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 정치에 관한 10개의 테제 2

[사고들]

테제2: 정치에 고유한 것은 불일치들에의 그 자신의 참여에 의해 규정되는 주체의 실존이다. 정치는 행위의 역설적인 형식이다.

 

정치는 동등한 자들의 지배이며, 시민은 지배와 피지배에 [모두에] 참-여하는 자(者)라는 정식화는 반드시 엄밀하게 사고되어야 하는 하나의 역설을 절합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절합 속에서 예외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 권리들과 의무들의 상호성에 호소하는 의회주의 시스템들에 대한 의견(doxa)의 진부한 재현들은 논외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정식은 우리에게 행위의 행위자인 동시에 그 행위가 행사되는 [대상으로서] 사람인 존재를 알려준다4).이것은 통상적인 행위의 ‘원인-효과’ 모델을 반박한다. 그 모델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행위자는 대상에 효과를 미치며, 반면에, 그 대상은 그 효과를 수용하는 대상의 성질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

이 문제는 행위의 두 양식들 간 고전적 대립으로 되돌아간다고 해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즉, 한 편으로, 질료에 형식을 부여하는 제작 모델이 지배하는 포이에시스(poiesis)와, 다른 한편으로, 이 관계에서 정치에 헌신하는 인민의 ‘사이-존재’[l'inter-être]5)를 배제하는 프락시스(praxis)이다. 알려진 대로, 이러한 대립은 ― 이것은 삶(zen)과 좋은 삶(eu zen)의 대립으로 대체된다 ― 정치적 순수성이란 개념을 지탱한다. 예컨대, 한나 아렌트의 작업에서 프락시스의 질서는 아르케인(archein/지배)의 권력을 가진 동등한 사람들의 것이며, 그 권력은 새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권력으로 생각되었다. {인간의 조건}에서 그녀는 “행위 하는 것은 그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그리스어 아르케인(archein)은 ‘시작해서’, ‘이끌고’, 마침내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아르케인(archein)을 “자유의 원리”와 연결시킴으로써 이러한 사고에 결론을 내린다6). 아렌트가 행위에 적합한 양식과 영역 모두를 규정하자마자, 현기증 나는 지름길이 만들어 진다. 그것은 사람들이 ‘시작’, ‘지배’, ‘자유로운 존재’, 도시 국가에 거주하는 것 사이에 일련의 등식들을 주장하도록 허용한다({인간의 조건}에서 언급하듯이 ‘자유로운 것과 폴리스에 거주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등식들은 호메로스식 영웅들, 즉, 아르케(arche)의 권력에 참여하는 동등한 사람들의 공동체로부터 시민적 평등을 낳는 운동 속에서 그 등가물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이런 호메로스식 목가에 반대하는 첫 번째 증인은 호메로스 자신이다. 입이 거친 테르시테스*)에 반대하여 ― 그는 말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능란한 공적 화자였다 ―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군대는 한 명의 그리고 유일한 한 명의 지도자, 즉 아가메논을 가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아르케인(archein)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것. 또한 만약 앞장서서 걸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뒤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아르케인(archein)의 권력(즉, 지배하는 권력), 자유, 폴리스 사이에 [그려진] 윤곽선은 일직선이 아니라 분절되어 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스에서 지배계급이 가능한 세 계급을 특징짓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각 계급은 특수한 자격을 가진다. 아리스토이(aristoi/귀족)를 위한 ‘덕’, 올리고이(oligoi/과두)를 위한 ‘부’, 데모스(demos/민중)를 위한 ‘자유’. 이러한 구획에서, ‘자유’는 데모스의 역설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데모스에 관해 호메로스식 영웅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한 표현으로) 침묵을 지키고 굴복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자(者)들이라고 말해준다.

짧게 말해, 프락시스와 포이에시스의 대립은 결코 폴리테스(politès/시민)에 대한 역설적 규정을 해결하지 못한다. 아르케가 고려되는 한, 또 그 밖에 모든 것을 고려하면, 그것[arche]은 ‘영향을 받는’ 특수한 기질에 [영향을] 행사하는 행위에 상응하는 특수한 기질이 존재한다는 관습적인 논리를 가진다. 따라서 아르케의 논리는 한정된 우월(優越)을 전제하며, 이러한 우월은 동등하게 한정된 열등(劣等)에 대해 행사된다. 그곳에 정치적 주체(성)이 존재하기 위해서, 따라서 정치가 존재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러한 논리와의 단절이 존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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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준거는 “자유를 위한 인간의 능력”에 대한 아렌트의 요청에 있다. “그것은, 인간관계들의 망을 산출함으로써, 그가 이루어왔던 것의 저자와 행위자라기보다 차라리 희생자와 피해자로 보일 정도까지 그것[자유]의 생산자를 혼란에 빠트린다.”(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p. 233-234;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한나 아렌트(저), 이진우 외(역), {인간의 조건}, 한길사, 1996)

5) 여기서 언어-놀이는 ‘inter-est’가 상호-관계의 원리와 사회적 ‘이해관계’라는 관념 모두를 지시한다는 관념에 의거한다. 랑시에르는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의 구분에 의지한다(pp. 50-58).

6) Hannah Arendt, The Human Condition, p. 177.

*) 테르시테스는 트로이전쟁 당시 추악한 외모에 입이 험하고 호전적인 것으로 유명한 그리스 병사이다. 그리스군의 졸병 중에서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그림까지 제시하며 상세하게 묘사한 병사는 테르시테스가 유일하다. 호메로스는 그가 짧고 휘어진 다리를 가졌고 그의 어깨는 안으로 굽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머리는 머리끝의 한 점으로 모이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또 음란으로 가득 찬 매우 저속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 전쟁 중에도 그의 추악한 행위는 계속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아가멤논을 욕심쟁이라 하고 아킬레스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는 그의 말에 격노하여 그의 머리를 후려친 적도 있었다. 또 트로이를 돕기 위해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아마존족의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 하는 아킬레스에게 시체를 사랑한다고 조롱하다가 결국 아킬레스에게 맞아 죽었다. 그의 비참한 죽음을 두고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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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6 13:14 2007/12/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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