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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춥다

국회가 지난 18일 협상과 진통 끝에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통과시켰다. 그 며칠 전에는 학생식당 고급화로 밥값이 오를 것을 반대하여 대학가가 들썩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때 대학생들은 빛나는 존재였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존재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때가 있었고, 아무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군부의 총부리와 맞서 겁 없이 민주화 투쟁을 해낼 때 그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의 존재는 어떤가?

다수가 학자금을 빌려 대학을 다니는 빚쟁이가 되었고, 졸업 후에도 그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해져서 그것마저 탕감을 받게 된 복지의 대상, 세금을 축내는 수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총학생회는 등록금과 교내 식당의 밥값을 흥정해야 하는 기구가 되었다.

창대한 미래를 꿈꾸며 기고만장하던 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지라 한 목숨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에 나는 적응이 안 될 때가 많다. 일본의 한 대학 국제학부 교수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오는 지원자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세계를 걱정하고 사회적 감각을 가진 청년들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열정을 가진 학생을 만나기 힘들어졌다면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대학이 글로벌 100위 대학에 들어야 한다는 깃발을 높이 세울수록, 기업에 봉사하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나설수록, 캠퍼스가 화려하고 말쑥해질수록 대학생들은 점점 초라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뭔지 모르게 기가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일류대 진학에 성공한 지방 출신 학생은 대학에 입학해서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것 없는 존재임을 절감했다고 했다.

실제로 화려해진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는 학생보다 초라함을 느끼는 학생 수가 월등히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을 겸비한 0.1%의 ‘엄친아’들에게는 9000원의 점심 값이야 별 것이 아니겠지만 부모의 빠듯한 재력과 ‘동생의 희생’으로 일류대 진입에 성공한 경우라면 5000원도 무리한 가격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일찍부터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적나라한 ‘격차 사회’에 살고 있음을 수시로 인지시켜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소식에 놀란 가슴에 시장근본주의로 방향을 튼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 대학은 충격으로 인한 강박에서 벗어나 다시 근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야 한다. ‘0.1%의 명품인재’를 키우겠다는 말을 대학 경영인들이 스스럼없이 하고, 성공한 자만이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대학, 승자 독식을 당연시하는 대학이 진정 인재를 배출 할 수 있을까?

인재란 자고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적인 인재는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시시덕거리는 경험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학 경영자들이 좋아하는 ‘수월성’은 잡다한 평범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지 돈을 좇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시장이 아니다. 대학에 온기가 필요하다.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곧 봄은 올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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