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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확대로 부모 경제력 영향 커져
ㆍKDI 보고서 …“장학금 확충 등 노력을”


한국 사회의 ‘부(富)의 대물림’이 지금까지는 교육을 통해 상쇄돼 왔지만, 앞으로는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더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의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소득 격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일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교육이 경제력 대물림에 미치는 비중은 최고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은 부자(父子)간 월평균 임금의 대물림에 48.2%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임금이 높아지면 아들에 대한 교육투자를 늘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ㄱ씨의 월급이 ㄴ씨보다 100% 많다면 ㄱ씨 아들의 월급도 ㄴ씨의 아들보다 14.1%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교육이 월평균 소득의 대물림에 43.2%, 가구 연소득에 46.9%, 가구 순자산에 24.5%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계했다. 다만 KDI는 “분석에 활용한 표본 연령은 낮은 편이어서 부모의 영향이 아들의 경제력에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교육변수에 의한 부의 대물림 효과가 본격화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KDI는 그러면서 현재 30대 중·후반의 자녀와 그 부모 세대 간 부의 대물림 비율은 31%로 영국(34%), 미국(34%), 독일(37%)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세대는 대부분 사교육이 급증하기 전 평준화된 중·고교를 다녀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고 KDI는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사교육 심화로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면서 갈수록 부의 대물림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실제 올 1·4~3·4분기 도시가구의 월평균 학원비 지출액이 소득 상위 20%는 33만2511원으로 소득 하위 20%(4만2715원)에 비해 8배가량 높았다.

KDI 김희삼 부연구위원은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를 낳고 다시 자녀세대의 소득 격차로 이어져 부의 대물림이 교육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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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요즘 유행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개그맨 박성광의 대사다.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단박에 인기코너로 떠올랐다. 현실을 유쾌하게, 때론 신랄하게 풍자하는 데 대해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1등이 아니면 패자라는 생각은 오래된 습관처럼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1등 하면 휴대폰 바꿔줄게” “공부 못하면 사회에 나가 아무것도 못해!” 부모들은 이런 말을 달고 산다.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줄 알지만 현실은 무섭다. 아이들은 속으로 “1등만 좋아하는 아빠”라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초등학생도 밤늦게까지 과외하는 시대다. 부모는 습관적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곧바로 후회한다. 현실이 이러니 “공부 잘하는 것보다 사람 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케케묵은 ‘공자님 말씀’이다. 초등학생까지 무한 경쟁으로 몰아놓고 인간 교육을 들먹여봐야 통할 리 없다.

부모들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야말로 오래전부터 1등 제일주의의 현장이다.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기업이다. ‘세계 일류’란 말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지상목표처럼 여겨진다. 살벌한 경쟁으로 기업은 돈을 벌었지만 정작 취직하기는 어렵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최근 유가증권 상장사 546곳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올해 3·4분기까지 매출과 고용증감을 조사한 결과 매출은 늘었지만 고용은 감소했다고 밝혔다. 행여 경제가 좋아지면 괜찮은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88만원 세대의 미래는 앞으로도 암담할 게 뻔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은 현실을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구로구청의 환경미화원 8명 모집에 278명이 지원, 3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응시자 중엔 자격증 8개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엔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 시대엔 허언이 돼버렸다. 아파트 구멍가게 주인의 경쟁 상대는 다른 아파트 구멍가게가 아니라 대형 할인매장이고, 동네 세탁소의 경쟁 상대는 기업형 세탁업체다. 경쟁력이 다르니 싸워 이길 수 없다. 스포츠는 체급이 있고 핸디캡도 적용받지만 현실은 스포츠보다 냉혹하다. 양복점, 양장점, 구둣방이 대부분 사라진 것은 의류제조업체, 제화업체와 맞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체 내 경쟁에서 밀려나와 퇴직금을 투자해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자영업자들이 손이 닳도록 일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경쟁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실패한다. 박노자씨는 북유럽의 경우 비농업분야의 자영업자 비율이 전체 경제인구의 7~9%인데 한국은 24%라고 했다. 결국 누군가는 망하게 돼있다. 오후 9시면 대부분 상가 문을 닫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24시간 문을 여는 상점이 많은 것은 한국인이 타고난 일벌레여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다. 설상가상으로 경쟁 상대는 더 많아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전라도 농부들이 경상도 농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칠레나 인도 농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의 이런 구조에서는 2등도 패배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술기운을 빌려 내지르는 개그맨의 대사에 박수를 보낸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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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주식투자로 날린 것들

노동자가 주식투자로 날린 것들

[칼럼] 주식 ‘따블’을 향한 열광에 재미보는 자본

이종회  / 2009년12월23일 14시55분

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클린턴을 만나면서 그해 말까지 체결하기로 합의한 한미투자협정(BIT) 협상에서,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 담배인삼공사와 발전을 비롯한 에너지부문 그리고 통신부문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미국이 요구했던 기업들은 민영화의 길을 밟기 시작했고, 한국통신은 KT로 바뀌었다. 한미FTA 협상에서는 통신부문의 외국인의 주식취득 한도를 51%로 올릴 것을 요구했지만 너무 아까웠는지 SK와 49%로 제한되어 있는 KT는 제외하고 다 열어주었다.
 

 

 

노동자 주주의 이중성

 

한국통신이 민영화되면서 소위 유니버셜서비스라고 하는 통신부문의 공공성은 파괴되었고 한편으로는 가혹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그리하여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는 5백일이 넘는 투쟁을 했고 114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분사와 함께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 파업을 한다고 체제전복세력이라는 딱지까지 감수했던 노동조합이었지만 민영화와 구조조정에는 눈을 감았다. 이후 노동조합은 당선이 되면 조합원에게 우리사주를 나누어주겠다는 자가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고, 올해 결국은 민주노총마저 탈퇴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주가 동향을 살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요즘 KT에 구조조정이 들어간다고 하니 주식 값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주를 쥐고 있는 앞선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KT 노동자는 자기 목이 왔다갔다하는 구조조정에 찬성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반대를 하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노동자인가 아니면 주주자본주의에 편승한 자본가인가.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노동자들

 

3년 전 임단협을 거쳐 현대자동차 노동자에게도 우리사주가 배당이 되었고 올해 현대자동차 주가가 뛰면서 ‘따블’이 되었다고 좋아들 한다. 컴퓨터가 있어 투자환경이 좋은 사무실이 아니어도 휴대용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작업시간 틈틈이 주식투자를 하는 노동자가 있으니, 우리사주 뿐 아니라 이제 주식투자에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가릴 것도 없다. 지금은 모르지만 세계공황이 있기 직전에는 펀드 수가 인구수를 넘어섰다고 했으니 아마 주식에 덤비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물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은 예외이겠지만.

 

그런데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매각 즉 민영화 소식에 대우조선 주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의 반응은 어떠할까. 민영화에 뒤따르는 구조조정의 공식을 떠올리며 매각저지를 내걸고 투쟁하는 대우조선 노동자에 연대를 하겠는가 아니면 주가가 오를 것을 떠올리며 반겨하겠는가.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 중심이어서 문제니, 업종산별체계가 가지는 한계니 하는 민주노총의 현 단계에 대한 진단은 무수히 있어왔다. 게다가 노동자가 눈먼 돈을 따라 주주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 금융적 체제에 편입당한 노동자의 현실을 본다면, 요즘 이명박에게 매 맞고 한국노총에 우롱당하면서도 뻥파업조차 어려운 민주노총의 미래는 있는가 싶다. 주식투기하지말기 정신개조운동을 하기도 그렇고.
 

 

 

푼돈 모아 외국자본에게 몰아주기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벌어들인 돈이 89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이 대거 사들인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80%대였다고 하니, 지난 10일 기준으로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한 총액 286조에 달하는 뭉칫돈을 쥐고 있어 가능한 일이겠다. 더구나 그들이 가장 짭짤하게 재미를 본 종목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이고 보니 공황 이후 자본운동의 흐름을 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할진대 푼돈 몇 푼 들고 재미 좀 보겠다고 덤비는 노동자들에게 어리석다고 할 것인가 약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푼돈이라도 모아서 외국자본에게 몰아준 것 말고는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니, 공황이니, 그래서 사회주의니 하는 언사들은 사치일 뿐이다. 노동자들마저 땅이고 주식이고 투기광풍에 휩쓸려있는 그리고 투기를 부추기는, 미쳐버린 이 나라를 뒤집지 않고서야 어찌 제 자리를 찾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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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한 싸움

[목수정의 파리통신]파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한 싸움

 

 

 
세상의 모든 파업은 자신을 위한 싸움인 동시에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나 자신의 밥그릇을 위한 싸움은 결국 모두의 밥그릇과 건강한 영혼을 위한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에 가는 여인처럼, 온 도시가 매혹적인 치장 속에서, 축제전야의 흥분을 나누는 파리에서,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국립박물관들은 현재 파업 중이다. 2주전, 가장 먼저 파업을 시작한 퐁피두센터에 이어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 70여 개의 박물관, 국립극장들이 연이어 파업 대열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문화부문 공기관의 고용을 대폭 축소하고, 문화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며, 점진적으로 국가에 속해 있던 문화 기관들을 지자체에 이양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관광국 프랑스에서, 문 닫힌 루브르 박물관에 실망할 관광객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을 만도 한데, 이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우리의 파업은 관람객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맞이하기 위한 것”이기에, 닫힌 문 앞에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실망의 목소리가 없진 않으나, 파업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고 노조 측은 전한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는 박물관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입장을 알린다.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이어 에스페란토로 적힌 전단을 만들어, 닫힌 박물관 앞에서 파업의 이유를 설명하며 시민들과 대화한다. 때로는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고, 관람객들을 박물관에 입장시키기도 한다. 파업 중일 지라도,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던 관객들은 그들의 파업에 더 큰 지지와 이해를 보낸다.

프랑스 국립박물관들의 파업은 물론 초유의 사태는 아니다. 2001년, 루브르 박물관은 무려 23일간 파업을 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던 당국의 의도를 좌절시켰고, 2006년에도 국립박물관들은 파업을 통해, 축소되었던 고용을 되찾았던 바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의 미래 자체가 현정부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1959년, 앙드레 말로를 수장으로 한 문화부가 설립된 이래, 프랑스 문화부는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 문화의 민주화를 최대 목표로 삼아왔다. 가능한 모든 것을 상행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맹렬 신자유주의 집단 사르코지정부는, 반세기 동안, 좌우정부를 거치면서도 꿋꿋하게 지켜 온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를 파괴하는데 문화부의 목표를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박물관 직원 수를 줄이고, 재정지원을 축소하면, 박물관들은 입장료를 올릴 것이고, 전시품들의 규모와 질적 수준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하는 박물관들은, 전시의 초점을 오로지 상업적인 목표에 맞추게 되면서, 박물관에서 마저, 문화는 사라지고, 문화를 팔아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상행위만이 앙상하게 남는다. 관람객들은 전보다 형편없는 전시를 더 오랜 시간 줄을 서고, 비싼 돈을 지불하며 관람해야 한다. 결국, 문화부는 재정 지출을 당장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그 대가는 모든 사람이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예견된 불행을 막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은, 그들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인 파업을 신성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파리에 왔던 첫해이던 1999년 봄, 파리지하철 파업을 처음 겪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아침, 지하철역 입구의 철창은 내려져 있었다. 버스들도 멈춰 섰다. 내려진 철창을 발견한 사람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서 각자의 일터를 향해 걸었다. 어떤 이들은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고, 또 어떤 이들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들고 나왔다. 분노도 논란도 없었다. 마치 온 도시가 도보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또 다른 축제의 광경이 연출되었다. 일터가 너무 먼 사람들은? 안 간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어쩔 수 없는(?)는 휴식과 정지를 받아들인다.

파리지엥들이 지하철 파업을 맞이하는 모습은, 비가 오니 비를 맞는 것과 같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뿐, 아무도 하늘을 향해 항의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온 세상이 인정하는 권리인 파업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는 세상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일 뿐인 것이다.

세계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이 도시의 오늘은 예술을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줄 알고, 각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행위를 관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프랑스의 한 네티즌이 썼던 대로, 닫힌 박물관에 실망한 관광객들은 거기서 대신 프랑스 노동자들의 지치지 않는 사회의식과 투쟁정신을 볼 것이다. 어차피 문화는 멀리 내다보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볼 땐, 늘 밑지는 장사가 될 뿐이다. 파업도 그러하다. 100미터 앞도 보지 못하고, 코 앞의 현상만을 확대하여 비추는 언론, 그 얄팍한 언론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파업은 무한 질주를 방해하는 길가에 튕겨져 나온 모난 돌 일 뿐이다. 그러나 모난 돌들이 길가에 튀어나오면, 간혹 그 돌 뿌리에 누군가 걸려 넘어지더라도, 우린 그 돌을 원망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오랜 질주본능에 딴지를 거는 “모난 돌”들의 항변에 함께 귀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철도파업이 정부와 우파언론들이 그들에게 옭아맨, “불법”과 “폭력”이란 억지로 좌초하였다.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이를 민영화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를 갈취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명백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멈춰선 열차로 인해 면접시험을 보지 못한 수험생들의 사례 등만을 부각시킨, 보수언론의 치졸한 보도행태는 어김없이 반복되었고, 노조는 우리 사회의 무한질주를 방해하는 악마처럼 취급되었다. 기꺼이 모난 돌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바른 길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우린 대체 어디로 달려가는가.

<목수정|작가·프랑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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