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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휴대전화로 저항의 방아쇠를 당겨라

[시사IN 69호: 메스 미디어] 2009년 01월 05일 (월) 11:48:27

휴대전화로 저항의 방아쇠를 당겨라

이광석

앞으로 시위 현장에서 드러날 휴대전화의 가공할 능력은 인터넷, 카메라, 휴대용 1인 미디어 등 디지털 매체의 사회적·정치적 구실과 관련해서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악법이 해를 넘겨 의회 쿠데타의 순간만 엿보고 있다. 상식이 무참해지고 모든 다양성이 우향우로 내달린다. 다치고 찢긴 개인적 허망함은 올올이 국민의 분노로 뭉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분노와 저항의 에너지가 급상승한다. 앞뒤 무시하는 권력의 ‘속도전’에 맞서, 맨 먼저 언론노조의 촛불시위가 아래로부터 군불을 지핀다. 국면으로 따지자면, 새로운 정치의 ‘티핑 포인트’(전환점)에 이르렀다.

지난해 여름을 달궜던 촛불시위 이래로 억압의 조건이 점점 국민의 목을 죌수록,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위 문화 또한 더 기발해지고 유쾌함을 더해간다. 인터넷, 카메라, 휴대용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전자 매체의 기민함과 평화 시위 문화가 결합되면서, 이제야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우선은 시위 문화 속에 점점 역할이 증대하는 휴대전화의 기술적 가능성에 잠깐 주목하자.

사례 하나. 2008년 12월26일 여의도, 언론노조 총파업 출정식 현장에서 기발한 휴대전화 시위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방송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이른바 ‘언론 5적’(김형오 국회의장,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 정병국 한나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 나경원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 중 일부에게, 당시 출정식에 참여했던 2000여 노조원이 문자 보내기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이다. 방식은 이랬다. 사회자가 이들의 전화번호를 알리면, 참석자는 일제히 “언론관계 악법을 철회하라”는 항의성 단체 문자를 날렸다. 인터넷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누리꾼 또한 ‘5적’의 휴대전화로 단체 문자를 날렸다고 한다. 항의와 분노의 목소리가, 해당 정치인의 휴대전화를 불나게 만든 하루였다.

‘언론 5적’에게 문자 보내기 퍼포먼스


사 례 둘. 휴대전화 컬러링 캠페인이란 말이 시민단체 사이에서 운동 방식으로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컬러링 캠페인이, 요새 휴대전화 도·감청을 합법화하려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운동에 도입되었다. 방식은 3대 통신사의 휴대전화 컬러링 상업 서비스를 이용해,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삽입하는 것이다. “이 전화는 국정원에 의해 도청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혹은 “휴대전화, 더 이상 도청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경고용 컬러링 인사말이다.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국가의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위협에 대한 경종으로 휴대전화의 컬러링 서비스가 역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 그 기발함이 번뜩인다. 

지난해 촛불집회 평가와 관련해 많은 지식인은 그 힘과 세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실패로 봤고 그 원인이 촛불을 현실 정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 부재라는 사실에 한탄했다. 그러나 촛불 이후의 정치적 무기력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 한가운데 펼쳐졌던 문화적 상상력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 점에서 촛불의 대안적 정치 세력화도 중요하나, 권력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정치를 깨뜨리는 시위와 표현 방법을 더욱 다각도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촛불에서 스티커·‘짤방’·플래카드·풍선·인터넷·카메라 등의 구실에 더해, 이제 그 기동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휴대전화가 새로운 촛불의 친구로 떠오르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시위 현장에서 드러날 휴대전화의 가공할 능력은, 미디어 운동가들과 일부 예술가가 논의하기 시작하는 디지털 매체의 사회적·정치적 구실과 관련해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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