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사IN] 저작권, 이제 시민 기본권으로 재정의하자

저작권, 이제 시민 기본권으로 재정의하자

한국 정부와 한나라당이 각종 미디어 관련 악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킨 반면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밀던 저작권법 개정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시사IN 84호] 2009년 04월 22일 (수) 10:32:07

이광석


한국에서 최근 저작권 강화란 명분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밀던 저작권법 개정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입법 이 무산됐다. 프랑스 국내외 관련 영화와 음반업계, 그리고 우익 집권당의 후원을 등에 업었던 사르코지에게 법안 처리 부결은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크게는 사르코지 정부와 미디어 재벌의 동거로 밀어붙였던 신자유주의 정책 질주에 작은 파열음을 냈다.

사르코지와 업계가 원했던 저작권법 개정 내용은, ‘불법’ 파일 교환에 대한 이용자 처벌과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연대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즉, 관련 업계가 인터넷의 불법 누리꾼을 색출해 담당 정부기관에 저작권 위반 사례를 알리면, 담당 기관은 위반자들에게 3회까지 저작 복제물 삭제 명령을 내리고, 차후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서비스 제공업자의 게시판을 폐쇄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것 아닌가? 그렇다. 한국 정부와 한나라당이 각종 미디어 관련 악법을 입안하려는 와중에, 야당과 시민의 혼을 빼놓은 상태에서 이달 초 슬며시 통과시킨 저작권법 개정안의 내용과 비슷하다. 하지만 프랑스는 입법에 밀렸고, 우리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크나큰 차이가 존재한다. 덧붙이면, 우리의 명령 집행자는 문화부 장관이 되시겠다.

사르코지 정부와 업계는 이번 저작권법 개정 무산으로 돈을 벌 기회를 잃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과 시민단체는 자본으로부터 시민의 정치 권리를 재차 확인했다고 반박한다. 생산 논리보다는 시민의 이용과 재창작의 권리를 강조하는 유럽식 전통이 엿보인다. 영국은 아직 업계 자율 규제란다. 프랑스보다 훨씬 상황이 낫다. 뉴질랜드는 비슷한 저작권법 수정 법안이 의회를 표류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저작권 개정 작업은 심사숙고해 신중하게 처리할 사안이며, 일방의 경제 논리나 재산권 논리만 앞세울 수 없는, 표현의 자유 등 시민 기본권과의 충돌 지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 지난해 11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터넷과 미디어산업의 재편>이라는 보고서를 내 언론의 눈길을 끈 적이 있다. 필자는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 기업 보고서를 간간이 읽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이른바 이윤의 생리에 밝은 우리 대재벌조차 누리꾼의 정보 공유와 자유 문화의 경향을 인정하는 데 있다.


UCC 제작에 붙인 ‘불법’ 딱지를 떼라

보 고서에서 삼성은, 누리꾼에 의한 공유 문화를 법적으로 옥죄기보다는 이를 인정하고 그 문화 현실에 조응하는 사업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보았다. 당연하게도, 정보 풍요의 시대에 ‘범용화한 정보는 모두 무료화할 가능성이 높고, 유료 서비스의 경우도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래서 장차 사업방식은 ‘이용자에게 저가·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기업으로서는 수입을 보전할 수 있는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발굴’로 가자고 말한다. 정치인들이 이 정도의 사업 마인드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 국회 안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들이미는 비상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삼성의 전망은 애플 사의 아이튠 등 저가로 콘텐츠를 내려받는, 미국식 유료 서비스 모델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합법적 유료 콘텐츠 시장의 개발은 관련 업계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다른 한편으로, 누리꾼의 아마추어 창작 활동은 국민의 기본권인 시민권으로 보호하고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비상업적 아마추어리즘에 기초한 기존 저작물의 퍼가기나 UCC 제작에 대해 이제 그 불법 딱지를 거둬야 한다. 더구나 저작권을 통해 ‘의사(擬似)’ 재산권을 점점 늘리는 것도 모자라, 누리꾼의 정치 발언까지 정부기관이 나서서 저작권 위반으로 겁박해서는 곤란하다. 요새 누리꾼이 왜 게시판 망명으로 요란한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