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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에 반대하는 독일 학생들의 데모


 
 헤센 주의 일년 등록금은 최대 1,000 유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2005년에 보수 세력이 등록금 징수 금지에 반대하는 소송을 걸어 승리를 했고, 기독민주당원인 헤센 주지사도 이에 참여하여, 헤센 주에 올해부터 등록금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헌법에 등록금 금지 조항이 있는 탓에, 등록금(Studiengebühren)이 아니라, 학업기여금(Studienbeiträge)이라는 기만적인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징수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등록금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고세훈 교수가 복지 한국의 가능성에 대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 흥미로운 분석이 있었다. 복지 수준이 높은 국가일 수록 시민들의 복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서 복지 정책이 추진되기가 더 쉬운 반면, 복지 수준이 낮은 국가일 수록 국민들이 복지에 대한 기대 수준 자체가 워낙 낮다 보니, 복지가 더 절실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복지 정책이 실현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이 내용을 무척 신선한 분석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이 당연한 사실을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복지가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네, 한국 경제 구조에선 서유럽 식의 복지는 시기상조네. 하는 주장들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 경제 수준에서 복지가 가능한지를 증명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다 보니, 너무나 당연한 정치의 논리를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책의 실현 가능성이라는 주제만을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놓쳤던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은 결코 정책적 합리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빼어나고 우수한 관료가 뛰어난 정책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독재를 긍정할 가능성이 다분한 위험한 사고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라는 점에서 비합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 어떤 관료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어떤 정책이 모든 이해관계를 넘어서 투명하게 작동할 수 있겠는가? 중우정치의 위험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사람의 관계에는 불투명성과 불합리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승인으로부터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나라 안팎 사정을 손금 보듯 꿰뚫어 보는 관료 도사들이 도맡아 하는 것이 아니고, 시민 모두가 마치 자신이 그 도사 자리에라도 앉은 양 생각하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자신의 필요를 근거로 해서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말고, 어디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의 근거를 찾을 수 있겠는가? 

 12월 14일 토요일에는 데모와는 도통 인연이 없어 보였던 인구 10 만의 소도시 다름슈타트를 포함해서 독일 곳곳에서 등록금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등록금 인하가 아니라 등록금에 반대하는 것이고, 교육이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낯 뜨거운 이상을 말짱한 정신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차이를 낳는 것이 2만불과 3만불이라는, 한국과 독일의 국민소득 차이는 아닐 것이다.



시내 광장에 사람들이 200명 정도 모여 있다. 현수막에는 등록금에 반대하는 부모들이라고 적혀 있다. 

 
 슬슬 움직이기 시작. 방송차는 산타 모자를 배포 중.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동네 아이들이 신나서 받으러 다녔다. 한국처럼 방송차가 선두에 서지 않고, 시위대와 섞여 느슨하게 움직인다. 노래는 역시 트는데, 민가나 저항음악을 트는 게 아니라, 적당히 신나는 음악을 튼다. 킬빌 OST 라던가..
           

경찰은 이런 느낌으로 선두와 후미에서 같이 움직인다. 손에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찍어대는 경찰들이 많은데, 신기하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데모대는 뛴다. 뛴다고 불평들은 하지만, 여기서도 뛸 때는 사실 다들 헤벌쭉 웃고 있다. 앞에서 못 찍어서 아쉽다. 
잠시 멈춰서 발언을 듣는 시간. 2008년 지방선거를 향해 분투 중인 Die Linke 사람들이 보인다. 하지만 발언자가 발언을 마무리하며 외친 구호는, "투표 하러 가지 말고 정부를 무너뜨리자, 코뮤니즘을 위해!!"였다. 아, 저렇게 노골적인 구호를 외칠 수 있다니...조금 감동 받았다.                  
                                                                                   퍼포먼스

                                                                       교양(Bildung)은 죽었다!

                                                                             왜 이러고 있냐면...   

                               반대편에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경찰하곤 사이가 안 좋다.

 
                                                   너희들의 정책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저항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야!
 

 

 


                               아나키스트 그룹, 우리는 더 큰 파이 조각이 아니라, 요리법을 바꾸기를 원한다! 

 

 


 광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찰이 길을 안 내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놀고 있다. 아까 퍼포먼스를 했던 친구와 일행이 북을 치면서 놀고 있다. 차에서도 마침 꽤 클럽에나 어울릴 법한 음악을 틀어 줘서 꽤 그루브한 분위기를 연출, 여기서 꽤 오래 머물렀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춤을 추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물론 마임은 아니고..
 
 
 오늘 집회를 나가 보고 확실해진게 있는데, 나한테는 아무래도 겨울 집회 징크스가 있나 보다. 왜, 겨울에 집회에 나가는 날은 평소보다 훨씬 추워지는 걸까? 오늘도 평소보다 5도는 더 낮을 것 같은 맹추위 속에서 달달 떨고 있다가, 마지막 사진을 찍은 곳에서 몸도 녹이고 장도 볼 겸 잠시 앞에 있는 마트에 들어 갔다 나오니, 대오가 사라지고 없었다(......) 해산하기 전에 인터내셔널가라도 부르지 않을까 싶어 끝까지 있으려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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