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작가론1> 부산 똥다리 청년 구헌주, 스프레이로 변경을 혁革하다

 부산 똥다리 청년 구헌주, 스프레이로 변경을 혁革하다

By 이광석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그림 설명: 용산참사의 정부 해결 노력의 실패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스텐실 그라피티다. (사진: 구헌주, 작품명: <네이버 검색 - 용산참사>, 2009년, 부산대학교 대학로 거리)
****

 

 

 

이야기의 출발을 큐레이터 김준기로 잡고 시작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당시 그가 외장하드에 가득 담아 와 마치 봇짐장수처럼 흥이 나 내게 보여줬던 한 부산 청년의 매력적인 그라피티 작업들이 출발이다. 내가 김씨와 처음 대면하던 날, 그는 참여와 현장 예술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는 인상 깊은 글을 발표했다. 내가 보는 그는 ‘386세대’의 정치적 피를 꽤 많이 수혈받은 예술계 인사다. 정말 참여와 현장 예술의 지킴이같던 그가 갑자기 그의 외장하드에서 부산 ‘똥다리’ (진짜 지리적으로도 언더그라운드한) 청년 구헌주(일명 Kay2) 작가의 작품들을 모니터 앞으로 불러냈다. 그것도 그의 리얼리즘 원칙과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라피티라니!     
 

평소 도시미화 담당 구청직원들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초등학생 아들놈의 강박적인 그라피티 작업에 노심초사하던 차에, 김씨가 눈여겨보는 그라피티 청년 작가가 있다하니 눈과 귀가 크게 떠지고 솔깃했다. 그날 한순간에 난 구헌주의 팬이 됐다. 그의 작품들에서 난 뱅크시의 유쾌함과 (김씨와 필자가 그토록 연연하며 강박적으로 붙잡고 있는) 나지막히 깔린 리얼리즘 예술의 미학적 톤과 힘을 봤다. 둘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구헌주는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Banksy)를 스승처럼 여긴다. 아마도 그가 뱅크시를 좋아하는 이유란, 뱅크시의 유쾌하나 진중한 현실 참여적 작품 방식과 스타일일 것이다. 알려진대로 뱅크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영국 황실과 경찰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웃음과, 들쥐라는 상징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뱅크시는 자본에 포획당하는 예술을 봐왔기에 그라피티가 예술가가 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 봤다. 정규 예술 교육이나 돈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민주적 장르로 그는 그라피티를 꼽는다. 권력의 이미지로 가득한 거리 곳곳을 대중의 캔퍼스로 바꾸는 일은,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요 누구든 페인트나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어, ‘sgraffio’는 긁힘(scratch)이란 뜻이고 그라피티(graffiti)가 게서 왔으니, 결국 ‘벽낙서’란 애들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 예술 창작 방식임이 확실하다. 구헌주가 미대를 다니며 미술학원 강사로 연명하는 직업적 일상 속에서 그라피티라는 색다른 유쾌한 탈주를 감행한 이유와 맞닿아 있다.       

 

‘똥다리’ 청년의 스타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진: 구헌주, 작품명: <역도선수 장미란>, 2008년, 장소:광주비엔날레 때 광주 대인시장)
****

 

공권력으로부터 도리질 당하지 않으면 언제나 은밀하고 내밀하게 속삭이며 권력자를 놀려먹을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 통쾌한 말길이 벽낙서다. 그래서인지 익명의 그라피티 작업들은 대도시 거리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압구정 일대로 가면 마치 흑인들의 힙합 문화에서 ‘강성’(hardcore)의 언더그라운드적 취향이 탈색돼 국내에 수입된 듯한 느낌을 풍기는 벽낙서와 종종 마주친다. 예술인들이 칩거하는 문래동이나 홍대 주변으로 가면 좀 더 전시용으로 다듬어진 듯 하고 뭔가 작품으로 정리된 듯한 냄새를 풍기는 벽낙서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잘 정리된 도시 경관을 조롱하여 배설한 노상방뇨나 영역표시의 벽낙서들과 강제로 조우하며 불편해하곤 한다.
구헌주는 이에 비해 소탈하다. 서울도 아니요 부산 장전동역과 온천장역 고가 전철길이 지나는 온천천, 혹은 ‘똥다리’라 불리는 곳이 그의 주무대다. 외진 곳이다. 그의 작업은 동네 골목길 시멘트 담장, 지하철 교각, 실개천길, 굴다리, 방제벽, 셔터문, 건널목 길바닥, 지하철 역 표지판, 안전 막대, 하수구, 옥탑방 벽 등을 활용해 이뤄진다. 그라피티의 즉흥성과 스타일을 살리기 위한 역할로써 정말 ‘찌질한’ 곳들이 그의 캔버스가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그림 설명: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구헌주는, 이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처한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을 자신의 초상과 함께 그려낸다. (사진: 구헌주, 작품명: <청년의 초상>, 2006년, 부산대학교 지하철역 아래 온천천, 일명 똥다리)
****

 

 

구헌주의 그라피티 작업은 세련되지도 않다. 그러나, 젊은 청년의 작품들에는 유쾌하고 소박하며 따뜻함이 있다. 정치와 사회를 얘기할 때조차 그의 벽낙서에는 떠올릴 미소가 있다. 숨박꼭질하는 달동네 어린아이들, 하수구에 앉아 환하게 웃는 소녀, 입안에 가득히 바람을 넣어 비누방울을 허공으로 올리는 아이들, 구멍가게 셔터를 들어올리는 역도선수 장미란의 모습 에는 순진한 민초들의 모습이 녹아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의 4대강사업, 용산참사, 촛불시위를 기억하는 그만의 방식에서도 분노보다는 재기와 쾌활함이 압도한다. 종종 다른 그라피티를 통해 보이는 조루할 운명의 강렬한 반역의 메시지보다는 그에겐 섬세한 돌봄의 미학을 본다. 흔히들 그라피티의 장르와 기법은 마치 레슬링 선수가 상대의 달려드는 가속을 이용해 자신의 몸 위로 그 덩치를 던져 넘기듯, 번뜻하게 차려진 권력의 상징물에 끝마무리로 저항을 각인한다고 말한다. 구헌주의 특별한 리얼리즘은 레슬링의 전술이 아니다. 순박과 천진함의 인간적 본성에 소구하는 미학의 정공법을 택한다. 예를 들어, 그가 최근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공투쟁에 힘을 보태고자 했던 일을 보자. 역시나 자본과 권력에 대한 분노를 스프레이로 담아 표현하는 일보다 그는 희망 풍선을 들고 현장을 지키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아이들에게 그 풍선을 기쁘게 나눠주고 하늘로 날려보내고 왔다.      
 

그래서일까? 한 번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려는 스텐실 그라피티가 그에겐 많지 않다. 손쉽게 찍어낼 수 있는 스텐실의 복제 가능성과 그 강렬한 이미지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은 기본이다. 구헌주는 세밀하게 밀어넣는 붓질이 불가하고 혼색을 불허하는 스프레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공을 들인다. 안료의 즉시적 착색 능력을 보장하는 스프레이 분사의 특수성을 익히면서 단일의 작품을 공들여 만드는데 더 큰 재미를 찾는 듯 보인다. 네이버 검색 ‘용산참사’ 관련 작업들을 제외하고 그가 스텐실 그라피티 작업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오리지널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그의 소재가 되는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리라.
    

주류의 유혹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미지: GooHunJoo4.jpg,
(사진: 구헌주, 작품명: <군부독재 삭제명령>, 2007년, 장소: 부산 온천천)

********

 

 

작가 구헌주는 힙합이 좋아 열린 공간이 좋아 부산 똥다리 천변에서 우직하게 벽낙서를 천직으로 삼는다. 아직은 뱅씨의 국제적 명성에 비교하자면 그의 존재감은 비할 바가 아니다. 뱅크시야 이미 주류가 됐지만, 여전히 그라피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그렇듯 그는 그저 스프레이 캔에 방진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적의 환경이다.


뱅크시의 경우, 그의 작품집은 국내에 번역되어 ‘청소년 권장 우수 도서’로 금박이 찍혀 출간될 정도로 국제 스타다. 시각예술계에서 그는 이제 국제적으로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유럽과 미술의 화랑들이 그의 작품 시장성에 주목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주류가 됐다. 시드니 중심지 키노쿠니아와 같은 일본 서점에는 그라피티 아트가 한 서가 전체를 차지하고 그 중심에서 뱅크시의 새로운 도록이 산처럼 쌓인 채 호객한다. 그라피티 예술은 이제 주변과 비주류의 오명을 벗어던져 내버린 것처럼 보인다. 뱅크시의 작품들처럼 2천년대 중반경부터 길거리 그라피티 작품들이 경매와 갤러리로 대거 흡수되면서, 대체로 외국의 파릇파릇한 신진 작가들의 저항과 개입 예술 정신은 많이 사그러드는 추세다. 일명 ‘게릴라 아트’(Guerilla Art)라고 불리는 영역은, 초창기 길거리 정신은 사라지고 갤러리와 경매를 위해 존재하는 박제화된 언더그라운드 그라피티 예술들을 호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많은 이들은, 거친 치외 법권의 골목에서 스프레이를 통해 사회, 정치적 저항을 드러내기 보단, 일반 예술계 평단으로부터의 인정투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사실상 전통적 시장 예술 영역을 위해 존재하는 일에 길거리 감각을 안주삼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겐 구헌주의 작업들이 이와 같은 박제화된 그라피티 작업들과 다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는 아이들과 평범한 이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고 살맛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그는 인디 예술계에서 이미 잔뼈가 굵다. 부산에서 인디문화 네트워크 단체 ‘재미난 복수’와 이를 통해 만들어진 복합대안 문화공간 ‘아지트 AGIT’ 생활이 그의 사회적 예술 경험을 확장하는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앞으로도 죽 그가 노는 판이 소박하면서도 재미났으면 좋겠다. 이 곳에서 상상력과 다양성을 가로막는 기득권에 대해 콧방귀 뀌어가며 즐겁게 놀며 살며 ‘복수’의 펀치를 날리는 일을 도모하는 한, 그는 오랫동안 우직하게 아름다운 저항을 여기저기 새겨나갈 것이다. 부산의 똥다리 아래가 심심해지면 그도 서울의 대안적 전시 기획공간들이나 동네 놀이터에 나들이할 날도 있으리라.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