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은 기간이나 대상에 제한이 없는 일반적 성격의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한·미 FTA는 면책요건을 충족한 서비스 제공자에겐 가장 부담이 적은 의무만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이디스크는 “저작권법 104조 1항이 한·미 FTA, 한·EU FTA와 충돌해 무효다. 문화부가 무효인 저작권법에 근거해 과태료를 부과해선 안 된다”며 서울남부지법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양 당사국만 권리 의무의 주체”


하지만 남부지법은 하이디스크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부지법 허상진 판사는 “한·EU FTA, 한·미 FTA의 취지, 성격, 구조와 구체적인 문언, 분쟁해결절차 등에 비춰볼 때 이들 협정은 양 당사국 사이에 무역을 자유화하기 위한 협정으로서 양 당사국만 이들 협정에 따른 직접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 협정 어디에도 협정의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들이 곧바로 양 당사국의 개인에게 직접 적용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개인이 FTA 조항을 원용해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부지법의 결정은 한·EU FTA, 한·미 FTA 등 양자간 무역협정을 개인이나 법인에 직접 적용할 수는 없다는 첫 번째 판단이다. 이번 결정은 다자간 협정에 이어 FTA와 같은 양자간 협정도 한국 법원의 재판에 직접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2009년 대법원 판례과 같은 맥락이다.

대법원은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를 설정하는 국제협정으로 이와 관련된 법적 분쟁은 WTO 분쟁해결기구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WTO 회원국 정부의 반덤핑 부과처분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인이 직접 국내 법원에 회원국 정부를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WTO 반덤핑 협정을 재판 규범으로 인정하던 기존의 하급심 판례 등과 다른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개인이나 법인이 조약을 원용해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면 한·미 FTA, 한·EU FTA, WTO 협정 등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봐야 할까. 그렇진 않다. 헌법 6조 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약이 국내법 체계로 편입되는 문제와 조약의 직접효력 여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직접효력이란 조약의 국내 후속입법이 없더라도 개인이 해당 조약을 원용해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FTA와 같은 조약이 국내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를 국내법 체계로 편입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하다. 한 가지 방식은 조약에 대한 별도의 이행법이 없어도 국내법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일원주의’라고 한다. 한국 정부가 취하는 방식이다. 다른 방식인 ‘이원주의’는 조약의 국내법적 수용을 위해 이행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원주의라고 해서 조약이 직접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원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도 WTO 협정 등 조약의 직접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주간경향] “한미 FTA 개인·법인에 직접 적용 안 된다”, 2012. 10. 3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11/13 15:58 2012/11/13 15:58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stickly/trackback/3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