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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시대의 러다이트 운동

신경제시대의 러다이트 운동 [한겨레]2001-08-11 05판 10면 122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러다이트 운동'하면 19세기초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실직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의 무분별한 기계 파괴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일부 논자들은 그 역사적 의의를 진지하게 평가한다. 단순히 자동화 기계의 출현에 반대한 노동자들의 섣부른 폭력을 넘어서서 자본주의의 '혁신' 논리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로 파악한다. 가족을 해체해 여성과 아동을 공장에 내몰고 전통적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 관계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저항으로 보는 것이다.지난 1년여가 지나는 동안 다시 러다이트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스톡옵션의 가치를 믿고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다 길거리에 나앉은 실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급기야 사내 컴퓨터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밖에서 전산망에 칩입하는 해커보다 사내의 적들을 단속하기 바쁘다. 신경제의 정체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무차별 해고를 벌인 덕이다. 물론 때와 상황은 이전과 현격히 다르다. 이제 작업장의 전자화는 생산수단에 가하는 망치의 위력보다는 키보드 자판의 손놀림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신경제의 신뢰 상실은 노동자들에게 분노의 색다른 표현 방식을 가져왔다. 기업 홈페이지 삭제, 소비자 정보 뒤섞기, 바이러스 심기, 컴퓨터 장비와 기밀정보 손상 등 실정법상으로 이른바 '기업 범죄'에 속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출현하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 쫓겨나 기업의 월급명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름이 삭제되는 순간 프로그램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소프트웨어 시한폭탄'까지 등장할 정도로 방법이 첨단화했다. 기업 스스로도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 단속과 경계를 삼엄하게 벌이고 있다. 대량 해고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미리부터 내부 시스템 정비에 부산하다. 실직의 분노를 단순히 무법의 '깽판'으로만 본다면 진실과 거리가 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노동자들이 과잉 노동의 압박과 개인 삶과의 부조화로 인한 심리적 갈등, 갑작스런 직장 상실에 대한 공포감을 안고 산다고 진단한다. 또한 한 보안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부당 해고율이 증가 추세이며, 이것이 적대적 기업 문화를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노동자들의 현실 불안정성이 체계적으로 심화돼왔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신경제의 논리에 더 이상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거친 반응이 더욱더 러다이트 운동의 현대판 부활로 느껴진다. '후퇴란 상상할 수 없다'는 신경제 혁신의 신화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들린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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