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나는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를 부를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으나, 그 노래의 가사는 서른이 되려면 먼 이들에게도, 서른을 훌쩍 넘어 그 나이가 언제였나 싶을정도로 가물가물한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다소 심란해지는 경향도 있다. 삶에서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회한과 상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대다수 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끔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별 것은 아니더라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그런 심리 또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한 영화모임에 가입했다.
사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 (이것도 핑계이지만 ㅠ.ㅠ) 가 별로 없는 나에게 있어서도 완전히 멀리할 수는 없는 기쁨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 거기서 오는 자극. 물론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으로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보면서 무미건조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되는것이 다소 '깨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영화에서 오는 기쁨과 자극이 일상에서의 자양분이 될수도 있고, 딱히 자양분이 되지 못하는 그저 담배나 마약과 비슷한 것이라고 해도, 그래도 훨씬 즐겁지 않은가. 그래서 영화모임에 가입했다. 혼자서 비디오방 가서 보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거기다 큰 스크린까지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술집이라니 좋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많은 영화보기 모임중에서도 그 모임에 가입한 이유는 사실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그 술집의 분위기가 아까 말한 김광석의 노래 '서른즈음에'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그 술집의 인터넷 까페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빨갱이를 허용해주는 분위기라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거의 사멸되었다가 간신히 재개한 그 영화모임에 그저께 나가보았는데, 정말로 서른즈음에의 노래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삶에 대한 눅진한 곰팡이같은 매너리즘과 김빠진 맥주같은 지루함이 있으면서 동시에 예민한 인간미도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빨갱이- 단대회장을 여럿 배출(?) 한 공간이라 하기도 했다.
지금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또는 직업적으로 현장에서 뛰는 것 외에는 일상에서는 좀 편하게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런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 나의 judgemental한 태도인것 같아서 주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과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분리되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상에서도 좀더 진지했으면 좋겠고 사람을 대할 때 성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냉소적이고 우울하기보다는 깨어있고 여러 관점에도 관심을 갖고 또 자기반성적인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보다 사람을 많이 접해왔고 연대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좀더 마음도 넓고 사려깊었으면 좋겠다. - 이게 나의 숨길 수 없는 운동하는 이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빨갱이들 냄새 나는 관계가 더 어렵다. 그래서 이 모임에 한번 참여하고 나서 나의 그런 기대가 이 사람들에게 투영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운동하려고 모인게 아닌데. 술마시고 영화보면서 사람냄새나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모임을 만든것 같은데. 글쎄.... 가벼운 마음으로 이따금 이 모임을 찾게 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아하고 친해질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겠지. 어쨌든 현실에서 발견하기 힘든 멋스러운 사람들도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허리띠 푸르고 털썩 주저앉는 기분으로 모든것을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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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저두요... (제목에 기댐...) + 저두 요짐 영화를 마이 보고 댕깁니다요...
리우스님이 쓰신 글 보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혁명을 들러리로 만든영화만은 아닌줄 알고나니 호기심이 생깁니다요..
헉 제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였나바여^^ 하튼 재밌었에요~(마리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