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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9
    삼성을 생각한다(2)
    지수
  2. 2010/02/17
    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지수
  3. 2010/02/16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지수
  4. 2010/02/16
    대학이 춥다
    지수

삼성을 생각한다

<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식이 5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 열린 가운데 경영복귀 가능성에 대해 "아직 생각 중이다"고 말한 뒤 "회사가 약해지면 복귀를 해야겠지만 참여하는 것 보다는 도와줘야죠"라고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경향신문에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기명칼럼을 써왔습니다. 오늘 제 글이 실릴 차례인데 불행하게도 글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는 제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물론 거절했으나, 신문사는 끝내 저의 칼럼지면을 다른 분의 글로 채웠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독재정부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주체는 국가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실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적 권리는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권력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자본권력이 대신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시민적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일간지에 광고할 수 있는 지면을 얻지 못하고, 외부칼럼으로 기고한 저의 원고가 신문사 자체 검열에서 끝내 게재를 거부당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정이나 폐지를 청원하는 것도, 더 나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조차 금지했던 긴급조치 9호 시절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정의로운 기초를 뒤흔드는 시대에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애써 역사의 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종이신문에서 실리지 못한 저의 글을 혹시 실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면서 이번 일이 이 땅에서 삼성의 독재를 끝내는 대장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경향신문 2월 17일자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 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에 국가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독재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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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 [2010.02.19 제798호]

 

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아파트·고학력 적극 투표하고, 무주택·저학력 ‘정치 소외’ 두드러져

 
 
“정치? 나 같은 사람한테 해당 사항이 있나.”

일거리를 찾으러 나온 김상수(57·가명)씨는 ‘정치’ 얘기를 꺼내자 자꾸만 등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투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 보니 정치는 다른 세계였고, 투표는 남의 일이었다. 손사래를 치던 김씨는 자리를 뜨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우리야 한 달에 120만원만 받을 수 있어도 참 좋지.”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동이 만나는 남구로역 3번 출구 일대는 남부권 최대의 인력시장으로 통한다. 김씨처럼 하루치 일당을 벌기 위해 매일 새벽 남구로역 앞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250명에서 많게는 500명에 이른다. 하루 일당 6만5천원. 소개비 5천원과 왕복 교통비를 빼면 실제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많아야 6만원이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추위에 떨며 일한 대가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일을 잡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 지난 2월4일 새벽 한 남성이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근처 인력시장을 찾고 있다. 무주택자와 저소득층의 잦은 이사와 불안정한 주거 형태는 정치로부터 이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같은 강남, 잠실7동과 논현1동의 차이

 

“분명 ‘싸인지’(일종의 근로계약서)에는 7만원이라고 돼 있는데 왜 6만원밖에 안 줘. 거기서 용역비 떼고 차비 떼면 얼마 남는다고. 나 안 해. 일 하루 안 한다고 뭐, 없으면 깨끗이 들어가는 거야.”

어둠 속에서 일당을 놓고 ‘팀장’이라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인 40대 강아무개씨는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발걸음을 홱 돌렸다. 강씨처럼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 6시30분까지는 인력사무소를 들락거리며 어떻게든 일을 찾아보려 애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리봉동에 사는 이형기(49·가명)씨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걸 모르는 눈치다. “투표야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지. 근데, 뭔 선거가 있나? 이렇게 나와서 물어보는 것 보니까.”

곁에서 발을 구르며 추위를 쫓고 있던 사내가 거들었다. “일자리 좀 많이 만들어주고, 여자들도 직장 생활 편하게 할 수 있게 애들 맡길 곳을 좀 많이 만들어주면 좋지. 그런데 그게 어디 나 혼자 바란다고 되간디. 투표야 당일 가봐서 기분이 내키면 하겠지, 뭐.” 결론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다. 일부는 처음부터 그랬고, 몇몇은 배신감에 등을 돌렸다. 멀리 동이 트기 시작했다.

 
 
» <표1>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네·투표율이 가장 낮은 10개 동네의 특징
 
 
 

정치로부터 소외된 계급, 이들은 ‘얼굴 없는 시민’이다.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 또한 어떤 정당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도를 더해갈수록 ‘정치적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조만간 출간되는 노동운동가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후마니타스 펴냄·이하 <정치·사회 지도>)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를 대상으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한 각종 통계와 2004년 총선 및 2006년 지방선거 등 최근 치러진 주요 선거 결과를 모아 분석했다. 메시지는 뚜렷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투표한다 △대다수 빈곤층은 투표하지 않는다 △계층 간 종교적 분화가 분명하다 등이다.

먼저 계층과 투표 여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 10곳과 가장 낮은 동네 10곳이 있다(표1 참조). 이를테면 2004년 총선에서 양천구 목6동은 동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에 참여했다. 강남구 논현1동은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잠실7동은 동네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3분의 2 이상이 투표를 포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투표율 높은 동네, 한나라당 지지도 높아

 
 
»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자 동네’라는 사실이다. 84%가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 송파구 잠실7동과 문정2동은 동네 사람 가운데 90%가 주택 보유자다. 무주택자는 10%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곳 중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강동구 둔촌1동에서도 무주택자 비율은 27%밖에 되지 않았다. 주택 소유 여부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의 종류도 계층을 나누는 주요 기준이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 가운데 6곳이 100% 아파트 동네였다. 전체 아파트 비율은 98%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이들 10개 동네는 대체로 1인 가구(7%)도 적고 (반)지하 등 열악한 거주 환경의 가구(1%)도 드물었다.

 

투표율이 낮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74%였다. 강남에 있지만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75%가 무주택자이고 1인 가구 비율이 48%에 이르렀다. 역삼1동도 전체 가구의 80%가 무주택자였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압도적으로 많고, (반)지하 주거 비율도 10~13%로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평균(1%)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택 소유자가 그나마 많은 동네인 강북구 미아2동도 무주택자가 절반을 넘었다(55%).

 

주거 형태도 투표율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투표율이 낮은 10곳에 사는 사람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서민의 보금자리는 단독주택이었다. 76%가 단독주택 아니면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17%는 (반)지하나 옥탑, 쪽방에 살고 있었다. 전체의 43%가 1인 가구였다.

학력과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투표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학력이 높고 종교 인구가 많았다면(64%), 반대의 경우 학력이 낮고 종교 인구 비율도 낮았다(49%).

투표율에 따른 주거 및 학력의 양극화는 그 범위를 518개에 이르는 서울 모든 동네로 넓혀도 비슷했다. 남승우씨는 강남구 논현1동과 역삼1동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구로구 가리봉2동에서 구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남씨의 투표율 분석이다.

“지역 주민 가운데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요. 하루하루 일해서 수입을 얻어야 하니까 투표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죠.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좀 큽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생활 수준이 워낙 낮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소득이 올라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관심을 가질 부분은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의 관계다. 결과적으로 말해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한 동네일수록 한나라당 득표율이 올라가고, 투표를 적게 한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시절 포함) 득표율이 올라갔다. 무주택자 비율이 높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며, 주민의 학력이 낮은 지역일수록 민주당 득표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는 ‘계급 배반 투표’ 이론을 뒤엎는 결과다.

서울의 전체 동네를 투표율순으로 나열해 다섯 묶음으로 나눠, 투표율이 가장 낮은 묶음을 1분위(하위 20%), 가장 높은 묶음을 5분위(상위 20%)라 정하면 좀더 이해하기 편하다(표2 참조). 한나라당은 투표를 가장 적게 한 1분위 104개 동네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는데, 2·3·4분위로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득표율도 함께 증가하다가 투표를 가장 많이 한 5분위 104개 동네에서 최대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은 그 반대였다. 1분위 동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았고, 5분위 동네에서 표를 가장 적게 얻었다.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투표도 많이 했고,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에서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투표 않는 동네엔 셋방 떠도는 사람 많아”

 
 
» <표2> 서울시 518개 동네를 투표율에 따라 5묶음으로 나눠보면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고약한 일이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당시 진보·개혁 진영이 지지한 주경복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에서 이겼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었다. 최종 승리는 공 후보 몫이었다.

서울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대표적 동네가 종로구 창신2동이다. 이곳에서 민주당은 2004년·2006년 선거에서 평균 56%를 얻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문제는 투표율에 있었다. 창신2동의 투표율은 2004년 60%, 2006년 51%에 그쳤다. 전국 평균 수준이거나 약간 못 미치는 결과였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표밭’에서 최대한 차이를 벌려야 하는 선거의 속성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임성수 민주당 창신2동 당원협의회장은 정작 정권을 잡은 뒤가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창신2동은 호남에서 올라온 저소득층이 모이는 동네였습니다. 1997년 DJ를 당선시킬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호남향우회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뭉쳤죠. 그런데 DJ 당선시키고, 이어서 노무현 정권까지 출범시켰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2006년 지방선거 때였나, 여당은 개헌이다 뭐다 정치 논리만 앞세우고 대신 한나라당이 민생을 강조하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지지층이 떨어져나간 면이 있다 이겁니다.”

창신2동에 대거 들어서 있던 봉제공장이 경기를 탄 것도 한 이유였다. 지난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창신동 일대를 재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다. 그런데 후속 조처가 나오지 않았다.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상권이 죽어나갔다. 임 회장은 “창신2동 젊은 사람들이 대개 거기서 밥 벌어먹고 살았는데, 일이 끊기니까 급속하게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거래에 익숙한 ‘적극 투표층’

 

<정치·사회 지도>를 보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도 수도권 주민의 주거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도권에 집 가진 사람의 절반은 평균 5년에 한 번씩, 셋방 사는 사람의 절반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전체의 3분의 2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한집에 사는 사람은 100가구당 17가구에 불과했다. 손낙구씨는 “수도권에서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이상인 547개 읍·면·동에 사는 선거권자 768만 명 가운데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442만 명으로 투표율이 58%에 못 미쳤다”며 “수도권에서 투표에 잘 참여하지 않는 동네가 있다면 분명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수도권 하층의 불안정한 주거 현실이 정치의식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치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정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든 교육이든, 아니면 일자리 정책이든 자기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2년에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셋방을 옮겨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공론 형성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배제되는 면도 있다.”

 
 
» 수도권 1186개 동네의 인구주택총조사 등 각종 통계와 최근 선거 결과를 종합해보면, 고학력·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위)일수록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이 높은 반면 저학력·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아래)에서는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도 떨어진다. 한겨레 김태형·<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런 가운데 ‘얼굴 없는 시민’을 대변해줄 유력 정당은 없었다.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창신2동 사례가 그랬다. 임성수 회장의 증언이다. “2008년 4월 총선 때였죠. 내가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를 이틀 앞두고 막판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어요. 그때 내놓은 게 ‘뉴타운 용적률을 높여주겠다’ 이거였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의 뉴타운 분담금을 덜어주겠다는 소리잖아요. 막말로 여기 집 가진 사람이 많습니까,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대다수 세입자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다수 세입자’에 해당하는 창신2동 주민은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데 익숙지 못했다. 대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이해관계’를 매개로 똘똘 뭉쳐 투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적극 투표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거래’에 익숙했다.

강남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으로 보답했다. 2009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도 정부는 서민·중산층에 감세 효과가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감세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쪽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대신 저소득층 복지 정책에는 인색했다는 평가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두 11명인 경기도 교육위원은 전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서울 중랑구 면목2동에 사는 이명수(55·가명)씨는 폐가전제품을 매입해 재활용업자에게 넘겨 생계를 꾸리고 있다. 1t짜리 고물차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다. 3층 다가구주택의 반지하 방 2칸에서 부인과 아들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는 25만원이다.

이씨가 사는 면목2동에는 9780가구 2만8517명이 산다. 이 가운데 전체의 18%인 1768가구가 이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에 산다. 2008년 총선에서 이씨와 그의 이웃들인 면목2동 유권자는 절반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민주당을 찍었다.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한다고 하니까 찍었죠. 물론 민주당이 꼭 서민을 대표한다고는 안 봅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서민을 좀더 위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반영이 안 돼 그렇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아들도 한 놈은 군대에 있고 한 놈은 대학생인데, 취업 제대로 하려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대기업 중심인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투표를 한다면 민주당 찍을 확률이 80%는 됩니다.”

     
 
» 전국 단위 선거의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9년 10월28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 투표소에서 학생들이 투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 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대표적 수단은 투표다. 그래서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4년 17대 총선(60.6%)에 비해 14.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17대 때보다 유권자가 220만 명 늘어났지만 투표에 참여한 국민은 되레 421만여 명 줄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이 모두 2042만여 명이었다.

2010년 6월2일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얼굴 없는 시민’의 경계를 오가는 이씨에게 꼭 맞는 정당이 나타나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당 득표율과 종교의 상관관계

천주교는 한나라당 지지층 종교?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보면, 수도권에서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 정당별 득표율과 종교 형태는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518개 동네를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과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으로 나눠 살펴보니, 강남구 압구정1동 등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평균 65%였다. 서초구 반포본동이 가장 높았고(68%), 강남구 청담1동이 낮았다(63%). 종교 인구 가운데서는 특히 천주교 신자(26%)가 많아서 불교(15%)는 물론 개신교(24%)까지 제치고 최대 신자 수를 기록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가 평균 11%인 것과 비교할 때,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천주교 비율은 2배 이상 높았다.

민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반대다. 종로구 창신2동 등 이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50%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관악구 신림6동(56%)처럼 주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지역도 있었지만, 영등포구 대림2동(44%)은 꽤 많은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이 표를 많이 얻은 지역의 주민이 선호하는 종교는 개신교(21%)였다. 불교(18%)가 그 뒤를 이었고, 천주교(10%)는 큰 차이를 보이며 처졌다. 개신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지역과 민주당을 많이 찍은 지역에서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다면, 천주교와 불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천주교 인구 비율이,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불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가 한나라당 지지층의 종교”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정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해도, 두 가지 사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그동안 대체로 저소득·저학력층에서 불교 신자 비율이, 고소득·고학력층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정 종교와 정당 지지층을 연결짓는 문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근 천주교가 일련의 시국사건에 보인 보수적 태도로 볼 때 이번 조사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치사회팀장은 “지난해 2월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 등 천주교의 보수화 논란을 설명할 때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교계 내부에서는 어떻게 볼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 관계자는 “천주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요 성당이 서울 강남에 많이 진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학력을 갖춘 신도가 새롭게 편입되다 보니 ‘신도의 보수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조계종 핵심 관계자는 “1994년 이후 진보적 인사가 종단 요직에 많이 진출했다”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 핵심부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스님들이 포진하면서 종단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런 가운데서도 참여정부 때까지는 정치적 균형과 중립을 많이 강조해왔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종교 편향이 심해지면서 종단 내부에서도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좀더 힘을 받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정치의 양극화’를 견인했다면, 정치의 양극화는 다시 ‘종교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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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성서를 읽다 보면 늘 이 대목에서 걸린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원수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분이 어찌 개와 돼지를 멸시하고 저주하시는 겐가.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다 맞는 말씀이다. 중세 로마교황들은 스승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단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단을 화형시키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짓”이라던 루터나 칼뱅도 매한가지로 적들을 화형시켰다. 차라리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가르침을 둘러싼 미움도 죽임도 없었으리.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깨달음 뒤 망설이셨던 게다.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나만 지치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긴 고민 끝에 당신께서는 45년의 기나긴 가르침의 길에 나서셨건만 그 제자들은 끝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분은 세상 모든 존재와 사건이 고유의 독립된 실체가 없으며, 모든 게 원인과 조건에 따라 서로 기대어 일어났다 사라진다 하셨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정반대로 실체로서의 극락이며 서방정토며, 영원히 여기에 머무르는 ‘나’를 믿었다. 미륵불과 아미타불 같은 신들도 만들어냈다. 45년의 가르침은 다 어디로 간 건가. 그래도 그분들은 제자들에게 진주를 던져주었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나 아닌 타인과 다른 사물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리.

 

요즈음 법치주의가 꼭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신세가 되었다. 가히 대한민국은 법치만능 내지 법치과잉의 시대다. 모든 일이 법으로 간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대북송금 문제가 법으로 갔다. 헌법재판소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법권이 관여할 성질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송금한 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이라 판단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민주당 지지 발언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까지 받았다. 대한민국 수도를 옮기는 것이 합헌인지도 법관의 손에 넘어갔다. 미네르바 경제평론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 보도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주장도 모두모두 재판을 받았다. 본래 법치주의란 절대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서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에 이르면 법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배도구로 전락했다. 헌법책에는 이 시기를 합법적 불법국가라고 규정했다. 1949년 독일 기본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정의·평화를 보장하는 올바른 법만이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못박았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관련법이나 4대강 관련 특별법, 노동관련법들은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외면하는 한 법률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들 더는 법이라 할 수 없는 합법적 불법들이다.

 

본디 법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진리를 탐구할 능력도 없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며 사랑이나 융통성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법은 그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과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는 소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사회의 전면에 나서거나 모든 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성도 없고 국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법원이 우리 사회의 근본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법들을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법으로 끌고 가는 건 법치주의의 남용이요, 타락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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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춥다

국회가 지난 18일 협상과 진통 끝에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통과시켰다. 그 며칠 전에는 학생식당 고급화로 밥값이 오를 것을 반대하여 대학가가 들썩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때 대학생들은 빛나는 존재였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존재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때가 있었고, 아무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군부의 총부리와 맞서 겁 없이 민주화 투쟁을 해낼 때 그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의 존재는 어떤가?

다수가 학자금을 빌려 대학을 다니는 빚쟁이가 되었고, 졸업 후에도 그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해져서 그것마저 탕감을 받게 된 복지의 대상, 세금을 축내는 수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총학생회는 등록금과 교내 식당의 밥값을 흥정해야 하는 기구가 되었다.

창대한 미래를 꿈꾸며 기고만장하던 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지라 한 목숨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에 나는 적응이 안 될 때가 많다. 일본의 한 대학 국제학부 교수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오는 지원자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세계를 걱정하고 사회적 감각을 가진 청년들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열정을 가진 학생을 만나기 힘들어졌다면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대학이 글로벌 100위 대학에 들어야 한다는 깃발을 높이 세울수록, 기업에 봉사하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나설수록, 캠퍼스가 화려하고 말쑥해질수록 대학생들은 점점 초라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뭔지 모르게 기가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일류대 진학에 성공한 지방 출신 학생은 대학에 입학해서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것 없는 존재임을 절감했다고 했다.

실제로 화려해진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는 학생보다 초라함을 느끼는 학생 수가 월등히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을 겸비한 0.1%의 ‘엄친아’들에게는 9000원의 점심 값이야 별 것이 아니겠지만 부모의 빠듯한 재력과 ‘동생의 희생’으로 일류대 진입에 성공한 경우라면 5000원도 무리한 가격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일찍부터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적나라한 ‘격차 사회’에 살고 있음을 수시로 인지시켜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소식에 놀란 가슴에 시장근본주의로 방향을 튼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 대학은 충격으로 인한 강박에서 벗어나 다시 근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야 한다. ‘0.1%의 명품인재’를 키우겠다는 말을 대학 경영인들이 스스럼없이 하고, 성공한 자만이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대학, 승자 독식을 당연시하는 대학이 진정 인재를 배출 할 수 있을까?

인재란 자고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적인 인재는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시시덕거리는 경험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학 경영자들이 좋아하는 ‘수월성’은 잡다한 평범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지 돈을 좇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시장이 아니다. 대학에 온기가 필요하다.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곧 봄은 올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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