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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1999)

 

 

 요즘 자꾸 이 시를 발견하게 됩니다. 교보빌딩에라도 걸려있는 걸까요? 아님 어디 광고에 실리기라도 한 것인지요.

 

 청소년시절, 늘 서점에 가면 으레 가장 가까운 곳에 시와 수필집들이 가득 있었고, 그 시집들과 시인들이 펴낸 수필집들을 펼쳐보며 읽다간 잠시 책을 덥고 사색에 잠기거나 때론 눈물을 훔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십대 초반 군대에 가서 말년이 될 즈음엔 후임에게 일을 모두 맡겨두고 도서실 한켠에서 시집을 읽다간 콜콜 낮잠을 자는 행복을 누리기도 했지요.

 

 정호승 시인을 참 좋아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출세작 '서울의 예수'란 시를 읽다보면 아직도 가슴 한켠을 후벼파는 것 같습니다. 그 시를 처음 만났던 것도 군대에서 인데 그때는 한참 박박 기고 있을 일,이병 때였죠. 소등과 동시에 취침이 이루어지고서는 몰래 몸에 숨겨둔 조그만 라디오를 꺼내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다간 자곤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은 아주 다양한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을 뿐더러 DJ가 직접 시를 낭송해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곤 한참 뒤에 그 시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그때의 반가움이란...

 

정호승 시인을 만난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도종환시인의 출판기념회 때였는데, 시인은 시집에서의 사진과는 달리 세월과 함께 많이 야위였더군요. 아무 것없이 연락처와 이름만이 담긴 명함을 건내받기는 했으나 그 뒤로 다시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워낙 잘 알려진 시인인데다가,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대단히 수줍어하고, 또 힘들어해서 많이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럴만도 하겠지요.

 

 위의 시를 읽다간 생각했습니다.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부던히도 어려운 일인 것을,  술한잔 사주지 않는 인생, 위로받을 수 없는 삶에 대한 막막함, 그것을 노래한다는 것, 그렇게 외로움과 고독에 찌들어 보지 않고서 어찌 그리 노래할 수 있을까요.

 

 근데, 전 대개의 시인들이 다들 시골 어디 초가삼간에서만 사는 줄 알았습니다만... 정호승 시인은 강남의 아주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서 좀 의아했습니다. 시인이 재산공개를 할 필요야 없겠습니다만... 내가 읽었던 시인과는 왠지 좀 어울리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고, 이내 관심도 덜 해졌습니다.

 

 그 래 도 . . .

 

 "인생은 시인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을지 몰라도, 독자들은 기꺼이 당신의 사색과 슬픔을 공감하고 시집하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시인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울의 예수'를 만날 수는 없겠죠. 또 옛적의 시들이 되풀이되고 짜집기되는 텍스트가 마냥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습니다만... 그래도 당신의 시를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참.. 오부리기타강좌는~~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모르겠습니다. 내년 봄이나 되어할른지..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 있다. 강변에 모닥불 피워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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