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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5

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

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

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프레시안>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프레시안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

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

"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

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

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

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

"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

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

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

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

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

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

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

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 문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 질 게다.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

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

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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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정규직, &quot;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quot;

조선산업 정규직, "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

비정규노동센터 포럼,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더 큰 행위 동기"

김용욱 기자 2010.05.23 07:29

 

2008년까지 세계적으로 장기호황을 누렸던 조선 산업은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08년 3/4분기 이후 발생한 위기를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도 그 영향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조선산업 위기의 가장 큰 피해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런 위기의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 상황을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20일 오후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란 주제로 10회 비정규노동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 박종식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2009년 금속노조 조선분과 소속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의식실태를 분석을 발표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이유로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에 46.6%가 응답했다. ‘물량증감에 따른 인원 조정’엔 40%, ‘원청노조의 힘 약화를 위해’에는 8.5%가 응답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느냐'엔 85.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상대적 저임금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하청 노동자간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의 원인’을 두고는 34.4%가 ‘원하청 노동자간의 숙련 및 경력에 따른 격차’에, 29.7%가 ‘노동조합의 효과에 따른 격차’에, 28.4%가 ‘원청기업의 불공정거래 때문에 발생한 격차’에 대답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은 “임금격차의 원인을 개인적인 능력이나 노조 효과라고 응답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고임금을 정당화 하고 차별에 대한 구조적 인식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봤다. 사용자들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것을 두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은 고용안정을 위한 방패막이로 보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한 경영자의 수량적 유연성 전략에 제동을 걸 의지는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또 ‘수주물량 증감에 따른 인력조정을 위해 사내하청 활용이 필요하다’라는 문항엔 55.0%가 응답했다. ‘회사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엔 원청 정규직 노동자 54.5%가 응답했다. ‘현재의 정규직 인원수만 유지된다면 사내하청 규모가 확대 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에 45.8%가, ‘핵심업무가 아닌 업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엔 46%가 응답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두고는 추상적인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당위성엔 68.5%가 응답을 보여 높게 나타났지만 구체적인 행동의식은 낮게 나타났다. 적극적인 연대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사내하청의 임금 및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 할 수 있다’라는 문항엔 38.1%가 응답했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위해 파업할 수 있다’에는 34.9%가, ‘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위해 나의 임금인상분을 양보할 수 있다’는 문항엔 32.8%가 응답했다.

 

박 연구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 해결에 대해 연대의식은 있으나 직접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약하면서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 연대를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고, 외부적인 시선-정규직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에 의한 비자발적인 연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지회(노조) 직가입에 대해선 50.7%가 찬성을, 49.3%가 반대를 해 금속노조가 사내하청 조직화를 위해 추진하는 ‘1사 1조직’ 방침에 대해 찬반이 팽팽하게 나타났다.

 

1사 1조직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원하청 노동자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에 36.7%가 응답했다. 23.8%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조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 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장을 자주 옮기기 때문’ 13.3%, ‘원청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 11.9%, ‘원하청노동자 근로조건이 다르기 때문’ 10.1%, ‘교섭비용 증대, 비효율적이기 때문’ 3.1% 순으로 나왔다.

 

이런 응답을 두고 박 연구위원은 “1사 1조직의 반대이유로 원하청 노동자의 이혜관계가 다르다는 응답률이 높은 이유는 고용의 외부화를 매개로 한 경영자의 노동자 분할지배 전략에 휩쓸려 결국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보다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자 하는 유인이 더 큰 행위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봤다.

 

박 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실리추구와 추상적인 차원의 연대성에 대한 인식은 단위사업장 내에서의 사내하청 조직화를 대단히 힘들고 어렵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한 인식 전환 △기존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을 제시했다.

 

이 조사는 2009년 상반기 금속노조 조선분과에서 소속 사업장들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2009년 6월까지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는 조선사업장 16,095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 687명의 설문지를 수거 분석한 결과다. 조사의 표집오차는 95% 신뢰도 수준에서 ±3.65%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점규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조선산업의 위기는 수주잔량이 바닥나면 더 광폭해 지고 이는 정규직 구조조정으로 올 수밖에 없다”며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 비정규직 규모를 묶지 못해 노동조합이 더 어려워 졌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국장은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을 먼저 내보내면 정규직은 안 잘린다는 생각이 1사 1조직을 더 어렵게 한다”면서도 “회사도 1사 1조직에 대한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1사 1조직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기아자동차 노조를 예로 들고 “기아 같은 경우 1사 1조직으로 비정규직의 60%가 넘는 조합원을 조직했다”면서 “1사 1조직은 정규직지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보하고 비정규직을 가입시킬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규채용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먼저

 

이에 앞서 정흥준 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원인에 경제위기 등 외부환경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를 살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의 원인으로 과도한 과잉설비를 들었다. 정흥준 국장에 따르면 조선산업은 2008년 3/4분기까지 지속된 몇 년간의 호황으로 과도한 경기낙관론에 따른 과도한 과잉설비를 불렀다. 경제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특히 중소 조선기업들은 은행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정흥준 국장은 또 다른 요인으로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및 다각화 △기업간 공동대처능력 부재를 들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이어 경제위기로 인한 생산량 축소가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추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위기 시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력감축을 선택하지만 실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며 “인력감축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생존권 위협이기도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도 고숙련 노동자를 잃게 되어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기형적인 사내하청구조도 주요 문제점으로 나타했다. 정흥준 국장은 개별기업들이 정규직 임금동결 및 생산량이 증가 할 때마다 하청구조를 활용해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원가절감 전략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노사정에 각각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정부에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대형조선사를 중심으로 집중해야 할 사업부문을 조정하고 사업재편 과정에서 기형적인 사내하청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업차원의 대책으론 △인력구조조정의 대안마련 △해외투자생산설비의 축소 △전략적 제휴의 확대 등을 들었다.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노동조합엔 비정규직 인력구조조정의 대안으로 소규모이지만 신규채용 대신 일상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영진의 경영활동 감시를 강화해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등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제기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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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만 끼친 은행 대형화

민폐만 끼친 은행 대형화

 

* 경향신문 : 4월 29일

 

아주 상투적인 이야기부터. 금융의 본래 역할은 돈을 돌려 실물경제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데 있다. 사람 몸으로 치면 돈은 혈액이고, 실물경제는 근육과 살이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살이 썩거나 근육이 괴사한다. 반대로 혈액과다도 몸에 문제를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융이 실물경제의 매개자 역할에서 벗어나 산업에 군림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 체제가 쇠퇴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영국의 패권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20세기 초와 미국의 달러패권이 힘을 잃어가던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그 시도들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도 함께 망했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약탈적 대출’이란 별명이 붙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연간 성장률이 7~8%를 넘던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체제로 바뀔 무렵부터 금융산업 육성론이 등장했다.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키우겠다며 자본시장법이 만들어졌고, 금융 중심지 건설이 추진됐다. 금융도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신화’와 ‘금융강국 코리아’, ‘금융허브’라는 말들이 춤을 췄다. 영어로 뒤범벅된 금융용어들을 한두 개쯤 주워 섬겨야 행세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 몇 년간 금융회사들이 과연 실력을 키워 우리 경제에 기여했을까.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몇 차례 인수·합병으로 4대 은행의 과점체제가 되면서 공공성과 소비자 편익은 줄어들었다. 장래성 있는 중소기업을 골라낼 실력이 없으니 주택담보대출만 늘려 자산 거품을 키웠다. 공공성 대신 수익성이 최고 덕목이 되자 어느 은행은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에 나서 1조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은행들은 ‘글로벌화’를 부르짖었지만 정작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해외에서 1달러 한 장 꿔오지 못했다. 환차손에 특효가 있다며 은행들이 판매한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는 멀쩡하던 중소기업들을 쓰러뜨렸다. 결국엔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은행들에 뿌려졌고, 무능력한 은행을 위해 정부가 해외에 보증을 서야 했다. 이런 와중에도 은행들은 서민들에게 가산금리를 받아 챙겼다. 은행들이 실물경제에 민폐만 끼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은행산업 재편이 거론된다. 몇 개 은행을 통째로 합치는 메가뱅크(거대 은행) 구상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은행산업 재편이 국민경제에 어떤 실익을 줄지 설명이 부족하다. “덩치가 커야 위기대응 능력도 커진다”고 하지만 거대 은행들이 위기에 더 취약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반 국민에겐 그저 동네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훤히 꿰뚫고 있고, 급전이 필요할 때 선뜻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최상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뒷배가 되어주면 족하다. 그 기업이 잘돼 고용을 늘리면 그만큼 국민경제가 발전한다. 금융의 부가가치가 달리 특별한 게 아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이뤄지고 있는 금융규제 논의는 금융회사들이 국민경제보다는 제 뱃속만 챙겼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은행들의 과점체제를 깨고 위험한 거래를 억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금융이 더 커져야 한다며 국제적 논의에서 비켜나 있다. 금융 본연의 기능에 대한 성찰 없는 맹목적인 대형화는 괴물만 키울 뿐이다. 금융산업 재편 논의는 국민경제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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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 경향신문 : 5월 10일(월)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우려로 지난주 후반 세계 주요 증시가 동반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우리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기록적인 매도 공세로 이틀 동안 코스피가 4% 넘게 떨어지고, 원화는 달러당 39원이나 폭락했다. 지난 2월에도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져 국내 금융시장이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유로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장이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사태가 악화하면서 세계 경기가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보다 더 긴박한 영향은 외환시장 교란이다.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신용경색으로 발전하면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이탈이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화부족 사태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다.

대외 요인에 의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과 이로 인한 외환시장 교란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다. 금융의 세계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우리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해 해외시장에 악재가 생길 때마다 나라 경제가 송두리째 위협받는다. 무제한적으로 외환시장이 개방된 결과다. 원화가 국제 투기자금의 먹잇감이 된 지도 오래다. 지난주 이틀간의 원화 가치 하락 폭도 아시아 통화 중 최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 막대한 외환보유액도 소용없어 결국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나서야 살아났던 금융위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대책이다.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자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통제 장치를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도 올 초 ‘자본 유출입에 대한 국가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오는 11월 G20정상회의에서 금융안전망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회의를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만 강조해서 될 일이 결코 아니다. 위험요인을 줄일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대응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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