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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불타 죽어 장사도 지내지 않는 마당에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렬이라니

< 경향신문 12.17 시골편지 > 동방박사 세 사람

 

성탄절이면 가깝게 지내는 스님들이 축하 인사를 해온다. 내 생일도 아닌데, 생일 축하한다고 그런다. 미국 땅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는 혜원 스님은 내가 신학생 때, 그가 학승일 때 만났으니 길고도 질긴 인연이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 불가피한 인연으로 불가를 떠났지만, 내게는 여전히 청아하고 장난기 많은 스님이다. 여기 산골짝 집도 그 친구 덕택에 터를 잡아 기와를 얹을 수 있었다. 누구든 먼저 죽으면 상주가 되어주기로 한 절친 사이. 올해 친구가 보내온 성탄엽서엔 “사람이 불타 죽어 장사도 지내지 않는 마당에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렬이라니 가슴이 미어지네. 멀리서라도 용산을 잊지 않으며,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운문사에 지내며 승가대학에서 화엄경을 가르치는 진광 스님도 내겐 동방박사 같은 분이시다. 거르지 않고 쌀가마니와 과일을 챙겨 보내주시고, 뵈올 때마다 바닥이 훤한 지갑을 탈탈 터시면서 내 고단한 자취생활을 염려하신다. 스님은 참 가난하고 맑은 분이시다. 스무 살에 출가하여 줄곧 승풍이 엄한 운문사에 지내시면서 청빈과 순명을 다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산다.

또 다른 한분 동방박사는, 무등산 증심사의 일철 스님. 띠동갑 일철 스님과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둘이 의기투합하였다. 뻣뻣한 사내들 둘이 전화기를 붙잡고 살면서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그리워했었다. ‘무등산 풍경소리’라는 매달 열리는 환경음악회도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무서운 병은 스님과 나를 질투하여 딴세계로 갈라놓았다. 내가 죽으면 누구보다 먼저 마중 나와 반겨주실 일철 스님! 종교란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을 만드는 일이니만큼 다정하게 오고감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다툼보다 평화가, 미움보다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 찼으면 좋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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