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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ㆍ“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우리 땅에 뿌리는 씨앗마저 외국산이 범람하는 시대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너온 씨앗들이 우리 땅에서는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토종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했다는 심문희씨. 더디고 고된 작업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오늘도 총총히 전국의 농가를 돌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온 지구에 떼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벌·새·물고기·거북이 등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폐사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소·돼지·닭·오리 등 사상 최악의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대책 없는 대책뿐이다. 마치 인류 종말의 때가 다가온 듯 죽음과 죽임의 이 끝없는 행렬 앞에 털썩 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토종벌이 집단 폐사했다. 6~7월 강원도 지역에서 토종벌들이 죽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국적인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원인은 ‘토종벌 괴질’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의 확산 때문이다.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지구 전체 식물의 3분의 1이 벌의 도움으로 수분하기 때문에 인류는 식량 고갈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치밀하게 서서히 진행된 위기가 있다. 바로 토종씨앗들이 사라진 것이다. 토종은 본토종 혹은 본토박이와 같은 말이다. 토종이 살아있는 종의 다양성과, 토종이 없는 종의 다양성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아니, 차이 정도가 아니라 다양성의 근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옛말에 농부아사(農夫餓死) 침궐종자(枕厥種子), 즉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은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상품’이 되었다. 그것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토종씨앗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1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토종씨앗사업단장 심문희씨(43)를 만났다. 장수마을로 알려진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 ‘당몰샘’이라는 감로영천(甘露靈泉)의 약수로도 유명한 마을이다.

심문희 단장은 “급하게 서울 다녀오느라 집이 엉망이네요. 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얼마 전 유전자의 특정 형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옥수수 등 일부 유전자변형농작물(GMO)이 유출돼 국내 토종종자의 채종포 인근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이 공식 확인되는 바람에 서울에 다녀왔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났습니다. 옥수수·유채·면화 등 수입 GMO가 전국 26곳에서 유출돼 11곳에서 싹이 터 자라고, 나머지 15곳에서 알곡 상태로 발견된 사실을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공식 확인했지요. 이는 정부기관에 의해 최초로 공식 확인된 겁니다. 농업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이러다간 농민들이 GMO를 토종종자인 줄 알고 재배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 번 유출되기 시작하면 농업과 생태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데, 아직 GMO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은 게 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여주 남한강변의 홍일선 시인이 일찍이 펴낸 시집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미 여러 나라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자기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은행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많이 늦었다. “6년 전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여왔지요. 특히 여성농민에게 씨앗은 단순히 먹거리의 원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수천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문화 및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 있는 민족의 소중한 자원이지요. 식량주권을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지요. 토종씨앗이 GMO의 대안으로 꼽히지만 농촌진흥청의 종자은행에만 꼭꼭 숨어 있잖아요. 그래서 여성농민회가 나서 토종종자를 복원하고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보자며 시작했지요.”

그녀의 말처럼 농민들이 시장에서 종자를 사다가 재배하면서부터 거름·비료·농약·농기계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업을 위한 미생물제제까지 구입해 농사를 짓게 됐다. 농부가 씨앗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결국 돈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 농업이 세계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 녹색혁명형 농업으로 재편된 결과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속에서 농업의 미래는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위협받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문희 단장은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해보니 쉽지 않았지요.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도 잘 안 잡혔고 일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실 토종씨앗은 농약이나 비료를 치는 육성품종에 비해 수확량이 적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이미 농업은 대규모·상업화에 길들여진 바람에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우리 텃밭’이었다. “어차피 대규모 농사를 못 지을 바엔 텃밭에라도 심어보자는 것이었죠. 농사짓는 사람도, 그리고 먹는 사람도 행복한 먹거리를 그야말로 전통방법으로 생산해보자는 것이었죠.”

전여농은 국제적인 종다양성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에 주목했다. 여성농민이 씨앗을 갈무리하고 보관하며 재파종하는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와 맞물려 ‘종자주권을 지키는 활동이야말로 여성농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식량주권 운동’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2005년 통일텃밭 운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뒤로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 정리, 외국의 활동사례 연구, 우리 씨앗에 대한 조사 등이 진행됐다. 2008년에는 환경운동연합과 ‘만원의 행복’을 통해 마련한 ‘토종씨앗 시민기금’으로 토종옥수수를 심고 수확해서 보내는 국민적인 활동으로 한 걸음 발전했다. 2009년에는 전국적으로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어 토종씨앗을 심고 증식하고 체험하는 장으로 운영했으며, 2010년에는 ‘1여성농민 1토종씨앗 지키기’, 토종씨앗 실태조사 등과 ‘토종씨앗 축제’도 열었다.


“토종씨앗을 종자은행에만 보관하는 게 아니라, 기후에 적응시키면서 채종을 해야 합니다. 토종종자연구회 회장인 안완식 박사께서 분양해준 600여종의 씨앗, 그 지역에서 예전부터 심었던 씨앗, 그동안 활동으로 늘린 씨앗 등 다양한 종자들을 전국의 여성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토종농사의 작황이 아주 좋지 않았지요. 그런데다 동물들의 습격도 많이 받았고요. 맛있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새와 고라니, 멧돼지들이 토종씨앗을 파헤쳤지요. 어떤 농가는 토종콩 6알을 분양받아 심었는데 11알을 수확했다고 해요. 그래도 그 귀한 씨앗을 잃어버릴까봐 마치 금덩이라도 숨기듯 안경집 안에 고이 모셔놓았답니다.”

지난해 토종씨앗 실태조사를 하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토종씨앗이 거의 다 사라진 줄 알았지요. 그런데 7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토종씨앗을 무슨 보물창고에서 꺼내듯 귀하게 가져오시는 거예요. ‘언제부터 심으셨느냐’고 물으니까 ‘내가 시집오기 전 어머니 때부터 심었으니 한 팔십년?’ 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요. 마을 곳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모두 진정한 스승이자 어머니인 동시에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구원자들이었지요.”

언제나 ‘농민의 마음’은 ‘친정엄마의 마음’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이 심금을 울렸다. ‘1여성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어느새 ‘우리 텃밭’에서 ‘언니네 텃밭(http://we-tutbat.org)’으로 이름을 바꾸며 변화·발전했으며, 우리 종자와 전통농업으로 생명을 지키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다음카페)도 활성화하고 있다.

“‘언니네 텃밭’ 제철꾸러미를 아시나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지요. 소비자 회원이 월 10만원의 회비로 생산자를 지원하고, 생산자는 월 4회 제철 농산물로 이루어진 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드리지요. 토종씨앗을 지키는 동시에 제철 농산물을 중심으로 전통가공식품이 함께 교류됩니다.”

20년째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세 딸을 키우는 심 단장은 지난 4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여성농민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남편 김봉용씨(45)는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니, 전남대 운동권 선후배이자 동지로 만난 뒤부터 줄곧 부창부수였다. 거기에다 첫딸 하린양(19) 또한 스스로 한국농대에 지원해 합격했으니 문득 우리 농업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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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

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

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프레시안>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프레시안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

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

"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

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

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

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

"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

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

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

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

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

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

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

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 문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 질 게다.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

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

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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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정규직, &quot;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quot;

조선산업 정규직, "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

비정규노동센터 포럼,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더 큰 행위 동기"

김용욱 기자 2010.05.23 07:29

 

2008년까지 세계적으로 장기호황을 누렸던 조선 산업은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08년 3/4분기 이후 발생한 위기를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도 그 영향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조선산업 위기의 가장 큰 피해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런 위기의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 상황을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20일 오후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란 주제로 10회 비정규노동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 박종식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2009년 금속노조 조선분과 소속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의식실태를 분석을 발표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이유로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에 46.6%가 응답했다. ‘물량증감에 따른 인원 조정’엔 40%, ‘원청노조의 힘 약화를 위해’에는 8.5%가 응답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느냐'엔 85.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상대적 저임금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하청 노동자간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의 원인’을 두고는 34.4%가 ‘원하청 노동자간의 숙련 및 경력에 따른 격차’에, 29.7%가 ‘노동조합의 효과에 따른 격차’에, 28.4%가 ‘원청기업의 불공정거래 때문에 발생한 격차’에 대답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은 “임금격차의 원인을 개인적인 능력이나 노조 효과라고 응답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고임금을 정당화 하고 차별에 대한 구조적 인식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봤다. 사용자들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것을 두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은 고용안정을 위한 방패막이로 보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한 경영자의 수량적 유연성 전략에 제동을 걸 의지는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또 ‘수주물량 증감에 따른 인력조정을 위해 사내하청 활용이 필요하다’라는 문항엔 55.0%가 응답했다. ‘회사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엔 원청 정규직 노동자 54.5%가 응답했다. ‘현재의 정규직 인원수만 유지된다면 사내하청 규모가 확대 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에 45.8%가, ‘핵심업무가 아닌 업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엔 46%가 응답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두고는 추상적인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당위성엔 68.5%가 응답을 보여 높게 나타났지만 구체적인 행동의식은 낮게 나타났다. 적극적인 연대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사내하청의 임금 및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 할 수 있다’라는 문항엔 38.1%가 응답했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위해 파업할 수 있다’에는 34.9%가, ‘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위해 나의 임금인상분을 양보할 수 있다’는 문항엔 32.8%가 응답했다.

 

박 연구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 해결에 대해 연대의식은 있으나 직접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약하면서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 연대를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고, 외부적인 시선-정규직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에 의한 비자발적인 연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지회(노조) 직가입에 대해선 50.7%가 찬성을, 49.3%가 반대를 해 금속노조가 사내하청 조직화를 위해 추진하는 ‘1사 1조직’ 방침에 대해 찬반이 팽팽하게 나타났다.

 

1사 1조직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원하청 노동자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에 36.7%가 응답했다. 23.8%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조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 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장을 자주 옮기기 때문’ 13.3%, ‘원청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 11.9%, ‘원하청노동자 근로조건이 다르기 때문’ 10.1%, ‘교섭비용 증대, 비효율적이기 때문’ 3.1% 순으로 나왔다.

 

이런 응답을 두고 박 연구위원은 “1사 1조직의 반대이유로 원하청 노동자의 이혜관계가 다르다는 응답률이 높은 이유는 고용의 외부화를 매개로 한 경영자의 노동자 분할지배 전략에 휩쓸려 결국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보다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자 하는 유인이 더 큰 행위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봤다.

 

박 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실리추구와 추상적인 차원의 연대성에 대한 인식은 단위사업장 내에서의 사내하청 조직화를 대단히 힘들고 어렵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한 인식 전환 △기존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을 제시했다.

 

이 조사는 2009년 상반기 금속노조 조선분과에서 소속 사업장들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2009년 6월까지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는 조선사업장 16,095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 687명의 설문지를 수거 분석한 결과다. 조사의 표집오차는 95% 신뢰도 수준에서 ±3.65%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점규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조선산업의 위기는 수주잔량이 바닥나면 더 광폭해 지고 이는 정규직 구조조정으로 올 수밖에 없다”며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 비정규직 규모를 묶지 못해 노동조합이 더 어려워 졌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국장은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을 먼저 내보내면 정규직은 안 잘린다는 생각이 1사 1조직을 더 어렵게 한다”면서도 “회사도 1사 1조직에 대한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1사 1조직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기아자동차 노조를 예로 들고 “기아 같은 경우 1사 1조직으로 비정규직의 60%가 넘는 조합원을 조직했다”면서 “1사 1조직은 정규직지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보하고 비정규직을 가입시킬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규채용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먼저

 

이에 앞서 정흥준 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원인에 경제위기 등 외부환경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를 살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의 원인으로 과도한 과잉설비를 들었다. 정흥준 국장에 따르면 조선산업은 2008년 3/4분기까지 지속된 몇 년간의 호황으로 과도한 경기낙관론에 따른 과도한 과잉설비를 불렀다. 경제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특히 중소 조선기업들은 은행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정흥준 국장은 또 다른 요인으로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및 다각화 △기업간 공동대처능력 부재를 들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이어 경제위기로 인한 생산량 축소가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추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위기 시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력감축을 선택하지만 실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며 “인력감축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생존권 위협이기도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도 고숙련 노동자를 잃게 되어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기형적인 사내하청구조도 주요 문제점으로 나타했다. 정흥준 국장은 개별기업들이 정규직 임금동결 및 생산량이 증가 할 때마다 하청구조를 활용해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원가절감 전략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노사정에 각각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정부에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대형조선사를 중심으로 집중해야 할 사업부문을 조정하고 사업재편 과정에서 기형적인 사내하청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업차원의 대책으론 △인력구조조정의 대안마련 △해외투자생산설비의 축소 △전략적 제휴의 확대 등을 들었다.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노동조합엔 비정규직 인력구조조정의 대안으로 소규모이지만 신규채용 대신 일상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영진의 경영활동 감시를 강화해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등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제기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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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 경향신문 : 5월 10일(월)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우려로 지난주 후반 세계 주요 증시가 동반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우리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기록적인 매도 공세로 이틀 동안 코스피가 4% 넘게 떨어지고, 원화는 달러당 39원이나 폭락했다. 지난 2월에도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져 국내 금융시장이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유로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장이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사태가 악화하면서 세계 경기가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보다 더 긴박한 영향은 외환시장 교란이다.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신용경색으로 발전하면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이탈이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화부족 사태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다.

대외 요인에 의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과 이로 인한 외환시장 교란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다. 금융의 세계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우리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해 해외시장에 악재가 생길 때마다 나라 경제가 송두리째 위협받는다. 무제한적으로 외환시장이 개방된 결과다. 원화가 국제 투기자금의 먹잇감이 된 지도 오래다. 지난주 이틀간의 원화 가치 하락 폭도 아시아 통화 중 최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 막대한 외환보유액도 소용없어 결국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나서야 살아났던 금융위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대책이다.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자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통제 장치를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도 올 초 ‘자본 유출입에 대한 국가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오는 11월 G20정상회의에서 금융안전망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회의를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만 강조해서 될 일이 결코 아니다. 위험요인을 줄일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대응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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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식이 5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 열린 가운데 경영복귀 가능성에 대해 "아직 생각 중이다"고 말한 뒤 "회사가 약해지면 복귀를 해야겠지만 참여하는 것 보다는 도와줘야죠"라고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경향신문에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기명칼럼을 써왔습니다. 오늘 제 글이 실릴 차례인데 불행하게도 글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는 제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물론 거절했으나, 신문사는 끝내 저의 칼럼지면을 다른 분의 글로 채웠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독재정부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주체는 국가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실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적 권리는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권력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자본권력이 대신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시민적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일간지에 광고할 수 있는 지면을 얻지 못하고, 외부칼럼으로 기고한 저의 원고가 신문사 자체 검열에서 끝내 게재를 거부당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정이나 폐지를 청원하는 것도, 더 나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조차 금지했던 긴급조치 9호 시절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정의로운 기초를 뒤흔드는 시대에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애써 역사의 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종이신문에서 실리지 못한 저의 글을 혹시 실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면서 이번 일이 이 땅에서 삼성의 독재를 끝내는 대장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경향신문 2월 17일자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 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에 국가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독재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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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성서를 읽다 보면 늘 이 대목에서 걸린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원수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분이 어찌 개와 돼지를 멸시하고 저주하시는 겐가.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다 맞는 말씀이다. 중세 로마교황들은 스승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단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단을 화형시키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짓”이라던 루터나 칼뱅도 매한가지로 적들을 화형시켰다. 차라리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가르침을 둘러싼 미움도 죽임도 없었으리.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깨달음 뒤 망설이셨던 게다.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나만 지치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긴 고민 끝에 당신께서는 45년의 기나긴 가르침의 길에 나서셨건만 그 제자들은 끝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분은 세상 모든 존재와 사건이 고유의 독립된 실체가 없으며, 모든 게 원인과 조건에 따라 서로 기대어 일어났다 사라진다 하셨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정반대로 실체로서의 극락이며 서방정토며, 영원히 여기에 머무르는 ‘나’를 믿었다. 미륵불과 아미타불 같은 신들도 만들어냈다. 45년의 가르침은 다 어디로 간 건가. 그래도 그분들은 제자들에게 진주를 던져주었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나 아닌 타인과 다른 사물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리.

 

요즈음 법치주의가 꼭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신세가 되었다. 가히 대한민국은 법치만능 내지 법치과잉의 시대다. 모든 일이 법으로 간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대북송금 문제가 법으로 갔다. 헌법재판소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법권이 관여할 성질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송금한 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이라 판단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민주당 지지 발언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까지 받았다. 대한민국 수도를 옮기는 것이 합헌인지도 법관의 손에 넘어갔다. 미네르바 경제평론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 보도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주장도 모두모두 재판을 받았다. 본래 법치주의란 절대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서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에 이르면 법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배도구로 전락했다. 헌법책에는 이 시기를 합법적 불법국가라고 규정했다. 1949년 독일 기본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정의·평화를 보장하는 올바른 법만이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못박았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관련법이나 4대강 관련 특별법, 노동관련법들은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외면하는 한 법률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들 더는 법이라 할 수 없는 합법적 불법들이다.

 

본디 법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진리를 탐구할 능력도 없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며 사랑이나 융통성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법은 그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과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는 소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사회의 전면에 나서거나 모든 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성도 없고 국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법원이 우리 사회의 근본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법들을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법으로 끌고 가는 건 법치주의의 남용이요, 타락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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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확대로 부모 경제력 영향 커져
ㆍKDI 보고서 …“장학금 확충 등 노력을”


한국 사회의 ‘부(富)의 대물림’이 지금까지는 교육을 통해 상쇄돼 왔지만, 앞으로는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더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의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소득 격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일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교육이 경제력 대물림에 미치는 비중은 최고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은 부자(父子)간 월평균 임금의 대물림에 48.2%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임금이 높아지면 아들에 대한 교육투자를 늘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ㄱ씨의 월급이 ㄴ씨보다 100% 많다면 ㄱ씨 아들의 월급도 ㄴ씨의 아들보다 14.1%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교육이 월평균 소득의 대물림에 43.2%, 가구 연소득에 46.9%, 가구 순자산에 24.5%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계했다. 다만 KDI는 “분석에 활용한 표본 연령은 낮은 편이어서 부모의 영향이 아들의 경제력에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교육변수에 의한 부의 대물림 효과가 본격화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KDI는 그러면서 현재 30대 중·후반의 자녀와 그 부모 세대 간 부의 대물림 비율은 31%로 영국(34%), 미국(34%), 독일(37%)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세대는 대부분 사교육이 급증하기 전 평준화된 중·고교를 다녀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고 KDI는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사교육 심화로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면서 갈수록 부의 대물림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실제 올 1·4~3·4분기 도시가구의 월평균 학원비 지출액이 소득 상위 20%는 33만2511원으로 소득 하위 20%(4만2715원)에 비해 8배가량 높았다.

KDI 김희삼 부연구위원은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를 낳고 다시 자녀세대의 소득 격차로 이어져 부의 대물림이 교육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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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이 요즘 유행이다. KBS <개그콘서트>의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개그맨 박성광의 대사다.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단박에 인기코너로 떠올랐다. 현실을 유쾌하게, 때론 신랄하게 풍자하는 데 대해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1등이 아니면 패자라는 생각은 오래된 습관처럼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1등 하면 휴대폰 바꿔줄게” “공부 못하면 사회에 나가 아무것도 못해!” 부모들은 이런 말을 달고 산다.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줄 알지만 현실은 무섭다. 아이들은 속으로 “1등만 좋아하는 아빠”라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초등학생도 밤늦게까지 과외하는 시대다. 부모는 습관적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곧바로 후회한다. 현실이 이러니 “공부 잘하는 것보다 사람 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케케묵은 ‘공자님 말씀’이다. 초등학생까지 무한 경쟁으로 몰아놓고 인간 교육을 들먹여봐야 통할 리 없다.

부모들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야말로 오래전부터 1등 제일주의의 현장이다.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기업이다. ‘세계 일류’란 말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지상목표처럼 여겨진다. 살벌한 경쟁으로 기업은 돈을 벌었지만 정작 취직하기는 어렵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최근 유가증권 상장사 546곳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올해 3·4분기까지 매출과 고용증감을 조사한 결과 매출은 늘었지만 고용은 감소했다고 밝혔다. 행여 경제가 좋아지면 괜찮은 직장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88만원 세대의 미래는 앞으로도 암담할 게 뻔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은 현실을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리다. 구로구청의 환경미화원 8명 모집에 278명이 지원, 3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응시자 중엔 자격증 8개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엔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 시대엔 허언이 돼버렸다. 아파트 구멍가게 주인의 경쟁 상대는 다른 아파트 구멍가게가 아니라 대형 할인매장이고, 동네 세탁소의 경쟁 상대는 기업형 세탁업체다. 경쟁력이 다르니 싸워 이길 수 없다. 스포츠는 체급이 있고 핸디캡도 적용받지만 현실은 스포츠보다 냉혹하다. 양복점, 양장점, 구둣방이 대부분 사라진 것은 의류제조업체, 제화업체와 맞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체 내 경쟁에서 밀려나와 퇴직금을 투자해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자영업자들이 손이 닳도록 일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경쟁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실패한다. 박노자씨는 북유럽의 경우 비농업분야의 자영업자 비율이 전체 경제인구의 7~9%인데 한국은 24%라고 했다. 결국 누군가는 망하게 돼있다. 오후 9시면 대부분 상가 문을 닫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24시간 문을 여는 상점이 많은 것은 한국인이 타고난 일벌레여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다. 설상가상으로 경쟁 상대는 더 많아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전라도 농부들이 경상도 농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칠레나 인도 농부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의 이런 구조에서는 2등도 패배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술기운을 빌려 내지르는 개그맨의 대사에 박수를 보낸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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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주식투자로 날린 것들

노동자가 주식투자로 날린 것들

[칼럼] 주식 ‘따블’을 향한 열광에 재미보는 자본

이종회  / 2009년12월23일 14시55분

98년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클린턴을 만나면서 그해 말까지 체결하기로 합의한 한미투자협정(BIT) 협상에서,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 담배인삼공사와 발전을 비롯한 에너지부문 그리고 통신부문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미국이 요구했던 기업들은 민영화의 길을 밟기 시작했고, 한국통신은 KT로 바뀌었다. 한미FTA 협상에서는 통신부문의 외국인의 주식취득 한도를 51%로 올릴 것을 요구했지만 너무 아까웠는지 SK와 49%로 제한되어 있는 KT는 제외하고 다 열어주었다.
 

 

 

노동자 주주의 이중성

 

한국통신이 민영화되면서 소위 유니버셜서비스라고 하는 통신부문의 공공성은 파괴되었고 한편으로는 가혹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그리하여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는 5백일이 넘는 투쟁을 했고 114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분사와 함께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 파업을 한다고 체제전복세력이라는 딱지까지 감수했던 노동조합이었지만 민영화와 구조조정에는 눈을 감았다. 이후 노동조합은 당선이 되면 조합원에게 우리사주를 나누어주겠다는 자가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고, 올해 결국은 민주노총마저 탈퇴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주가 동향을 살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요즘 KT에 구조조정이 들어간다고 하니 주식 값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주를 쥐고 있는 앞선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KT 노동자는 자기 목이 왔다갔다하는 구조조정에 찬성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반대를 하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노동자인가 아니면 주주자본주의에 편승한 자본가인가.
 

 

 

주식투자에 몰두하는 노동자들

 

3년 전 임단협을 거쳐 현대자동차 노동자에게도 우리사주가 배당이 되었고 올해 현대자동차 주가가 뛰면서 ‘따블’이 되었다고 좋아들 한다. 컴퓨터가 있어 투자환경이 좋은 사무실이 아니어도 휴대용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작업시간 틈틈이 주식투자를 하는 노동자가 있으니, 우리사주 뿐 아니라 이제 주식투자에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가릴 것도 없다. 지금은 모르지만 세계공황이 있기 직전에는 펀드 수가 인구수를 넘어섰다고 했으니 아마 주식에 덤비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물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은 예외이겠지만.

 

그런데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매각 즉 민영화 소식에 대우조선 주식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의 반응은 어떠할까. 민영화에 뒤따르는 구조조정의 공식을 떠올리며 매각저지를 내걸고 투쟁하는 대우조선 노동자에 연대를 하겠는가 아니면 주가가 오를 것을 떠올리며 반겨하겠는가.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 중심이어서 문제니, 업종산별체계가 가지는 한계니 하는 민주노총의 현 단계에 대한 진단은 무수히 있어왔다. 게다가 노동자가 눈먼 돈을 따라 주주자본주의 그것도 신자유주의 금융적 체제에 편입당한 노동자의 현실을 본다면, 요즘 이명박에게 매 맞고 한국노총에 우롱당하면서도 뻥파업조차 어려운 민주노총의 미래는 있는가 싶다. 주식투기하지말기 정신개조운동을 하기도 그렇고.
 

 

 

푼돈 모아 외국자본에게 몰아주기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벌어들인 돈이 89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이 대거 사들인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80%대였다고 하니, 지난 10일 기준으로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한 총액 286조에 달하는 뭉칫돈을 쥐고 있어 가능한 일이겠다. 더구나 그들이 가장 짭짤하게 재미를 본 종목이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이고 보니 공황 이후 자본운동의 흐름을 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할진대 푼돈 몇 푼 들고 재미 좀 보겠다고 덤비는 노동자들에게 어리석다고 할 것인가 약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푼돈이라도 모아서 외국자본에게 몰아준 것 말고는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니, 공황이니, 그래서 사회주의니 하는 언사들은 사치일 뿐이다. 노동자들마저 땅이고 주식이고 투기광풍에 휩쓸려있는 그리고 투기를 부추기는, 미쳐버린 이 나라를 뒤집지 않고서야 어찌 제 자리를 찾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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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한 싸움

[목수정의 파리통신]파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한 싸움

 

 

 
세상의 모든 파업은 자신을 위한 싸움인 동시에 일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나 자신의 밥그릇을 위한 싸움은 결국 모두의 밥그릇과 건강한 영혼을 위한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파티에 가는 여인처럼, 온 도시가 매혹적인 치장 속에서, 축제전야의 흥분을 나누는 파리에서,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국립박물관들은 현재 파업 중이다. 2주전, 가장 먼저 파업을 시작한 퐁피두센터에 이어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 70여 개의 박물관, 국립극장들이 연이어 파업 대열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문화부문 공기관의 고용을 대폭 축소하고, 문화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줄이며, 점진적으로 국가에 속해 있던 문화 기관들을 지자체에 이양하려 하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관광국 프랑스에서, 문 닫힌 루브르 박물관에 실망할 관광객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을 만도 한데, 이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우리의 파업은 관람객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맞이하기 위한 것”이기에, 닫힌 문 앞에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실망의 목소리가 없진 않으나, 파업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고 노조 측은 전한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는 박물관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입장을 알린다.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이어 에스페란토로 적힌 전단을 만들어, 닫힌 박물관 앞에서 파업의 이유를 설명하며 시민들과 대화한다. 때로는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고, 관람객들을 박물관에 입장시키기도 한다. 파업 중일 지라도,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던 관객들은 그들의 파업에 더 큰 지지와 이해를 보낸다.

프랑스 국립박물관들의 파업은 물론 초유의 사태는 아니다. 2001년, 루브르 박물관은 무려 23일간 파업을 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던 당국의 의도를 좌절시켰고, 2006년에도 국립박물관들은 파업을 통해, 축소되었던 고용을 되찾았던 바 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의 미래 자체가 현정부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1959년, 앙드레 말로를 수장으로 한 문화부가 설립된 이래, 프랑스 문화부는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 문화의 민주화를 최대 목표로 삼아왔다. 가능한 모든 것을 상행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맹렬 신자유주의 집단 사르코지정부는, 반세기 동안, 좌우정부를 거치면서도 꿋꿋하게 지켜 온 공공서비스로서의 문화를 파괴하는데 문화부의 목표를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박물관 직원 수를 줄이고, 재정지원을 축소하면, 박물관들은 입장료를 올릴 것이고, 전시품들의 규모와 질적 수준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하는 박물관들은, 전시의 초점을 오로지 상업적인 목표에 맞추게 되면서, 박물관에서 마저, 문화는 사라지고, 문화를 팔아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상행위만이 앙상하게 남는다. 관람객들은 전보다 형편없는 전시를 더 오랜 시간 줄을 서고, 비싼 돈을 지불하며 관람해야 한다. 결국, 문화부는 재정 지출을 당장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그 대가는 모든 사람이 비싸게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예견된 불행을 막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은, 그들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인 파업을 신성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파리에 왔던 첫해이던 1999년 봄, 파리지하철 파업을 처음 겪었다.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아침, 지하철역 입구의 철창은 내려져 있었다. 버스들도 멈춰 섰다. 내려진 철창을 발견한 사람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서서 각자의 일터를 향해 걸었다. 어떤 이들은 오토바이를 끌고 나오고, 또 어떤 이들은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들고 나왔다. 분노도 논란도 없었다. 마치 온 도시가 도보여행자들로 가득 채워진 것 같은 또 다른 축제의 광경이 연출되었다. 일터가 너무 먼 사람들은? 안 간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어쩔 수 없는(?)는 휴식과 정지를 받아들인다.

파리지엥들이 지하철 파업을 맞이하는 모습은, 비가 오니 비를 맞는 것과 같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을 뿐, 아무도 하늘을 향해 항의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온 세상이 인정하는 권리인 파업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있는 세상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일 뿐인 것이다.

세계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이 도시의 오늘은 예술을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줄 알고, 각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행위를 관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프랑스의 한 네티즌이 썼던 대로, 닫힌 박물관에 실망한 관광객들은 거기서 대신 프랑스 노동자들의 지치지 않는 사회의식과 투쟁정신을 볼 것이다. 어차피 문화는 멀리 내다보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볼 땐, 늘 밑지는 장사가 될 뿐이다. 파업도 그러하다. 100미터 앞도 보지 못하고, 코 앞의 현상만을 확대하여 비추는 언론, 그 얄팍한 언론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세상에서, 파업은 무한 질주를 방해하는 길가에 튕겨져 나온 모난 돌 일 뿐이다. 그러나 모난 돌들이 길가에 튀어나오면, 간혹 그 돌 뿌리에 누군가 걸려 넘어지더라도, 우린 그 돌을 원망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오랜 질주본능에 딴지를 거는 “모난 돌”들의 항변에 함께 귀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의 철도파업이 정부와 우파언론들이 그들에게 옭아맨, “불법”과 “폭력”이란 억지로 좌초하였다. 철도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이를 민영화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를 갈취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명백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멈춰선 열차로 인해 면접시험을 보지 못한 수험생들의 사례 등만을 부각시킨, 보수언론의 치졸한 보도행태는 어김없이 반복되었고, 노조는 우리 사회의 무한질주를 방해하는 악마처럼 취급되었다. 기꺼이 모난 돌이 되어 우리가 가야 할 바른 길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우린 대체 어디로 달려가는가.

<목수정|작가·프랑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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