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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ㆍ“토종씨앗은 우리 미래…‘친정엄마 마음’으로 물려줘야”

우리 땅에 뿌리는 씨앗마저 외국산이 범람하는 시대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물건너온 씨앗들이 우리 땅에서는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토종씨앗’을 지키기로 결심했다는 심문희씨. 더디고 고된 작업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오늘도 총총히 전국의 농가를 돌며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온 지구에 떼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있다. 벌·새·물고기·거북이 등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폐사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소·돼지·닭·오리 등 사상 최악의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대책 없는 대책뿐이다. 마치 인류 종말의 때가 다가온 듯 죽음과 죽임의 이 끝없는 행렬 앞에 털썩 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토종벌이 집단 폐사했다. 6~7월 강원도 지역에서 토종벌들이 죽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전국적인 떼죽음으로 이어졌다. 원인은 ‘토종벌 괴질’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의 확산 때문이다.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지구 전체 식물의 3분의 1이 벌의 도움으로 수분하기 때문에 인류는 식량 고갈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치밀하게 서서히 진행된 위기가 있다. 바로 토종씨앗들이 사라진 것이다. 토종은 본토종 혹은 본토박이와 같은 말이다. 토종이 살아있는 종의 다양성과, 토종이 없는 종의 다양성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아니, 차이 정도가 아니라 다양성의 근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옛말에 농부아사(農夫餓死) 침궐종자(枕厥種子), 즉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은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상품’이 되었다. 그것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토종씨앗의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1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토종씨앗사업단장 심문희씨(43)를 만났다. 장수마을로 알려진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 ‘당몰샘’이라는 감로영천(甘露靈泉)의 약수로도 유명한 마을이다.

심문희 단장은 “급하게 서울 다녀오느라 집이 엉망이네요. 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 하며 환하게 웃었다. 얼마 전 유전자의 특정 형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옥수수 등 일부 유전자변형농작물(GMO)이 유출돼 국내 토종종자의 채종포 인근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이 공식 확인되는 바람에 서울에 다녀왔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났습니다. 옥수수·유채·면화 등 수입 GMO가 전국 26곳에서 유출돼 11곳에서 싹이 터 자라고, 나머지 15곳에서 알곡 상태로 발견된 사실을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을 통해 공식 확인했지요. 이는 정부기관에 의해 최초로 공식 확인된 겁니다. 농업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어요. 이러다간 농민들이 GMO를 토종종자인 줄 알고 재배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 번 유출되기 시작하면 농업과 생태환경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데, 아직 GMO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은 게 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여주 남한강변의 홍일선 시인이 일찍이 펴낸 시집 <한 알의 종자가 조국을 바꾸리라>가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미 여러 나라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자기 종자를 지키기 위해 종자은행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많이 늦었다. “6년 전부터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여왔지요. 특히 여성농민에게 씨앗은 단순히 먹거리의 원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씨앗은 수천년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조상들의 역사·문화 및 생물의 다양한 유전자가 담겨 있는 민족의 소중한 자원이지요. 식량주권을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지요. 토종씨앗이 GMO의 대안으로 꼽히지만 농촌진흥청의 종자은행에만 꼭꼭 숨어 있잖아요. 그래서 여성농민회가 나서 토종종자를 복원하고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보자며 시작했지요.”

그녀의 말처럼 농민들이 시장에서 종자를 사다가 재배하면서부터 거름·비료·농약·농기계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업을 위한 미생물제제까지 구입해 농사를 짓게 됐다. 농부가 씨앗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고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결국 돈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 결과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 농업이 세계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 녹색혁명형 농업으로 재편된 결과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속에서 농업의 미래는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위협받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문희 단장은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해보니 쉽지 않았지요.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도 잘 안 잡혔고 일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실 토종씨앗은 농약이나 비료를 치는 육성품종에 비해 수확량이 적고 관리하기도 어렵다. 이미 농업은 대규모·상업화에 길들여진 바람에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우리 텃밭’이었다. “어차피 대규모 농사를 못 지을 바엔 텃밭에라도 심어보자는 것이었죠. 농사짓는 사람도, 그리고 먹는 사람도 행복한 먹거리를 그야말로 전통방법으로 생산해보자는 것이었죠.”

전여농은 국제적인 종다양성위원회 활동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씨앗’에 주목했다. 여성농민이 씨앗을 갈무리하고 보관하며 재파종하는 역할을 담당해 온 역사와 맞물려 ‘종자주권을 지키는 활동이야말로 여성농민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식량주권 운동’이라고 정리한 것이다. 2005년 통일텃밭 운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뒤로 토종씨앗에 대한 개념 정리, 외국의 활동사례 연구, 우리 씨앗에 대한 조사 등이 진행됐다. 2008년에는 환경운동연합과 ‘만원의 행복’을 통해 마련한 ‘토종씨앗 시민기금’으로 토종옥수수를 심고 수확해서 보내는 국민적인 활동으로 한 걸음 발전했다. 2009년에는 전국적으로 토종씨앗 채종포를 만들어 토종씨앗을 심고 증식하고 체험하는 장으로 운영했으며, 2010년에는 ‘1여성농민 1토종씨앗 지키기’, 토종씨앗 실태조사 등과 ‘토종씨앗 축제’도 열었다.


“토종씨앗을 종자은행에만 보관하는 게 아니라, 기후에 적응시키면서 채종을 해야 합니다. 토종종자연구회 회장인 안완식 박사께서 분양해준 600여종의 씨앗, 그 지역에서 예전부터 심었던 씨앗, 그동안 활동으로 늘린 씨앗 등 다양한 종자들을 전국의 여성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하지만 지난해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토종농사의 작황이 아주 좋지 않았지요. 그런데다 동물들의 습격도 많이 받았고요. 맛있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새와 고라니, 멧돼지들이 토종씨앗을 파헤쳤지요. 어떤 농가는 토종콩 6알을 분양받아 심었는데 11알을 수확했다고 해요. 그래도 그 귀한 씨앗을 잃어버릴까봐 마치 금덩이라도 숨기듯 안경집 안에 고이 모셔놓았답니다.”

지난해 토종씨앗 실태조사를 하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토종씨앗이 거의 다 사라진 줄 알았지요. 그런데 7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토종씨앗을 무슨 보물창고에서 꺼내듯 귀하게 가져오시는 거예요. ‘언제부터 심으셨느냐’고 물으니까 ‘내가 시집오기 전 어머니 때부터 심었으니 한 팔십년?’ 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요. 마을 곳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모두 진정한 스승이자 어머니인 동시에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구원자들이었지요.”

언제나 ‘농민의 마음’은 ‘친정엄마의 마음’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이 심금을 울렸다. ‘1여성농가 1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은 어느새 ‘우리 텃밭’에서 ‘언니네 텃밭(http://we-tutbat.org)’으로 이름을 바꾸며 변화·발전했으며, 우리 종자와 전통농업으로 생명을 지키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다음카페)도 활성화하고 있다.

“‘언니네 텃밭’ 제철꾸러미를 아시나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여성농민 생산공동체와 소비자들이 함께 짓는 농사지요. 소비자 회원이 월 10만원의 회비로 생산자를 지원하고, 생산자는 월 4회 제철 농산물로 이루어진 꾸러미를 소비자 회원에게 보내드리지요. 토종씨앗을 지키는 동시에 제철 농산물을 중심으로 전통가공식품이 함께 교류됩니다.”

20년째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세 딸을 키우는 심 단장은 지난 4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여성농민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남편 김봉용씨(45)는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니, 전남대 운동권 선후배이자 동지로 만난 뒤부터 줄곧 부창부수였다. 거기에다 첫딸 하린양(19) 또한 스스로 한국농대에 지원해 합격했으니 문득 우리 농업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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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학벌과 삼성,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들

프레시안 :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오래 했다. 이른바 'SKY'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학벌 구조를 깨는 일을 해 왔던 철학자가 갑자기 삼성 문제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김상봉 : 그동안 해 왔던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과거에는 학벌 문제가
교육 내부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봤던 게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학벌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안다. 또 스스로 학벌 권력을 포기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SKY'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자발적 낙오자 되기', '내부로부터의 망명'을 감행한 경우인데, 이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 이유다.

그런데 '학벌 없는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학벌 권력은 일종의 '
기생권력'이다. 미국, 군부, 재벌 등 주류 권력에 기생(寄生)하는 권력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학벌 권력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벌 기득권층이 기생하는 숙주에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에 뿌리를 둔 학벌 문제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바탕을 둔 주류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 지어야 할까. 이게 학벌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학벌 폐지 운동이 결국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고민을 푸는 게 필수적이다.

삼성 문제에 뛰어든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학벌 문제의 근본에 도사리고 있는 게 '차별과 불평등'인데, 이것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체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게 삼성 재벌과 이건희
회장 일가다.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했던 이라면, 삼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고 본다.

"학벌 구조 정점에 선 서울대, 재벌 체제 정점에 선 삼성"

프레시안 : 삼성불매운동을 <프레시안>을 통해 호소한 지 두 달이 넘었다. 많은 이들이 호응했지만, 한편에서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재벌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왜 굳이 삼성만 문제 삼느냐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건희 일가의 비리 때문에 삼성 직원들까지 모욕당할 이유는 없다는 게다. 불매운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 대표적인 상품이 반도체라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성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프레시안
김상봉 : 불매운동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라고 말이다. 삼성 비리에 대해서는 사법부도,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경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회사의 비리를 공개하고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결국 나머지 하나인 소비자가 나서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학벌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결국 서울대를 겨냥해야 한다. 서울대가 가장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가 기득권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혹은 SKY대학을 비켜가면서 학벌 체제를 무너뜨릴 방법은 없다. 재벌 체제, 기업독재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를 바꿔내려면, 정점에 있는 삼성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을 마치 다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왜곡한다면, 잘못이다.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하자는 말도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건희의 비리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한 논리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지 않는가.

"'우리 안의 이건희' 지우지 않으면, 삼성 불매도 소용없다"

삼성 그룹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삼성 불매운동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서도 삼성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보는 게 옳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 역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 삼성은 이런 나라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노동인권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은 필수적이다.

삼성 그룹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반도체 판매인데, 이런
부품까지 불매운동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설 필요는 없다'는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삼성이 생산한 부품까지 쓰지 않으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불매운동의 초점은 삼성 브랜드가 찍힌 완제품 및 서비스 상품에 맞추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 불매운동의 목적이 불매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삼성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실천이며, 동시에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는 작업이다. 삼성을 비난하는 많은 이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닮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지우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건희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설령 삼성과 이건희가 사라진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안의 이건희'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 바로 삼성 불매운동이다.

"기업은 현대인의 폴리스…기업 민주화 없이 주체적 삶 불가능"

프레시안 : 소비자가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공적 영역이 삼성 비리 앞에서 작동을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를 따른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나 박사 학위 소지자나 똑같은 자격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1주 1표다. 지분을 많이 가진 한 명이 적게 가진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려면, 법과 제도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소수에게 권력이 쏠리게끔 돼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기초까지 흔드는 일을 막으려면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비리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태도를 보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원이 자본주의 원리에라도 충실한가. 역시 아니다. '1주 1표' 원리대로라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 그룹을 지금처럼 지배할 수 없다. 가진 지분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모호한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학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엿보인다. 똑같이 삼성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 있는 이념적 기반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에서 삼성을 비판한다. 다른 어떤 경우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다보니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이 됐다. 삼성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김 교수가 서 있는 입장이 궁금하다.

김상봉 : 내가 삼성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작동원리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통했던 해법은,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거나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법은 이제 효용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국가 속에서 잉태되었지만, 지금은 국가를 넘어선 존재가 됐다. '세계화' 때문이다. 기업은 인건비와 세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겨 다니며 몸집을 키운다. 국가는 오히려 기업의 눈치를 본다.

결국 해법은 기업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은, 개인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다름없다. 사회적 삶이 일어나는 지평이 기업이다. 따라서 기업을 민주화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소유권의 개념을 제대로
설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경영권과 소유권을 분리하는 게 핵심이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왜 노동자를 지배할 권리까지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출발점이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오듯, 기업의 경영권은 노동자에게서 나오는 게 맞다. 그렇다면 누가 주식에 투자하느냐고? 그래도 투자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 않는가. 기업이 낸 이익 가운데서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배당할 것인지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하면 된다. 배당을 너무 적게 하면, 자본 투자가 줄어들 테고 너무 많이 하면 기업에 재투자할 몫이 줄어든다. 기업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으면 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건희 회장이 1퍼센트 수준의 지분만 갖고 삼성 그룹 안에서 황제처럼 지배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회사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손해를 회사에 뒤집어씌운 그에게 지분에 걸맞은 배당금을 주고 내쫓으면 그만이다.

"5·18 30주년, 이제 삼성독재와 싸울 때"

프레시안 : 기업 지배 구조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행정부, 사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바뀌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운영방식을 닮는 게 선진화'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
공무원들을 기업에서 연수받도록 한다거나, 정치인들이 'CEO'를 자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김상봉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뒤, 국가 위에 기업이 있는 구조가 짜여졌다. 옛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답답한 구조다. 당은 그나마 통제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을 기업 바깥에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업 내부는 일종의 독재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기업 독재' 체제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화국' 전통의 유무가 낳은 차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는 나라에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공화국' 전통과 기업 독재 흐름이 서로 맞부딪히면서 균형을 이룬다. 반면 '공화국' 전통이 없는, 국가기구가 한 번도 온전히 공공적 기관이었던 적이 없으며, 국가기구가 소수의 권력집단이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적으로 점유한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만 쓰였던 한국에서는 기업 독재 흐름을 견제할 힘이 없다.

프레시안 : 공화국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하는 지식인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외부로부터 이식당한 한국 사회에서 강자의 탐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절망감이다.

김상봉 : 꼭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전통이 있다.
저항 공동체의 전통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이 좋은 예다. 지난 18일,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삼성독재 해체 투쟁'을 선언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온몸으로 맞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이런 선언은 의미가 깊다. 나는 지금 이 선언이 신자유주의 기업독재에 시달리는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인권, 해방을 향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를 외신 기자들에게도 전달할 것이다.

총탄이 쏟아지는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1987년 6월을 상상한 이가 있었겠는가. 아마 없었을 게다.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광주에서 나온 선언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역사는 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왔다.

지난 30년은 '부정과 문학의 시대'…앞으로 30년은 '형성과 철학의 시대'

프레시안 : 기업 독재를 막자는 목소리는 진보 진영 안에서도 미미한 편이다. 삼성 불매운동에 몸을 던지는 진보 정치인, 활동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김상봉 : 나는 올해가 광주항쟁 30주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난 3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는 '멀쩡해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거짓'을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던 장본인들이 고개 들고 다니는 현실, 이런 거대한 아이러니를 폭로하는 게 지식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30년은 '
문학의 시대'였다고 본다. '부정의 정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그려내는 이미지와 환상이야말로 문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백낙청, 김지하, 황석영 등이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독재의 시대는 새로운 정신을 요구한다. 바로 '형성의 정신'이다. 신자유주의 기업독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옥죈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는 대안 역시 총체성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개념이 필요하다. 나는 그 작업이 철학자의 몫이라고 본다. '형성의 시대'가 될 앞으로 30년은 '철학의 시대'가 되리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삼성 문제 외면하는 사회과학은 '불임의 학문'"

프레시안 : '철학자가 왜 삼성 문제에 나서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들린다. 상당수 사회과학자들이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상봉 : 단언하건데, 삼성 문제에 침묵하는 사회과학은 '
불임의 학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왜 침묵하는가. 어떤 이들은 용기가 없어서이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한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상을 총체성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게다. 대신, 그들은 삼성이 저지른 일부 불법, 탈법 행위에만 주목한다. 교과서를 들이밀며, 거기서 벗어난 행위를 찾는데 그치는 게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학문인가'라고?

모든 구체적 현상을 구체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인데, 진짜 개념은 총체성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짜 개념은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집 짓는
설계도 역할을 못하는 것은 설계도가 아니듯, 현실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념은 가짜 개념이다. 삼성 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관한 진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과학을 '불임의 학문'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사회과학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철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철학이야말로 총체성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이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정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철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때야말로,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을 철학자들은 총체성에 대한 냉소로 메워버렸다. 거듭 말하지만, 철학은 구체적 현실을 총체성 속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땅의 철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포기하고, 대신 남의 개념을 수입해 폭력적으로 적용하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삼성 문제에 철학자가 나선 것은 필연이라고 본다. 기업 독재의 구체적 발현태인 삼성 문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만들어 질 게다.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 결국 보수에 전용된다"

프레시안 : '총체성'을 강조하는 게 인상적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많은 지식인들이 작고 구체적인 문제에 매달렸다. 그 사이 삼성을 포함한 재벌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갖게 됐다.

김상봉 : 많은 이들이 '생활 진보'를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이런 주장이 '총체성을 포기한 구체성'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현실 속의 구체적인 악(惡)과 맞설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악은 구체적으로 발현되지만, 뿌리는 총체적이다. 따라서 총체성을 포기해서는 이런 악과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악과 싸우지 않는 진보는 결국 보수에게 전용되기 마련이다. 물론, 총체성에 대한 집착이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는 핑계가 돼서도 곤란하다.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이곳에서, 삼성과 싸우지 않는 생활 진보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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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정규직, &quot;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quot;

조선산업 정규직, "행동없는 추상적 연대의식"

비정규노동센터 포럼,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더 큰 행위 동기"

김용욱 기자 2010.05.23 07:29

 

2008년까지 세계적으로 장기호황을 누렸던 조선 산업은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08년 3/4분기 이후 발생한 위기를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도 그 영향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조선산업 위기의 가장 큰 피해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런 위기의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 상황을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지난 20일 오후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노동자’란 주제로 10회 비정규노동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 박종식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2009년 금속노조 조선분과 소속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의식실태를 분석을 발표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이유로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에 46.6%가 응답했다. ‘물량증감에 따른 인원 조정’엔 40%, ‘원청노조의 힘 약화를 위해’에는 8.5%가 응답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느냐'엔 85.6%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상대적 저임금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하청 노동자간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의 원인’을 두고는 34.4%가 ‘원하청 노동자간의 숙련 및 경력에 따른 격차’에, 29.7%가 ‘노동조합의 효과에 따른 격차’에, 28.4%가 ‘원청기업의 불공정거래 때문에 발생한 격차’에 대답했다.

 

박종식 연구위원은 “임금격차의 원인을 개인적인 능력이나 노조 효과라고 응답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고임금을 정당화 하고 차별에 대한 구조적 인식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봤다. 사용자들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것을 두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은 고용안정을 위한 방패막이로 보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한 경영자의 수량적 유연성 전략에 제동을 걸 의지는 미약하다고 분석했다.

 

또 ‘수주물량 증감에 따른 인력조정을 위해 사내하청 활용이 필요하다’라는 문항엔 55.0%가 응답했다. ‘회사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엔 원청 정규직 노동자 54.5%가 응답했다. ‘현재의 정규직 인원수만 유지된다면 사내하청 규모가 확대 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에 45.8%가, ‘핵심업무가 아닌 업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엔 46%가 응답했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두고는 추상적인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당위성엔 68.5%가 응답을 보여 높게 나타났지만 구체적인 행동의식은 낮게 나타났다. 적극적인 연대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사내하청의 임금 및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 할 수 있다’라는 문항엔 38.1%가 응답했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위해 파업할 수 있다’에는 34.9%가, ‘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위해 나의 임금인상분을 양보할 수 있다’는 문항엔 32.8%가 응답했다.

 

박 연구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 해결에 대해 연대의식은 있으나 직접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약하면서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 연대를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자신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고, 외부적인 시선-정규직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에 의한 비자발적인 연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지회(노조) 직가입에 대해선 50.7%가 찬성을, 49.3%가 반대를 해 금속노조가 사내하청 조직화를 위해 추진하는 ‘1사 1조직’ 방침에 대해 찬반이 팽팽하게 나타났다.

 

1사 1조직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원하청 노동자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에 36.7%가 응답했다. 23.8%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조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 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장을 자주 옮기기 때문’ 13.3%, ‘원청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 11.9%, ‘원하청노동자 근로조건이 다르기 때문’ 10.1%, ‘교섭비용 증대, 비효율적이기 때문’ 3.1% 순으로 나왔다.

 

이런 응답을 두고 박 연구위원은 “1사 1조직의 반대이유로 원하청 노동자의 이혜관계가 다르다는 응답률이 높은 이유는 고용의 외부화를 매개로 한 경영자의 노동자 분할지배 전략에 휩쓸려 결국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보다 협소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고자 하는 유인이 더 큰 행위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봤다.

 

박 위원은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실리추구와 추상적인 차원의 연대성에 대한 인식은 단위사업장 내에서의 사내하청 조직화를 대단히 힘들고 어렵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한 인식 전환 △기존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을 제시했다.

 

이 조사는 2009년 상반기 금속노조 조선분과에서 소속 사업장들의 사내하청 조직화 방안 모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2009년 6월까지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는 조선사업장 16,095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 687명의 설문지를 수거 분석한 결과다. 조사의 표집오차는 95% 신뢰도 수준에서 ±3.65%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점규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조선산업의 위기는 수주잔량이 바닥나면 더 광폭해 지고 이는 정규직 구조조정으로 올 수밖에 없다”며 “조선산업이 호황일 때 비정규직 규모를 묶지 못해 노동조합이 더 어려워 졌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국장은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을 먼저 내보내면 정규직은 안 잘린다는 생각이 1사 1조직을 더 어렵게 한다”면서도 “회사도 1사 1조직에 대한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1사 1조직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국장은 기아자동차 노조를 예로 들고 “기아 같은 경우 1사 1조직으로 비정규직의 60%가 넘는 조합원을 조직했다”면서 “1사 1조직은 정규직지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보하고 비정규직을 가입시킬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규채용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먼저

 

이에 앞서 정흥준 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원인에 경제위기 등 외부환경 외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를 살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조선산업 위기의 원인으로 과도한 과잉설비를 들었다. 정흥준 국장에 따르면 조선산업은 2008년 3/4분기까지 지속된 몇 년간의 호황으로 과도한 경기낙관론에 따른 과도한 과잉설비를 불렀다. 경제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특히 중소 조선기업들은 은행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정흥준 국장은 또 다른 요인으로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및 다각화 △기업간 공동대처능력 부재를 들었다.

 

정흥준 정책국장은 이어 경제위기로 인한 생산량 축소가 인력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추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위기 시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력감축을 선택하지만 실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며 “인력감축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생존권 위협이기도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도 고숙련 노동자를 잃게 되어 장기적인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기형적인 사내하청구조도 주요 문제점으로 나타했다. 정흥준 국장은 개별기업들이 정규직 임금동결 및 생산량이 증가 할 때마다 하청구조를 활용해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원가절감 전략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국장은 노사정에 각각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정부에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나서서 대형조선사를 중심으로 집중해야 할 사업부문을 조정하고 사업재편 과정에서 기형적인 사내하청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업차원의 대책으론 △인력구조조정의 대안마련 △해외투자생산설비의 축소 △전략적 제휴의 확대 등을 들었다.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노동조합엔 비정규직 인력구조조정의 대안으로 소규모이지만 신규채용 대신 일상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영진의 경영활동 감시를 강화해 무분별한 해외직접투자 등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제기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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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만 끼친 은행 대형화

민폐만 끼친 은행 대형화

 

* 경향신문 : 4월 29일

 

아주 상투적인 이야기부터. 금융의 본래 역할은 돈을 돌려 실물경제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데 있다. 사람 몸으로 치면 돈은 혈액이고, 실물경제는 근육과 살이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살이 썩거나 근육이 괴사한다. 반대로 혈액과다도 몸에 문제를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금융이 실물경제의 매개자 역할에서 벗어나 산업에 군림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 체제가 쇠퇴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영국의 패권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20세기 초와 미국의 달러패권이 힘을 잃어가던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그 시도들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도 함께 망했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약탈적 대출’이란 별명이 붙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연간 성장률이 7~8%를 넘던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체제로 바뀔 무렵부터 금융산업 육성론이 등장했다.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키우겠다며 자본시장법이 만들어졌고, 금융 중심지 건설이 추진됐다. 금융도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신화’와 ‘금융강국 코리아’, ‘금융허브’라는 말들이 춤을 췄다. 영어로 뒤범벅된 금융용어들을 한두 개쯤 주워 섬겨야 행세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 몇 년간 금융회사들이 과연 실력을 키워 우리 경제에 기여했을까.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몇 차례 인수·합병으로 4대 은행의 과점체제가 되면서 공공성과 소비자 편익은 줄어들었다. 장래성 있는 중소기업을 골라낼 실력이 없으니 주택담보대출만 늘려 자산 거품을 키웠다. 공공성 대신 수익성이 최고 덕목이 되자 어느 은행은 위험한 파생상품 투자에 나서 1조원이 넘는 돈을 날렸다.

은행들은 ‘글로벌화’를 부르짖었지만 정작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해외에서 1달러 한 장 꿔오지 못했다. 환차손에 특효가 있다며 은행들이 판매한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는 멀쩡하던 중소기업들을 쓰러뜨렸다. 결국엔 국민 세금으로 조성한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은행들에 뿌려졌고, 무능력한 은행을 위해 정부가 해외에 보증을 서야 했다. 이런 와중에도 은행들은 서민들에게 가산금리를 받아 챙겼다. 은행들이 실물경제에 민폐만 끼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은행산업 재편이 거론된다. 몇 개 은행을 통째로 합치는 메가뱅크(거대 은행) 구상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은행산업 재편이 국민경제에 어떤 실익을 줄지 설명이 부족하다. “덩치가 커야 위기대응 능력도 커진다”고 하지만 거대 은행들이 위기에 더 취약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반 국민에겐 그저 동네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훤히 꿰뚫고 있고, 급전이 필요할 때 선뜻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최상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뒷배가 되어주면 족하다. 그 기업이 잘돼 고용을 늘리면 그만큼 국민경제가 발전한다. 금융의 부가가치가 달리 특별한 게 아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이뤄지고 있는 금융규제 논의는 금융회사들이 국민경제보다는 제 뱃속만 챙겼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은행들의 과점체제를 깨고 위험한 거래를 억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금융이 더 커져야 한다며 국제적 논의에서 비켜나 있다. 금융 본연의 기능에 대한 성찰 없는 맹목적인 대형화는 괴물만 키울 뿐이다. 금융산업 재편 논의는 국민경제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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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외국자본 통제 적극 검토해야

 

* 경향신문 : 5월 10일(월)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우려로 지난주 후반 세계 주요 증시가 동반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우리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의 기록적인 매도 공세로 이틀 동안 코스피가 4% 넘게 떨어지고, 원화는 달러당 39원이나 폭락했다. 지난 2월에도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져 국내 금융시장이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재정위기 타개를 위한 유로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장이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사태가 악화하면서 세계 경기가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다시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보다 더 긴박한 영향은 외환시장 교란이다.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신용경색으로 발전하면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이탈이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외화부족 사태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다.

대외 요인에 의한 외국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과 이로 인한 외환시장 교란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다. 금융의 세계화에 따른 현상이지만 우리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해 해외시장에 악재가 생길 때마다 나라 경제가 송두리째 위협받는다. 무제한적으로 외환시장이 개방된 결과다. 원화가 국제 투기자금의 먹잇감이 된 지도 오래다. 지난주 이틀간의 원화 가치 하락 폭도 아시아 통화 중 최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는 너무 미온적이다. 막대한 외환보유액도 소용없어 결국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나서야 살아났던 금융위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대책이다.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자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통제 장치를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도 올 초 ‘자본 유출입에 대한 국가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오는 11월 G20정상회의에서 금융안전망이 마련되기를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회의를 염두에 두고 ‘국제공조’만 강조해서 될 일이 결코 아니다. 위험요인을 줄일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대응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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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 이건희 전 삼성회장은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기념식이 5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 열린 가운데 경영복귀 가능성에 대해 "아직 생각 중이다"고 말한 뒤 "회사가 약해지면 복귀를 해야겠지만 참여하는 것 보다는 도와줘야죠"라고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경향신문에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기명칼럼을 써왔습니다. 오늘 제 글이 실릴 차례인데 불행하게도 글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는 제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물론 거절했으나, 신문사는 끝내 저의 칼럼지면을 다른 분의 글로 채웠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독재정부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주체는 국가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실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적 권리는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권력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자본권력이 대신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시민적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일간지에 광고할 수 있는 지면을 얻지 못하고, 외부칼럼으로 기고한 저의 원고가 신문사 자체 검열에서 끝내 게재를 거부당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정이나 폐지를 청원하는 것도, 더 나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조차 금지했던 긴급조치 9호 시절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정의로운 기초를 뒤흔드는 시대에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애써 역사의 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종이신문에서 실리지 못한 저의 글을 혹시 실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면서 이번 일이 이 땅에서 삼성의 독재를 끝내는 대장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은 경향신문 2월 17일자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입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 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에 국가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독재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 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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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 [2010.02.19 제798호]

 

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아파트·고학력 적극 투표하고, 무주택·저학력 ‘정치 소외’ 두드러져

 
 
“정치? 나 같은 사람한테 해당 사항이 있나.”

일거리를 찾으러 나온 김상수(57·가명)씨는 ‘정치’ 얘기를 꺼내자 자꾸만 등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투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 보니 정치는 다른 세계였고, 투표는 남의 일이었다. 손사래를 치던 김씨는 자리를 뜨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우리야 한 달에 120만원만 받을 수 있어도 참 좋지.”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동이 만나는 남구로역 3번 출구 일대는 남부권 최대의 인력시장으로 통한다. 김씨처럼 하루치 일당을 벌기 위해 매일 새벽 남구로역 앞을 찾는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250명에서 많게는 500명에 이른다. 하루 일당 6만5천원. 소개비 5천원과 왕복 교통비를 빼면 실제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많아야 6만원이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추위에 떨며 일한 대가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일을 잡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 지난 2월4일 새벽 한 남성이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근처 인력시장을 찾고 있다. 무주택자와 저소득층의 잦은 이사와 불안정한 주거 형태는 정치로부터 이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같은 강남, 잠실7동과 논현1동의 차이

 

“분명 ‘싸인지’(일종의 근로계약서)에는 7만원이라고 돼 있는데 왜 6만원밖에 안 줘. 거기서 용역비 떼고 차비 떼면 얼마 남는다고. 나 안 해. 일 하루 안 한다고 뭐, 없으면 깨끗이 들어가는 거야.”

어둠 속에서 일당을 놓고 ‘팀장’이라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인 40대 강아무개씨는 물었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발걸음을 홱 돌렸다. 강씨처럼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 6시30분까지는 인력사무소를 들락거리며 어떻게든 일을 찾아보려 애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가리봉동에 사는 이형기(49·가명)씨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걸 모르는 눈치다. “투표야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지. 근데, 뭔 선거가 있나? 이렇게 나와서 물어보는 것 보니까.”

곁에서 발을 구르며 추위를 쫓고 있던 사내가 거들었다. “일자리 좀 많이 만들어주고, 여자들도 직장 생활 편하게 할 수 있게 애들 맡길 곳을 좀 많이 만들어주면 좋지. 그런데 그게 어디 나 혼자 바란다고 되간디. 투표야 당일 가봐서 기분이 내키면 하겠지, 뭐.” 결론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다. 일부는 처음부터 그랬고, 몇몇은 배신감에 등을 돌렸다. 멀리 동이 트기 시작했다.

 
 
» <표1>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네·투표율이 가장 낮은 10개 동네의 특징
 
 
 

정치로부터 소외된 계급, 이들은 ‘얼굴 없는 시민’이다.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 또한 어떤 정당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도를 더해갈수록 ‘정치적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조만간 출간되는 노동운동가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후마니타스 펴냄·이하 <정치·사회 지도>)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를 대상으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한 각종 통계와 2004년 총선 및 2006년 지방선거 등 최근 치러진 주요 선거 결과를 모아 분석했다. 메시지는 뚜렷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투표한다 △대다수 빈곤층은 투표하지 않는다 △계층 간 종교적 분화가 분명하다 등이다.

먼저 계층과 투표 여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 10곳과 가장 낮은 동네 10곳이 있다(표1 참조). 이를테면 2004년 총선에서 양천구 목6동은 동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에 참여했다. 강남구 논현1동은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잠실7동은 동네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3분의 2 이상이 투표를 포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투표율 높은 동네, 한나라당 지지도 높아

 
 
»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자 동네’라는 사실이다. 84%가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 송파구 잠실7동과 문정2동은 동네 사람 가운데 90%가 주택 보유자다. 무주택자는 10%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곳 중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강동구 둔촌1동에서도 무주택자 비율은 27%밖에 되지 않았다. 주택 소유 여부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의 종류도 계층을 나누는 주요 기준이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 가운데 6곳이 100% 아파트 동네였다. 전체 아파트 비율은 98%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이들 10개 동네는 대체로 1인 가구(7%)도 적고 (반)지하 등 열악한 거주 환경의 가구(1%)도 드물었다.

 

투표율이 낮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74%였다. 강남에 있지만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75%가 무주택자이고 1인 가구 비율이 48%에 이르렀다. 역삼1동도 전체 가구의 80%가 무주택자였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압도적으로 많고, (반)지하 주거 비율도 10~13%로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평균(1%)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택 소유자가 그나마 많은 동네인 강북구 미아2동도 무주택자가 절반을 넘었다(55%).

 

주거 형태도 투표율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투표율이 낮은 10곳에 사는 사람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서민의 보금자리는 단독주택이었다. 76%가 단독주택 아니면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17%는 (반)지하나 옥탑, 쪽방에 살고 있었다. 전체의 43%가 1인 가구였다.

학력과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투표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학력이 높고 종교 인구가 많았다면(64%), 반대의 경우 학력이 낮고 종교 인구 비율도 낮았다(49%).

투표율에 따른 주거 및 학력의 양극화는 그 범위를 518개에 이르는 서울 모든 동네로 넓혀도 비슷했다. 남승우씨는 강남구 논현1동과 역삼1동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구로구 가리봉2동에서 구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남씨의 투표율 분석이다.

“지역 주민 가운데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요. 하루하루 일해서 수입을 얻어야 하니까 투표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죠.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좀 큽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생활 수준이 워낙 낮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소득이 올라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관심을 가질 부분은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의 관계다. 결과적으로 말해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한 동네일수록 한나라당 득표율이 올라가고, 투표를 적게 한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시절 포함) 득표율이 올라갔다. 무주택자 비율이 높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며, 주민의 학력이 낮은 지역일수록 민주당 득표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는 ‘계급 배반 투표’ 이론을 뒤엎는 결과다.

서울의 전체 동네를 투표율순으로 나열해 다섯 묶음으로 나눠, 투표율이 가장 낮은 묶음을 1분위(하위 20%), 가장 높은 묶음을 5분위(상위 20%)라 정하면 좀더 이해하기 편하다(표2 참조). 한나라당은 투표를 가장 적게 한 1분위 104개 동네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는데, 2·3·4분위로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득표율도 함께 증가하다가 투표를 가장 많이 한 5분위 104개 동네에서 최대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은 그 반대였다. 1분위 동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았고, 5분위 동네에서 표를 가장 적게 얻었다.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투표도 많이 했고,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에서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투표 않는 동네엔 셋방 떠도는 사람 많아”

 
 
» <표2> 서울시 518개 동네를 투표율에 따라 5묶음으로 나눠보면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고약한 일이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당시 진보·개혁 진영이 지지한 주경복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에서 이겼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었다. 최종 승리는 공 후보 몫이었다.

서울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대표적 동네가 종로구 창신2동이다. 이곳에서 민주당은 2004년·2006년 선거에서 평균 56%를 얻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문제는 투표율에 있었다. 창신2동의 투표율은 2004년 60%, 2006년 51%에 그쳤다. 전국 평균 수준이거나 약간 못 미치는 결과였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표밭’에서 최대한 차이를 벌려야 하는 선거의 속성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임성수 민주당 창신2동 당원협의회장은 정작 정권을 잡은 뒤가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창신2동은 호남에서 올라온 저소득층이 모이는 동네였습니다. 1997년 DJ를 당선시킬 때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호남향우회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뭉쳤죠. 그런데 DJ 당선시키고, 이어서 노무현 정권까지 출범시켰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2006년 지방선거 때였나, 여당은 개헌이다 뭐다 정치 논리만 앞세우고 대신 한나라당이 민생을 강조하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지지층이 떨어져나간 면이 있다 이겁니다.”

창신2동에 대거 들어서 있던 봉제공장이 경기를 탄 것도 한 이유였다. 지난 2005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창신동 일대를 재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다. 그런데 후속 조처가 나오지 않았다.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상권이 죽어나갔다. 임 회장은 “창신2동 젊은 사람들이 대개 거기서 밥 벌어먹고 살았는데, 일이 끊기니까 급속하게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거래에 익숙한 ‘적극 투표층’

 

<정치·사회 지도>를 보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도 수도권 주민의 주거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도권에 집 가진 사람의 절반은 평균 5년에 한 번씩, 셋방 사는 사람의 절반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전체의 3분의 2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한집에 사는 사람은 100가구당 17가구에 불과했다. 손낙구씨는 “수도권에서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이상인 547개 읍·면·동에 사는 선거권자 768만 명 가운데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442만 명으로 투표율이 58%에 못 미쳤다”며 “수도권에서 투표에 잘 참여하지 않는 동네가 있다면 분명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수도권 하층의 불안정한 주거 현실이 정치의식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치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정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든 교육이든, 아니면 일자리 정책이든 자기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2년에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셋방을 옮겨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공론 형성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배제되는 면도 있다.”

 
 
» 수도권 1186개 동네의 인구주택총조사 등 각종 통계와 최근 선거 결과를 종합해보면, 고학력·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위)일수록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이 높은 반면 저학력·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아래)에서는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도 떨어진다. 한겨레 김태형·<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런 가운데 ‘얼굴 없는 시민’을 대변해줄 유력 정당은 없었다.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창신2동 사례가 그랬다. 임성수 회장의 증언이다. “2008년 4월 총선 때였죠. 내가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를 이틀 앞두고 막판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어요. 그때 내놓은 게 ‘뉴타운 용적률을 높여주겠다’ 이거였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의 뉴타운 분담금을 덜어주겠다는 소리잖아요. 막말로 여기 집 가진 사람이 많습니까,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대다수 세입자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다수 세입자’에 해당하는 창신2동 주민은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데 익숙지 못했다. 대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이해관계’를 매개로 똘똘 뭉쳐 투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적극 투표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거래’에 익숙했다.

강남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으로 보답했다. 2009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도 정부는 서민·중산층에 감세 효과가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감세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쪽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대신 저소득층 복지 정책에는 인색했다는 평가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두 11명인 경기도 교육위원은 전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서울 중랑구 면목2동에 사는 이명수(55·가명)씨는 폐가전제품을 매입해 재활용업자에게 넘겨 생계를 꾸리고 있다. 1t짜리 고물차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다. 3층 다가구주택의 반지하 방 2칸에서 부인과 아들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는 25만원이다.

이씨가 사는 면목2동에는 9780가구 2만8517명이 산다. 이 가운데 전체의 18%인 1768가구가 이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에 산다. 2008년 총선에서 이씨와 그의 이웃들인 면목2동 유권자는 절반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민주당을 찍었다.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한다고 하니까 찍었죠. 물론 민주당이 꼭 서민을 대표한다고는 안 봅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서민을 좀더 위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반영이 안 돼 그렇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아들도 한 놈은 군대에 있고 한 놈은 대학생인데, 취업 제대로 하려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대기업 중심인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투표를 한다면 민주당 찍을 확률이 80%는 됩니다.”

     
 
» 전국 단위 선거의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9년 10월28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율천동 투표소에서 학생들이 투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 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대표적 수단은 투표다. 그래서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4년 17대 총선(60.6%)에 비해 14.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17대 때보다 유권자가 220만 명 늘어났지만 투표에 참여한 국민은 되레 421만여 명 줄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이 모두 2042만여 명이었다.

2010년 6월2일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얼굴 없는 시민’의 경계를 오가는 이씨에게 꼭 맞는 정당이 나타나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당 득표율과 종교의 상관관계

천주교는 한나라당 지지층 종교?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보면, 수도권에서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 정당별 득표율과 종교 형태는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518개 동네를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과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으로 나눠 살펴보니, 강남구 압구정1동 등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평균 65%였다. 서초구 반포본동이 가장 높았고(68%), 강남구 청담1동이 낮았다(63%). 종교 인구 가운데서는 특히 천주교 신자(26%)가 많아서 불교(15%)는 물론 개신교(24%)까지 제치고 최대 신자 수를 기록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가 평균 11%인 것과 비교할 때,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천주교 비율은 2배 이상 높았다.

민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반대다. 종로구 창신2동 등 이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50%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관악구 신림6동(56%)처럼 주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지역도 있었지만, 영등포구 대림2동(44%)은 꽤 많은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이 표를 많이 얻은 지역의 주민이 선호하는 종교는 개신교(21%)였다. 불교(18%)가 그 뒤를 이었고, 천주교(10%)는 큰 차이를 보이며 처졌다. 개신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지역과 민주당을 많이 찍은 지역에서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다면, 천주교와 불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천주교 인구 비율이,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불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가 한나라당 지지층의 종교”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정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해도, 두 가지 사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그동안 대체로 저소득·저학력층에서 불교 신자 비율이, 고소득·고학력층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정 종교와 정당 지지층을 연결짓는 문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근 천주교가 일련의 시국사건에 보인 보수적 태도로 볼 때 이번 조사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치사회팀장은 “지난해 2월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 등 천주교의 보수화 논란을 설명할 때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교계 내부에서는 어떻게 볼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 관계자는 “천주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요 성당이 서울 강남에 많이 진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학력을 갖춘 신도가 새롭게 편입되다 보니 ‘신도의 보수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조계종 핵심 관계자는 “1994년 이후 진보적 인사가 종단 요직에 많이 진출했다”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 핵심부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스님들이 포진하면서 종단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런 가운데서도 참여정부 때까지는 정치적 균형과 중립을 많이 강조해왔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종교 편향이 심해지면서 종단 내부에서도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좀더 힘을 받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정치의 양극화’를 견인했다면, 정치의 양극화는 다시 ‘종교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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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성서를 읽다 보면 늘 이 대목에서 걸린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원수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분이 어찌 개와 돼지를 멸시하고 저주하시는 겐가.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다 맞는 말씀이다. 중세 로마교황들은 스승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단을 잔인하게 죽였다. “이단을 화형시키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짓”이라던 루터나 칼뱅도 매한가지로 적들을 화형시켰다. 차라리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 가르침을 둘러싼 미움도 죽임도 없었으리.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도 깨달음 뒤 망설이셨던 게다.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나만 지치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긴 고민 끝에 당신께서는 45년의 기나긴 가르침의 길에 나서셨건만 그 제자들은 끝없이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분은 세상 모든 존재와 사건이 고유의 독립된 실체가 없으며, 모든 게 원인과 조건에 따라 서로 기대어 일어났다 사라진다 하셨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정반대로 실체로서의 극락이며 서방정토며, 영원히 여기에 머무르는 ‘나’를 믿었다. 미륵불과 아미타불 같은 신들도 만들어냈다. 45년의 가르침은 다 어디로 간 건가. 그래도 그분들은 제자들에게 진주를 던져주었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나 아닌 타인과 다른 사물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리.

 

요즈음 법치주의가 꼭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신세가 되었다. 가히 대한민국은 법치만능 내지 법치과잉의 시대다. 모든 일이 법으로 간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대북송금 문제가 법으로 갔다. 헌법재판소는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법권이 관여할 성질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송금한 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이라 판단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민주당 지지 발언으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고 탄핵심판까지 받았다. 대한민국 수도를 옮기는 것이 합헌인지도 법관의 손에 넘어갔다. 미네르바 경제평론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 보도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주장도 모두모두 재판을 받았다. 본래 법치주의란 절대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서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에 이르면 법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배도구로 전락했다. 헌법책에는 이 시기를 합법적 불법국가라고 규정했다. 1949년 독일 기본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정의·평화를 보장하는 올바른 법만이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못박았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관련법이나 4대강 관련 특별법, 노동관련법들은 국민들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외면하는 한 법률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들 더는 법이라 할 수 없는 합법적 불법들이다.

 

본디 법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능력도 없고 진리를 탐구할 능력도 없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며 사랑이나 융통성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법은 그저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과 경제적 이익을 지켜주는 소극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사회의 전면에 나서거나 모든 문제의 해결사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성도 없고 국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법원이 우리 사회의 근본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법들을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을 법으로 끌고 가는 건 법치주의의 남용이요, 타락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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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춥다

국회가 지난 18일 협상과 진통 끝에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를 통과시켰다. 그 며칠 전에는 학생식당 고급화로 밥값이 오를 것을 반대하여 대학가가 들썩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때 대학생들은 빛나는 존재였다.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존재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때가 있었고, 아무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군부의 총부리와 맞서 겁 없이 민주화 투쟁을 해낼 때 그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의 존재는 어떤가?

다수가 학자금을 빌려 대학을 다니는 빚쟁이가 되었고, 졸업 후에도 그 빚을 갚을 길이 막연해져서 그것마저 탕감을 받게 된 복지의 대상, 세금을 축내는 수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총학생회는 등록금과 교내 식당의 밥값을 흥정해야 하는 기구가 되었다.

창대한 미래를 꿈꾸며 기고만장하던 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지라 한 목숨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에 나는 적응이 안 될 때가 많다. 일본의 한 대학 국제학부 교수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오는 지원자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세계를 걱정하고 사회적 감각을 가진 청년들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열정을 가진 학생을 만나기 힘들어졌다면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대학이 글로벌 100위 대학에 들어야 한다는 깃발을 높이 세울수록, 기업에 봉사하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나설수록, 캠퍼스가 화려하고 말쑥해질수록 대학생들은 점점 초라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뭔지 모르게 기가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총애와 기대를 한 몸에 모으며 일류대 진학에 성공한 지방 출신 학생은 대학에 입학해서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가진 것 없는 존재임을 절감했다고 했다.

실제로 화려해진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는 학생보다 초라함을 느끼는 학생 수가 월등히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을 겸비한 0.1%의 ‘엄친아’들에게는 9000원의 점심 값이야 별 것이 아니겠지만 부모의 빠듯한 재력과 ‘동생의 희생’으로 일류대 진입에 성공한 경우라면 5000원도 무리한 가격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일찍부터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적나라한 ‘격차 사회’에 살고 있음을 수시로 인지시켜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소식에 놀란 가슴에 시장근본주의로 방향을 튼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 대학은 충격으로 인한 강박에서 벗어나 다시 근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야 한다. ‘0.1%의 명품인재’를 키우겠다는 말을 대학 경영인들이 스스럼없이 하고, 성공한 자만이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대학, 승자 독식을 당연시하는 대학이 진정 인재를 배출 할 수 있을까?

인재란 자고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적인 인재는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시시덕거리는 경험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학 경영자들이 좋아하는 ‘수월성’은 잡다한 평범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지 돈을 좇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은 시장이 아니다. 대학에 온기가 필요하다.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곧 봄은 올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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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확대로 부모 경제력 영향 커져
ㆍKDI 보고서 …“장학금 확충 등 노력을”


한국 사회의 ‘부(富)의 대물림’이 지금까지는 교육을 통해 상쇄돼 왔지만, 앞으로는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더 심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부모의 소득에 따른 사교육비의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로 이어지면서 종국에는 소득 격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일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교육이 경제력 대물림에 미치는 비중은 최고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은 부자(父子)간 월평균 임금의 대물림에 48.2%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임금이 높아지면 아들에 대한 교육투자를 늘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ㄱ씨의 월급이 ㄴ씨보다 100% 많다면 ㄱ씨 아들의 월급도 ㄴ씨의 아들보다 14.1%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교육이 월평균 소득의 대물림에 43.2%, 가구 연소득에 46.9%, 가구 순자산에 24.5%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계했다. 다만 KDI는 “분석에 활용한 표본 연령은 낮은 편이어서 부모의 영향이 아들의 경제력에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교육변수에 의한 부의 대물림 효과가 본격화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KDI는 그러면서 현재 30대 중·후반의 자녀와 그 부모 세대 간 부의 대물림 비율은 31%로 영국(34%), 미국(34%), 독일(37%)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세대는 대부분 사교육이 급증하기 전 평준화된 중·고교를 다녀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고 KDI는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사교육 심화로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면서 갈수록 부의 대물림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실제 올 1·4~3·4분기 도시가구의 월평균 학원비 지출액이 소득 상위 20%는 33만2511원으로 소득 하위 20%(4만2715원)에 비해 8배가량 높았다.

KDI 김희삼 부연구위원은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 능력 차이가 자녀의 학력 격차를 낳고 다시 자녀세대의 소득 격차로 이어져 부의 대물림이 교육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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