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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범위와 소비자 권리

저작권 범위와 소비자 권리 [한겨레]2000-09-29 01판 25면 1236자 컬럼,논단 미국영화협회(MPAA)가 프로그램의 저작권 수호를 위한 2번째 라운드에 들어갔다.1라운드가 해커들의 디브이디(DVD) 암호 해독용 프로그램의 파장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면, 이번에는 아예 일반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에 대한 기본권에 도전장을 던졌다. 내용인즉, 협회 쪽이 고화질텔레비전(HDTV)에 디지털프로그램 복제를 방지하는 기술을 탑재할 것을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앞으로 이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잡는다면, 복제방지 정보를 지닌 프로그램들을 일반 가정에서 녹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소비자단체들은 협회 쪽이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각 가정에서 누렸던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를 뺏으려 한다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은 대개 이용의 목적과 특성, 원저작물의 성격과 이용정도, 그리고 저작물의 이용이 시장 능력에 미치는 효과 등을 따져 저작권의 적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은 저작권에 맞서는 최소한의 공적 수단인 셈이다. 명문화한 저작권 조항은 자주 정당한 이용의 권리와 부닥치게 마련이다. 대개 저작권자들은 소비자들의 정당한 이용이 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에 해를 입힌다고 본다. 그래서 저작권자들에게는 설사 누군가의 저작물 이용이 비상업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에 따른 잠재적인 상품 시장에서의 손실을 입증하는 것이 저작권을 지키는 중요한 전술이 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은 법조문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를 보장하는 기술적 수단 속으로 기어든다. 하버드 법대 교수인 로렌스 레식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제 기술적 코드가 법이 된다. 일단 어떤 기술이 표준이 돼버리면 바꾸기가 어렵고 그 파장 또한 일반인들이 의식하기가 힘들어진다. 미국영화협회의 복제 방지용 장치는 바로 저작권 관련법이 수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기술적 코드의 형태로 그 기능을 갖춘 경우다. 소비자는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가 침해받는 사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작권의 새로운 기술적 코드가 정착할 가능성이 한결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저작권과 정당한 이용에 대한 권리를 배치되는 개념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공적 권리로서 소비자의 정당한 이용을 저작권의 틀 안에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곧 양자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저작권의 목표여야 하며, 이를 기술적 코드의 설계에 적절히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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