고백보다는 오히려 추억이랄까...

우선 성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왔을 때, 큰 형과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형이 사모았던 각종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형은 90년대 극초반 학번으로 시대의 세례를 받은

공돌이 중도좌파였는데,

아마도 형이 나에게 좌빨로 가는 길을 열여졌더나는 건,

아직 모를거다. 

여햐튼 2백 여권의 이론책과 '찌라시' 중에 주황색 비봉판 자본 1권 상, 하권도 있었고,

'아...저게 말로만 듣던, 자본론이구나...'

그 4년 전인가 서울에 잠시 왔던 나에게 전태일 평전을 사줬던 형인데,

고백컨대 아직도 그 책을 보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곧바로 자본론을 집었을리 만무하다. 

몇 해 후 군대를 갔다와서, 교양과목으로 정치경제학을 듣을 때

나와 자본론은 다시 만났다.

그저 한 과목의 교양으로 들었기에, 그냥 그때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뭔가 오기가 생겼던 모양이다.

어쩌면 정복욕이나 부채감이었을지 모르고, 

어쩌면 뭔가 신비에 싸여 있어서 금기시 되는 대상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필시 그런 거였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아 알바를 할 수도 없었고,

방안에 쳐박혀 하루에 10시간 씩 씨름하기 시작했고,

무슨 정신이었는지...이해도 되지 않았고...지금 기억으로는 생산양식의 '양식'

이 무슨 말인지 헤매였던 무식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맑스의 선집으로 독서는 이어졌던 것 같다. 

학부시절...하루에 한 번씩은 도서관 서가에 갔던 것 같다. 

딱히 책을 많이 봤다기 보다는 사람이 없는 서가 사이에 앉아서 이 책 저 책을 

탐색하는 기분을 느꼈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는데,

제법 오랜 시간을 맑스주의 서적 쪽에서 얼쩡 거렸더랬다.

생계 걱정 없이 호사하던 시절이었던가...

여하튼, 그 후로 '본격적으로' 자본론을 읽은 적은 없다.

조금씩 볼 때도 있고, 각종 주석서나 연구서로 만족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자본론은 뭔가 공부를 해야 겠다는 시점의 시발점이었고,

 

고향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 후로,

노동과정론이나 알튀세르와 영국문화연구를 거쳐 이른바 포스트구조주의자들,

맑스주의 역사가들을 지나왔지만...

그들의 출발점은 나에게 맑스의 자본론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운동이나 이론이라기보다

고향이자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논리적인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애착 같은 것이고.

어쩌면 H님의 말마따나 믿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다 정확히 나는 '의심하면서 믿는자'에 물과지만, 

 

감상적으로, 

그 시절 그 골방과 서가로 돌아가고 싶은 밤이다.

아무런 선생도 선배도 동료도 없었지만,

뭔가 열정적이었던 시절,

장정일의 시집에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일은 잡Job이 않되나요?

를 읽고 끄덕이던 시절.

맑스와 장정일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느꼈던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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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14:56 2013/02/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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