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권리, 게임으로 배워봐”

“권리, 게임으로 배워봐” [한겨레]2002-06-28 01판 13면 127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기술 발전이 힘센 사욕에 흔들리고, 정보 정책이 소수의 독단에 좌우되고, 변화하는 현실의 주체인 시민이 재갈물린 구경꾼으로 뒷전에 밀려나는 경우들은 디지털사회의 화려한 치장에 가려진 어두운 면면에 해당한다. 특히 새로운 정책·법률·기술 등의 형성 과정에 일반인의 접근과 이해를 어렵게 하고 참여 기회 자체를 전문가주의로 막는 행태가 줄곧 우리 현실을 지배해왔다.얼마전 미국의 온라인 인권 시민단체 두곳이 이런 독단의 디지털 논리에 반발해 인터넷 이용자가 즐기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파악하고 배우게끔 도와주는 인터넷 게임을 개발했다. 이들 단체는 게임이란 대중적 매체 형식을 이용해 전문과 추상에 갇힌 논의를 끌어내려 이를 공개하거나 여론을 모으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간파했다. 이른바 신세대용 정치 학습 프로그램을 고안한 셈이다. 작가·법학자·프로그래머·그래픽디자이너 등이 자원해 만든 이 게임의 이름은 ‘캐러벨라(Carabella) 1탄’이다. 캐러벨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록밴드의 음악을 얻기 위해 벌이는 여러 선택 과정이 전체 줄거리를 이룬다. 음반가게에서 구매할 것인지, 온라인 음악 서비스 가입 뒤 파일을 내려받을 것인지, 일대일(P2P) 파일교환을 할 것인지의 선택, 서비스 이용 때 익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얽혀 있다. 게임 마지막의 득점은 이용자가 프라이버시와 저작권의 ‘정당한 이용’을 얼마나 잘 알고 이해했나에 따라 달라진다. 음악 시장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선택은 감점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떻게 이용자 자신이 감시받고, 잠금 기술에 의해 이용이 제한되고, 정당한 이용이 위협받는가를 체험한다. 지루하지 않은 친절한 해설과 지침, 재미난 게임 화면은 이용자의 이해를 돕는 안내 구실을 한다. 시민단체들이 사회의 중요 안건을 대중화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의 형식을 활용한 것은 꽤 신선해 보인다. 이들은 게임의 오락 기능을 빌려 딱딱함을 버리고 즐기며 배우는 정치적 학습 도구의 개발 능력을 보여줬다. 지난 몇 년간 인터넷 활동가들이 정당의 선거 전술이나 악덕 기업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 위해 동화상 제작 프로그램인 플래시를 이용해 컴퓨터 화면보호기 등을 표현 매체로 이용했던 것도 비슷한 학습 효과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이 모두는 소수에 의해 전유되고 아래로 소통이 막힌 독점의 논의에 맞서 대중의 판단과 이해를 넓히는 디지털 매체 형식에서 실천적 구실을 찾으려는 한발 앞선 시도로 읽힌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