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우연의 일치일까
- 티코
- 2019
-
- 후보비방죄 집행유예 16주년
- 티코
- 2019
-
- 오랜만의 만나샘 저녘 예배
- 티코
- 2019
-
- 사람이란 존재
- 티코
- 2019
-
- 잔인한 성 프란시스 인문과정
- 티코
- 2019
이처럼 현대 생리·생물학 연구의 기초가 돼온 동물실험의 전통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이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나섰다. 미국인 의사 레이 그릭과 수의사 진 스윙글 그릭 부부가 함께 쓴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다른세상 펴냄)은 “동물모델은 부정확하고 불필요하며 인간에게 위험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라는 도발적 주장을 내세운다. “동물실험은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왜냐하면 동물실험은 제약회사에 법적인 성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물실험은 그 자체가 근본적인 의료사고이다. 동물실험을 거친 의약품이 인간에게 동일한 결과를 제공할 가능성은 언제나 50대 50보다 적다. 통상적으로 훨씬 더 적다. 동물실험은 과학이 아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위험천만한 도박인 것이다”(73쪽). 동물실험이 과학이 아니라니!
이들의 목소리는 ‘동물 복지’를 내건 동물보호주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통념을 뒤흔들 만한 이 책의 강렬함은 그런 주장이 도덕과 윤리의 차원이 아니라, 동물실험에 관한 여러 과학적 근거의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동물 연구에서 나온 지식을 인간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상 대형 약물사고의 사례들이 ‘잘못된 믿음’과 ‘신념 비약’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동물실험이 신약 개발과정에서 필수적 관례가 된 것은, 근래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이뤄진 일이라고 지적한다. 1937년 사건은 그 계기가 됐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항생제 설파닐 아미디라는 특효약을 복용했는데, 이로 인해 107명이 숨졌다. 곧이어 과학자들은 이 약물을 동물에 시험했고 동물 역시 죽었다. “이 단 한번의 사례로 과학계는 이후 모든 약물검사에 동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더욱이 2차 세계대전으로 약물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약사들은 실험동물이 부작용을 나타내지 않거나 죽지 않으면, 사람의 임상실험을 통해 그 약물의 사용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1950년대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은 “모든 비극적인 부작용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이었다. 1956년 이후 이 약물 사용으로 기형아 출산이 속출하자 과학자들은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기형 발생을 재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동물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약물 사용은 허용됐다. 정상 분량의 수십~수백 배를 토끼·침팬지 등에 투여하고서야 부작용을 뒤늦게 확신한 제약사는 1962년에야 이 약물을 리콜했다. 1만명 이상의 신생아들이 불구로 태어난 이후였다. 국내에서도 몇 해 전부터 ‘실험동물의 복지’에 관한 논의가 과학계 안팎에서 일고 있으며, 불필요한 동물실험의 횟수를 줄이고, 동물실험은 되도록 다른 실험으로 대체하며, 실험방식을 세련화해 동물의 고통을 줄인다는 동물실험의 3원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도발적 주장에 다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을지라도 ‘실험실의 동물들’에 진지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될 만하다. 또 신약 개발과정에 대한 맹신의 허상을 깨고, ‘모든’ 동물실험이 ‘모두’ 불가피한 선택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상 한겨레)
언론에서 새로운 약이 개발됐다고 하는 소식을 전할 때 대부분 그 근거로 삼는 것이 ‘동물실험’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뒀기에 이제 임상관찰만 거치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환자들의 가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이 치료됐다는 다음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곧 병을 정복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후의 경과는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의학계에 몸을 두고 있는 레이 그릭과 진 스윙글 그릭은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그것에 대한 답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동물실험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도 인간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동물실험은 ‘쓸모없는’ 것이기에 당연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더불어 그들은 동물실험이 몇몇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고 유지하기 위한 재원낭비이기에 동물실험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자체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동물실험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어야만 인간에게 실험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기에 근본적인 것을 비판하는 그들의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 그들도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실험의 무익성과 동물실험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인간들의 수많은 악의 행위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고 있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무엇을 폭로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이제껏 믿고 있던 동물실험이 연구자들만의 복지이자 인간을 배제한 어처구니 없는 자원낭비라는 것이 그것이다. 지은이들은 동물실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간과 다른 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뒤에 인간에게 그 효과를 얻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이것은 인간을 위한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은이들은 종이 다른 인간으로 실험을 한 뒤에 결과를 얻고 그것을 인간에게 실험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에서도 병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종이 다른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고양이의 병에 효과적인 치료약이 있어 그것을 동일 병을 앓고 있는 인간에게 실험했을 때 인간은 치료는커녕 더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관절염 치료제, 플로신트는 쥐, 원숭이 몇 개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실험동물들은 플로신트를 잘 견뎠다. 그러나 글 인해 인간은 8명이 사망했다. 이와 같은 사건의 영향으로, 알버트 세인빈 박사의 전직 동료였던 길리오 타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궁극적으로 진통제 연구에서 어떠한 동물실험도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물실험의 결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에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신성하고 고귀한 직업이 사실은 인간의 건강을 돈내기하듯, 동물을 화폐 다루듯이 하는 거대한 규모의 도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팅턴 연구 센터 책임자인 랄프 헤이우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 독성 자료에서 역반응의 상호 관련성은 아마도 5~25퍼센트 사이일 것으로 짐작된다.” 불과 5~2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비율로 보면 동물실험이 동전 던지기보다 더 마구잡이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본문’ 중에서
마찬가지로 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하여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에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탈리도마이드나 인슐린 등 이미 역사는 숱하게 그것들을 증명해왔다고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치료약의 발견들은 동물실험이 아니라 임상관찰과 연구, 약물역학, 유전학 등으로 얻어냈다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재원을 투입했던 동물실험은 효과는커녕 병에 대항하는 인류의 발걸음을 퇴보시켰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은이들은 동물실험의 그 같은 무익성과 유해성은 의학자들도 알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소 뜻밖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렇게 무익한 것을 알았다면 왜 이제껏 아주 오랫동안 지속돼 온 것인가? 여기서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이 두 번째로 놀라운 사실로 폭로하고 있다. 바로 인간이 아닌 돈을 신봉하는 세력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동물실험에 투자되는 국가 예산과 기부금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약 회사들과 동물실험을 위한 동물을 제공하고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들에게는 이것은 ‘생명줄’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것이니 모든 능력을 동원해 동물실험을 계속하게 만든다. 인간을 위한 약을 개발에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은 의아스럽게 여길 수 있겠지만 군수업체들이나 담배회사들이 벌인 유명한 로비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어떤 기업들이 동물실험에서 이익을 얻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로비스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동물 사육업자들과 판매업자들 외에도 우리, 격리 우리, 주사기와 주사 바늘, 저울, 전문화된 수술 장비, 동물 조직, 기관 및 혈액, 동물 사료, 살수장치, 특수한 방식으로 동물을 죽이는 장비, 화학약품, 현미경, 미세수술용 확대 장치, 외과용 수술 칼, 전기 장치, 혈액 검사 장비, 입체배열 장비 등등을 제조하는 사람들과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록은 거의 끝이 없으며, 각각의 품목은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로 판매된다. ‘본문’ 중에서
또한 과거부터 내려온 관습도 한 몫 한다. 오랜 역사 덕분에 동물실험에서 인정되지 않은 약은 아예 인간에게 실험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지은이들이 우려한 대로 인간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을지 모르는 약들도 동물실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많은 이들이 관습에 얽매여 이대로 행동하고 있다.
더불어 지은이들은 안이함을 추구하는 의사들의 태도 또한 문제로 지적한다. 특히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상아탑에 있는 이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에 대한 실험 보고서를 하나 쓰는 동안 동물에 대한 실험 보고서를 다섯 개는 쓸 수 있다. 인간은 까다롭지만 동물은 실험실에 가두어 두고 편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누가 편하면서도 자신의 경력을 위한 이력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동물실험을 외면하겠는가?
이러한 지은이들의 폭로와 비판은 놀랍다. 너무 놀라워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숱한 예산과 의사들의 손끝에 희망을 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로 존재한다. 인간의 에이즈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에이즈로 죽지 않는 동물들을 실험한다며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낭비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고작 ‘이 동물은 에이즈로 죽지 않는다’는 것임에도 아직도 동물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엄청난 재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암과의 전쟁이 가진 문제점을 단지 과학의 신빙성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매년 암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아래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가 동물실험에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연구 분야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다른 항암 연구자로 갈 수 있는 이러한 자산이 완전히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에 따르는 인간의 희생은 수치화할 수조차 없다.‘본문’ 중에서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지은이들은 과학적으로 동물실험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당장 때려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 많은 자원들을 효과가 검증된 다른 방법들, 예컨대 병리학이나 역학, 임상관찰이나 사람의 조직을 이용한 ‘시험한’ 연구 등에 사용하고 국가적으로 병을 ‘예방’하도록 조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득권 세력이 순순히 자신들의 것을 포기할리는 만무하기에 개인이 진실을 알고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들이 진실을 알아서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에서 밝힌 내용들을 상기한다면 그것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목 그대로 너무나 오만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기에, 병에 걸린 사람들과 앞으로 병에 걸릴지 모르는 나와 내 가족들도 그 탐욕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에게 무엇이 좋은 백신인가를 테스트해 보았는가? 원숭이에게 어떤 물질이 효과가 있는가를 발견하는 데는 5~6년의 기간이 필요하고, 그 후에야 그것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가를 테스트해 볼 수 있다. 그때서야 당신은 인간이 원숭이와는 전혀 다른 방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5년의 시간이 허비되었음을 깨닫는다. ‘본문’ 중에서 (이상 오마이뉴스)
최근 댓글 목록