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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성서를 읽다 보면 늘 이 대목에서 걸린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원수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분이 어찌 개와 돼지를 멸시하고 저주하시는 겐가.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다 맞는 말씀이다. 중세 로마교황들은 스승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단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단을 화형시키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짓”이라던 루터나 칼뱅도 매한가지로 적들을 화형시켰다. 차라리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가르침을 둘러싼 미움도 죽임도 없었으리.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깨달음 뒤 망설이셨던 게다.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나만 지치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긴 고민 끝에 당신께서는 45년의 기나긴 가르침의 길에 나서셨건만 그 제자들은 끝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분은 세상 모든 존재와 사건이 고유의 독립된 실체가 없으며, 모든 게 원인과 조건에 따라 서로 기대어 일어났다 사라진다 하셨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정반대로 실체로서의 극락이며 서방정토며, 영원히 여기에 머무르는 ‘나’를 믿었다. 미륵불과 아미타불 같은 신들도 만들어냈다. 45년의 가르침은 다 어디로 간 건가. 그래도 그분들은 제자들에게 진주를 던져주었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나 아닌 타인과 다른 사물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리.

 

요즈음 법치주의가 꼭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신세가 되었다. 가히 대한민국은 법치만능 내지 법치과잉의 시대다. 모든 일이 법으로 간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대북송금 문제가 법으로 갔다. 헌법재판소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법권이 관여할 성질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송금한 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이라 판단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민주당 지지 발언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까지 받았다. 대한민국 수도를 옮기는 것이 합헌인지도 법관의 손에 넘어갔다. 미네르바 경제평론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 보도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주장도 모두모두 재판을 받았다. 본래 법치주의란 절대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서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에 이르면 법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배도구로 전락했다. 헌법책에는 이 시기를 합법적 불법국가라고 규정했다. 1949년 독일 기본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정의·평화를 보장하는 올바른 법만이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못박았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관련법이나 4대강 관련 특별법, 노동관련법들은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외면하는 한 법률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들 더는 법이라 할 수 없는 합법적 불법들이다.

 

본디 법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진리를 탐구할 능력도 없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며 사랑이나 융통성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법은 그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과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는 소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사회의 전면에 나서거나 모든 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성도 없고 국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법원이 우리 사회의 근본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법들을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법으로 끌고 가는 건 법치주의의 남용이요, 타락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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