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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기고글.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0309.html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단식을 12일째 진행하고 있다(9월11일 현재).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된 이후, 지난 6년간 무급휴직자와 해고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 28명이 숨졌다. 그중 절반인 1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업률 늘어나도 자살률 줄어든 스웨덴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 연구팀은 실업률과 자살률의 관계를 검토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2009년 의학저널 <랜싯>에 게재했다. 유럽 26개국에서 실업률의 증가가 어떻게 자살률에 영향을 주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스웨덴을 비롯한 몇몇 북유럽 국가에서는 나머지 국가들과 달리 실업률과 자살률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웨덴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연구팀은 그 주된 이유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Active Labor Market Program)에 대한 국가의 투자에 주목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그로부터 30일 이내에 정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자를 위한 ‘개인별 활동 계획’을 작성하고 6주에 한 번씩 직업 트레이너를 만나서 구직활동 방향을 상담하도록 되어 있다. 실업자가 구직활동을 꾸준히 하는 동안, 지원센터 프로그램의 매니저는 기업과 협력하며 최근에 해고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기회를 찾아낸다. 직장을 잃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그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스페인처럼 실업이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나라에서 국가가 얼마만큼의 돈을 더 투자하면, 실업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에서, 1인당 100달러를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추가적으로 투자하면 실업률 1% 증가에 따른 자살률의 증가를 0.4% 낮출 수 있다고 보고한다.

물론 그 돈으로 해고노동자의 삶이 온전히 나아질 리는 없다. 더군다나 교육·의료·주거와 같은 삶에서 필수적인 재화가 보장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100달러의 추가적인 투자는 노동자의 삶에 매우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자는 한 사회가 해고노동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쌍용차에 국가는 무엇이었나

지난 6월, 2009년 해고된 뒤 6년째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제1065호 이슈추적 ‘공장으로 돌아가야 건강해진다’ 참조). 건강 연구자인 내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계속해서 발생한 자살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을까. 그러나 연구를 하면서 질문은 달라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그 과정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15명 중에서 6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32명(27.8%)이었으며, 정부의 고용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직장을 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8.7%)에 불과했다. 해고노동자를 위해 제공하는 정부의 구직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살리지 못한 채 여러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없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해고 결정은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했을 경우에 한해 이루어지도록 법은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결정에 핵심적 근거를 제공한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는 왜곡된 것이었다(민주노총 법률원·오준호 <노동자의 변호사들-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 참조). 감사보고서는 2007년 69억원이던 쌍용자동차의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불과 1년 뒤인 2008년에는 5177억원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부채비율이 1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해 쌍용자동차는 정리해고가 필요한 부실기업이 되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해고자 중 고용센터 통한 재취업자 8.7%뿐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리고 1997년 1만4963명이던 정리해고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거치며 1998년 12만3834명으로 10배가량 급격히 증가한 이후, 아직까지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은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 한 걸음 더 뒤로 가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이렇게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가 자신의 몸을 비우고 있다.

 

김승섭 고려대학교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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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SD, ‘설명없는 치료’의 딜레마에 빠지진 않았나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4; "누가 폭염으로 인해 숨지는가"

김승섭의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네 번째 이야기, 누가 폭염으로 인해 숨지는가 입니다.

http://scienceon.hani.co.kr/306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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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연구 메모.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94615.html

http://news.khan.co.kr/kh_news/art_print.html?artid=20150607215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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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를 보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77일간의 옥쇄투쟁이 아니었다. 그 싸움이 지나고, 한 명씩 해고된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숨이 막혔다. 대다수가 자살이었다. 누군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그 죽음의 순간이 떠올랐었고, 그렇게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소리내서 울지도 못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는 멀리 미국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2.

하버드 박사과정 학생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우는 온갖 방법론과 이론들이 그 싸움과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세계적인 연구들이 쌍용자동차 사태 앞에서는 무력했다.

 

3.

그건 내 실존과도 닿아있는 문제였다. 2011년 박사를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쌍차 파업 직후 수집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데이터를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논문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세상에 논문으로 이 이야기를 해야지.

 

4.

데이터를 분석하고 표를 만들고 그 내용 중 일부를 한국에 있는 다른 선생님께서 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지만, 난 그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어떻게 써야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로 한 문장씩 쓰는데,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 앞에서 내 문장이 그렇게 초라했다.

 

5.

2013년 고려대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시 그 논문을 시작하려 했다.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진행을 했지만, 한국에서 조교수로 일하며 다가오는 행정과 연구로 인해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 연구는 다른 2차 데이터를 분석하는 논문과 달리 내가 그 안에 더 들어가야 했는데, 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6.

정리해고 6년이 되어가는 2015년 6월 8일을 앞두고, 쌍차의 김득중 지부장님과 와락 대표 권지영씨를 만났다. 6년이 되어가는데, 그렇게 해서 28명이 죽었는데, 6주년을 앞두고 너무 조용하다고. 함께 해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전에 답했다. 예, 할께요.

 

7.

더 이상 그들이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이렇게 많이 아프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의뢰받은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 쌍차 해고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것. 그 구체적인 시간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더라도.

 

8.

시간이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연구 가설을 세우고, 설문지를 디자인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만나면서 연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조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게는 2가지 선택이 있었다. 연구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9.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들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10.

함께 노조를 만났던 박사과정 학생이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래 중요한 모든 일은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고. 모든 조건이 평안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할 수 있지 않다고. 그건, 연구대상의 삶이 불안정하기에 연구 조건도 불안정한 것 아닌가. 그걸 불평하는 것은 투정이 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11.

‘노조의 입장’에 서 있는 정치적인 연구 아니냐고 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럼, 정치적이지도 않은 이슈에 우리의 시간을 쏟아야 겠느냐고. 보건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전제 위에서 진행되는 것 아니냐고. 그 윤리적으로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문제를 전제로 시작하는 학문인데, 그 학문에서 중립을 주장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연구과정이 투명하고 방법론적으로 튼튼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가장 먼저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아닌가.

 

12.

연구 가설은 2개를 세웠다. 하나는 ‘해고노동자들’과 ‘무급으로 있다 2013년 복직된 노동자들’과 일반 전일제 임금근로자의 건강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복직의 효과를 말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단면 연구였다.

 

13.

또 다른 가설은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지난 6년을 검토하며, ‘미끄럼틀’처럼 추락하는 삶 속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실업급여, 고용을 위한 재교육 등의 시스템이 과연 어떻게 작동했는지. 좀 더 말하면, 사회복지를 포함한 공적 안전망이 과연 이들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시에 생명보험, 민간의료보험과 같은 사적 안전망이 어떻게 해고 이후에 해체되기 시작했는지를 통시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14.

며칠동안 밤낮없이 일해 만든 설문지를 들고서 파일럿 테스트를 위해 평택으로 갔다. 와락에서 해고 노동자 20명 앞에서 연구의 목적을 설명했다.

 

15.

파일럿 테스트를 하는 10명의 노동자들은, 특히 복직투쟁을 계속해온 몇몇 이들은 설문을 하는 내내 불편해했다. 설문을 다 마치고, 내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일반적인 질문으로는 자신들의 시간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고. 너무 얕다고.

 

16.

알고 있었다. 일반 근로자 집단과 건강상태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복지패널, 근로환경조사에 쓰인 설문을 그대로 사용해야만 했다. 물론 쌍차 해고자들에 맞추어 새로 넣은 설문이 있었지만, 그 역시 ‘학문적 합리성’을 따져야 했다.

 

17.

6년동안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 내게 건네는 설문에 대한 답답함을 들으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비교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설문지가 있어야 하는데. 표준화되면서 일반적인 합리성을 지니면서, 그들의 고통을 측정할 수 있는 구체성은 사상되는.

 

18.

점심을 먹고 나와 와락 근처에서 산책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양적인 연구 자체의 문제인가. 인간의 삶과 고통을 숫자로 정리해내려고 하는 것이 문제일까. 아니면, ‘표준화된 설문’과 ‘비교’하는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일까. 비교해서 보여줄 때, 사라지는 구체성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급하게 연구를 진행하면서 격게 되는 그러니까 쌍차 해고노동자들과 충분히 긴밀한 관계를 갖지 못해서 생겨난 문제였을까.

 

19.

오후에 쌍차 정문으로 찾아가, 퇴근하는 복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저 멀리, 이창근, 김정욱 활동가가 올라갔었던 굴뚝이 보였다. 그리고 도장공장이 보였다. 정말 용산참사처럼 될 수도 있었던,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곳을 들이쳤던 2009년이 떠올랐다.

 

20.

복직자 170여명과 해고자 130여명, 총 300명이 넘는 쌍차 근로자들이 설문지에 응답을 해주었다.

퇴근길에 연락을 받고 찾아와 설문에 응답하는 복직자들에게 설문이 끝나고 노동조합에서 마련한 도서상품권 5천원권을 드렸다. 연구윤리상 '설문에 참여한 대가'를 드려야 한다고. 약간의 민망함과 어색함이 감돌았었다.

 

21.

일요일에 설문응답이 끝나고, 지부장님이 해고자분들 앞에서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런 자리에 설 때마다, 형식적이고 그 자리에 어울려보이는 말보다는 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하고 싶었다.

 

22.

연구를 진행하는 내내, 제 나름대로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첫째는, 설문지를 만드는 내내, 잘 만들면 만들수록,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현실을 반영하려고 하면 할수록 지난 6년간의 상처를 후벼파는 일 같았습니다. 둘째는, 인터뷰를 하고 기록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제게, 과연 이런 방법론으로 지난 6년의 시간 중 얼마만큼을 담아낼 수 있을까.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가 과연 얼마만큼 현실에 가까운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연구자로서 연구가 무력하다는 생각에 시달릴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귀하게 답해주신 분들의 결과가 좀 더 여러분들의 싸움에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3.

일요일에 수집된 데이터를, 월요일/화요일에 코딩을 했다. 시간이 없으니 나눠서 코딩을 진행하자고 하는데 박사과정 효주가 제동을 걸었다.

교수님, 모든 코딩을 크로스 체크 해야해요.

그럴 시간이 없을거야. 일단 최대한 완성해야해요.

아니요. 크로스체크해야 해요. 최근 연구실에 일이 많아지면서 실수가 생기고 있어요.

아. 그래.

이 바쁜 와중에 학생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행이다.

 

24.

평택에서 메르스 환자가 확진되었다. 메르스는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아서, 모두들 언제 자신에게 다가올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주요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화가 나다가도, 이 사건이 덮게 될 그 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25.

코딩이 끝난 데이터를 서울과 원주에서 동시에 분석을 진행하면서, 하루종일 소방관 인터뷰를 하고, 새벽까지 쌍차 노동자 데이터 분석을 하고 ppt를 만드는 학생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먼 훗날에라도 내가 하는 연구들이 내 학생들의 앞길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첫 제자를 받으면서부터 했던 생각이다. 학생들을 선발하기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걸로 변명이 되지는 않을게다. 어쩔 수 없이 각자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있는 법. 선생으로서 연구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일게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학생들이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용기와 의미가 생겨날 수 있기를.

 

26.

춘천과 원주에서 다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중간중간 쌍차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점검했다. 원주 호텔에서 한팀, 서울 안암캠퍼스 연구실에서 한팀, 이렇게 2팀이 함께 데이터를 분석했다.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켜놓고 회의를 계속하며 지시하고 이야기했다.

 

27.

많이 힘들었을텐데, 학생들 모두가 하나라도 일을 더 하려고 했다. 고마웠다. 하루종일 운전을 하고 다음날 아침 원주 시내 카페에서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 잠을 12시경 미리 청했다. 같은 방을 쓰는 학생은 결국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28.

오후 6시부터 안암에서 쌍차 노동조합 분들을 대상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2시간 내로, 발표 자료를 모두 정리해야 했다. 커피를 몇 잔을 먹어도, 이틀 내내 운전한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이틀을 함께 한 학생들이 내 몸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좀 더 일정이 여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아니야. 원래 중요한 일들은 항상 이렇게 한꺼번에 벌어져. 원래 이런 거야.

 

29.

9월부터 공식적으로 대학원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한 학생이, 연구실 학생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놀랐다. 이렇게 일하는 팀이 있을 줄 몰랐어요. 그 짧은 일정안에 이런 수준의 발표를 준비해낼 줄 몰랐다는. 난 알고 있었다. 우리 연구실 학생들은 그 정도 역량이 된다.

 

30.

6시를 20분 정도 남겨놓고, 학생이 김밥을 사오겠다고 했다. 사오라고 했다. 실은 어차피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PPT를 1시간 째 고치고 있었다. 부분부분 내용은 나누어 만들었을지언정, 발표자료를 마무리하는 것은 발표자가 해야 한다.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까지, PPT는 계속 바뀌었다. 발표를 5분 남겨놓고, 연구 제목은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로 정했다. 2015 뒤에 붙은 두글자의 네 단어가 모두 듣기 좋았다.

 

31.

발표를 끝내고, 질의 응답 시간이 되었다. 이 연구는 잘하면 잘할수록 우울해지고 답답해지는 연구였다. 다만, 내 답답함과 막막함이 연구 대상자인 쌍차 해고자들이 겪는 먹먹함에 비할바가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버틸 뿐.

 

32.

주말 내내 기자들에게 연락이 왔다. 열심히 답했다.

 

33.

'한겨레 21'에 기사가 뜬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퍼지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은 '쌍용차 사태 6년 해고자들, 정규직보다 우울증 47배'였다.

 

34.

난 이 47이라는 숫자가 불편했다. 내 연구에서 나온 숫자이지만, 위험비가 3만 넘어도 숫자가 너무 커서 무엇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하고 데이터를 재검토하는 역학연구를 고려하면, 47이라는 숫자는 이 세상 숫자가 같지 않았다.

 

35.

그 숫자로 세상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 숫자로 누군가가 마음을 아파한다면 누구일까. 그 숫자는 이미 쌍용자동차 문제로 마음 아파하던 누군가가 아닌, '외부 사람'에게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 숫자는 '우리만의 리그'를 넘어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숫자인가.

 

36.

누군가는 해고자와 정규직을 비교하면 당연히 해고자가 훨씬 건강이 안 좋지 않냐고, 그 당연한 결과를 굳이 연구해봐야 아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37.

그러나 모두 잊고 있는 듯 하지만, 이 연구에서 해고자로 분류된 이들은 6년전에는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였다.

만약 쌍차 해고자들이 얼마만큼 건강이 심각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비교 집단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 집단을 골랐을 것이다. 실업자들과 비교해서도 이렇게 나쁘다고 말하는게 더 효과적일테니까.

하지만, 나는 쌍차 해고 노동자들이 짐작컨대 6년전에는 어떤 건강상태를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다시 예전처럼 정규직 노동자로 복귀한다면 어떤 건강상태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그래서, 내 연구의 비교집단은 '함께 해고되었지만 2013년 복귀한 쌍차 복귀자들'과 '3차 근로환경조사에 참여한 남성/상용직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이었다.

 

38.

연구 결과는 어마무시한 숫자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이런 숫자들에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다. 굴뚝에 올라가 그 외로운 싸움을 100일동안 해도 이제 사람들은 놀라지 않고, 하루에 자살로 40명이 넘는 사람이 계속 죽는다해도 놀라지 않고, 삼성과 현대 같은 세계적 기업이 있는 나라에서 기아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놀라지 않는다.

 

39.

기자회견날, 약속한 시간보다 2시간 먼저 쌍차 본사 정문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늦을까봐, 파주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 결과였다. 노조 사무실 옆에 있는 식당에서 백반을 먹었다.

 

40.

기자회견을 기다리다가, 사무국장님과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건물 옆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상추며 하는 것들이 작은 밭에 파릇파릇 보였다. 노조에서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해고 노동자 한분이 오시더니, 집으로 가져가라며 다 크지 않은 상추를 따기 시작했다.

 

41.

굴뚝에 올라갔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막막함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텃밭 앞에서 들었다.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굴뚝에 올라가서 싸움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에 대해 연구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싸움이 끝나고 나서, 가슴에 남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2.

'극단적인' 싸움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보도조차 되지 않는 사회환경 때문인 것이고, 그것은 노동운동의 힘이 그만큼 미약하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저열한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43.

기자회견을 하는 내내 맨 앞 줄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연구에 대한 설명을 하고, 현재 메르스에는 알려진 치료약이 없다고. 하지만 쌍차 해고자들에게는 치료약이 있다고, 그건 복직이라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분들이 그 말을 좋아하셨다.

 

44.

그런 말도 했다.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해고로 시작된 6년동안의 실업으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90%에 가까운 해고노동자들이 해고 이후에 구직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70%가 넘는 이들이 해고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해고자가 아닌 이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힘겨워한다고. 한국처럼 국가의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나라에서 60%가 넘는 이들이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있던 사적 안전망들, 생명보험이나 민간보험이니 하는 것들을 모두 해약했다고. 차별과 낙인으로 인해 직장을 구할 길이 막히고, 사적 안전망조차 모두 해체되어 이제는 절벽에 서 있는 노동자들이라고. 28명의 죽음은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45.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내내 어떤 딜레마가 있었다. 여기서 비극적이고 어려운 현실을 잘 이야기해서 많은 이들이 이 상황을 알았으면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자신들이 보낸 6년의 세월인 당사자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46.

월요일 기자회견이 끝나고, 아직까지 전화를 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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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3] 동성결혼 불인정은 성소수자 건강에 어떤 영향 끼치나

http://scienceon.hani.co.kr/2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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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라고요. 예를 들어, 노예해방 이전과 이후에 흑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물론 ‘해방’이 선언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삶이 바뀌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법적으로 노예가 아닌 것은 분명 큰 변화였고,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씨앗이 오랜시간을 거쳐 ‘혁명’에 버금갈 만한 변화를 꽃피운 것이구요.


2015년 6월 26일은 누군가에게는 ‘노예해방’만큼 중요하고 역사적인 날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법관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동성결혼(Same-Sex Marriage)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그 결과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1960년대까지 동성애자들이 정신질환을 지닌 환자로 취급받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동성애자들끼리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동성결혼 합헌 결정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제 미국에서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법원이 확인해준 셈이니까요.


사회적 환경이 사람들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사회역학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동성결혼 합헌’ 판정은 미국 성소수자들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라고요. 이 질문은 아직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한국사회에 더 유용하게 다음과 같이 바꿔볼 수 있습니다. ‘동성결혼 불인정’이라는 제도적 차별은 성소수자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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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2.] 로제토 이야기, 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http://scienceon.hani.co.kr/269902

 

 

우리는 왜 아프고 병이 들까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듯, 가족력과 흡연과 음주와 잘못된 영양 섭취가 모든 질환의 원인일까요? 심장병을 생각해 봅시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사망 원인 중 두번째로 흔한 질병이거든요.

 

 

심장병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들은 흔히 이야기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고,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라구요. 그래야 비만,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혈증을 줄일 수 있고, 심장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구요. 이는 현대 의학이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밝혀낸 위대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는 건강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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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1.] 태아기 경험이 평생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

http://scienceon.hani.co.kr/25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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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기 경험이 평생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

 

[1] 기아의 시련이 낳은 자연실험장


00hungerwinter.jpg » 네덜란드 '굶주림의 겨울: 1944-1945'. 출처/ https://youtu.be/poMfISFFrhE

 

건학/의학 연구에서 오래된 질문 중 하나는 “태아기의 경험이 사람의 일생에 얼마만큼,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입니다. 임신했을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태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람을 태아기 시절부터 청·장년기를 거쳐 노년기까지 수십 년 동안 추적 관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고, 또 무엇보다도 태아기 시절의 환경을 조작하는 실험이 윤리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작위로 임산부를 골라서 영양 결핍에 빠트리는 연구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해 1990년대 이후, 질병의 원인을 탐구하는 역학(Epidemiology) 연구들이 하나 둘 답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비극과 재해가 만들어낸 사건들이 임산부들을 대상으로 한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굶주림 시대 이후에 늘어난 청장년기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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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hungergambia.jpg » 식량이 넉넉한 건기와 그렇지 못한 우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수명에 관한 비교 연구. 출처/ Nature (1997) 그 대표적인 연구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Gambia)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감비아는 매년 건기과 우기를 겪습니다. 열대 사바나 기후에 속하는 감비아에서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우기(7월~10월)는 과거 한국의 보릿고개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입니다. 수확해놓은 곡식은 모두 소진되고, 어른들은 굶주린 채 다음 농작물 수확을 위해 계속 일해야하고 또 아이들은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인해 설사병과 말라리아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분한 자원이 있는 나라라면 식량을 비축하고 보존해서 우기에 대비하겠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 달러도 되지 않는 감비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것이지요. 몇몇 학자들이 이 점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1]

 

지난 50여 년 간 식량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건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우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비해 얼마나 더 오래 살아남는지 계산해 본 것이지요. 사춘기 시절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 이후로는 생존할 가능성이 건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월등히 높게 나타났습니다. 40세가 넘어가면 생존율이 2배가 넘게 차이가 났구요.[2] 우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40살에 살아 있을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이런 연구들이 감비아처럼 자연적 기후 변화에 대응할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또 다른 자연실험의 기회를 찾아냈지요. 임산부들에게 하루 한 끼조차 공급하지 않는 잔혹한 ‘실험’이 행해졌던 때는 바로 세계 2차대전입니다.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어 네덜란드 남부지역을 막 점령한 뒤의 이야기입니다. 독일군으로부터 라인강을 되찾기 위한 공수부대 투입작전이 실패하게 되자, 런던에 있던 네덜란드 임시정부는 독일군의 증강을 막고자 네덜란드 철도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요청합니다. 철도 파업으로 인해 작전 수행에 어려움을 겪게 된 독일 나치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네덜란드 서부지역을 둘러싸고 그 지역으로 향하는 모든 식량과 연료 배급을 통제하기 시작하구요.

 

리고 유달리 추웠던 그해 겨울, 사방이 고립되어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2만 명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전쟁 중에도 하루 평균 1800 킬로칼로리(Kcal)를 섭취하던 이들이, 역사에 ‘네덜란드 기근(Dutch Famine)으로 기록된 1944년 10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6개월 동안 하루 800 킬로칼로리 미만으로 살아가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짐작할 수 있듯이, 임산부들조차도 이러한 기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 역사적 비극이 인간의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3][4][5] 1945년 초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태아가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됩니다.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가 높아지고,[6] 조현증(정신분열병)에 걸릴 위험이 2.7배가 높아진다는,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유의하게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7] 발표된 것이지요.

 

 

몸에 새겨진 사회환경 - ‘절약형질 가설’

00dot.jpg

이러한 연구들은 우리가 질병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임신한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했던 경험이 우리의 건강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50년 전 내 의지와 무관하게 겪어야 했던 그 경험으로 인해 당뇨병에, 심장병에, 고혈압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1940년대 독일 나치군에 의해 포위되어 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아사한 레닌그라드 지역 주민들이나,[8]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마오쩌둥의 잘못된 개발정책으로 인해 4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은 대약진운동 시기에 태어난 중국인들[9]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에서도 나타나면서, 태아 시기의 환경을 성인기 질병의 원인으로 고려하는 관점들은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와 같은 연구들을 검증하고 있는 내용, 즉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 만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약 형질(Thrifty Phenotype) 가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이 분야에 학문적으로 큰 기여를 한 데이비드 바커(David Barker) 박사의 이름을 따 ‘바커 가설(Barker’s Hypothesi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10][11] 이 가설에 따르면, 태아기의 영양 결핍이 성인기 당뇨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것은 태아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임산부인 어머니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부족한 영양분만이 공급될 때 태아는 생명체로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한정된 영양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태아는 뇌와 같이 살아남는 데 필수적인 기관에 먼저 영양분을 사용하고, 당장 내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췌장과 같은 기관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영양분을 적게 사용합니다. 설사 그 선택이 먼 훗날 당뇨병을 유발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할지라도, 지금의 생존을 위해 먼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성인병을 감수하는 것입니다.[12]

 

런 연구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일수록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막 태어난 아이가 굶게 되는 것은 성인이 같은 기간 굶주리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테니까요.

 

우리가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노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하지요.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때로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사회가 인간의 몸에 남긴 그런 상처들을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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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이언스온,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연재 시작합니다.

내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제가 연재하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의 첫번째 글이 올라옵니다. 방금 오철우 기자님께서 이메일을 보내셨더라구요.

 

태아기 영양결핍과 성인기 건강에 대한 글로, 아프리카 국가 감비아(Gambia)의 보릿고개, 세계 2차대전의 네덜란드 기근(Dutch Famine), 그리고 1960년 중국의 대약진 운동을 엮는 글입니다.

 

이런 연재를 하게 된 것은 대중들에게 bio-medical paradigm을 넘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몸과 건강에 대해 말하고 싶고, 또 장기적으로는 이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낼 계획이어서인데요.

 

...

 

실은 그 모든 이유보다도 저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한국에 와서 교수로 일한지 3년차가 되어가는데, 저 스스로가 학문적으로 점점 얕아지는(shallow) 것을 얼마전 너무나 명확하게 느꼈습니다. 좋은 주제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을 1저자로 해서 지도하면서 논문을 썼는데, 그렇게 되면서 저는 점점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지도하고 또 comment 하는 일종의 supervisor로서의 역할만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스스로를 돌아보니, 제가 주저자인 논문은 계속 나오는데, 그와 무관하게 스스로는 학자로서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동안 가만히 앉아서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음미하며 읽어본 적이 없었고, 두꺼운 책 한권을 차분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허우대만 멀쩡한 '전문가'가 되는 게 너무 명확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에게 보다 열심히 논문과 책을, 타인의 글을 읽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과 닿아있는 분야의 역사적인 연구들을 정리하는 글들을 꾸준히 쓰기로 했습니다. 혼자서 읽게 되면, 강제성이 없어지고, 긴장감이 떨어지니까요.

 

올 한해, 최선을 다해 써볼 생각입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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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신문] 이 잔인한 수치 오류가 아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157

 

<이 잔인한 수치 오류가 아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유병률을 처음 확인했을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데이터 분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싶어 통계분석을 다시 확인했는데 결과는 그대로였다. 2009년 파업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5명(50.5%)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다.

 

같은 측정도구를 사용해 진행된 미국의 한 연구는 1990년 1차 걸프전에 참여한 군인들의 22%가, 이라크 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군인들의 4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쌍차 노동자들의 50.5%라는 수치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전쟁포로로 잡혔던 경험만큼 정리해고와 옥쇄파업에서 겪은 일들이 인간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그들은 그동안 어떤 시간을 견디어 내야 했던 걸까. 그들이 치러야 했던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그 잔인한 숫자가 오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이후 26명이 뇌출혈로, 심장마비로, 당뇨 합병증으로 차례대로 죽어갔다.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사람을 피하며 고립에 시달리던 이들이 삶을 스스로의 손으로 마감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해고된 ‘죽은 자’와 그의 아내가 있었고, 해고되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던 ‘산 자’도 있었다. 2009년 4월 발표된 2,646명의 정리해고 안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눴지만 결국 그 모두를 병들게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혹독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십수 년을 일한 회사에서 납득할 수 없는 해고통지서 한 장만으로 ‘죽은 자’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좌절과 얼마 전까지 함께 땀흘리며 일하던 동료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매도하게 만든 회사에 대한 배신에 가슴 아파하며, 경영부실로 인한 일방적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재취업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까지 감내하고 있다.

 

해고는 노동자를 병들게 한다. 수없이 많은 의학 논문들이 해고로 인한 생계곤란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건강을 악화시켜, 심장마비, 우울증, 자살행동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이는 사망률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특히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싸움은 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그 짐을 해고자와 그 가족이 온전히 떠안게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학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황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못할 때다. 자신의 몸에 난 생채기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환자는 그 상처가 곪아 감염이 진행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되기 십상이다. 작년 초 KT에서 8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되었다. 그런데 너무도 조용하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는 상황에 대해 분개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고용불안이 가장 극심한 나라에서 노동자 해고를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경제부총리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아프지만 그렇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TV로도 뉴스로도 그 고통을 만나지 못한다. 다만 각자 견디고 버티어 성공하라고 한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일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이들의 귓가에 확성기를 틀어놓고 말한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위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싸움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삶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그 고통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다. 이창근과 김정욱,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싸움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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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체계적 문헌고찰> 보건과 사회과학 36: 43-76. 이혜민, 박주영, 김승섭 (2014)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3512259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난 이 논문 이전까지 한번도 성소수자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없었고 또 리뷰(종설) 논문을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 논문을 지도하는 일은 주제와 형식, 모든 측면에서 내게도 도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5개월전, 학부 4학년인 이혜민 학생이 찾아와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기 위해 내 연구실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이 종설 논문을 함께 쓰자고 내가 제안했었다. 평생 이 주제를 공부할 계획이라면, 그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모든 논문들을 모아 지도를 그려놓자고, 그리고 채워야할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지점부터 연구를 시작하면 되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언제나 그렇듯 협박했었다. "아주 많이 힘들텐데, 따라올 수 있겠냐고."

 

열정은 가득하지만 학문적인 글쓰기 훈련은 (당연히) 안되어 있는 학부 4학년 학생과 매주 미팅을 하며, 논문을 진행했었다. 돌이켜보건대,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단계에서도 어려움들은 산적해 있었다. 검색어를 설정하고 검색엔진에서 쓰이는 문법을 정리하고, 논문을 선택해 나가는 차트를 그리고.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2천편의 논문에서 130여편의 논문을 추린 다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한 문장안에서도 같은 단어가 두 번 나와서는 안되고, 부족하거나 과한 단어를 사용하면 안되고, 근거가 없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그러면서도 문장은 앞 뒤 이야기와 이어져 있으면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고, 더 나아가 전체적인 논문 구조가 명확해야 하고. 결국 30페이지가 넘는 논문의 모든 문장이 바뀌고, 모든 그림이 바뀌면서 논문은 논문다워졌다.

 

논문이 마무리 될 무렵, 이혜민 학생에게 말했다. 그만큼의 학문적인 엄격함을 지켰기에, 마지막 문단은 정말로 네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고. 마음껏 말해보라고. 그 문장들도 결국에는 회의를 통해 수정되었지만. 논문을 쓰는 내내 그렇게 자주 혼나면서도 그만하고 싶다는 말 한번 꺼내지 않고 논문을 완성해낸, 1저자인 석사과정 이혜민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논문의 마지막 문단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고, 이게 뭐 새로운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한 논문만을 바라봤던 시간이 쌓였기에 학술논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난 이런게 멋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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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해 출판된 기존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연구들의 내용과 주제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필요한 연구들에 대해 제언하고자 했다. 과거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고 이를 치료하려는 인식이 지배적이던 시기가 있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비과학적인 편견이 만연해있다(김은경 & 권정혜, 2004).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제도적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나, 이와 관련한 건강 연구는 본 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적거나 부재한 상황이다. 성소수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where)’가 말해주듯이, 성소수자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며,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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