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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 돈 풀어 위기수습…신자유주의 이미 종착역”

“미 정부 돈 풀어 위기수습…신자유주의 이미 종착역”

 

[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 [제라르 뒤메닐-정성진 교수 대담] 새로운 ‘위기’를 말하다
 
제라르 뒤메닐(사진 오른쪽) 파리10대학 교수는 지난달 28일 정성진(왼쪽) 경상대 교수와 가진 <한겨레> 대담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당장의 고비는 넘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을 심화시켜 더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케인스주의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선 “이번 위기가 케인스가 처방했던 거시정책의 유효성을 확증해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케인스주의의 또다른 축을 구성하는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5일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한 뒤메닐 교수는 서울에 머물며 경상대 국제학술회의와 사회단체 간담회 등에 참석한 뒤 지난 주말 출국했다.

 

정성진=당신은 이윤율 동향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장기동학을 설명해왔다. 최근 세계 경제위기 역시 이를 통해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제라르 뒤메닐=지금의 위기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이윤율 저하로 인한 위기가 아니다. 이윤율은 1970년대 들어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 초부터 회복되는 추세를 보였다. 두 개의 큰 요인이 이번 위기를 가져왔는데, 첫번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금융화와 결합된 상층계급(자본가와 경영자)의 고소득 추구 경향이다. 두번째 요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된 미국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인데,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요인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금융화·고소득 추구 경향으로 이뤄진 위기 요인의 조합이 취약한 금융구조를 낳고, 여기에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가세하면서 금융의 취약성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정=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것으로 진단했다. 그런데 표면상 위기는 더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뒤메닐=현재 위기는 1930년대 위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고소득 추구나 금융화는 1920년대에도 있었다. 다른 점은 미국경제의 불균형이란 요인이 1930년대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가 대공황만큼 심각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인데, 개입의 강도를 보여주는 게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8%였던 미국 재정적자는 올해 11%로 늘었다. 1930년에는 겨우 4%였다.

정=위기가 큰 무리 없이 수습될 수 있다는 얘긴가.

뒤메닐=2001년 불황 당시엔 주택경기를 부양해 어려움을 극복했지만, 주택버블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지금의 위기 상황에선 이것이 불가능하다. 오바마 정부로선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국가재정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것이 경제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켜 새로운 위기를 부른다는 점이다.


미국재정적자 11% ‘불균형’ 심화
세계화·금융화·고소득 추구 등
취약해진 금융구조 파국 부채질

 

 

정=많은 학자들이 최근의 경제위기를 신자유주의 종말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뒤메닐=신자유주의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라틴아메리카는 확실히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추세다. 중국도 다른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경제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 개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머잖아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유럽은 아직 뚜렷한 변화 조짐이 안 보인다. 프랑스·독일의 보수정권이 정책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리지만 완만하게 탈신자유주의의 길을 갈 것이다.

정=한국에도 번역된 <자본의 반격>에서 케인스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케인스주의가 여전히 실행가능한 대안이라고 보는가.

뒤메닐=케인스주의는 위기에 대한 거시경제적 처방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타협까지 포함한다. 일단 좁은 의미의 케인스주의, 다시 말해 케인스의 거시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핵심은 강력한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무역과 자본이동에 대한 일정한 규제 등인데, 이것은 신자유주의와는 상충되는 방향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이번 위기는 결과적으로 케인스의 타당성을 재차 확증해준 셈이다.

정=사회민주주의적 타협도 마찬가지로 유효한 대안일까.

뒤메닐=회의적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의 계급타협은 대중계급과 손잡은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강력한 대당(對當)으로 자리잡고,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도 거대한 사회운동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사회운동도 위축된 지금 상황에선 과거 같은 타협이 쉽지 않다. 물론 새로운 유형의 타협이 나타날 수는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중계급과의 동맹 없이) 관리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규율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정=최근 자크 비데와 함께 쓴 <대안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다른 세계를 위한 다른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무엇이 갱신돼야 한다고 보는가.

뒤메닐=무엇보다 계급론의 수정이 불가피하다. 전통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했다. 이런 이분법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 계급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법인기업의 출현과 함께 소유·경영이 분리되면서 거대한 관리자 계급이 등장한 것이다. 노동계급의 분화도 가속화돼 전통적 생산노동자뿐 아니라 광범위한 비생산노동자와 실업자층이 양산됐다.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전통적 이분모델은 이제 ‘자본가-관리자-대중계급’이란 삼분모델로 대체돼야 한다.

 

남미·중국 신자유주의 일탈 조짐
“미국도 곧 거대한 변화 있을 것”
케인스주의 유효한 처방 ‘득세’

 

정=당신이 주장하는 ‘대안마르크스주의’는 결국 ‘관리자 자본주의론’을 마르크스주의 안에 수용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뒤메닐=맞다. 그런데 계급론 외에 두 가지가 추가로 필요하다. 하나는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이다. 마르크스에게 착취의 국내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있었지만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새로운 국제적 착취기구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은 외관상 민주적이지만 이들을 통해 관철되는 것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다. 착취의 국제적 양상에 대한 분석으로서 제국주의론이 요청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변혁론이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대중투쟁을 제시한다.

정=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혁명인가.

뒤메닐=여러 종류의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관리자 계급으로부터 한층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선 대중계급이 더 강하게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계할 것은 관리자의 지배가 대중계급의 지배를 대체하는 ‘대리주의’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역시 귀결은 대리주의였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제라르 뒤메닐은?

 

‘불균형 미시경제학’ 통해 세계 경제위기 도래 예견

 


제라르 뒤메닐 교수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명제인 이윤율 저하 경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 경제학자다. 특히 ‘불균형 미시경제학’이라는 독창적 프레임으로 20세기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세계적 경제위기의 도래를 예견해 주목받았다. 현재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임연구원으로 있다.

신자유주의를 바라보는 뒤메닐 교수의 시각은 최근 출간된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그린비) 3장과 <네오리버럴리즘>(그린비) 1장에 집약돼 있다. 여기서 그는 신자유주의를 “소수에 이롭고 다수에 해로운 약탈적 체제”로 규정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계급의 소득과 부를 회복하고 미국 경제의 우월성을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런 성과는 대다수 미국인과 세계 다른 지역의 희생을 대가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성장률 역시 이전 시기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뒤메닐 교수는 이윤율 하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계급 타협의 결과물로 해석한다. 20세기 들어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반경향’으로 관리조직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해 등장한 것이 ‘관리자(경영자+관리직) 계급’이다. 관리자 계급은 2차대전 뒤 사회민주주의적 타협 국면에서 대중 계급(pupular class)과 손잡고 자본가 계급을 제어하고 규율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자 이들은 자본가 계급과 동맹해 대중 계급을 압박하게 되는데, 이것이 198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계급 타협의 본질이라는 게 뒤메닐 교수의 설명이다. 뒤메닐 교수는 최근 신자유주의의 동학과 한계를 규명한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책을 탈고하고 내년 초 출간(하버드대 출판부)을 기다리고 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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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끝나고 새 질서 도래” 제라르 뒤메닐 인터뷰

“신자유주의 끝나고 새 질서 도래” 제라르 뒤메닐 인터뷰
ㆍ프랑스 좌파 경제학자

세계 경제가 위기다. 과연 이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향후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제라르 뒤메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임(66)은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끝났고 앞으로 새로운 사회질서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뒤메닐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적 분석틀에 기반을 둔 현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얻고 있는 경제학자다. 특히 국내에 소개된 <자본의 반격>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상 도미니크 레비 공저)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혁명’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지난 25일 방한한 뒤메닐은 29일 ‘대안세계화운동 이념과 전략의 국제비교’ 국제학술대회에서 ‘21세기 초의 위기와 계급대립’을 주제로 발표하는 등 한국 지성계에 자신의 연구 성과를 소개할 예정이다. 26일 그를 만나 현 경제 위기의 성격과 원인, 향후 전망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자유주의의 위기다. 신자유주의는 ‘계급적 현상’이다. 가장 부유한 계층의 소득 회복을 목표로 1980년대부터 진행됐다. 신자유주의에는 금융화와 세계화라는 측면도 존재하는데 금융의 탈규제화와 폭발을 이끌면서 이번 위기에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위기가 금융 위기로 온 이유다.”

-위기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 100여년 사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4번 있었다. 1990년대, 1929년, 1970년대, 그리고 지금이다. 5~10년마다 반복되는 순환적 위기와는 다른 것은 자본주의를 ‘사회적 질서’라고 말하는 여러 단계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우리는 첫번째 헤게모니인 케인스주의적 해법을 목도한다. 7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두번째 헤게모니로 소득, 부, 권력을 창출했지만 지금 결국 실패했다. 이것이 내가 자본주의 역사를 보는 방식이다.”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계기를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에서 찾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동산 거품은 현 위기의 한 측면이지 원인이 아니다. 경제적·사회적 상황이 부동산 거품 형성은 물론 붕괴의 조건을 창출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위기의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가 부유층에서 높은 수익을 추구한 데 따른 금융 메커니즘의 자유화·탈규제화·세계화다. 두번째가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다. 미국 경제 성장은 적자 축적 때문이었다. 소비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계 빚이 늘어났다. 이처럼 내·외적으로 빚이 증가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현상이다. 이걸 보면 왜 위기가 미국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금융화가 가장 발달했고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해결을 위한 미국과 유럽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금융위기에 대한 금융적 처방은 효과가 없다. 핵심은 생산량 저하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다. 유럽은 미국 정부보다 행동이 늦다. 반면 오바마 정부는 대공황의 기억이 강해서 생산량 저하를 멈추기 위해서는 뭐든 할 것이다.”

-이번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위기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뀔 것으로 보는가.

“단기적 전망은 어렵다. 경기 침체는 멈출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의 불균형을 고쳐야 하는데 이게 정말 어렵다. 문제는 미국 경제가 금융 및 비금융 다국적 기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를 시정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제한하고 자본이동을 규제한다면 이는 다국적 기업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다. 이게 모순이다.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중단하지 않으면 세계 지배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에 급속하게 자신을 바꿀 것이다. 미국 내 내셔널리즘이 미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룰을 바꾸도록 압박할 것이다. 관건은 속도다. 명백한 것은 우리가 다극체제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유지되겠지만 그것이 어느 수준이 될 것인가이다.”

-자본주의는 70년대 말 ‘신자유주의 혁명’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위기도 자본주의에 대한 약간의 수정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인가.

“미국 경제만 보면 신자유주의는 이미 끝났다. 앞서 말했듯이 4번의 구조적 위기 뒤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생겼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질서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자본주의신당(NPA) 지도자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인기가 치솟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재 프랑스 좌파는 대안이 없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 내 소그룹이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고 브장스노라는 말 잘하고 매력적인 젊은 남자를 찾았다. 이들은 공산주의의 이름을 버리고 ‘반자본주의’를 내걸었다. NPA는 새로운 형태의 반대세력이지만 그들이 프랑스 사회를 변화시킬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향후 연구 활동이나 출간 계획은.

“이번 위기에 대해 서술한 <신자유주의 위기>라는 책이 10월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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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후에스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아랑후에스
조락(凋落)의 정원
주말의 명화 시작을 알리던 그 선율 아랑후에스협주곡 庭園도시 휘감고…
마드리드 왕족의 휴식처였기에 아름답다기보다 예쁘게 꾸며진 정원
왕자의 정원 걷자니 꿈인지 생신지 협주곡서 풍경이 튀어나온 듯 황홀경

 

아기자기한 조각으로 장식된 아랑후에스의 한정워.

아랑후에스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인공적인 정원이 이어져 있다.

 

내 눈에 비친 아랑후에스는 정원의 도시였다. 왕궁에서 나와 여왕의 거리(카예 델라 레이나)를 끼고 걷자니 왼편으로 하염없이 정원이 이어졌다. 그것은 아랑후에스가 대단히 인공적인 도시라는 뜻이었다.

모든 도시는 인공의 소산이지만, 아랑후에스는 사람의 손길로 자연마저 인공화한 도시였다. 그러니까 아랑후에스는 그저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 예쁜 도시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중세 이전부터 이 지역에 도시 비슷한 취락 형태가 존재하긴 했으나, 아랑후에스가 본때 있는 도시로 출발한 것은 16세기에 왕궁과 정원이 들어서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국왕과 왕족들이 쉬고 즐기러 오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 도시의 자연은 인공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다. 다시 말해 그저 아름다운 것을 넘어 예뻐야 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주에 속해 있다. 수도 마드리드를 스쳐 남으로 흐르는 하라마강이 아랑후에스에서 타호강에 합류한다.

 

정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으므로, 친구들과 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거기서 출발하는 치키트렌을 타기로 했다. 관광객 티를 내기로 한 것이다. ‘치코’(꼬마, 작은)와 ‘트렌’(기차)을 합쳐서 만든 말일 치키트렌은 아랑후에스의 정원 대부분과 주택가 일부를 도는 꼬마기차다. 생김새는 놀이공원의 기차를 닮았으나, 철로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기차보다도 더 자유분방하다.

 

우리는 그 자유분방한 기차를 타고 정원의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훑었다. 숲속에는 가을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치키트렌이 아폴로의 샘(푸엔테 데 아폴로)에 이르렀을 때, 소풍 나온 듯한 초등학생 한 무리가 보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을 떠올렸다. 다녀오고 나면 허전하기만 했던 그 소풍이 그 시절엔 왜 그리 기다려졌던지 모르겠다. 서울이나 그 둘레에도 이리 예쁜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동구릉이나 서오릉은 문득 아름답긴 했으나 예쁘진 않았다. 아니 넉넉히 아름답지도 않았다. 내 발길이 닿은 조국의 풍경은 충분히 자연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충분히 인공적이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이 정원에서 올려야겠어.” 독신 친구 하나가 실없는 소리를 농했다. 그저, 이 정원의 예쁨에 대한 찬사였으리라. “언제 할 건데?” 늘 진지한 기혼 친구가 거기 대꾸해 주었다. “예순 살이 되면.” 그러고 나서 그 둘은 그 혼례에 초청할 하객의 이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예비 배우자뿐이었다.

 

다른 독신 친구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을 흥얼거렸다. 나도 따라 읊조렸다. 그라나다에서 아랑후에스로 차를 몰면서도 우리는 리플레이 상태로 이 곡을 계속 틀어놓았었다.

 

그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었으나, 아랑후에스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랑후에스에 들르기로 결정한 것도, <알람브라궁전의 추억>과 한 시디에 실린 <아랑후에스협주곡>에 촉발돼서였다. 농부의 집(카사 델 라브라도르) 앞에서 치키트렌이 잠시 쉬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농부의 집에서 여왕의 거리 쪽으로 펼쳐진 왕자의 정원(하르딘 델 프린시페)을 걷자니 눈앞 풍경의 현실성이 흐릿해졌다. “꿈결일까?”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계속 흥얼거리는 친구에게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현실이야.” 그가 흥얼거림을 멈추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렸다. 초목의 조락 속에서도 아랑후에스의 정원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이 풍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풍경이 그 음악 속에서 튀어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선율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 여성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피겨스케이팅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川井郁子)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 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마키무라 사토루라는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 <사랑의 아랑후에스>도 얼음판 위에서 이 협주곡을 몸으로 재현하는 것이 소원인 여성 피겨스케이터 얘기를 그리고 있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본디 클래식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호아킨 로드리고가 1939년 파리에서 썼고, 이듬해 11월9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궁에서 초연됐다. 이 곡은 세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 시작해 아다지오를 거쳐 알레그로 젠틸레로 끝난다. 그 가운데 사람들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기타가 잉글리시호른(이나 다른 솔로 악기)과 버무려지는 제2악장 아다지오다. 기 본템펠리가 거기 가사를 붙여 샹송으로 유명해진 <내 사랑 아랑후에스(아랑후에스, 모나무르)> 덕도 있을 게고, 영화나 광고에 흔히 삽입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제2악장인 덕도 있을 게다.

 

B-마이너를 주조로 삼은 이 악장은 친구들과 내가 아랑후에스에서 걷고 있는 이 조락의 정원과도 꼭 어울린다. 신록의 정원이나 무성(茂盛)의 정원도 그것대로 맛은 있겠으나, 그것들은 아다지오의 정원이 아니다.

재즈의 전설로 불리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시작해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 클라리네티스트 장-크리스티앙 미셸, 재즈 키보디스트 칙 코리어, 기타리스트 버킷헤드 등 다양한 지역적 배경의 특급 연주자들이 갖가지 악기와 분위기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거듭 해석했다. 그 덕분에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선율 가운데 하나가 됐다.

 

파리에서 쓰긴 했지만, 작곡자가 <아랑훼스협주곡>에 불어넣은 분위기는 그 제목이 드러내듯 아랑후에스 왕궁과 그 둘레 정원의 것이다. 16세기 펠리페2세 시절에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후안 데 에레라의 설계로 세워진 이 왕궁은 그 뒤 몇 차례의 화재로 흉한 모습을 보였다가 페르난도6세 때인 1778년 오늘날 형태로 완공됐다.

 

아랑후에스 궁전은 전통적으로 스페인 국왕이 봄에 머무르는 별궁 노릇을 했다. 거기 딸린 널찍하고 미려한 정원들은 합스부르크왕조 시대 스페인 문화의 아치(雅致)를 한껏 뽐낸다.

 

한 때 아랑후에스는 국왕의 친척들이 주로 사는 왕족의 도시였다. 그 점에서 프랑스의 베르사유를 설핏 닮았는데, 아닌게아니라 왕자의 정원 끝머리에 들어선 또 다른 별궁 ‘농부의 집’은 전형적인 베르사유 풍이다. 이 궁전이 농부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본디 이 터가 아랑후에스의 돈 많은 농부 소유였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파리에서 <아랑후에스협주곡>을 쓰기 한 해 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선율은 그 짧은 체류에서 잉태됐다. 작곡자 자신이 이 협주곡의 제재로 아랑후에스궁 정원의 목련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분수 소리 따위를 거론한 바 있다.

 

로드리고는 자신이 아랑후에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를 앓고선 시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작품이 너무 유명해지면, 그 주제와 제재를 놓고 온갖 해석이 뒤따르는 법이다. <아랑후에스협주곡>도 그랬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제2악장 아다지오를 두고는, 이 선율이 만들어지기 두 해 전 독일 공군이 자행한 게르니카 폭격과의 연관을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로드리고는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디난도 카룰리와 더불어 클래식기타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의 기타 솜씨는 볼품없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았고, 특히 피아니스트로서는 거장이라 이를 만했다. 터키 출신의 아내 빅토리아도 피아니스트였다.

 

1991년, 로드리고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아랑후에스 정원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말할 나위 없이, 그가 <아랑후에스협주곡>의 작곡자라는 사실과 관련 있는 작위다.

 

로드리고는 1999년 마드리드에서 작고했다. 1901년 생이니, 그의 삶은 20세기와 거의 고스란히 포개진 셈이다. 로드리고와 아내는 아랑후에스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아랑후에스는 로드리고가 태어난 곳도 죽은 곳도 아니고(그는 발렌시아주 사군토 출신이다), 오래 머문 곳도 아니었지만, 그가 이 도시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처럼, 아랑후에스에도 카페마다 (일종의) 슬롯머신이 있었다. 철학자는 도박에 다소의 취향과 재능이 있는 친구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저 유명한 도박 중독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가 남아있는 바덴바덴에까지 진출해 제 운을 시험해 보았다 한다.

 

그의 꿈 하나는 바덴바덴에 다시 가서 돈 걱정 없이 질릴 때까지 도박을 해보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철학자는 우리가 카페에 들를 때마다 슬롯머신 앞에 앉아 제 재능과 운을 시험했다.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 찻값 정도는 버는 게 예사였다. 아랑후에스의 한 카페(아일랜드식 커피와 맥주를 파는 ‘더블리너’라는 곳이었다)에서도 그는 슬롯머신 앞에 앉았는데, 이번엔 딴 돈이 우리 주전부릿값을 사뭇 웃돌았다. 그 집을 나오면서, 마치 무전취식이라도 한 듯해 좀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라나 베르데’라는 식당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녹색 개구리’라는 뜻이었지만, 우리가 거기서 개구리를 먹은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경멸의 뜻을 담아 프랑스인들을 ‘개구리 포식자(frogeater)’라 부른다고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도 개구리를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녹색 개구리’에서 연어와 안심을 먹었다. ‘녹색 개구리’ 식당의 창 밖으로 타호강이 내려다보였다. 아랑후에스는 타호강의 발원지에서 멀지 않다. 이 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흘러 거기서 대서양과 만난다. 리스본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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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4만 5125명(2004)이다. 라만차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타호강() 좌안의 비옥한 평야지대에 있다. 아랑후에스 근처에서 타호강과 하라마강()이 합류한다. 로마시대에는 아라요비스라고 불렸으며, 14세기 말과 15세기 초에 산티아고 기사단의 본거지였다. 16세기 펠리프 2세 시대부터 왕령지가 되었으며 그곳에 J.B.톨레도와 J.에레라가 별궁을 건축했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손실을 입은 뒤, 1778년 완공되었다. 왕궁에는 진귀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7세기 왕실의 사냥터 별장이 있으며, 왕족들의 여름철 거주지였는데, 현재는 마드리드 거주자들에게 인기있는 휴양지가 되었다. 1808년 카를로스 4세가 세운 라브라도르성()은 프랑스베르사유 궁전과 매우 비슷하다. 1808년 이곳에 연금되었던 페르난도 왕자(후에 페르난도 7세)가 아랑후에스 민중의 반()고도이 봉기에 의해 국왕에 옹립되었고, 그의 부친 카를로스 4세는 스스로 퇴위하였다.

마드리드-알리칸테 철도와 마드리드-안달루시아 철도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로 산업이 발전하여, 화학제품·금속제품·직물 등의 제조업과 과일 저장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작물로는 아스파라거스와 딸기가 주로 재배되고, 말이 사육된다. 도시는 격자형으로 곧고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북쪽 45㎞ 지점에 있는 마드리드로의 통근도 가능하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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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파업' 비정규직 &quot;차라리 노숙인이라면…&quot;

'장기파업' 비정규직 "차라리 노숙인이라면…"

 

이랜드·코스콤·KTX 조합원의 35.9%가 "죽고 싶다"

 

 

어쩌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래서 누구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지나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일반인보다 무려 8배나 정신질환 의심자의 비율이 높고, 외환위기 직후 크나큰 충격과 실의에 거리로 나온 서울역 노숙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정신 건강 상태를 갖고 있다"는 새삼스런 진실은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고 넘어갈 만큼 사소한 일은 아니었다.
  
  바로 이랜드, 코스콤, KTX·새마을호 승무원의 얘기다. 이들은 모두 짧게는 300일에서 길게는 900일 가까이 오랜 시간, 파업을 벌이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업장의 울타리에 관계없이, 남녀에 관계없이, 그 나이에 관계없이 이들은 모두 "자주 우울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샤워를 하다가도 울컥 눈물이 난다"고 했다.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5일 발표한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참담했다."
  
  치료 필요한 '질환의심군' 18.3%…주의 필요한 '관리대상군' 35%
  

▲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관리대상군'의 비율은 무려 35%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2배가 높았다. ⓒ프레시안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이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이랜드일반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KTX·새마을호 승무원 등 파업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정신건강 상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120명, 조사 기간은 지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였다.
  
  장기 파업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는 당초 파업 1000일을 넘긴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도 대상에 포함시키려했으나, 조사 기간 중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어 불가피하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관리대상군'의 비율은 35%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2배가 높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질환의심군' 비율은 18.3%로 일반인보다 무려 7.3배가 많았다.
  
  이는 이들 단체가 지난 1999년 외환위기 직후 명예퇴직 등으로 거리로 쫓겨 나온 서울역 노숙인을 상대로 한 정신건강 조사보다 심각한 결과였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현재의 장애 수준 혹은 심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GSI(Global Severity Index, 전체심도지수)를 보면 조사 대상자 평균은 55.8로 서울역 노숙인 평균인 54.7보다 높았다"며 "사회적 배제와 차별 속에 심각한 소외감을 느꼈던 노숙인보다 장기 파업 비정규직의 정신건강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별로는 가장 오래 파업을 벌인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제일 심각했다. 전체의 21.9%가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코스콤 비정규직(19.5%), 이랜드 비정규직(14.9%)도 응답한 조합원의 15~20%가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죽고 싶다" 전체의 35.9%…일반인의 2배
  
  구체적으로는 우울증, 강박증, 적대감, 신체화 증상이 일반인에 비해 유독 높았다. 응답자의 96.6%가 "매사에 걱정이 많다"고 대답했고,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막히는 기분"이라는 사람도 93.1%나 됐다. KTX열차승무지부 오미선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 사업장은 달라도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 점거, 단식 아니면 어디에 올라가고…. 몇 일을 굶느냐, 어디를 점거하느냐만 다를 뿐이다. 3년간 몇 차례나 다 해 봤던 일이다. 그런데 안 됐다. 또 하자고 하면 조합원들 반응은 '그거 해서 정말 되는 거야? 안 되면?'이다. 울고 싶어도 마땅히 울 공간도 없다. 화내고 싶어도 화 낼 사람이 없다. 자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울고, 샤워하다가도 눈물이 난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35.9%나 됐다. 이상윤 사무국장은 "일반인의 자살충동 평균치가 1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인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는" 적대감 증상도 전체의 95.8%에서 나타났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가는 신체화 증상도 도드라졌다. 응답자 대부분이 머리가 아프거나(85.6%), 근육통 또는 신경통에 시달렸고(82.5%), 허리가 아프다고 느꼈으며(82.3%), 어지럽거나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77.6%)도 많았다.
  
  특히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에서는 신체화와 대인예민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이날로 파업 329일 째인 이들이 그 시간 내내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상윤 국장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장기간 노숙 생활로 인해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쓰게 되거나 몸이 아프고, 분노, 공격성, 울분 등이 쌓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느 날, 돌아보니 6살 아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내가 있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이날 사례 증언을 위해 나온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의 말은 이들이 겪고 있는 내부의 고통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우울증 진단을 받고 현재 3주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우울증인 것 같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주위에서 치료를 권할 때마다 '내가 냉정함을 유지하고 통제하고 있는데 왜'라며 한 귀로 듣고 흘렸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에게도 '자각 증상'이 나타났다.
  
  "어느 날, 아파서 하루 연락 없이 못 나온 노조 간부에게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떠나라'며 화를 내는 나를 봤다. 촛불시위에서 노조 재정 사업을 위해 생수를 파는데 '너무 힘들다'며 오늘은 그만하자는 한 조합원에게 '내가 다 할 테니 집에 가라'며 신경질을 낸 적도 있었다."
  
  일상적인 일에서 거칠게 화를 표출하는 것 외에도 집안 가구 배치를 수시로 바꾸는 증상도 나타났다.
  
  "작은 원룸에 살고 있는데 3일에 한 번씩 온 집을 뒤집어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곤 한다. 작은 물건들도 완벽하게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다 문득 돌아보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돼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6살 난 아들에게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킨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폭발장애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투쟁의 전망은 날이 갈수록 불확실한 듯 보이고, 수십 명이 해고되고, 수십 명이 수배를 당하거나 체포되고 수백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걸려 있었다"며 "아내까지 이혼을 얘기하며 가족마저도 안 도와준다 싶으니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 증언했다.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과 '결과에 대한 불안감'
  

▲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조합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1.7%가 본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난을 꼽았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300일 넘게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프레시안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조합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1.7%가 본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난을 꼽았다.
  
  조합원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으로 한 가정의 가장도 상당수인 코스콤 비정규직과 40~50대 여성이 대다수인 이랜드 비정규직은 특히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통 호소가 눈에 띄게 높았다. 각각 39%와 66% 수준이었다.
  
  "조합원들 가운데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이혼을 당하거나 아내가 갑자기 집을 나간 사람도 많다. 애초에 비정규직이었으니 저축해 놓은 돈도 별로 없었지만,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20평 아파트를 10평 남짓으로 줄여가면서 울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이렇게 말하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정인열 부지부장은 울컥 쏟아지는 눈물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영역 2위는 파업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27.1%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파업의 끝이 과연 장밋빛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3년이 됐든, 5년이 됐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이라는 정인열 부지부장의 말은 그런 고통에 대한 토로였다.
  
  3위로 나타난 것도 비슷했다. 그것이 복직이든, 포기이든 파업이 종료된 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전체 응답자의 16.2%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KTX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뎌 2년 반을 일하고 3년 파업 중인" KTX 승무원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43.8%로 가장 컸다.
  
  주위의 시선도 이들이 털어놓은 고통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서울역에서 농성 중인 오미선 KTX승무지부 지부장은 "농성장 부근에서 혹여 대학 동기나 친구를 만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혹 아는 사람을 만나면 수치스러워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말했다.
  
  "개인적 원인 아닌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질병…해법도 그로부터"
  
▲ 물론 당장 나타나는 증상의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이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때문에 "사회적 해법의 모색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다시 농성을 벌이고 있는 KTX 승무원의 모습. ⓒ프레시안

  이 두 단체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해당 비정규직에게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 및 상담, 치료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장 나타나는 증상의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이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때문에 "사회적 해법의 모색"이 강조됐다.
  
  또 이날 드러난 결과는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1년 이상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소위 '장기 투쟁 사업장'은 60여 곳에 이른다. 더욱이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이미 850만 명 시대다.
  
  이들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가 대규모 계약해지와 외주화 등에 맞서 또 다른 곳에서 파업을 시작하고, 장기간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또 마음의 병을 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생각해선 안 된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상윤 사무국장은 조심스러워했다.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하면 곧 "미쳤다"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 때문이었다.
  
  혹여 이번 조사 결과가 "저 사람들은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저렇게 오랫동안 파업하는 거였구나"라는 시선이 돌아올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국장은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오도되는 반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부터 '병자'였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나타나는 변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3곳의 사업장은 이 국장의 말대로 "그나마 상대적으로 여론에 많이 알려진 곳"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들의 '행위' 내면에 숨겨진 날 것의 '삶 자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돌이켜보고 공감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번 조사의 목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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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오월과 유월에는 ‘말’이 있었다

2008년 오월과 유월에는 ‘말’이 있었다

 

불후의 명작, 촛불의 명 카피들
미친 2MB, 명박산성 등 직설-은유 버물어 ‘말대포’
온-오프 넘나 들며 집단지성 상상·표현 ‘무한도전’

  

 

 
 
»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열린 6.10항쟁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위해 광화문 네거리에 쌓아놓은 컨테이너 장애물에 시민들이 명박산성이라 이름 붙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2008년 5월과 6월엔 ‘말’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5월과 87년 광화문의 6월에도 물론 ‘구호’가 있었다. 그러나 달랐다. 촛불은 ‘언어의 마술’을 지폈다. 온-오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전경차와 마주한 ‘경계의 광장’에서 ‘말의 향연’을 펼친 것이다.

‘2MB, 너나 쳐드삼!’ ‘미친 2MB, 너 때문에 우리가 미쳐! 2MB OUT!’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

두달 넘게 도심에서 불타던 촛불은 잦아 들고 있지만, 촛불이 피워 올린 불후의 명 카피들은 여전히 온-오프라인에서 타오르고 있다. ‘촛불 시민’들 사이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는 ‘2MB’다. 단지 이니셜만이 아니다. 디지털의 저장 용량인 byte에서 따왔다. 2 메가바이트는 노래 한 곡도 채 담을 수 없는 용량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빗댔다. IT세대들의 ‘말’이 능청스럽지 않은가.

‘광우병소’는 ‘미친소’로 더 많이 불린다. ‘이명박 정부’는 ‘미친 정부’로 통한다. 이명박 정부를 규정하는 프레임은 제도권 언론이 아니라 ‘거리의 언론’이 만들어 유통시켰다. 직설과 은유를 버물어 시위를 즐기고, 즐거움을 ‘시위’하며 분노하고 저항했다.

하나의 단어가 등장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고유명사화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일반적인 언어의 사회화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단어와 문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생산도, 공감도, 이해도, 습득도 새로웠다.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2003년 탄핵 정국에서도 ‘톡톡’ 튀는 패러디 문구와 사진, 포스터, 영상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등에서 활약하는 누리꾼들이 패러디물을 만들었고,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이를 즐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달랐다. 몇몇 누리꾼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문구와 카피를 다수의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견 표출의 주제로 활용됐다.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문구 역시 기발했다. 그만큼 누리꾼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무한도전’했다.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Boys, be MB Shuts, 촛불 내 돈으로 샀다, 우리 이제 방학이다…본질 압도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oys, be MB Shuts(소년이여, MB 입 좀 막아라)’, ‘Be the Cats.(‘쥐를 잡는’ 고양이가 되자)’, ‘미친 쥐에 경읽기:그래도 한다!’ 등이 5월 초가 지나면서 등장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2MB’, ‘쥐(박이)’로 더 많이 불리게 된다. 간명하고 명확한 구호는 현상을 넘어 본질을 찌르는 예리한 비수다.

6월10일 경찰이 세종로 네거리에 쌓은 콘테이너 바리케이드를 향해 붙여진 ‘명박산성’은 이번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 중의 카피라고 불릴 만하다. 시민들은 콘테이너 앞에 ‘경축!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펼침천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맞세워 쌓은 스티로폼을 ‘시민산성’이라 이름 붙였다. ‘청와대 행진’을 막아선 전경버스에 붙여진 스티커 ‘불법주차’ 또한 명 카피 중의 하나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이 진행되자 ‘닭장투어’라는 말과 행동으로 조롱했고, 경찰의 물대포를 ‘비데’라는 단어로 응수한 것도 명 카피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재치 만발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촛불 시민들의 재치와 상상력은 정부와 보수언론이 제기한 ‘배후세력 음모론’과 ‘촛불 쇠퇴론’ 앞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이제 방학이다”라는 카피다. 간단 명료하면서도 정부와 보수언론의 논리를 순식간에 무력화 시킨다. “이명박이 배후다”와 “촛불 내 돈으로 샀다” 같은 카피는 촛불에 대한 상투적인 흠집내기를 되받아치는 재치가 절묘하다.

보수언론을 꼬집는 카피들은 훨씬 냉소적이고 조롱에 가깝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버럭! 님하! 저거 찌라시! 우리집 강아지는 조중동을 깔개로 주면 주인도 물어버린다!(찬조출연: ytn, sbs, 매경, 한경)’, ‘조선이 신문이면 똥파리는 독수리다’…….

 

카피라이터 정철씨는 “누리꾼들이 만든 표어나 문구들이 너무 기발해 놀랐다”며 “특히 ‘우리 이제 방학이다’의 경우 전문 카피라이터나 광고인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평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씨는 “청계광장의 손팻말 속 메시지는 명료하고 유머감각이 살아 있으며, 전달 방식 또한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쳐난다”며 “촛불집회의 카피들은 정말로 훌륭했다”고 말했다.

 

 

 

 

» 배지호, 김향남, 배가영씨 가족이 “한국 촛불들 힘내시라”고 외치고 있다. 파리= <한겨레21> 윤석준 전문위원

  

▶“온수! 온수”, “노래해! 노래해”…무마 하려는 경찰 단숨에 ‘무마’

 

이번 촛불 정국에서 이같은 문구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첫째,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이 한 단어, 혹은 한 문장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2MB, 너나 쳐드삼!’, ‘이명박, 넌 아~무것도 하지마!’,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 건 네가 첨이다!’ 같은 문구는 광우병 소와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을 단숨에 드러내고 있다.

과거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를 통해 ‘대박’을 터뜨린 한 전자제품의 광고와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하나씨는 “‘넌 아무것도 하지마’ 안에는 ‘네가 하는 게 다 마음에 안들고 화가 난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며 “정말 기발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둘째, 재치가 넘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경찰의 물대포가 쏟아질 때 “온수! 온수”라고 외친 것이 대표적이다. ‘온수’라는 말 속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에 대한 비꼼과 시민들의 비폭력 지향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유머스럽다. 경찰이 시위대를 무마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면 “노래해! 노래해”라고 하거나 “개인기! 개인기!”라고 외쳐 경찰을 거꾸로 단숨에 ‘무마’해 버렸다.

정철씨는 “좋은 카피란 출중한 능력과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분명 한계가 있다”며 “마음으로 쓰고, 생활에서 느낀 것을 유머와 재치 속에 녹였을 때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촛불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이 대체로 그랬다”고 설명했다.

 

 
» 서울광장과 태평로를 가득 메우고 촛불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6일 저녁 촛불을 밝혀든 채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쥐박이’ ‘이명박이 배후다…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되고'

 

 
» 촛불집회에 등장한 기발한 문구들. 사진 ‘구름과연어’ 제공.
 
셋째, 마케팅을 염두에 둔 카피와 달리 제약 없이 자유롭게 상상력의 날개를 펼 수 있었던 환경의 덕이다. 광고주나 광고회사의 입장, 소비자의 반응, 상품의 주 사용자를 밑바탕에 둬야 하는 광고 카피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 반면,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카피들은 이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거침 없이 ‘생각대로 하면 됐’다. ‘쥐박이’나 ‘이명박이 배후다’ ‘쥐를 잡자’ 등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넷째,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인터넷이라는 소통 창구를 통해 개방되고, 서로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끌어 주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 정국에서는 대체로 다음 아고라를 주축으로 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안됐고, 반론과 댓글 등을 통해 의견이 정제되는 수순을 밟았다.

정철씨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일방적으로 선보인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들이 더해져 많은 대중이 공감하는 최첨단의 카피가 생산됐다”며 “인터넷을 통해 소통과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 좋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했다.

김하나씨는 “촛불정국에 등장한 카피 대부분은 사람들이 들고 나온 손팻말을 보고 웃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감하는 문구들을 가져다 다른 사람이 활용하고, 발전시킨 것들이었다”며 “집단의 아이디어가 결합되면서 더 나은 카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 이명박 대통령=2MB, 쥐(박이)

쥐(박이)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oys, be MB Shuts.(소년이여, MB 입좀 막아라)
 쥐를 잡자, 쥐새끼!, Be the Cats.(‘쥐를 잡는’ 고양이가 되자) 
 미친 쥐에 경읽기:그래도 한다!
 2MB 고마쎄리 들가라마!
 미친소 미친교육 2MB OUT!
 미친 2MB, 너 때문에 우리가 미쳐!
 2MB, 너나 쳐드삼!
 국민건강권 팔아먹고 미국에 박박기고 국민들은 2MB 당신을 팔고 싶다
 우리집 햄스터가 2MB보다 똑똑하다(아고라당 아프리카지부)

  

 ▷ ‘배후세력론’ 일침

 이명박이 배후다
 촛불, 내 돈 주고 샀다. 스스로. 배후는 양초공장
뇌열이 개념이야, 배후세력=송아지
 2MB는 각오하라! 우리 이제 방학이다!

 

 ▷ 조중동 비판 

버럭! 님하! 저거 찌라시! 우리집 강아지는 조중동을 깔개로 주면 주인도 물어버린다!(찬조출연 : ytn, sbs, 매경, 한경)
 조선이 신문이면 똥파리는 독수리다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조중동은 쓰레기통에, 딴나라당은 다른나라에, 바퀴벌레는 세스코에

 

 ▷ 경찰의 과잉대응 및 굴욕협상 비판 등

 (바리케이트로 세워진 경찰차에 붙인 스티커 및 포스터 문구) ‘명박산성‘ ‘불법주차’ ‘닭장투어’
 물대포 안전하면 너네 집 비데로 써라!
 해고통지서 : 해고대상자 이명박 (주) 대한민국
이곳은 국경선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미국의 코리아주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 및 정책에 대한 불신

 미안하다. 실수했다. 내려와라!!
 대통령도 리콜이 되나요?
 전두환은 난폭운전 노태우는 초보운전 노무현은 안전운전 2MB는 역주행… (그러라고 준 권력 아닐텐데?)
 안돼. 하지마. 이명박 넌 아무것도 하지마!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건 니가 첨이다!
 이름은 명박, 관상은 쥐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명박이 점지하신 삼신할미 각성하라!
 업무태만 직무유기 저승사자 반성하라!
 

▷ 기발한 신문광고 문구들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입니다. (5월29일 <한겨레신문> 1면, ‘마이클럽’ 회원)
 대한민국이여, 가슴에서 불을 꺼내라! (6월2일 <한겨레신문> 7면, 82cook나사모, DVDPrime, miclub, ppcmppu, slrclub 회원들)
 국민을 소통을 하려고 하는데 불통이 되니까 울화통이 터집니다. (6월7일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소울드레서’ 회원)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촛불 앞에 꿇어라! (6월10일자 <한겨레신문> 7면, 82cook나사모, DVDPrime, miclub, ppcmppu, slrclub 회원들)
잘 들어라!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거다! (6월11일자 <한겨레신문> 7면, ‘마이클럽’ 회원)
 대한민국의 주인이 반대합니다! (6월24일자 <한겨레신문> 21면, 다음카페 ‘화장-발’ 회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6월25일자 <한겨레신문> 1면, 여성커뮤니디 ‘쌍코카페’ 회원 )
 우리가 또 다시 과거로 회군할 수는 없습니다. (6월25일자 <한겨레신문> 9면, 디시인사이드 ‘밀리터리 내부반’)
 한번은 경고지만, 두번은 퇴장입니다. (6월28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I Love Soccer’ 내 참 언론 지지모임)
 때리지 마세요. 당신의 국민입니다. 짓밟지 말아요. 당신의 주인입니다. (6월30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 재테크카페 ‘맞벌이부부와 아름다운 미혼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7월5일자 <한겨레신문> 1면, 다음카페 ‘부산맘 아기사랑’) 

 

 

 

 

 

 

 


 
»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72시간 촛불집회 이틀째인 6일 오후 서울 동십자각 인근에서 한 가족이 촛불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6.10 민주항쟁 21돌 기념일인 1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서 덕수궁을 지나서까지 거리를 가득 메운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100만 촛불 대행진’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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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 이야기 하나

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 이야기 하나

[공공성 지역투쟁] 신명호, "지역투쟁 실천방안 새로운 게 없다"

유영주 기자 www.yyjoo.net / 2008년05월26일 8시56분

23일 노동전선 정책토론회에 대전지역 지정토론으로 참석한 신명호 활동가는 주발제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가운데, 제시된 지역운동의 실천 과제가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토론을 펴 눈길을 끌었다.

 

▲  신명호 활동가. 과학참터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참터에서 활동중인 신명호 활동가는 “왜 이제 와서 지역운동을 이야기하는가. 지역운동은 이전부터 이야기해왔고 여러 사람들이 해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라며 과잉된 지역운동 논의 분위기를 환기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우선 이경수 노동전선 대표의 발제문 ‘지역운동의 방향과 실천방안’의 ‘관점과 방향’ 부분(1.2장)과 관련, 다섯 가지의 토론을 펼쳤다.

 

첫째,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과 관련, 지역운동이 중앙 차원의 운동과 분리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신명호 활동가는 두 가지 실패를 드는데, 민주노동당의 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와 산별노조 운동의 실패가 그것이다. 신명호 활동가는 “최근 이 두 가지가 다 안됐으니 새로운 목표를 찾자는 것이고, 그래서 상실된 운동의 목표를 지역운동이라는 모호한 단어에 집약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두 번째로 “지역운동은 지역사회운동인가, 지역정치운동인가, 지역노동운동인가”를 따졌다. 신명호 활동가는 “대전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와 노조 등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지역운동이 하나가 아니며, 이 세 가지는 분명히 구분이 되고, 주체도 실천방식도 다르다”고 짚었다. 재생산과 공공서비스 영역은 지역정치운동에 가깝고, 대안적 양식을 모색하는 것은 지역사회운동이며, 지역 미조직 노동자 조직 문제는 지역노동운동으로 제각기 다른 실천 방법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어서 “중앙 중심의 운동이 갖는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역운동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중앙 중심적 운동이 어떻게 노동운동을 고사시키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현장활동가가 정당과 상급단체로 가면서 생기는 공백, 직업적 활동가들의 관료화에 따른 운동의 퇴보, 노동계급의 분화로 인한 조직노동자의 보수화, 새로운 노동 활동가가 재생산 되지 않는 문제 등을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이런 점을) 고민해보지 않고, 잘 안되니까 지역운동을 해보자는 것인가. 각각 정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네 번째 질문은 “‘노동과 고용의 지리학’을 지역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신명호 활동가는 “자본 발전은 원래 불균등하며, 발전하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내부 식민지가 생기게 마련이며, 지역 경쟁을 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고용을 지역에서 창출해야 하는가. 과연 이 문제를 지역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행정도시 건설 등은 ‘노동과 고용의 지리적 분포와 관리’ 즉, 국가적 차원의 전략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관점과 방향’의 마지막 질문으로, 노동조합이 지역 사회 차원에서 새로운 시도,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체제를 만들 수 있는가를 따졌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이 사회의 전 영역을 식민화하는 상황에서 이 생산 소비 메커네즘의 소멸은 곧 임금노동의 소멸이자, 고용되지 않고서도 지역사회 차원의 생활이 가능한 것임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 지역을 사회주의화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지역운동을 제기하는 한 이러한 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준비할 수 있는지를 토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계속해서 신명호 활동가는 이경수 대표의 발제문에서 밝힌 ‘실천과제’(3장) - 지역노동운동 차원의 실천(지역투쟁 강화, 지역본부 강화, 지역중심 산별노조)과 지역차원의 연대(지역민중전선의 구툭과 민중투쟁, 사회공공성 강화투쟁) - 가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일축했다.

 

신명호 활동가는 “지역 운동을 끌고갈 수 있는 주체와 지역본부가 있다지만 그들이 기획하는 사람들은 아니며, 구심점이 되는 활동가조직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정작 지역 차원으로 잘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며, 이는 대중추수주의적이라고 냉정하게 짚었다. 나아가 "노조 스스로가 지역운동에 대한 내용과 목표를 갖고 있지 않는다면 (네트워크 제안도) 일회성 협의체 구성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명호 활동가는 자신이 속한 과기노조의 활동과 과학기술과 관련한 지역사업을 소개한 뒤 앞으로의 방향과 관련 △활동가조직의 건설과 현장조직과 소통할 수 있는 지역본부 운영 실천방안 △지역사회운동과 지역정치운동의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노동조합의 전략 마련 △지역운동과 중앙 운동의 상승작용을 위한 단계적 실천 방안과 전략적 집중점 마련 등을 꼽았다.

 

현재 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네트워크나 협의체가 성장해 나가고, 거기에 계급적 관점을 관철시키고, 우리가 견인시키고 저들도 변화해 나가고. 그러려면 우리의 중심성과 계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공공성 투쟁은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전 지역의 경우 “당장 협의체도 없고, 민주노총 대전본부도 안 만들어진다”며 어려운 현실 상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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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③

III.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대안세계화, 그리고 국제주의

 

1. 냉전 이후의 세계와 국제주의의 새로운 소생

 

  냉전의 종식과 금융세계화의 추동, 그리고 신자유주의 압력의 전지구적 확산은 분명 기존의 사회운동의 위기이자 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전면적인 위협이지만, 동시에 이전까지 국제주의적 연대를 억압해온 조건들이 완화되고 새로운 연대의 조건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중심-주변을 나누던 분명한 분할선들이 약화되고 중심부 내의 주변부적 특성의 증가, 주변부 내의 일부 소수 지역에서 부의 집중에 따라 중심부적 특징의 등장 등이 나타나며, 또한 냉전 시기 정치적 이유하에 추진되어 온 발전주의가 중단되면서 국가의 역할의 균열과 동요가 발생하고, 코포라티즘적 보호의 틀이 무너지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EU의 등장처럼 새로운 지역주의의 등장, 그리고 전쟁의 형태 변화 등에 따라 과거의 쟁점의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중요해지고 있다.
  변화된 조건 하에서 국제주의의 소생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문제의 지형이 20세기를 우회해 다시 19세기적 조건 속에서 초민족적 연대의 형성가능성이라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20세기를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기보다 사회주의 국가들사이의 국제적 연대(그런 점에서 어떤 경우에는 매우 보수적 함의의 국제관계의 외양을 띠기도 한)였던 한계를 넘어서 다시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는 경계들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동일성의 위기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그 자체 새로운 국제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새로운 국제주의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각종 인종주의, 배타주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의 표지이다.
  이는 한편에서 이전에 사회적인 동일성을 형성하게 만든 유사-동일한 공통지반들이 붕괴해 가면서 사회적 동일성의 조건들은 취약해지는 반면, 국가적 동일성의 취약화에 대한 반사물로서 동일성 형성의 요구는 오히려 강해지는 역설 속에서도 관찰된다. 국가적 동일성의 불가능성이 커지는 속에서 다른 동일성에 대한 욕구는 강화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국가를 넘어서 초민족적 동일성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하적인 배타적인 동일성의 형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3. 대안세계화운동

 

(1) 대안세계화 운동의 등장

 

  2000년대 들어서면 사회운동의 위기를 넘어서서 이전과는 다른 전지구적 범위를 아우르는 사회운동이 등장하게 되고, 여기에 스스로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가장 두드러진 계기는 2001년 2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이었다. 이 세계사회포럼은 정당조직을 배제하고 중앙집중성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조직구도를 보여주었으며,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기존의 모든 운동 유형들을 결합하여, 지방, 지역, 국가, 초국가적 형태의 다양한 조직을 포괄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조직들의 기반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재난과 맞서 싸운다는 공동의 목적과, 서로에게 닥친 우선과제들을 서로 공히 존중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중요한 점은 남(제3세계)과 북(선진국)의 운동을 하나의 단일한 틀 속에서 결합되었다는 것이었다. 세계사회포럼 결성을 주도한 비아캄페시나와 아탁이 남과 북의 운동을 각각 대표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사회포럼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 접근방식을 달리 하고 있다. ①세계화에 대한 이론 분석  ②이행과정의 구도를 전지구적 사고하는 국제주의를 강조한다는 점 ③대중 창의성과 주도성 중심의 연합적 사고를 보인다는 점 ④소유의 문제를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점 ⑤집권의 문제를 전술적으로 파악한다는 점 ⑥대중 구성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 ⑦정파/현장을 넘어서는 연합적 조직틀을 제시한다는 점 ⑧경제/정치/사회 혁명의 구분을 지양한다는 점 등이다.
  2006년에 다중심적 형태로 전개된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체계적 선언문의 발표와 네트워크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관찰되었다. 선언문 중 대표적인 것은 “민중의 반둥회의”라는 이름 하에 반둥회의 50주년 기념으로 말리의 바마코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서 사미르 아민의 주도로 80여명의 대안세계화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발표한 ‘바마코 호소’였다.
  이 바마코 호소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았다. ① 경쟁이 아닌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② 시민권과 양성의 평등을 전적으로 옹호한다. ③ 모든 다양한 구성원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문명을 구축한다. ④ 민주주의를 통한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 ⑤ 자연·자원 및 농지의 시장화를 거부한다 ⑥문화적 산물, 과학적 지식, 교육, 의료의 상품화를 저지한다 ⑦ 제한 없는 민주주의, 사회진보, 각 나라와 개인의 자율성을 포함하는 정책을 촉진한다 ⑧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국제주의와 남-북반구 민중의 연대를 강화한다.
  물론 대안세계화 운동에는 단일한 세력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질적인 세력들이 끼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안세계화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사미르 아민은 현재 대안세계화운동에 결합해 있는 세력들에는 크게 네가지 상이한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세 가지는, 첫 번째 부유한 사회의 무기력 대안세계화 운동, 둘째 가난한 사회의 무기력한 대안세계화 운동, 셋째는 중산층의 대안세계화 운동이다(이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고민 없은 없고, 남반구에 대한 고민도 크게 없는 세력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세계사회포럼에는 가장 많이 참석하며, 향후 운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립되는 네 번째 세력은 진보적 대안세계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 방향을 둘러싼 새로운 모색

  대안세계화 운동의 출현과 더불어 기존의 사회운동 내에도 새로운 모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운동의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가 사회주의에 대한 표상의 변화와 당의 위상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중 하나는 프랑스 내의 제4인터내셔널계의 트로츠키 조직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이다. 다니엘 벤사이드가 주도하는 이 조직은 가장 두드러진 유럽 내 대안세계화운동 세력인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PRC)이나 프랑스에서 등장한 아탁 등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LCR의 변신 방향은 전위정당에서 사회운동적 정당으로 전환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6년 이 조직의 기관지 "공산주의적 비판"에서는 ‘전략’ 논쟁이 전개되었다(Artous, Durand, Sitel, Callinicos 등이 개입). 주요 논지를 담은 벤사이드의 글은 기관지인 공산주의 비판에 게재되었는데, 그 번역본이 사회주의노동당 계열 기관지인 IS에 게재되었고, 제4인터내셔널 기관지인 International Viewpoint에 그대로 다시 게재되었다.
  벤사이드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전략논쟁이라는 구도 하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인데, 벤사이드는 전지구적 전략과 특정 지역내 권력장악과 관련된 ‘제한된 전략’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즉 전지구적인 정세와 지역적 정세를 구분하는 동시에 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전략이란 복제하고 따라야 하는 ‘모델’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서 나오지만 새로운 경험과 의외의 상황에 개방되고 수정될 수 있는 ‘전략적 가정들’로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벤사이드의 논의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주도권을 평의회적 전통을 통해 복원시키려 하는 것이다. 벤사이드는 대중적 주도권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들을 중시하여, 니카라과 혁명에서 ‘국가 평의회’ 억압 비판하고,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예산 확정 위한 시정부기구(선거로 선출)과 참여위원회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중시하는 등의 논지를 제기한다. 이행적 요구들에 대한 강조 또한 그것이 도구적 위상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사이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의 언어의 물신주의 벗어날 필요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는 정치체계의 근본적 단절과 차이를 강조(특히 꼬뮨적 형태에 의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용어가 낡았기 때문에 이를 꼬뮨, 소비에트, 평의회, 자주관리로 이해하여 본래의 정신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벤사이드의 논의에서 중시되는 것은 당의 역할이다. 벤사이드는 당이 국가에 포섭된다는 점을 살펴볼 때, 그 동형성이 자본의 구조와 거기에 종속된 노동자 운동의 구조 사이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금 투쟁과 고용의 권리는 자본/노동 관계에 종속된 투쟁인데, 정치적 영역에서 당 또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 관점에서 벤사이드는 전위당의 관점을 벗어나서, PT, 공산주의 재건당, 포트투갈의 좌파 블록의 강조한다. 이런 당의 조직 형태는 미리 정해져있지 않으며, 대중적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요소들로서, 정세에 따라 조직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동맹이 누구이며 동맹의 동학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따라 조직의 존재 형태가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트워크로 조직된 유동적 조직형태와 친화성을 갖는 집단의 논리(헤게모니 논리에 대한 반대로서)를 수용하는 것은 아닌데, 이런 종류의 유동성은 현대 컴퓨터화한 자본, 유연적 작업, ‘유동성 사회’의 완벽한 동형성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우리가 국제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보편성의 재구축의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분할의 선을 넘어서 새로운 보편성의 지평 속에서 이 분할의 선을 극복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과 주변 사이의 공간적 분할, 그리고 성차, 인종, 지식의 분할선이 핵심이 될 것이고,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는 다시 이런 분할의 재생산의 중심축에 놓여있다.
이 때 특히 강조할 점은 이는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또는 동일성의 다차원성을 통해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동체 내의 ‘관계’의 전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접근을 제기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를테면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 다시 말해 어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동체 일반을 변혁하려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대중의 공포", 542쪽) 


4. 동아시아

 

동아시아는 국제주의의 연계를 막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국제주의의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중적 국제주의의 논의가 봉착한 난점은 대립적 역사, 그리고 국가규모의 상이성, 그리고 위계적 경제구조 등의 이유 때문에 수평적 논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는데, 여기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 보면, 동아시아 내에서는 이주노동과 신자유주의라는 현재적 쟁점에서부터 출발해, 장차 20세기초 역사적 경험으로 나아가는 구도 속에서 함의를 키워갈 수 있는 영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장기 21세기와 국제주의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세계에서 국제주의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지녀온 자본주의 역사와 변혁에 대한 지배적 형상의 재구성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배적 형상의 교체는 고민의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렇게 고민의 무대가 세계로 확대되면 우리는 장기21세기라는 이행의 시대라는 관점에 서게 된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기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유럽세계경제의 형성과정으로 보는 관점과도 유사한 관점이 된다. 이럴 경우, 국제주의 또한 좀 더 넓어진 전지구적 차원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장기21세기라는 사고는 첫째로, 이행이 장기간의 세계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로, 이 이행은 사전에 예정된 필연적 경로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통과점과 부정적 통과점으로 분화될 수 있으며, 그 긍정적 통과점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이 운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게 된다. 셋째로, 기존의 이행의 역사에서 그 세계적 확장은 전체 동시적 변화 아니라 헤게모니 지역으로부터 파급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 또한 세계적 변화가 세계의 동시적 변혁으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중시할 수 있다. 넷째로, 국가가 이행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국가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고화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이행은 그 반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현재의 이행의 시대에 나타나는 구조적 위기가 자본주의 자체 내의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여섯째는 이행에서 소유제의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점, 일곱째는 이행의 시대에는 삼중의 위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수취구조의 위기, 국가의 위기(또는 통치의 위기),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위기이다.
장기 21세기는 지금까지 정세적으로 계급을 계급으로 일시적으로 통일시켜온 다양한 동일성들 자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로부터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그리고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을 통해 평등-자유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사고를 확장해 가야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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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국가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②

II.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여기서는 역사적 자본주의 속에서 역사적으로 유지·변천해 온 마르크스주의가 국제주의라는 쟁점을 어떻게 제기해 왔고, 또한 어떤 아포리아들에 부딪혀 왔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늘 국제주의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 제기되어 온 것은 아니고, 당시의 매우 구체적 정세와 연관된 구체적 쟁점 속에서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는 국제주의의 쟁점이 국가인가 반국가인가라는 단순한 쟁점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넘어서는 통일적 경향을 형성할 수 있느냐라는 쟁점으로 등장했고 매시기 이는 매우 구체적 정세 속에서 제기되는 쟁점이었기 때문에 그 대응 방식과 쟁점은 시기별로 매우 상이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다루는 쟁점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의 모든 쟁점을 다 다루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중요한 주목되는 쟁점들을 다룰 것이다.

 

1. 프랑스혁명과 보편적 권리

 

  역사적으로 재해석된 프랑스혁명은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자체가 민중혁명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하나의 이유와,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보편적 권리라는 쟁점이 본격화되었다는 또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결합되는 지점은 보편적 권리로서 ‘평등-자유’라는 쟁점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평등은 자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며 자유는 평등이 있을 때만 보장된다는 자명한 논리로서 ‘평등-자유’는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권리가 특정 공동체의 일정한 경계 속에 봉합된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한계가 늘 그 평등-자유의 논리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평등-자유’는 그 자체로 늘 진정한 국제주의적 확장을 가능케하는 경계부정의 논리로 작동한다.
  현실에서 이 ‘평등-자유’ 테제를 한정된 공동체 속에 유예하고, 그 다음 단계로 평등과 자유를 분리 시킨 후 평등과 자유의 함의를 보수적으로 한정하는 논리가 작동하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게 된 조건과 무관하지 않은 유럽의 세력균형이라는 ‘보수주의적 국제주의’(또는 국가간관계의 현실주의)와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지양 속에서 자리잡은 영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영향력 확대라는 맥락 속에서였다.

 

2. 「공산주의자 선언」과 「독일이데올로기」의 계기 --계급의 등장, 그리고 지배의 비대칭성

 

  보수적 또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다른 노동자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쟁점이 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출현과 더불어서였다. 「공산당선언」은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국제주의가 ‘형제들의 유대’라는 모호한 구호로부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로 넘어가게 됨을 선언하였다. 국제주의는 이제 초계급적 언사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계급의 ‘발견’과 더불어 계급으로 분할된 세계 속에서 특수하지만 그 때문에 매우 보편적인 함의를 지니는 담론으로 등장하게 된다. 「공산당선언」은 한편에서 자본에 의한 세계의 통일화의 경향과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계급의 궁핍화와 분할이라는 비대칭성(그렇지만 또한 대칭성)의 쟁점에서 출발하고, 이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주의의 책임을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 안기는 것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논리를 전개한다(즉 자본의 국제주의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의 조건이며, 반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달성되어야 하는 목표로서).
  그런데 이 「선언」의 시기에는 매우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상이한 논리들이 공존하고 있고, 그것이 사실상 국제주의의 난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선언」은 한편에서 생산의 사회화와 노동자계급의 궁핍화라는 논리를 통해 노동자계급 동질화의 주장을 전개한다. 이것이 사실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 된다. 그렇지만 이보다 앞선 시기에 같은 저자 중 한 명인 엥겔스의 주요한 저작인 "영국에서 노동자의 상태"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묻혀버린 쟁점인 ‘아일랜드 노동자’와 그에 의한 영국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열이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마르크스에게 덜 두드러졌고, 엥겔스에 의해 훨씬 더 부각된 이 아일랜드 노동자라는 쟁점은 후기 엥겔스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지는 계기였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쟁점이며, 자본의 통일성과 노동의 분열이라는 비대칭성에 대한 최초의 주목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주노동자라는 쟁점은 그리 사소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선언」에서 노동자계급 통일성의 두 가지 논리인 생산의 사회화와 노동자계급의 궁핍화는 현실 속에서는 세계경제의 공간적 분할을 따라 지역적으로 상이한 지역에 배정됨에 따라, 국제주의의 형성을 막는 지역적으로 노동자계급 존재형식의 공간적 분리와 그에 따라 사회운동의 대응형태의 지역적 이질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계급’은 발견되고 등장하자마자, 국가와 인종에 의해 분할된 존재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이러한 계급의 통일성과 국제주의라는 쟁점은 아포리아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제1인터내셔널과 아나키즘 -- 지배의 비대칭성과 국가장치

 

  「선언」에서 "자본"에 이르는 과정은 자본의 추상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노동자의 내부적 분할의 동학을 설명하는 논리를 추가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동시에 이 시기 마르크스는 차티즘에서 출발하여 각종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지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운동의 중요성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한 쟁점 중 하나가 아나키즘의 문제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프루동주의에 대한 대립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바쿠닌주의에 대한 대립으로 제기되었다.
  두 경우 모두 아나키즘이 국가를 무시하는 또는 국가를 우회하는, 그럼으로써 결국 국가의 물질적 존재성과 그 작동을 해체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을 문제삼는 것이 쟁점이었다.
  두 경우 모두 국가는 계급 재생산의, 그리고 자본주의적 축적의 생산과 재생산의 필수적 고리임이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외부’라는 사고, 또는 국가를 우회한다는 사고는 결국 국가를 넘어서지 못하고 매우 국가적인 구도 속에서 진행되는 계급의 재생산을 다시 반복할 뿐임이 두드러지게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파리코뮨과 그에 수반해서 제기된 ‘국가장치’라는 쟁점, 그리고 국가의 ‘전화’라는 쟁점 속에서 드러난다.

 

4. 제2인터내셔널과 1차대전 -- ‘국민적 동일성의 형성을 넘어’

 

  제1인터내셔널에서 제2인터내셔널로 이어지는 시기는 운동의 발전임과 동시에 운동에 새로운 질곡이 발생하는 시기였다. 그것은 ‘국제노동자협회’라는 개인들의 연합체 수준의 운동이 <독일사회민주당>이라는 매우 잘 조직된 정당에서 출발해 전세계적 정당조직의 기반을 가지는 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진정한’ 인터내셔널로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국가적’ 특성보다는 ‘초민족적’ 성격을 강조한 제1인터내셔널이 민족당에 기반한 민족당들의 국제적 연합체인 제2인터내셔널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국가간체계 내의 모순들이 사회운동들 사이의 모순으로 곧바로 이전될 가능성을 늘려간 시기이기도 하다.
  모순은 1차대전이 발생하면서 증폭되었고, 전쟁공채에 동조하는 좌파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된 ‘조국방위’ 구호가 결국 제2인터내셔널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1차대전이 촉발되자,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태도를 놓고 분열되었는데, 다수가 자국의 운동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데 동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국제주의를 붕괴시켰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결성된 찜머발트 좌파는 국제주의를 다시 내걸었고, 이는 러시아 혁명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순 속에서 등장한 1차세계대전은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에 새로운 계기를 던져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시기는 ‘제국주의’라는 시대 규정을 둘러싼 논쟁과 더불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피압박인민들로 국제주의의 전선이 확대된 시기였다. 이는 19세기 영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전지구적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독해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세가지 쟁점이 동시에 시기적 규정성으로 제기되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위기라는 쟁점, 두 번째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쟁점, 세 번째는 평화라는 쟁점이었다. 사회주의혁명과 식민지해방운동이 같은 동시대적 과제로 제기될 수 있던 것이 이 시기 국제주의의 매우 독특한 맥락이었다.
  「선언」에서 제기되었으나, 구현되지 못한 국제주의가 현실성으로 등장한 것은 이 시점이었는데, 그 이유는 「선언」이 강조하였지만 공간적으로 실현이 분리되어 나타난 특징들이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모순의 응축 속에서 공간적으로는 상이한 맥락이 작동하더라도 전지구적으로는 하나의 전선을 형성해 낼 수 있는 조건이 등장하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 쟁점들을 정리해 낸 방식은 상이했고, 그리고 이런 모순들이 러시아혁명과 ‘사회주의 혁명’관을 형성한 배경이 되었지만, 회고해 볼 때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라는 쟁점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지게 평화와 소비에트라는 매우 중요한 쟁점과 조직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5.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 -- ‘사월테제’와 「임박한 파국」의 대립

 

  20세기초 세계자본주의의 모순은 여러 가지 형태의 이른바 ‘사회주의혁명’으로 귀결되었다. 그 모든 ‘사회주의혁명들’은 모두 세계혁명으로 발언되었고, 추진되었지만, 그 과정은 세계혁명으로 귀결되지 않았고, 일국사회주의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사후적으로 이들 혁명은 혁명후 국가들을 세계체계의 주변부에서 반주변부의 위치로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고,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 후 이들 국가를 다시 세계경제에 핵심적 동력으로 다시 ‘접궤’(接軌)시키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끝맺음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다음 부분에서 이야기할 미국헤게모니의 확립과정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데, 이 과정을 통해 20세기적인 국가주의-발전주의쌍이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었고, 여기에는 이를 고착화하게 되는 내적으로 대립적인 상이한 두 가지 사고의 대립이 공존해 있었다. 러시아혁명의 과정에서 보자면 이는 레닌의 사고 속에서 나타나는 ‘4월테제’와 「임박한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이의 대립 속에서 드러난다.
  후기 레닌에게서 나타나는 이행기론의 쟁점은 세 가지 상이한 저작들 속에서 등장한다. 첫 번째로 ‘사월테제’는 소비에트라는 쟁점을 제기하며, 두 번째로 "임박한 파국"은 이행의 물적 토대라는 쟁점을, 세 번째로 "국가와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정치와 경제” 같은 글들은 사회주의 하의 모순의 문제, 그리고 국유화와 사회화의 구분이라는 쟁점을 제기한다.
  여기서 두 번째 저작인 "임박한 파국"은 다른 저작들과 다소 모순적인 관계에 놓인다. 특히 ‘사월테제’는 소비에트를 특권화하고, 당은 중심적 위치에 놓이지 않고, 이에 적합하게 당의 사업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월테제’ 이후의 레닌의 저작들은 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성장전화’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사월테제’는 이례적인 저작이며, 사실은 이 테제가 발표된 당시나 그 이후 모두 체계적인 오해의 대상으로 남았던 저작이다.
  ‘사월테제’에는 정리해 보자면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라는 구호가 핵심이 된다는 점, 둘째로 당의 위상은 소수파이며, 소비에트에 대한 지지에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 셋째로 국유화에 부차적 중요성만 부여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사월테제’이후 10월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볼세비키의 현실적 집권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월테제’의 쟁점은 뒤로 밀려나면서 오히려 "임박한 파국"의 문제제기가 전면에 부각된다.
"임박한 파국"은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민중민주혁명의 시기를 명시화하는 방식으로 독해되었다. 여기서 레닌은 "두 가지 전술" 시기와 다르게 이행강령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핵심은 조건이 붙은 국유화 강령이었다. 그것은 세 측면의 내용을 갖는다. 첫째는 독점자본의 국유화가 사회주의로 가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는 점, 둘째는 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최소강령에서 이행강령으로 전환되는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들로 인정된다는 점, 셋째는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한 ‘성장전화’론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규정된 레닌의 이행기론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일정한 비판의 준거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주의로 성장전화와 여기서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불가피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정한 선긋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 레닌의 논지는 우클라드론의 전제에서 나온 결론들이었는데, 쟁점은 그럼 국유화란 무엇인지, 국유화된 부분은 사회주의적인 우클라드인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특히 ‘사월테제’와 더불어 수면위로 부각되었던 이행기의 ‘정치’라는 쟁점은 이 시기에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는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물론 이후 레닌이 줄곧 강조했듯이 국유화와 사회화는 구분되며, 현실 사회주의 하에서 사회화의 과제는 미해결로 남아있다는 쟁점이 남아있음에도, 국유화 우위의 사회주의 해석이 일반적으로 정착되는 효과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구도에서 볼 때 국독자론은 사실 일국일공장제의 기반이 될 수 있었는데, 전국에 대한 경제통제가 가능하다는 생각, 그리고 이는 전 산업이 아니라 일부 핵심 부문만 국유화하더라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의해 이 구도는 강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네프 시기 들어 이데 대한 일정한 사고의 전환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기에 소비에트에 대한 강조가 복권되지는 않았다. 이 시기에는 혁명이 강요한 자기제약이 작동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단 일정에 오른 혁명을 실패로 돌릴 수 없다는, 그리고 장악한 국가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기 제약이었다. 그 때문에 ‘사월테제’는 부활하지 않고, 대신 현실적 문제에 대한 조치로 당내 정풍과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강조가 등장한다. 그 결과 관료제의 문제는 모호하게 남으며, 잉여가치 전유 메카니즘의 질적 구조의 문제, 또는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노동 분할의 내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은폐된다. 결국 소비에트의 우위 대신 당이 지도하는 대중의 재교육 사업이 중요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다 보니 대중 조직과 관련해 ‘당,’ ‘소비에트’, ‘노조’ 셋이 동시에 문제되고, 이들 사이의 관계 또한 문제가 되었지만, 결국 당의 우위 하에 다른 두 가지 조직의 문제제기가 봉쇄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1920년대 초반의 구도에서 대중조직의 발전의 제약은 세 가지 조직 발전의 억압으로 나타난 바 있는데, 소비에트, 레드 페트로그라드, 수병반란이 그 세 측면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중국혁명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는 1927년 마오의 「호남성 농민운동 조사보고」와 1930년대말 이후의 신민주주의론 사이의 대립에서 유사한 형태로 발견된다. 마오에게 잊혀졌던 이 쟁점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과 더불어서인데,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 「호남성 농민운동 조사보고」가 주요 저작으로 다시 광범하게 학습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문화대혁명의 국제적 영향력의 전파도 이런 점에서 다시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여기서 잠시 중국혁명의 길의 독특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후 동아시아에서 국제주의의 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과정의 경험에서는 기존의 국가의 위기 속에서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여 짧은 정치적 이행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구국가의 붕괴 이후 사실상의 국가부재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고, 그 속에서 새로운 국가보다 먼저 오히려 당이 건설되었고, 이 당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갔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여타 사회주의 정당에 비해 대중적 토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왜 중국에서 당의 존재가 국가의 존재와 거의 동일시 되는지, 중국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위기가 출현함에도 왜 당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기 어려운지를 설명해 준다.

 

6. 미국헤게모니와 발전주의

 

  19세기말의 영국식 자유주의의 위기는 20세기 30년대 미국의 뉴딜과 더불어 미국식 20세기 자유주의가 재탄생하면서 극복되었다. 사실 미국이 새로운 헤게모니로 부상하는 것은 미리 예측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영국 중심의 자유주의가 노골적인 유럽중심주의를 드러내는 ‘문명론적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20세기 미국자유주의는 전세계의 ‘미국화’의 가능성과 필수성을 역설하는 ‘발전주의적 자유주의’로 등장한다. 그 발전의 단위는 국가가 되며, 그 국가의 관리학으로서 사회과학의 포괄적 중요성은 미국 헤게모니와 더불어 증가한다. 19세기까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의 구체적 질서가 없이 외형상 ‘세력균형’이라는 보수적 국제주의나 자유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내맡겨져 있던 것에 비해, 20세기는 명시적으로 UN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정치’질서를 만들어 냈다.
  그 영향은 생각보다 매우 광범하였다. 한 예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혁명과정에서도 그 영향은 두드러지는데, 중국 혁명의 경우에도 1930년대 줄곧 관철되어 나타나던 세계혁명적 관심이 1940년대 들어서는 줄어들면서 대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증가와 더불어 일국사회주의의 가능성에 대한 언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만큼 발전주의-국가주의 담론은 사회주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후 이런 ‘미국화’의 영향력은 전지구적으로 폭넓게 확산되며, 그것이 결국 20세기를 넘어선 이후 국제주의의 재형성의 질곡으로 작동하게 된다.
  또한 냉전시기 이후에도 이런 미국 중심의 발전주의적 질서의 재편은 매우 중요해졌는데, 심지어 이러한 상황 속에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제3세계주의조차 국제주의라기보다 국가주의에 핵심적으로 포섭된 부분적 국제주의로서 나타났다. 다만 이런 제3세계주의는 중심-주변 문제를 징후로서 포착해낸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7. 평화를 향한 대장정

 

  사회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모순은 처음에 두드러지지 않다가 냉전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소련의 국가 존속의 논리에 세계혁명의 논리를 종속시켰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 정점은 군사적 논리로 혁명의 논리를 대체하는 데서 발견되었다. 미국의 위협론에 대응하는 논리로서 핵개발이 정당화되면서 이 문제는 좀 더 두드러졌다.
  2차대전 종전 후 핵무장과 핵무기에 대한 반대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의 핵무장이었다.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였고, 미국 핵보유에 대한 억지력을 갖기 위해 핵무장을 정당화하였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핵폭격 위협에 노출된 중국 또한 핵개발을 추진하였으며, 중소분쟁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핵보유의 논리를 더욱 정당화하여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여기서 모두 핵보유는 ‘국가생존’의 차원에서 정당화되었으며, 소련의 핵보유는 소련이나 소련 외부에서 모두 사회주의 운동이 핵무장에 반대하는 싸움을 전재할 수 없는 자기무력화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위’해야 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기파괴적이었다. 핵보유는 결국 국가간체계의 논리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깊숙이 내장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였으며, 국가권력의 논리가 대중보다 우위에 서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문제는 핵보유가 대중운동을 희생하는 대가로 국가를 생존시키고 국제주의를 억압하는 계기이자 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국가권력의 지속성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더라도 운동을 소생시키고 국제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봉쇄되었던 것이다. 세력의 비대칭성을 운동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체계의 동학을 통해 쉽게 세력균형의 틀 속에 들어감으로써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커졌던 것이다. 그 가장 극단적 사례로서 초대형 수소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짜르 봄바’의 개발은 그 역설을 가장 잘 보여준다. 짜르봄바는 소련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결국 체르노빌 사건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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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①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백 승 욱 (중앙대 사회학과)

 

I.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어느 때보다 국제주의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개별 국가의 틀 속에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늘어가고, 국가들 자체가 문제로 부각되고 있으며, 각종 분할의 선들이 늘어나면서 단결과 통일을 향한 운동의 전환이 국제주의의 이름의 새로운 보편성의 요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런 요구와 일치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치되는 모습으로 나타나, 현 시기에 국제주의를 향한 집단적 움직임은 전혀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을 바꾸어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구호일 수밖에 없는데,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통해 국제주의의 쟁점이 어떻게 형성, 변화되어 왔으며, 현재 국제주의가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본론에서 논의할 핵심적인 쟁점들을 사전에 정리해 두고 시작하기로 하자.
  우리가 국제주의를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더 큰 단결과 통일의 틀로 사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주의를 ‘국가에 대한 반대로서 반(反)국가 일반’의 언사라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에 반대하고, 국가를 거부하는 사고가 그 자체로서 국제주의로 표상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국제주의의 쟁점은 사실 매우 복잡해지는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보자면, 국제주의가 쟁점이 되던 시기에 중요하게 부각된 바 있던 쟁점 중 하나는 아나키즘과에 대한 반대였고, 마르크스주의보다 훨씬 더 반국가의 입장에 선 아나키즘이 현실적으로는 더 국제주의적이었다고 할 수 없는 점도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문제가 이처럼 복잡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국제주의는 국가라는 쟁점,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분할이라는 쟁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앞서 나가서 다시 말해 보자면,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국제주의,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자본의 분할에 대응한 ‘프롤레타리아’ 통일 경향을 향한 언사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분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그림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쟁점이다.
  우선 문제는 노동에 앞서 그보다 먼저 훨씬 더 ‘국제주의적’인 것은 자본이라는 점에서부터 나온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벌어지는 자본축적은 이미 장기16세기에 걸쳐 세계경제로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등장하던 시절부터의 끝없는 자본축적의 특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자본의 국제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에 앞서 세계를 통일적으로 구성하고 지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 축적의 범위는 늘 초국경적이었다.
  그런데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초국경적이라는 자본 축적의 일반적 특성은 구체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른 교차점을 만나 복잡해진다. 그것은 영토주의적 경향이 매개되면서 나타나는데, 영토주의적 경향의 매개 없이 자본은 진정한 초민족적 자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를 향한 자본들간의 경쟁 때문에, 대자본들은 세계경제에서 더 큰 몫을 향한 싸움을 벌이고, 이 싸움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자본들간의 경쟁은 더 강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 정치․군사적 투쟁을 항상 수반하였다. 따라서 자본의 초국경적 팽창은 늘 영토주의적 논리와 자본주의적 논리의 변증법적 교직 속에서 진행되어 왔으며, 이것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독특성을 부여했다. 자본의 국제주의는 늘 자기 자신의 한계로 작용했는데, 특히 헤게모니 국가에 의해 새로운 자본축적과 국가간체계의 질서가 수립된 시기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초국경적 자본축적이 작동하지만, 그 헤게모니의 쇠퇴와 새로운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합이 벌어지는 시기에 들어서면 초국경적 자본주의의 논리는 개별국가들로 이루어진 국가간체계에 기반한 영토주의의 논리와 충돌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본축적의 전지구적 위기나 또는 자본축적의 지역적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정세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자동적으로 국제주의를 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의 국제주의가 자본의 본성상 출현하는 것이었다면,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달성해야할 목표로서만 표명되고, 그리고 그것이 달성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지양임을 표명하는 것임을 뜻하였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대칭적이지 않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자본과 노동은 거울상이 아니고, 자본의 직접적 부정이 노동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노동은 자본과 동일한 형태의 국제주의를 형상화해 낼 수는 없다. 이는 ‘자본의 추상화, 노동의 구체성’라는 비대칭성의 문제로 나타난다(이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대중들의 공포: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 도서출판b, 2007, 297쪽을 볼 것). 이 두 쌍은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된다. 자본은 자본일반이라는 특징 속에서 추상화됨으로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자본축적의 조건이 재생산되는 것은 국가를 통해 그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이 통일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자본의 추상화와 통일성은 그 축적의 측면과 지배의 측면에서 모두 관찰된다. 이에 비해 그 반대 측면에서 노동은 분할됨으로써만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만든다. 노동의 통일은 자본의 지양이며, 자본축적은 분할된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이 분할됨으로써만 노동은 자본에 포섭될 수 있으며,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럼으로써 착취될 수 있다. 그 분할선은 성별, 인종, 지식, 국적에 따를 것이며(그리고 많이 인식되면서도 많이 경시되는 것으로서 중심-주변의 분할), 국가는 여기서 늘 한편에서 지배계급을 통일시키는 동시에 피지배계급을 분할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그 작동은 특히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를 통한 분할된 ‘국민’이라는 허구적 동일성의 형성 속에서 잘 드러난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가 프롤레타리아 통일성의 경향을 지칭한다는 말은 이처럼 분할된 구체적 노동자들의 존재조건들을 넘어서는 통일적 경향의 수립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넘어서는 길임을 반복해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파악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결국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는 국가 대 반국가라는 단순화한 구도로 형상화할 수 없다. 그것은 국가일반의 부정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전화’를 요구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이미 국가에 의해 재생산되는 분할된 노동자들의 존재조건이 국가를 거부함으로써 극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된 국제주의는 국가 ‘외부’에서 사고하는 논리라기보다는 국가의 ‘경계’에서 사고하는 논리로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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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 ③

III. 사회주의와 당이라는 쟁점

 

1. 러시아혁명의 쟁점

 

1) 제2인터내셔널의 유산-- 러시아혁명의 배경 (특정한 방식--즉 카우츠키류--의 마르크스 독해의 공고화)


①경제주의적 마르크스 이해: ‘생산력주의’ (그 핵심으로서 ‘정세’ 개념의 소실, 계급분석과 괴리된 계급의 이해)
②계급과 민중의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
③조직형태로서 민족화한 정당들의 출현

 

2) 레닌의 이행기론 해석의 문제

 

- 이행기 레닌에게 중요한 세가지 글 중에서 "임박한 파국"에 강조점
  ①4월테제(소비에트) ②임박한 파국(이행의 물적 토대) ③("국가와 혁명" +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정치와 경제”(사회주의 하의 모순. 그리고 국유화/사회화)

- 4월테제와 그 이후 저작들 사이의 차이 (4월테제는 소비에트를 특권화하고, 이를 위해 당의 사업을 전환할 것을 요구): 그 이후의 저작은 당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성장전화’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점  (특히 소비에트 내 소수파로서 볼세비키 대 다수파인 멘세비키와 SR)
 *특이점: 테제 내용 ①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②당의 위상은 소수파. 소비에트 지지의 일관성 ③국유화의 부차성

- 「임박한 파국」 중심의 논지: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PDR의 시기를 명시화 (사실은 ‘4월테제’와 일정한 긴장관계 -- 우리에게 모호하게 남았던 것: 우리가 ‘전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 이중의 규정 속에서 ①현실 사회주의 비판 ②사회주의로 성장전화)
  --> t.t. 시기와 달라지는 것으로 이행강령이 제기됨. 특히 핵심은 (조건 붙은)‘국유화’ 강령 ①독점자본의 국유화가 사회주의 가는 물적토대 된다 ②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최소강령에서 이행강령으로 가게 되는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들 ③그 결과 ‘성장전화’론

- [그럼에도 국독자론은 일국일공장체제의 기반이 됨. ①전국 경제통제 가능 ②모든 것을 국유화하지 않고, 핵심만 국유화하더라도]
①소비에트가 물러난다 ②‘청사진’이 중요해짐(특히 국유화) ③과정 관리자로서 당의 역할 중요

 

3) 네프시기 레닌의 반성과 한계

 

- 핵심은 ①계급동맹 ②국유화/사회화(여기서 국유화건 국독자건 소유제 개조가 문제가 아니다) ③문화혁명(국가장치의 문제) --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

- ‘사회주의(이행기)의 계급투쟁’: 그 대상과 조직은?(소비에트가 복권되지는 않는다)

- 혁명에 의해 강요된 자기제약이었다(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장악한 국가권력 유지의 강박): 그러나 ‘4월테제’가 부활하지는 않고, ①당내 ‘정풍’과 ②대중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여기에는 핵심적으로 ①관료제의 문제는 모호하게 남고 ②상대적 잉여가치 질적구조 문제, 또는 달리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기술의 지적차이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없다) --> 소비에트 우위가 당이 지도하는 대중의 재교육 차원으로 정리됨 [사회화 쟁점이 약함. 그리고 그 복잡성 보지 못함. 즉 자본-국가에 의한 재생산 보지 못함 --> 이론의 난점과 동시에 정치의 난점]
  ‘당’, ‘소비에트’, ‘노조’ 셋 사이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나, 당의 우위 하에 다른 두 가지 조직의 문제제기가 봉쇄되는 결과를 낳음


2. 중국 문화대혁명이 남긴 것-- 현존 사회주의에 대해 제기하는 광범한 쟁점

 

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 민족적 공산주의/ 대중노선/ 정치우위라는 세 가지 상이한 흐름의 절합과 교착이 낳은 독특한 정세

 

② 당형태
- 대중노선, 그러나 대중 이니셔티브를 인정하지 않는 당에 의한 계급 대립의 독점을 넘어서서 당의 파괴로, 그러나 그 딜레마로
- 중국에 부재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그 1927년의 계기). 그러나 문혁의 딜레마는 그것을 일관되게 표상하는 ‘조직’은 있었는가?(당이 아니라면, 홍위병? 조반파? 어떤 안정된 조직형태도 지속되지 못했다)

 

③ 생산관계의 전화로서 정치우위와 교육혁명(새로운 산업혁명을 위한 지적차이의 극복이라는 쟁점)
- 대중정치의 이니셔티브가 억제된 상태에서 다소 위로부터 진행된 역설도 있었음
  모델의 경험과 그것을 넘어서는 역사적 계기라는 차이점

 

④ 이데올로기혁명과 국가장치. 대중적 주도성
- 이데올로기 혁명으로서 문화대혁명
- 프랑스 혁명 논쟁과 마찬가지로 중국혁명 또한 세계혁명으로서 이데올로기 혁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회주의에 대한 마오의 재해석에 기반하여야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⑤ 대중의 공포와 폭력이라는 문제.
- 이 또한 프랑스 혁명과 연관되는 주제: 정치의 자율성과 변혁이 대중 자신의 자율성을 얽매는 것으로, 대중 자신에 대한 공포로 귀결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한편에서 문혁 과정의 이론화의 부재라고 한다면, 그것을 이론 내의 문제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다시 이론의 이데올로기화에 작동하는 또 다른 계기, 즉 대중들 사이의 윤리적 관계라는 쟁점은 여전히 남는다.
  문혁의 딜레마는 계급적대나 자본주의의 ‘구조’의 문제를 ‘주자파’로 의인화 하고, 그것의 동일성 형성을 통해서 적대를 표출한것. 리처드 크라우스를 받아 딜릭이 말한대로 ‘계급’이 투쟁의 지침이 아니라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린 것에 있다.
  동일화와 탈동일화의 동시적 사고라는 시민인륜의 정치라는 강조점이 등장하는 이유


* 논의의 난점들

① 당은 국가의 포섭에서 벗어나 있는가? (더욱이 국가간체계의 동학)-- 아니다, 당은 국가권력 장악의 수단이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임 (국가 외부에 또 다른 당을 만드는 시도는 불가능 --> 그러나 그 국가의 경계가 문제되는 곳에서 당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운동 출현 가능도)

② 대중운동에 의해서 당의 쇄신이 가능한가? 그것이 당을 당 아닌 것으로 바꾸어 내더라도? 그럼 그 조직은 당과 같은 한계에 봉착하지 않는가? (그 지속성, 이데올로기적 혁신은 어떻게 가능? -- ‘변혁’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직은?)

③ 그럼 당은 불필요한가? 당을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은 국가에 대한 무시를 의미하는가? 아나키즘인가?  (집권에 대한 태도는, 목적은?)

④ 집권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운동을 유지시키는 방법은 가능한가? (사회운동적 정당은?)

⑤ 쟁점은 일국적이지 않다. 지역적으로 다른 쟁점에 처해 있음.


3. 유럽과 제도권 정당의 한계들
- 2인터내셔널의 쟁점들의 복귀/ 그리고 68년의 쟁점들

 

(1) 국가권력의 환상
- 권력장악과 사회개혁의 환상과 관료화

 

(2) 법률적 틀의 환상
- ‘제도개선’의 법적 틀의 안주
- 기술관료적 개선책들의 제시

 

(3) 대중우위의 포기
- 사회조합주의의 틀로의 귀결
- ‘생산관계’에 대한 사고, 그리고 ‘경제투쟁’에 뿌리박은 ‘정치운동’이라는 사고의 부재

 

(4)

 

(5) 계급투쟁의 장소들을 ‘정치’로 한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대중의 탈정치화로
- 이데올로기의 다차원적 공간을 사고하지 않음

 

(6) 소련과의 관계 또는 그와 연관된 민족국가적 한계의 난점
- 단적으로 평화문제와 식민지 독립의 문제에서

 

(7) 인종적 틀의 난점

 

 

IV. 대안세계화 운동

 

1. 논의의 쟁점들

- 새로운 이론적 논의로서/새로운 조직적 실천으로서/새로운 지정학적 효과로서: 서로 결합된 효과들


2. 새로움의 측면들


①세계화의 이론 분석
②전지구적 이행과정(국제주의) : 남과 북의 결합
③대중 창의성과 주도성 중심의 연합적 사고
④소유의 문제를 수단으로 파악
⑤집권의 문제를 전술적으로 파악
⑥대중 구성의 변화에 주목
⑦정파/현장을 넘어서는 연합적 조직틀
⑧경제/정치/사회 혁명의 구분의 지양
⑨공동체 한정성에서부터 공동체내 관계의 전환으로(‘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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